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경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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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경종
高麗 景宗
고려의 제5대 국왕
본명 왕주(王胄)
재위 975년 ~ 981년
종교 불교
왕후 헌숙왕후
헌의왕후
헌애왕후
헌정왕후
부왕 광종
모후 대목왕후
이전 왕 광종
다음 왕 성종

경종(景宗, 955년 11월 9일 (음력 9월 22일) ~ 981년 8월 13일 (음력 7월 11일[1]))은 고려 제5대 국왕(재위: 975년~981년)이다. 는 주(胄), 는 장민(長民), 묘호는 경종(景宗), 시호지인성목명혜헌화대왕(至仁成穆明惠獻和大王)이다. 광종대목황후(大穆王后) 황보씨(皇甫氏)의 맏아들이다.

975년부터 981년까지 재위하는 동안 975년부터 976년까지 호족 출신의 왕선(王詵, 929년 ~ 976년)이 실권을 맡았고 왕선(王詵)을 축출한 976년부터 981년 붕어할 때까지 친정을 하였다.

생애[편집]

광종이 강력히 추진하였던 호족세력 숙청의 폭풍 속에서 부왕 광종과의 관계마저 좋지 못해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었다.

975년 광종의 뒤를 이어 고려 제 5대 황제로 즉위하였다. 재위 초기에는 975년부터 976년까지 1년간 호족 출신 정치가 왕선(王詵)이 실권을 맡았다. 그러나 왕선이 권력을 남용하고 횡포를 행하자 왕선의 실권을 박탈시키고 축출하였다. 재위기 초반에는 광종 당시 수감되었던 정치범을 석방하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자들의 죄를 씻어주었으면서도 광종의 치적을 부정하는 주장에는 단호하게 대응하였다. 또한 보복법이라는 것을 제정하여 모함을 당한 사람들이 무고자를 찾아 고발하거나 처벌하는 제도를 신설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태조의 서자이자 유력 왕위 계승자였던 효성태자원녕태자가 살해당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후 경종은 보복법을 취소하였다.

광종 생존 당시 광종의 명에 의해 헌애왕후 황보씨(獻哀王太后), 헌정왕후 황보씨(獻貞王太后) 자매와 결혼하였고 헌애왕후로부터는 아들 목종을 얻었다. 이어 광종의 명으로 다시 신라 경순왕의 딸 헌승황후(憲承皇后), 헌숙왕후 김씨(獻肅王后)와 결혼하였다. 즉위 후인 975년, 장인인 신라 경순왕을 상보로 책봉하면서 작위를 정승공(政丞公)에서 낙랑왕(樂浪王)으로 높이고 식읍을 하사하였다. 나중에는 정사를 멀리 하고 오락과 음탕한 생활에 빠져 지냈다. 981년 음력 7월 병세가 위독해지자 장남인 개령군 왕송(王訟, 목종)에게 양위하려 했으나 어린 아들을 세우면 왕위가 찬탈당할 것을 우려하여 사촌동생이며 매제이자 처남인 개령군 왕치(王治, 성종)에게 양위하였으며 같은 해에 병사하였다. 능은 경기도 개풍군에 위치한 영릉(榮陵)이다.

업적[편집]

전시과(田柴科)를 제정하여 고려의 토지제도의 시초를 마련하였다. 송나라와의 우호관계를 돈독히 하여 사신의 내왕이 잦았다.

가계[편집]

경종이 등장하는 작품[편집]

주석[편집]

  1. 《고려사》〈세가〉2
전 임
광종
제5대 고려국왕
975년 - 981년
후 임
성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