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원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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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원왕후
왕비
재위 1702년 ~ 1720년
전임자 인현왕후
후임자 선의왕후
왕대비
재위 1720년 ~ 1724년
전임자 명성왕후(현렬왕대비)
후임자 선의왕후(경순왕대비)
대왕대비
재위 1724년 ~ 1757년
전임자 장렬왕후(자의대왕대비)
후임자 정순왕후(예순대왕대비)
별명 혜순왕대비, 혜순자경대왕대비
배우자 숙종
자녀 없음
부모 김주신 / 가림부부인 조씨
출생 숙종 13년(1687) 9월 29일
순화방(順化坊) 사저 양정재(養正齋)
사망 영조 33년(1757) 3월 26일
창덕궁 영모당(永慕堂)
능묘 명릉

인원왕후 김씨(仁元王后, 1687년 11월 3일/음력 9월 29일 ~ 1757년 5월 13일/음력 3월 26일)은 조선 숙종의 두 번째 계비이다. 본관은 경주(慶州), 휘호는 혜순자경헌렬광선현익강성정덕수창영복융화휘정정운정의장목인원왕후(惠順慈敬獻烈光宣顯翼康聖貞德壽昌永福隆化徽靖正運定懿章穆仁元王后)이다. 경은부원군 김주신과 가림부부인 조씨의 딸이다.

생애[편집]

1687년 11월 3일(음력 9월 29일)에 태어났다. 인현왕후의 승하 이후 1702년(숙종 28) 10월 3일에 16세의 나이로 숙종의 세 번째 왕비로 책봉되었다.

경종 즉위한 이후에는 왕대비가 되었고, 영조 즉위 이후에는 대왕대비가 되었다. 소론의 딸이었지만 남편 숙종의 사후 노론으로 당색을 바꿨다.

초기에는 천연두, 홍역, 치통, 종기 등을 앓았다는 기록이 있다.

특히 숙빈 최씨 , 영빈 김씨랑 가깝게 지냈으며 친하게 지냈다. 숙빈 최씨 소생인 연잉군을 지지해 왕세제 책봉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고 연잉군이 역모의 주범으로 용의선상에 오르자 몸소 보호하였다.

야설에는 유산을 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이는 믿기 어렵다. 경종1년(원년), (1721)년에는 영조를 왕세제로 등극시키고, 양자로 입적했다.

말년[편집]

영조의 효도와 며느리인 정성왕후의 호강을 받다 1757년 5월 13일(음력 3월 26일) 사망한다.[1] 훗날 연잉군이 임금으로 등극하기 위한 결정적인 인물이 되고 영조 의 방패막이 되어준다.

또한 노론의 4대신과 함께 왕위 등극하기 위한 지원과 요청으로 추진되었다.

인원왕후는 한글로 만든 저서들이 있었다.《션균유사》,《션비유사》,《뉵아육장》등이다. 무덤은 서오릉의 하나인 명릉(明陵)이며 숙종, 인현왕후와 묻혀있다.

가족 관계[편집]

경주 김씨(慶州 金氏)

  • 부 : 경은부원군 김주신(慶恩府院君 金柱臣)
  • 모 : 가림부부인 임천 조씨(嘉林府夫人 林川 趙氏)




왕가(王家 : 전주 이씨)

인원왕후를 다룬 작품[편집]

주석[편집]

  1. 경종기록


전 임
인현왕후
조선 역대 왕후
1702년 ~ 1720년
후 임
선의왕후
(단의왕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