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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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주요 성씨(KNSO, 2000)      김(金)      이(李)      박(朴)      최(崔)      정(鄭)      그 외

(李, 異, 伊) 또는 (李)씨는 성씨의 하나이다. 이씨는 한국에서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성씨이다.

명칭[편집]

대한민국에서는 로 발음되는 성씨가 3개 있는데, 이(리, 李)씨, 이(異)씨, 이(伊)씨가 이에 해당된다. 이 중에서 이(李)씨는 대한민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화인민공화국, 중화민국, 베트남 등에 분포하는 성씨라고 발음한다. 대한민국에서는 두음법칙을 적용하여 '이'라고 표기한다. 북한은 두음법칙을 적용시키지 않아 '이'씨를 '리'씨 라고 쓴다. 이외에도 이(異)씨와 이(伊)씨가 존재하지만, 인구는 이(리, 李)씨에 비해 상당히 적다. 異, 伊씨는 두음법칙과 관계없이 본음이 '이'씨이다.

이(리, 李)씨[편집]

아래는 본관에 따른 각 이(리,李)씨의 개요이다. 순서는 가나다 순이다.

경주 이씨[편집]

경주 이씨(慶州 李氏)는 신라 건국 신화에 등장하는 알평을 시조로 하고 있다. 중시조는 신라 후기 소판공 이거명(李居明)이다. 이총섬(李寵暹, ?~998)이 고려 목종(980~1009) 때 문하시중으로 오묘와 사직을 건립하였고, 국자감 시험제도를 청원하여, 과거제도를 설립하였다. 이제현(李齊賢. 1287~1367)은 고려 시대 외교가, 문장가이다. 이시영은 한국의 독립운동가이다. 이하영은 일제 강점기 귀족 작위을 받았다.

고부 이씨[편집]

고부 이씨(古阜 李氏)의 시조는 이경조(李敬祖)이다.그는 고려문종(재위 1046~1083)때 최충이 설립한 사학의 효시인 구재학당 출신으로 한림학사를 거쳐 문하평장사에 올랐다. 1071년(문종25) 김제와 함께 서장관으로 송나라에 다녀왔으며 문종에서 숙종조에 이르기까지 5대를 섬긴 공으로추충보정공신(推忠輔靖功臣)에 녹훈되어 여산(礪山君)에 봉해지고 벼슬이 검교좌정승에 이르렀다.

고성 이씨[편집]

고성 이씨(固城 李氏)의 상조는 한나라 한무제 때 중서사인(中書舍人) 이반(李槃)이다. 중시조는 이반의 24세손인 이황(李璜)으로, 고려때 밀직부사를 역임하고 1033년 거란이 침입했을때 공을 세워 고려 문종(재위, 1019~1083) 때 호부상서에 올라 철령군에 봉해져, 후손들은 그를 1세조로 하고 본관을 고성으로 하였다.

공주 이씨[편집]

공주 이씨(公州 李氏)의 시조 이천일(李天一)은 신라 초기 호족이다. 이저(李苧)는 고려(高麗)에서 대제학을 역임하고 화성부원군(花城府院君)에 봉해졌다.

광산 이씨[편집]

광산 이씨(光山 李氏)는 이종금(李宗金)이 시조이다. 이종금은 궁예대왕의 5세손으로 본명이 김일형(金日炯)으로서 1010년과 1018년 거란의 2-3차침입 때 공을 세워 덕종 2년에 광산군(光山君)에 추증되고 이종금(李宗金)으로 사성명 받았다. 이선제(李先齊)는 태종실록 편찬에 참여했고 고려사(考慮史) 개찬(改撰)을 관장했다.

광주 이씨[편집]

광주 이씨(廣州 李氏)의 시조는 이당(李唐)이다. 아들 이집(李集)은 신돈(辛旽)과 대립하여 영천으로 피신하였다가 신돈(辛旽)이 주살된 후 판전교시사가 되었다. 이덕형(李德馨)의 한음문고을 저술하였다.

