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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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후(金麟厚, 1510년 ~ 1560년)는 조선의 문신이자 학자이다. 자는 후지, 호는 하서(河西), 본관은 울산이다. 대한민국에서 부통령을 지낸 인촌 김성수와 기업인 김연수의 선조가 된다. 전라남도 출신이며 김안국의 문인.

목차

[편집] 생애

전라남도 장성에서 태어났다. 김안국의 제자로 수학하였으며, 후에 성균관에 들어가 유생이 되어 이황과 함께 학문을 닦았다.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정자에 등용되었다. 명종이 즉위하고,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병을 이유로 장성에 돌아가 성리학의 연구에 몰두하였다. 이황의 이기 일물설에 반대하였으며, 이기는 혼합해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천문·지리·의약·산수·율력에 정통하였다. 저서에 《하서집》, 〈주역관상편〉 등이 있다.

[편집] 일화(전설)

김인후가 죽고 나서 수년 뒤 이웃에 사는 오세억이란 사람이 죽었다가 하루 만에 살아났는데, 죽어서 자미궁(紫微宮)이란 곳에 갔더니 자미선으로 있는 김인후가 명부를 보며 아직 죽을 때가 아니라고 돌려보냈다는 일화가 전한다.[1]

정조는 "도학과 절의, 문장을 모두 갖추고 있는 사람은 오직 하서 한 사람뿐"이라고 칭송하였다.[1]

[편집] 저서

  • 《하서집》
  • 〈주역관상편〉

[편집] 가족 관계

  • 할아버지 : 김환(金丸)
  • 아버지 : 김영(金齡)
  • 어머니 : 옥천 조씨

[편집] 같이 보기

[편집] 주석

  1. 윤홍식·오병문, 2006, 조선선비들에게 배우는 마음 챙김의 지혜, 봉황동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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