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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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손도(公孫度, ? ~ 204년)은 중국 후한 말의 인물로, 승제(升濟)이며 유주(幽州) 요동군(遼東郡) 양평현(襄平縣) 사람이다. 어릴 적 이름은 공손표(公孫豹)였으며, 공손도의 (度)는 이라고도 읽혀서 공손탁로 불리는 경우도 있다.

생애[편집]

그의 부친 공손연(公孫延)은 관리의 추적을 피해서 현도군(玄菟郡)으로 갔기 때문에 그곳에서 살았다.

같은 군 출신인 동탁(董卓)의 수하 장수 서영(徐榮)의 추천을 받은 뒤 요동 태수가 되었으나, 중원 지역이 혼란해지자 왕을 자처하며 독립 세력을 구축하였다. 그는 산동 반도의 동부 지역 및 주변 지방을 공략하는 등 세력을 확장하였다. 또한 국내적으로도 강성한 호족들을 대량 숙청하여 절대 군주권을 확립하는 데 힘썼다. 한편 그와 적대하던 고구려선비족의 적국인 부여의 왕 위구태(尉仇台)에게 종친의 딸을 시집보내는 형태로[1] 부여(夫餘)와 동맹을 맺는 등 외교 관계 수립에도 힘을 기울였다. 조정에서 그에게 작위를 내릴 때마다 공손도는 “내가 왕인데 어찌 한(漢)이 내리는 지위를 받겠는가”며 인수를 창고에 던져버렸다고 한다.

서기 204년 공손도가 죽자 장남 공손강(公孫康)이 뒤를 이었고, 계속하여 아들 공손공(公孫恭), 강(康)의 아들 공손연(公孫淵)에 이르기까지 전부 4대를 전했다. 위 명제 경초 2년(서기 238년)에 사마의(司馬懿)에게 토벌될 때까지 50여 년간 요동에서 독자적인 정치세력으로 군림하였다.

공손도를 섬긴 사람들[편집]

공손도의 친족관계[편집]

공손탁.png

관련 인물[편집]

주석[편집]

  1. 진수(3세기),《삼국지》〈卷30 烏丸鮮卑東夷傳〉 “夫餘王尉仇台更屬遼東。... 度以夫餘在二虜之間,妻以宗女。”(부여왕 위구태는 (소속을 )바꾸어 요동군에 복속했다....(공손)도는 부여가 이들 두 나라 사이에 끼여 있음을 보고 왕실의 딸로서 처를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