농서 이씨[편집]

농서 이씨(隴西 李氏)는 당나라 왕족과 이태백의 본관이다. 농서 이씨는 4세기 유목 민족과 통혼하여, 북족적(北族的) 요소을 계승하였다. 당고조 이연(李淵)의 가문은 선비족 북주(北周)의 우문씨(宇文氏), 수(隋)나라의 양씨(楊氏)와 인척 관계로, 수나라 말기 권력의 핵심부에 있다가 당나라을 건국하였다. 당 태조 이호, 당 세조 이병, 당 고조 이연, 당 태종 이세민으로 이어진다.

단양 이씨[편집]

단양 이씨(丹陽 李氏)의 시조는 고려 태조(재위, 918∼943) 때 삼중대광 문하시중에 역임한 이배환(李盃煥)이다. 15세손 이무(李茂)가 참찬문하부사로서 조선 제1차 왕자의 난이방원(李芳遠)을 도와, 단산부원군(丹山府院君, 단양의 고호)에 봉해졌다.

덕수 이씨[편집]

덕수 이씨(德水 李氏)는 충무공 이순신, 율곡 이이, 이행 등을 배출하였다. 충무공 이순신(李舜臣)의 세보에는 이추밀(李陽俊)을 시조라고 하였다. 율곡 이이(李珥)의 세보에는 시조가 이돈수(李敦守)라고 하였다.

벽진 이씨[편집]

벽진 이씨(碧珍 李氏)의 시조는 신라고려 초기의 호족 이총언(李忩言)이다. 그는 신라 헌안왕(재위, 857∼860) 2년에 태어나 벽진군(碧珍郡, 성주의 고호)의 치안에 담당하였다.

상주 이씨[편집]

상주 이씨(尙州 李氏)의 시조는 중국 허베이성(하북성) 출신 이민도(李敏道)이다. 그는 원나라 한림학사로 있다가 자국의 난을 피해, 고려 공민왕 때 귀화하였다. 이민도는 본래 중국의 농서 이씨였는데, 태조는 그를 총애하여 직헌(直憲)이라는 시호를 내렸으며, 조선인으로 동화시키기 위해 왕명으로 본관을 농서 이씨에서 상주 이씨로 개칭하게 하였다.

서림(서천) 이씨[편집]

서림(서천)이씨(西林 李氏)는 이익존(李益存)을 시조로 하고 이언충(李彦忠)을 1세로 하고 있다. 이익존(李益存)은 시호가 문충(文忠)으로, 고려시대에 익찬선위정원공신(翊贊宣威定遠功臣) 흥록대부(興祿大夫) 호부상서(戶部尙書)에 올랐다.일반적으로 이익존의 18세손 효사공(孝思公) 이세공(李世公)이 고려의 공신이 되어서 서림군(西林君)에 봉해졌고, 20세손 이언충(李彦忠)이 또 서주군(西州君)에 봉해졌다

성산 이씨[편집]

성산 이씨(星山 李氏)의 시조는 신라 말기의 호족 이능일(李能一)이다. 고려 건국에 수훈을 세웠으며, 고려 태조(918∼943)의 딸과 결혼하여 부마가 되고 벼슬은 사공(司空)에 이르렀고, 후에 성산군에 추봉되었다.

성주 이씨[편집]

성주 이씨(星州 李氏)는 시조는 이순유(李純由)이다. 그는 본래 경주 이씨였으나, 신라고려에 항복하자 충절을 지켜 고려 초기, 나라에 관적하지 않고, 지금의 성주읍 경산동(京山洞)에 옮겨 정착하였다.

수안 이씨[편집]

수안 이씨(遂安 李氏)의 시조는 고려 태조(918∼943)를 따라 견훤(甄萱)을 토평하여 벽상공신에 오른 이견웅(李堅雄)이다. 13세손 이연송(李連松)이 수안군에 봉해졌다.

아산 이씨[편집]

아산 이씨(牙山 李氏)의 시조는 이주좌(李周佐)이다. 경주 이씨 이승훈(李承訓)은 고려 시대 평장사을 지냈고, 차자는 이주좌(李周佐)는 아산 이씨로 분적하였다. 이봉수는 신일기업(주) 회장이다. 이광수는 대한모방(주) 대표이사이다.

