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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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주요 성씨(KNSO, 2000)      김(金)      이(李)      박(朴)      최(崔)      정(鄭)      그 외

(鄭, 丁, 程)씨는 성씨의 하나이다.

나라 이름 정 鄭[편집]

정(鄭)씨는 2000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2,010,117명으로 조사되어 한국에서 다섯 번째로 인구가 많은 성씨이다.

정(鄭)씨는 한반도 남단에 자리잡고 살던 한반도 토착인의 후손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정(鄭)씨의 비조(鼻祖)는 신라의 6촌(六村) 중 자산(觜山) 진지촌(珍支村:本彼部)의 촌장인 지백호(智伯虎)이다.[1] 본관은 옛 문헌에 247본까지 기록되어 있으나 오늘날에는 경주 정씨(慶州鄭氏), 동래 정씨, 진주 정씨, 연일 정씨, 하동 정씨, 예천 정씨, 초계 정씨, 청주 정씨, 봉화 정씨 등 136본이 있다.

해주 정씨(海州鄭氏)는 해주(海州) 수양산(首陽山) 아래 오래 세거했던 사족으로 고려 때 정(鄭)씨를 사성(賜姓) 받았다고 한다.

토착 정씨와 달리 중국에서 동래한 정(鄭)씨로는 서산 정씨, 낭야 정씨가 있다.

중국 郑姓[편집]

고무래 정 丁[편집]

정(丁)씨는 2000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187,975명으로 조사되어, 한국 성씨 인구 순위 36위이다. 정(丁)씨는 주로 전라남도 지방에 세거하고 있다.

압해 정씨(押海 丁氏)의 도시조인 정덕성(丁德盛)은 (唐) 문종(文宗)때 대승상(大丞相)을 지냈고, 무종(武宗) 때 대양군(大陽君)에 봉해졌으며, 853년 군국사(軍國事)로 직간을 하다가 전라남도 신안군압해도(押海島)에 유배되어 정착하였다고 한다. 압해 정씨나주 정씨(羅州丁氏)·영광 정씨(靈光丁氏)·의성 정씨(義城丁氏)·창원 정씨(昌原丁氏)로 동원분파(同源分派)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丁若鏞)은 도시조 정덕성에 대해 '사실 관계에 대한 고증이 어렵다'며 실존 여부에 대해 회의적으로 보았다.[2] 정약용은 증조부로부터 자신에까지 문헌 연구와 현지 답사 등을 벌인 결과, 정덕성이 정사(正史)에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 당의 풍습, 관직명의 차이 등을 들어 정씨동조동근설(凡丁氏同祖同根說)은 날조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후대에 모화사상의 영향으로 당(唐)에서 재상을 지내다가 압해도로 유배되어 왔다는 정덕성(丁德盛)이라는 가상인물을 도시조(都始祖)로 날조하여 나주(羅州)·영광(靈光)·창원(昌原)·의성(義城) 등 본관이 서로 다른 여러 정(丁)씨들을 근거도 없이 합쳤다는 것이다. 약 1520년(조선 중종 12년) 전후에 발간된 나주 정씨 최초의 가첩(家牒)인 월헌첩(月軒帖)에는 고려 중기의 정윤종(丁允宗)이 시조로 기록되어 있다.[3]

나주 정씨(羅州 丁氏)의 시조 정윤종(丁允宗)은 고려 중기 무신(武臣)으로, 검교대장군(檢校大將軍)을 지냈다.

중국 丁姓[편집]

주(周)나라의 제후국으로 제(齊)나라가 있었는데, 제나라의 초대 제후(諸侯)가 태공(太公:강태공)이고, 그 아들인 급(伋)이 제2대 제후가 되었다. 그의 시호(諡號)가 정공(丁公)인데 그 지손(支孫)이 시호인 정(丁)을 성(姓)으로 삼았다. 현재 중국에서는 정(丁)씨를 제양당(齊陽堂) 정(丁)씨라 칭한다.

헤아릴 정 程[편집]

정(程)씨는 2000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 32,519명으로 한국 성씨 인구 순위 75위이다. 본관은 한산(韓山)·광주(光州)·광산(光山)·적성(赤城) 등 10여 본이 있지만, 시조를 알 수 있는 건 한산 정씨(韓山 程氏) 뿐이다.

한산 정씨(韓山 程氏) 시조 정회(程淮)는 조선시대에 참봉을 지낸 인물이다.[4]

중국 程姓[편집]

주석[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