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산 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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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향 | 광산 |
| 시조 | 김흥광 (金興光) |
| 주요 중시조 | |
| 주요 집성촌 | 충남 논산군, 강원도 회양군, 평북 정주군, 전북 고창군 |
| 주요 인물 | 김장생, 김집 |
| 인구(2000년) | 837,008명 (8위) |
광산 김씨(光山 金氏)는 한국의 성씨이다. 줄여서 광김이라고도 한다.
목차 |
[편집] 가문의 시초
광산 김씨(光山 金氏)의 시조 김흥광(金興光)은 신라 45대 신무왕(神武王)의 셋째 아들이다.[1] 김흥광(金興光)은 신라(新羅)가 장차 국난(國亂)이 있을 것을 미리 알고 경주를 떠나 광산현(光山縣) 서일동(西一洞, 현 담양군 평장동)에 자리를 잡고 그곳에서 자연과 더불어 학문을 닦으며 살았다. 그리하여 그 후손들이 선조의 세거지인 광산(光山, 광주(光州))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 왔다. 그의 후손들이 누대에 걸쳐 평장사(平章事, 정2품 벼슬)가 계속 8명이 배출되자 사람들이 그곳을 평장동(平章洞)이라 불렀다.
[편집] 분파
14세 문숙공(文肅公) 김주정(金周鼎)을 파조로 하는 문숙공파(文肅公派), 14세 양간공(良簡公) 김연(金璉)을 파조로 하는 양간공파(良簡公派), 14세 낭장공(郎將公) 김규(金珪)를 파조로 하는 낭장공파(郎將公派), 15세 문정공(文正公) 김태현(金台鉉)을 파조로 하는 문정공파(文正公派), 사온서직장(司醞署直長)을 지낸 17세 김영(金英)을 파조로 하는 사온서직장공파(司醞署直長公派)로 나뉘었다.
- 문정공파(文正公派) - 15세 김태현(金台鉉)
- 문숙공파(文肅公派) - 14세 김주정(金周鼎)
- 양간공파(良簡公派) - 14세 김연(金璉)
- 낭장공파(郎將公派) - 14세 김규(金珪)
- 사온직장공파(司醞直長公派) - 17세 김영(金英)
[편집] 인물
- 김덕령(金德齡):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 김만기(金萬基): 조선조 대제학, 총융사(摠戎使)
- 김만중(金萬重): 김만기 동생, 조선조 '구운몽(九雲夢)', '사씨남정기'의 작가이다.
- 김수환(金壽煥): 가톨릭 추기경.
- 김장생(金長生): 김국광의 5세손, 조선조 예학(禮學)의 태두
- 김준(金峻): 고려조 좌복야에 이르렀다.
- 김집(金集): 김장생의 아들, 조선조 이조판서
- 김책(金策): 고려조 평장사
- 김천택(金天澤): 조선조 가인(歌人)으로 '청구영언'을 내었다.
[편집] 집성촌
- 충남 논산군 일원
- 강원도 회양군 일원
- 평북 정주군 남서면 남호동
- 전북 고창군 일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