안남 이씨[편집]

안남 이씨(安南 李氏)는 정선 이씨의 시조 이양혼(李陽焜, 리 즈엉 꼰), 화산 이씨의 시조 이용상(李龍祥)의 후손들의 고려 때 본관이다. 이양혼(李陽焜)은 베트남안남국 리왕조 출신으로 처음에는 경주에 정착하였다. 9세손 이우원(李遇元)은 강원도 정선으로 이거하였다.

안악 이씨[편집]

안악 이씨(安岳 李氏)의 시조는 중국 농서(隴西) 사람 이진(李震)이다. 그는 위만조선(衛滿朝鮮)이 한(漢)나라와 한반도의 무역을 가로막는 봉쇄 정책을 취하자, 위만조선을 멸망시키는데 공을 세웠으며, 왕명에 따라 한사군(漢四郡)을 설치하고 양산(楊山, 안악)에 정착하였다.

양성 이씨[편집]

양성 이씨(陽城 李氏)의 시조는 송나라 사람 이수광(李秀匡)으로, 1,040년 송(宋)나라에서 금오위대장군 상주국의 작위를 받았고, 고려에 들어와 문종(1046~1083) 때 삼중대광보국(三重大匡輔國)에 이르렀으며, 거란과의 외교와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양성을 식읍으로 받았다. 이순지(李純之)는 조선의 천문 학자이다.

연안 이씨[편집]

연안 이씨(延安 李氏)의 시조는 당나라 장군 이무(李茂)이다. 그는 660년 당(羅唐) 연합군의 중랑장(中郞將)으로 소정방(蘇定方)을 따라왔다가 백제를 평정한 뒤 황해도 연안후(延安候)에 봉해지고 신라에 정착하였다.

영천 이씨[편집]

영천이씨의 시조는 이문한으로 그의 조상은 경주 이씨로 알려져 있다.

용천 이씨[편집]

용천 이씨(龍川 李氏)의 시조는 이밀(李密)이다. 그는 고려 초기에 도등고(都登庫) 판관(判官)을 역임했다고 한다. 룡천(龍川, 龙川)은 평안북도 북서부에 속한 지명으로 중국 단둥 맞은편 국경 지역이다.

우계 이씨[편집]

우계 이씨(羽溪 李氏)의 시조는 이양식(李陽植)이다. 그는 고려 인종(재위, 1122년 ~ 1146) 때 중서사인좌복야를 지냈는데, 만년에 낙향하여 강릉(江陵) 우계현에 정착하였다.

우봉 이씨[편집]

우봉 이씨(牛峰 李氏)의 선계는 이두창(李頭昌)이며, 시조는 이공정(李公靖)이다. 그는 고려 명종(재위, 1170년~1197) 때 잠성부원군(岑城府院君, 우봉의 별칭)에 녹훈되었다.

원주 이씨 (구)[편집]

원주 이씨(原州 李氏)의 시조는 신라 때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낸 이진민(李眞民)이며, 중시조는 고려 인종(1122~1146)과 의종 때 병부상서를 지낸 이춘계(李椿桂)이다. 원주 이씨의 선계(先系)는 중국 절서성에서 병난(兵亂)을 피하여, 원주(原州)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원주 이씨 (신)[편집]

원주 이씨(原州 李氏)의 시조는 신라 개국공신 이알평의 47대손인 이신우(李申佑)이며, 중시조는 고려 말, 조선 초기의 문신인 이반계이다. 이신우가 원주백에 봉작된 이유로 경주 이씨에서 분관하여 원주 이씨로 하였다.

익산 이씨[편집]

익산 이씨(益山 李氏)의 시조 이문진(李文眞)은 고구려 영양왕(재위, 590∼618) 때 고구려에서 태학박사(太學博士), 문부전서(文部典書), 오경박사(五經博士)를 역임하고, 백제 공주와 결혼하여 익주(益州, 익산시)을 식읍으로 받았다. 이후 세보가 실전되어 고려 태조 때 이의(李誼)를 중시조로 하고 있다.

