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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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천(閼川, 생몰년 미상. 활동연대 636년 ~ 654년)은 신라 중기의 문신, 군인, 화랑이다. 신라 선덕·진덕여왕, 태종무열왕 때의 진골 귀족으로 화백회의 의장인 상대등(上大等)을 역임하였다. 진덕여왕 사후에 섭정으로 추대되었으나 태종 무열왕 김춘추(金春秋)에게 양보하였다. 진주 소씨는 알천을 자신들의 조상으로 보고 있다.

생애[편집]

사료 기록[편집]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알천의 생애가 부분부분 기록되어 있다.

선덕여왕 5년인 636년에는 백제의 장군 우소가 군을 이끌고 서라벌 근처의 여근곡에 침입해왔다. 선덕여왕이 이를 미리 알고 각간 알천과 필탄에게 병사 2천을 주어 이를 격파하였다. 이후 대장군에 봉해졌다. 638년에는 칠중성에 고구려군이 쳐들어오자 이를 격퇴하고 불안한 민심을 달랬다.

진덕여왕이 즉위한 647년 2월에는 비담의 뒤를 이어 상대등에 올라 국정을 담당하였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진덕여왕 대에 알천은 김유신, 임종, 술종, 호림, 염장과 함께 화백회의의 일원이었다. 남산 우지암(亏知巖)에서 회의를 하던 어느 날, 큰 범 한마리가 나타나 모두가 놀랐다. 그러나 알천만은 놀라지 않고 범의 꼬리를 잡아 땅에 메쳐 죽였다. 이에 모두가 그를 수석에 앉혔다. 그러나 삼국유사는 다른 화백회의 참석자들이 마음 속으로는 모두 김유신을 따르고 있다고 부연하고 있다.[1]

654년 진덕여왕이 후사 없이 죽자 대소신료들은 상대등 알천에게 섭정을 청하였다. 이에 알천은 "저는 늙고 이렇다 할 덕행이 없습니다. 지금 덕망이 높은 이는 춘추공이니, 세상을 다스릴 뛰어난 인물입니다."라 답하며, 김유신과 논의하여 김춘추를 왕위에 오르게 하였다.[2]

소씨 족보의 기록[편집]

진주 소씨 족보[3]는 알천이 진지왕 2년인 577년에 태어났으며, 신라의 개국공신 소벌도리의 25세손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족보는 김춘추가 태종무열왕으로 즉위한 이후, 알천의 공로를 가상히 여겨 소벌도리를 문열왕(文烈王)에 봉했다고 전한다. 태종무열왕 3년에 알천은 선조 소벌도리가 꿈에서 지목한 진주 도사곡으로 이동해 일가를 이뤘다. 조선시대 중기 홍문관, 예문관의 대제학을 역임한 문신 양곡 소세양과 사간원대사간을 지낸 문신 곤암 소세량은 그의 먼 후손이었다. 묘소는 경상남도 진주시 상대동 선학산록(仙鶴山麓)에 안장되었고, 사후 대각간(大角干)을 지낸 김인문(金仁問)이 그의 비문을 찬하였으나 실전되었다. 그 뒤 1977년 전국 소씨 종친회에서 비석을 재건하였다.

가족 관계[편집]

  • 진주소씨 세보의 기록
    • 아버지 : 소휴곤(蘇休昆: 처음 이름은 무은(武殷)) - 소벌도리의 23대손

관련 작품[편집]

드라마[편집]

관련 항목[편집]

참고 문헌[편집]

  • 신라정치사연구회 (이기백, 이조각, 1974)
  • 신라사기초연구(井上秀雄, 東出版, 1974)
  • 무열왕권의 성립과 활동 (신형식, 한국사론총 2, 1977)
  • 진주소씨대동보(족보)

바깥 고리[편집]

주석[편집]

  1. 삼국유사 진덕왕조
  2.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 삼국사기 태종무열왕조
  3. 진주소씨 족보 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