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상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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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는 신채호가 저술한 한국 상고사에 관한 이다. 총론은 1924년에 완성되었으며, 1930년의 《조선사연구초》 발간에 이어 1931년부터 조선일보에 연재되었다. 그 내용이 불완전하여 연재를 중지하고 수정하여 발표할 계획이었으나 건강 악화로 실현되지 못하였다.

연재는 계속되어 신채호 사후인 1948년에 총 12편의 단행본으로 종로서원에서 출간되었다. 역사를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 묘청의 난을 ‘조선역사상 일천년래 최대사건’으로 주장하였음이 널리 알려져 있다.[1] 현재 1948년에 종로서원에서 간행한 단행본이 남아있다.

내용[편집]

이책은 총12편으로 이뤄져 있다. 구체적으로 1편 총론, 2편 수두시대, 3편 3조선 분립시대, 4편 열국쟁웅(列國爭雄)시대 대(對) 한족격전(韓族激戰)시대, 5편 (1) 고구려 전성시대, (2) 고구려의 중쇠(中衰)와 북부여의 멸망, 6편 고구려·백제 양국의 충돌, 7편 남방제국 대(對) 고구려 공수(攻守)동맹, 8편 3국 혈전의 시(始), 9편 고구려 대수전역(對隋戰役), 10편 고구려 대당전역(對唐戰役), 11편 백제의 강성과 신라의 음모 등이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2]

특징[편집]

이 책의 특징은 김부식(金富軾)이 쓴 『삼국사기』나 그 뒤의 대부분의 역사책들이 한국사의 본격적인 전개 시기를 삼국시대 이후로 보았기 때문에 그 무대도 한반도와 만주일부에 국한되어 한국사의 타율성론(他律性論)을 강조했던 ‘식민주의사관론자’들이 한국사의 전개 무대를 한반도 내로 축소시켰다는 전제아래 다음과 같이 정리되고 있다.

첫째, 종래의 한국사의 인식체계를 거부하고 새로운 인식체계를 수립하였다. 종래의 단군·기자·위만·삼국으로 계승된다는 인식체계와 단군·기자·삼한·삼국의 인식체계를 거부하고 신채호는 실학시대 이종휘(李種徽)의 『동사 東史』에서 영향을 받은 듯, 대단군조선·3조선·부여·고구려 중심의 역사인식체계를 수립하였다. 대단군조선과 불·신·말의 3조선설에는 문제가 많지만, 그가 이러한 체계를 위해 전후삼한설(前後三韓說)을 주장하고 삼한의 이동설을 제시한 것은 고대사 연구에 큰 자극을 주었다.

둘째, 이러한 역사체계에 부수되는 것으로 상고시대 한국사의 웅혼한 모습을 보이게 되었는데, 상고사의 역사 무대를 중국 동북쪽 지역과 랴오시(遼西) 지역에까지 넓혔고, 단군시대에 산둥(山東) 지역을 경영했다는 주장도 나오게 되었는데 종래의 주장들에 반대하고 이렇게 한국사의 본격적인 전개시기가 삼국 이전이요, 활동 무대도 북으로 북만주, 서남쪽으로 랴오시·발해만 유역·직예성·산둥·산시·화이허(淮河)·양쯔강 유역까지 미쳤다는 것, 이와 함께 종래의 한사군의 반도내존재설에 반대하고, 한사군이 실재하지 않았거나 요하(遼河)지역에 존치(存置)되었을 것이라고 서술하였다.

셋째, 삼국 중 고구려백제는 중시하나 신라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았다. 역사를 투쟁의 기록으로 파악한 단재사관에서 고구려는 우리민족을 외세로부터 보호하고 대외투쟁에서 승리를 거둔 이상적 국가이다. 『삼국사기』에서는 고구려가 서기전 37년부터 서기 668년까지 705년간 존속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신채호고구려 900년설을 내세우면서 앞부분 200여 년이 삭감되었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신채호는 한무제와 대결한 세력이 고구려라고 서술하였다. [2]

백제부여·고구려를 계승한 나라로서, 고구려와 같이 대외경략에서 뚜렷한 업적을 남겼다고 하였다. 즉, 근구수왕동성왕 때 중국의 랴오시·산둥 지방과 일본 전역을 식민지로 삼았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백제의 부흥운동이 자세하게 기록된 것은 이런 이유이다. 고구려·백제에 비해서 신라는 대외투쟁을 거의 경험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삼국통일의 경우 당(唐)세력을 끌어들였다. 그 결과 고구려의 옛 영토를 상실하게 되었다는 것, 따라서 신채호는 통설로서의 삼국통일은 민족사에 긍정적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정적이라는 평가를 내리면서 ‘김유신(金庾信)의 음모’라고 단정하여 서술하였다. 따라서 이러한 삼한의 이동설을 제시한 것은 고대사 연구에 큰 자극을 주게 되었다. [2]

평가 및 가치[편집]

이책이 갖는 의의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되고 있다.

첫째, 신채호역사를 모순관계의 상극투쟁을 통해 사회가 진보하는 과정을 객관적으로 기술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이러한 역사를 객관적으로 서술하기 위해서는 사료의 수집 선택과 그에 대한 비판이 수반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이를 실증주의 방법의 제시라고 보고, 신채호한국 근대 역사학의 확립자로 평가하고 있다.

둘째, 이 책은 한국 고대사의 영역을 한반도에서 만주 지역으로 확장시킴으로써 고대사 인식체계의 일대 전환을 요구했다. 일부 역사학자들이 지적하듯이, ‘조선상고사’는 한국 고대사를 신라 중심의 역사에서 부여·고구려 중심의 역사로 전환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신채호김부식의 역사인식을 일관되게 비판해왔다. 그 단적인 예가 고려 시대 묘청의 난을 ‘조선 역사 1000년 이래 가장 큰 사건’이라 한 것인데, 신채호는 이 사건을 ‘사대파’에 의한 ‘북벌파’의 좌절로 파악했다. [2]

교설적(敎說的)인 성격이 많이 나타나면서 민족주의 의식이 지나치게 투영되어 역사 서술과 그 가치 평가의 공정성을 감소시킨 면이 있다는 것과 현재적 관점에서 ‘조선상고사’에서 다뤄지는 내용은 여러가지 논란을 불러오고 있다는 것, 그래서 역사학계에서는 적잖이 낯설게 취급되고 있다.

이른바 재야사학자들은 ‘조선상고사’의 견해를 크게 수용한 반면, 재야사학에서 강단사학으로 분류하는 역사학자들은 ‘조선상고사’의 주장에 거리를 둬 왔다. 강단사학의 관점에서는 민족주의에 대한 과도한 강조나 실증성의 결여가 신채호 역사 인식의 약점으로 제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대사 연구에 많은 자극을 주게 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2]

같이 보기[편집]

주석[편집]

  1. 【역사인물】단재 신채호 61주기, 《신동아》, 1997.3.
  2. 김호기 연세대 교수, "무장투쟁 전개한 행동파 독립운동가 신채호, 민족개조론 편 친일 개화론자 이광수 (한국어)", 《신동아》, 2011년 9월호 작성. 2012년 1월 3일 확인.

참고 자료[편집]

  • 「울지 못해 웃고 간 한국의 거인들」, 단재의 역사관, 한민 저, 청년정신(2001년, 266~297p)
  • 「현대 한국유교와 전통」, 계몽운동과 민족의식의 고취, 금장태 저, 서울대학교출판부(2003년, 30~41p)
  • 「한국민족운동사론」, 일제 시대의 반식민사학론, 강만길 저, 서해문집(2008년, 251~263p)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