인천 이씨[편집]

인천 이씨(仁川 李氏)의 시조는 이허겸이다. 고려 현종(재위, 1009∼1031) 때 상서좌복야를 지냈다. 고려 현종의 장인인 김은부는 이허겸의 사위였으며, 손자인 이자연의 딸이 고려 문종의 후궁이 되면서 이후 4대에 걸쳐 왕비와 후궁을 배출하였다. 인물로는 고려조 난을 일으킨 이자의(李資義)과 이자겸(李資謙), 일제 강점기 군인 이두황이 있다. '경원 이씨' 혹은 '인주 이씨'라고도 한다.

임천 이씨[편집]

임천 이씨(林川 李氏)시조 이현(李玄)은 본래 위구르족으로,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고려에 들어와 정착하였다. 그의 고향은 몽골러시아 국경 지역에 있는 설련하(셀렝가)라고 한다. 이현(李玄)은 고려 공양왕 때 명나라 남경(南京)을 다녀온 공으로 임천을 슥읍으로 받았다. 다른 위구르 귀화 성본으로는 설손(偰遜)을 시조로 하는 경주 설씨장순룡(張舜龍)을 시조로 하는 덕수 장씨가 있다.

장수 이씨[편집]

장수 이씨의 시조 이임간경주 이씨의 시조 알평의 51세손이며 중시조 이거명의 16세손이다. 그는 고려 때 장천부원군에 봉해졌고, 손자 이을진이 장천부원군에 추증, 습봉함으로서 본관을 장수로 하여 분관하였다.

재령 이씨[편집]

재령 이씨(載寧 李氏)는 시조는 이우칭(李禹偁)이다. 그는 경주 이씨의 시조 알평의 후손으로 고려 때 보조공신(補祚功臣)에 녹훈되고 문하시중을 역임하고, 재령군에 봉해졌다.

전주 이씨[편집]

전주 이씨(全州 李氏)는 전주(全州)에 토착해 온 집안이다. 시조 이한(李翰)은 신라 문성왕 때 사공(司空)을 지냈다. 16세손 이의방무신정권을 수립자이다. 18세손 목조(穆祖) 이안사(李安社)는 전주에서 삼척으로 이주하였다고 하고, 19세손 익조(翼祖) 이행리(李行里), 20세손 도조(度祖) 이춘(李椿), 21세손 환조(桓祖) 이자춘(李子春)을 거쳐, 22세손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가 조선을 개국하였다. 세종대왕의 본명은 이도(李裪)이다.

전주 이씨는 크게 태조의 고조부인 목조 이안사의 이전 세대에서 분파한 선원선파와 목조 이안사의 후손에서 분파한 선원세계를 합해 모두 123파이다.

전의 이씨[편집]

전의 이씨(全義 李氏)의 시조는 이도(李棹)이다. 그는 고려 태조(918∼943)가 후백제을 정벌할 때 금강이 범람되어, 진군을 멈추게 되자 도강책(渡江策)을 지휘하는 공을 세워 전산후(全山侯, 전의의 고호)에 봉해졌다. 후손들이 전의(全義)를 본관으로 하였다.

정선 이씨[편집]

정선 이씨(旌善 李氏)의 시조는 이양혼(李陽焜, 리 즈엉 꼰)이다. 그는 베트남 안남국 리왕조 인종(이건덕, 李乾徳, 1072~1128)의 세째 아들이자, 5대 임금 신종(이양환, 李陽煥, 1128~1138) 의 아우로 왕위를 다투다가 북송으로 망명하였고, 금나라와 공격으로 북송이 쇠하자 고려로 들아와 경주에 정착하였다. 2세손 이시두(李君郁)는 고려 인종(재위, 1122년~1146년)에 예의판서(족보)에 올랐고, 6세손 이의민(李義旼)은 무신정권을 수립, 종형 이희민(李羲旼)은 문하시중이 되었다. 9세손 이우원(李遇元)는 정선에 정착하여 본관을 정선으로 하였다. 고려윤이-이초의 옥사에 희생된 이초이우원의 증손자였다.

