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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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향 | 개성 |
| 시조 | 김용주 (金龍珠) |
| 주요 중시조 | |
| 주요 집성촌 | 평남 용강군, 충북 영동군 |
| 주요 인물 | 김응환 |
| 인구(2000년) | 20,341명 |
개성 김씨(開城 金氏)는 한국의 성씨이다.
목차 |
[편집] 시조
개성 김씨(開城 金氏) 시조 김용주(金龍珠)는 의성 김씨 시조 김석의 9세손이며 고려 문종 때 사람이다. 문과에 급제한 문신이었으나, 여진족 정벌에 무공을 세우고 추충공신에 책록되고, 개성부사와 평장사를 거쳐 경기도 개성군을 식읍으로 받아 개성군(開城君)에 봉해졌다. 이에 후손들이 의성 김씨에서 분관하여 거주지와 본관을 개성으로 이동하고, 시조를 김용주로 삼았다.
설성 김씨 역시 김용주의 후손이며, 김용주의 증손자를 시조로 개성 김씨에서 분관되었다.
[편집] 화원 가문
개성 김씨는 조선 후기의 화원 가문으로 유명하다. 18세기 후반의 도화서 화원이자 김홍도와도 가까웠던 김응환을 필두로, 후손들이 대대로 도화서에 근무하면서 화단에서 큰 세력을 형성했다.[1] 개성 김씨는 유력한 화원 가문인 곡산 노씨, 인동 장씨, 신평 한씨 등과 통혼하였고, 자손들이 화원직을 세습하였다.
[편집] 유명인
[편집] 같이 보기
[편집] 주석
- ↑ 박수희 (2007년 12월). 조선 후기 개성 김씨 화원 연구. 《미술사학연구》 (제25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