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고종
| 고려의 제23대 황제 | |
| 본명 | 왕철(王皞) |
|---|---|
| 재위 | 1213년 ~ 1259년 |
| 종교 | 불교 |
| 왕후 | 안혜왕후 |
| 부왕 | 강종 |
| 모후 | 원덕왕후 |
| 이전 왕 | 강종 |
| 다음 왕 | 원종 |
고종(高宗, 1192년 2월 3일 (음력 1월 18일) ~ 1259년 7월 21일 (음력 6월 30일)은 고려 제23대 국왕(재위: 1213년~1259년)이다. 휘는 철(皞), 자는 천우(天祐), 시호는 고종충헌안효대왕(高宗忠憲安孝大王). 강종과 원덕태후(元德太后) 유씨(柳氏)의 맏아들이다. 비(妃)는 희종의 딸 안혜태후(安惠太后) 유씨(柳氏)이다. 몽골에서 내린 시호는 충헌왕(忠憲王)이다.
최충헌의 적(嫡)매형이자 사돈간이기도 하다. 최충헌은 부왕 강종의 서녀와 재혼하였는데, 아들 원종의 장인 김약선은 최충헌의 아들 최우의 사위였다.
1213년부터 1259년까지 재위하는 동안 실권을 갖지 못하였으며 1213년부터 1219년까지 최충헌(崔忠獻)이 실권을 맡았고 1219년부터 1249년까지 최이(崔怡)가 실권을 맡았으며 1249년부터 1257년까지 최항(崔沆)이 실권을 맡았고 1257년부터 1258년까지 최의(崔竩)가 실권을 맡았으며 1258년부터 1259년까지 김준(金俊)이 실권을 맡았다.
목차 |
치세 [편집]
고종은 1212년(강종 1년)에 태자에 책봉되고, 이듬해 강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최씨 일가의 무단(武斷)정치로 실권을 잡지 못하였으며, 1258년 최의(崔竩)가 살해되자 김준(金俊)이 실권을 맡았다.
재위 기간에 몽골족 등 북방 민족의 침입으로 고통을 받았다.
1218년 거란의 침공을 받고 이를 격퇴하면서 몽골의 침입에 대하여는 협약을 맺었다(→강동성 전투). 1225년 몽골 사신 제구유(著古與)가 귀국 도중 도적에게 피살된 것을 구실로 하여 재침하자 강화조약을 체결하였다. 각지에 몽골의 다루가치(達魯花赤 : 행정 감독관) 72인을 두게 하고, 또 약간의 수비군을 주둔케 했다.
특히 1231년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몽골의 침입을 받고 1232년 강화도(江華)에 천도하여(→강화천도), 28년간 몽골에 항쟁하였다. 왕의 친조(親朝)와 태자 왕전(王倎)의 볼모를 조건으로 강화가 성립되어, 이후 고려는 사실상 원나라의 속국으로서 공민왕 때까지 굴욕을 겪었다.
1235년 제3차 침입을 받고, 1238년 경주 황룡사(皇龍寺) 9층목탑을 소각당한 외에도 귀중한 문화재를 많이 잃었다.
1252년 제6차의 침입을 받았을 때는 남녀 무려 약 2십만 6천 8백 명의 포로를 내고, 태자(太子)의 입조를 약속하였다. 이로써 고려는 사실상 몽골에 굴복했다.
1258년 동북 지방에 쳐들어 온 몽고군에게 조휘와 탁청이 투항하면서 철령 이북 지역이 몽고의 쌍성총관부의 지배 하에 놓이게 되었다.
고종은 문화 발전에 힘써, 팔만대장경을 간행케 하고, 유학을 장려하는 등 문화적 업적을 남겼다. 특히 팔만대장경은 원나라의 침략을 부처의 힘으로 격퇴하기 위하여 간행하였다. 능은 강화의 홍릉(洪陵)이다.
가계 [편집]
관련 작품 [편집]
드라마 [편집]
함께 보기 [편집]
| 전 임 강종 |
제23대 고려왕 1213년 ~ 1259년(46년) |
후 임 원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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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역대 국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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