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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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09년 - 216년, 흉노의 최대 영토
기원전 209년 - 216년, 흉노의 최대 영토

흉노(匈奴, 현대 중국어로는 숑누)는 기원전 5세기부터 5세기까지 중앙아시아와 현재의 몽골에서 활동하던 유목민족이다. 기원전 3세기 무렵 현재의 중국 북부에서부터 서쪽으로 코카서스 일대에까지 달하는 방대한 제국을 건설했으며, 전성기에는 시베리아 남부, 서부 만주, 그리고 현재 중화인민공화국네이멍구 자치구, 간쑤 성, 신장 웨이우얼 자치구에 달했다. 산해경에 따르면 흉노는 하나라 마지막 왕인 이계의 자손이라고 하나, 이를 뒷받침하는 역사적, 고고학적 증거는 없다.

중국의 한족과 흉노는 때로 군사적 충돌을 겪기도 하였고, 때로는 조공무역이나 결혼동맹을 하는 등 복잡한 관계를 보였다. 흉노에 대한 대부분의 기록은 중국의 사료에 의거한 것이며, 현재 중국어로 음역된 일부 지명이나 이름들을 제외하고는 흉노어의 재구성은 거의 불가능하다.

진시황은 흉노족을 막기 위해 전국시대만리장성을 연결하였다. 현재는 남아있지 않으며, 한나라 때 증축한 것만 남아 있다.

목차

[편집] 초기 역사

첫 역사적 기록은 전국 시대 때 찾을 수 있다.

[편집] 모돈 선우의 등장

이 부분의 본문은 모돈 선우입니다.

모돈 선우는 아버지인 두만 선우를 살해하고 자리에 올랐다. 선우가 된 후 동방의 동호와 서방의 월지를 격파한 후, 이제 막 등장한 한나라와 대결하게 되었다. 산서성에 위치한 평성에서 모돈은 한 고조의 군대와 맞붙게 되는데 여기서 한 고조는 크게 패하여 백등산에서 일주일동안 갇히게 된다.

이후 한나라와 흉노는 형제 관계를 맺었으며, 한 고조는 죽을 때 "흉노와 전쟁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긴다.

[편집] 한나라와의 투쟁

[편집] 후기 역사

[편집] 흉노의 분열

[편집] 십육국 시대

후한 말기에 후한에 복속되어 있는 남흉노의 지도자들은 후한과 촉한의 멸망 이후 한나라의 계승자를 자처하였다. 당시 흉노의 지도자 유연304년 오르도스 지방에 한나라를 건국하였다. 이것이 십육국 시대의 전조이다.

[편집] 훈족과의 관계

[편집] 정치 제도

흉노의 군주는 선우라고 불렀다. 하지만 이후 오르도스와 중앙아시아 등지의 유목 왕조들의 군주들은 선우라는 명칭은 거의 쓰지 않았고, 한이나 가한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

또한 선우를 보좌하는 좌현왕, 우현왕이라는 직책도 있었다. 흉노 선우의 시각은 중원 왕들과 반대였기에, 좌현왕은 동부, 우현왕은 서부를 관장했다. 당시 중국 왕조인 한나라 식으로 하면, 선우는 황제, 좌우현왕은 황제가 봉해주는 왕에 해당한다. 또한 좌우현왕과 비슷한 두 왕이 더 있어 선우와 함께 유목민족 특유의 5부 체제를 이끌었다.

또한 흉노가 강성하여 서역 지방을 다스렸을 때 서역 지방 제후를 일축왕에 봉했다.

골도후라는 직책도 있는데, 정확히 무엇을 칭하는 것인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골도후에도 좌, 우의 개념이 있어 각각 선우의 보좌직이라는 설이 있다.

좌우현왕 밑에는 각각 지방관 등으로 여겨지는 각종 직위들이 있었으며, 여기서 흉노의 지역 체제가 군사 체제가 일치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흉노의 선우는 흉노의 중앙집권화를 최초로 이뤘다고 전해지는 모돈 선우 이래 부자상습제를 통해 자리를 이어갔다.

[편집] 같이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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