태안 이씨[편집]

태안 이씨(泰安 李氏)의 시조는 이기(李奇)이다. 그는 중국 당나라 때 인물 이승남(李昇南)의 후손으로, 고려 광종(재위, 949∼975) 때 난을 피해 동래하여, 태안에 정착하였다. 이기(李奇)의 7세손 이천(李?)이 태안부원군에 봉해져, 태안을 관향으로 하였다. 이회(李薈)는 역대제왕혼일강리도를 증수(增修)하여 팔도도(八道圖)를 그렸다.

태원 이씨[편집]

태원 이씨(太原 李氏)의 시조 이귀지(李貴芝)는 송나라 때 중국 산서성 태원(太原)사람이다. 고려 충렬왕 때 난을 피해 귀화하였다. 손자 이방무(李芳茂)는 낭장(郞將)을 지내고 조선개국에 공을 세웠다. 그 후 북청으로 이주하여 조상들의 고향인 중국 태원을 본관으로 하였다.

평산 이씨[편집]

평산 이씨(平山 李氏)의 선조는 중국 당(唐)나라 설인귀(薛仁貴)가 보낸 8명의 부하 가운데 한 사람으로 평산에서 사람들에게 예법을 가르쳤는데, 이름은 전하지 않는다. 중시조는 고려 때 밀직부사(密直府使)를 지낸 이자용(李子庸)이다.

평창 이씨[편집]

평창 이씨(平昌 李氏)의 시조는 이광(李匡)이다. 그는 1126년, 고려 의종 때 광록대부 태사에 이르렀고, 백조군(白鳥君, 평창의 고호)에 봉해졌다. 8세손 이천기(李天驥)가 공민왕(재위, 1351~1374) 때 공훈을 세워 평창군에 봉해졌다.

하빈 이씨[편집]

하빈 이씨(河濱 李氏)의 시조는 이거(李琚)이다. 그는 1174년, 고려 명종(1170∼1197) 4년에 조위총(趙位寵)이 거병하여 정중부(鄭仲夫)와 이의방(李義方)등의 난을 평정할 때 최균(崔均)을 따라, 공을 세우고 하빈군(경북 달성)에 봉해졌다.

한산 이씨[편집]

한산 이씨(韓山 李氏)는 시조는 둘로 나뉘며 호장공계의 이윤경(李允卿) 권지공계의 이윤우(李允佑)가 있다. 이윤경은 고려 충숙왕 때 원자라에 가서 과거 급제. 한림 국사원검열을 지내다 충목왕때 돌아와 정당문학과 도첨의찬성사에 올라 한산군에 봉해진 이곡의 5대조이다. 이윤우는 충렬왕 때 광정대부 도첨의 참리상호군 검교대장군에 오르고 역시 한산군에 봉해진 이무의 3대조이다.

합천 이씨[편집]

합천 이씨(陜川 李氏)의 시조는 이개(李開)이다. 그는 최치원의 문인으로 공부하면서 벼슬하여 강양군(江陽君, 합천의 고호)에 봉해졌다. 이개(李開)는 고려가 건국되자 절의를 지켜 고려 태조(918∼943)의 부름을 거절하여 가수현장(嘉樹縣長)으로 강등, 합천호장을 관적하였다.

해남 이씨[편집]

해남 이씨(海南 李氏)의 시조 이지형(李之亨)은 고려(高麗) 때 태자소경(太子少卿)을 지냈다. 후손들이 해남에 정착하여 세거하면서 본관을 해남(海南)으로 하였다.

청주 이씨[편집]

청주 이씨(清州 李氏)의 시조는 고려 태조(918∼943) 때 공신으로, 벽상삼한삼중대광태사에 오른 이능희(李能希)이다. 이백강(李伯剛)은 조선 태종 때 대장군이 되어 대광보국숭록대부에 올랐다.

