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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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류(沸流, 기원전 45년? ~ 기원전 9년?)는 고구려의 시조 동명성왕의 차남으로 백제 온조왕의 형이다.

[편집] 생애

  • 온조와 함께 고구려남쪽 지방으로 내려가 비류는 해변에 살기를 원하였으나 10명의 신하가 간 하기를 "생각건데 이 하남의 땅은 북은 한수를 띠고, 동은 고악을 의지하였으며, 남은 옥택을 바라보고, 서로는 대해를 격하였으니, 그 천험지리가 얻기 어려운 지세라 여기에 도읍을 이루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하자 비류는 듣지 않고 미추홀(인천)을 도읍으로 정해 나라를 세웠으나 땅이 습하고 물이 짜서 백성들이 살지 못하여 동생이 세운 나라로 이주하자 자결하였다.[1]
  • 학계에서는 백제의 시조가 비류라는 시조 비류설이 있다. 이에 따르면 어머니 소서노(召西奴)는 졸본 사람으로 우태에게 시집와 아들 둘을 낳았는데, 첫째가 비류고 둘째가 온조이다. 이후 우태가 죽고 주몽졸본부여에 도읍하고 고구려를 세운 뒤 소서노를 맞아 왕비로 삼고 비류와 온조를 양자로 삼았다. 이후 부여에서 예씨(禮氏)의 아들 [[고구려 유리가 찾아와 태자가 되니, 비류와 온조졸본부여를 떠나 남쪽으로 가 미추홀에서 살았다고 한다.
  • 백제 시조에 대해서는 그 외에 시조 온조설시조 구태설이 있으며, 현재는 시조 시조 온조설이 정설로 인정받고 있다.
  • 학계에서 정설로 인정받는 시조 온조설에 따르면 동명성왕졸본에 정착하여 졸본 부여왕(이름 미상)의 둘째 딸(이름 미상)과 결혼하여 두 아들을 낳았는데 형은 비류로, 동생은 온조로 이름 지어졌다. 이후 동명성왕고구려를 건국하고 비류와 온조는 왕위에 오르는 가장 유력한 순위에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 비류와 온조를 얻기 이전에 동명성왕북부여예씨 사이에서 태어난 유리고구려에 찾아오자 동명성왕이 반겼다. 게다가 동명성왕은 첫째 아들인 유리태자로 임명하자, 비류와 온조 형제는 후일이 두려워 남쪽으로 내려가 새로운 땅을 찾아 나서게 되었다고 한다.

[편집] 백제 비류을 연기한 배우

[편집] 주석

  1. 삼국사기백제본기 온조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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