청해 이씨[편집]

청해 이씨(青海 李氏)는 시조는 여진족 출신인 이지란(李之蘭)이다. 본명은 쿠란투란티무르(古倫豆蘭帖木兒)이다. 이지란은 함경도에 거주하면서 이성계와 친밀하게 지내다가 이(李)씨 성을 득성하고 조선 개국에 공을 세워 개국 공신이 되었다.

함평 이씨[편집]

함평 이씨(咸平 李氏)의 시조는 고려 광종(949~975) 때의 신무위대장군(神武衛大將軍)을 지내고 후에 함풍군(咸豊君)에 봉해진 이언(李彦)이다. 《정묘보(丁卯譜)》 세록(世錄)편에 의하면 시조공(始祖公) 이언이 함풍군에 봉해져 자손들이 크게 번성하여 성향(姓鄕)이 되었다고 하였다.그 뒤 4세손 이순지(李順之)는 고려조에서 검교(檢校) 흥위위대장군(興威衛大將軍)을 지냈고, 이어 그의 큰 아들 이림(李琳)은 문과에 급제하여 상의원직장동정(尙衣院直長同正)을 지냈다. 그 후 후손들이 크게 번성하여 함평이씨의 대종(大宗)을 형성하였다.이순지의 둘째 아들 이광봉(李光逢)은 충숙왕 때 삼한벽상(三韓壁上) 삼중대광(三重大匡)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 좌명공신(佐命功臣)에 녹훈되고 함풍부원군(咸豊府院君)에 봉해졌다. 이후 조선시대에 함풍(咸豊)과 모평(牟平) 두 현을 합하여 함평(咸平)으로 고쳤는데, 그 후손들이 함평을 관향으로 삼아 일파를 이루고 있다.

홍주 이씨[편집]

홍주 이씨(洪州 李氏)의 시조는 고려 시대의 무인 이유성(李維城, ? ~ 1215년)이다. 후손들의 본관이 '안평 이씨'(安平 李氏)로도 잘못 불렸으나, 현재는 대부분 홍주 이씨로 고쳐진 상태이다. 본관인 홍주충청남도 홍성의 옛 이름이다.

화산 이씨[편집]

화산 이씨(花山 李氏)의 시조는 이용상(李龍祥)이다. 그는 베트남안남국 리왕조(1009년~1225년)의 6대왕 영종 이천조(李天祚, 재위, 1138~1175)의 아들이다. 안남국 리왕조 고종(1175~1210) 때 리씨 왕조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배를 타고 황해도 화산으로 피신하였다.

이(異)씨[편집]

이(異)씨의 본관은 밀양 단본이다. 그 밖에도 동월, 청양, 남원 등이 조선씨족통보에 전하지만 본관이 아닌 세거지로 파악되고 있다. 이(異)씨의 본관은 밀양 단본이다. 그 밖에도 동월, 청양, 남원 등이 조선씨족통보에 전하지만 본관이 아닌 세거지로 파악되고 있다. 고시조는 이사부와 이차돈, 중시조는 이응보, 이유충이며, 시조는 이조 시대 훈련원 주부를 지낸 이맹원에서 시작한다. 구한말에는 무인으로 주로 서울에 살았다.

고려 현종 때에 좌복야 벼슬을 했던 응보(膺甫), 고려 문종 때의 참지정사 유충(惟忠)과 안서도호부사(安西都護府使) 선정(善貞) 등이 고려사에 등장한다. 1985년 인구 조사에서는 359명으로 274개의 성씨 중 189위였다.

이(伊)씨[편집]

이(伊)씨의 본관은 은천(백천), 충주, 태원(충주) 등이다. 태원 이씨의 시조는 이단취(伊丹取)로 전해지며 시대는 미상이다. 1985년 인구 조사에서는 249명으로 274개의 성씨 중 200위를 차지하였다. 異씨와 마찬가지로 伊씨 역시 근래들어 李씨와 구별없이 사용돼, 伊씨인 사람들도 행정적으로 李씨와 동일시되고 있는 경향이다.

주석[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