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단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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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단종
조선의 제6대 국왕
재위 1452년 ~ 1455년
왕비 정순왕후
부왕 문종
모비 현덕왕후
이전 왕 문종
다음 왕 세조

단종(端宗, 1441년 음력 7월 23일~1457년 음력 12월 24일, 재위 1452년~1455년)은 조선의 제6대 이다. 는 홍위(弘暐), 정식 칭호는 단종공의온문순정안장경순돈효대왕.[1] 문종현덕왕후의 아들이며, 조선 왕조 최초의 왕세손이기도 하다.

목차

[편집] 생애

단종은 1441년 음력 7월 23일 당시 왕세자였던 문종과 왕세자빈이었던 현덕왕후의 외아들로 태어났으나 몸이 약한 현덕왕후가 단종을 낳은 지 3일 만에 세상을 떠나자 세종의 후궁인 혜빈 양씨의 보살핌 아래에서 자랐다.

8살이 되던 1448년왕세손으로 책봉된 단종은 할아버지 세종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세종은 자신의 병이 악화되어 그리 오래 살지 못할 것을 예감하고 있었으며, 몸이 약한 아들 문종 역시 오래 살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늘 어린 단종을 몹시 걱정했다. 문종마저 일찍 죽고 나면 야심으로 가득 찬 둘째 아들 수양대군을 비롯한 혈기왕성한 여러 대군 사이에서 어린 손자가 아무 탈 없이 잘 살아갈 수 있을지 걱정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생전에 황보인·김종서·성삼문·박팽년·신숙주 등에게 왕세손을 지켜줄 것을 부탁하였다.

세종의 뒤를 이어 문종이 즉위한 그 해에 단종은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그러나 세종이 우려했던 대로 문종은 왕으로 즉위한 지 겨우 2년 3개월 만에 병으로 승하하고 말았다. 1452년 단종은 12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단종은 어릴 때부터 세종의 칭찬이 자자했을 만큼 영리하였으나 12살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랐으므로 혼자서 나랏일을 결정할 수가 없었다. 이러한 경우 궁중에서 가장 서열이 높은 대비의 도움을 받아 정사를 결정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였지만,[출처 필요] 당시 궁중엔 대비는 물론 대왕대비도 없었기 때문에 모든 결정은 신하들이 도맡아 했고, 단종은 형식적인 결재를 하는 데 그쳤다. 특히 인사 문제는 ‘황표정사(黃票政事)’라는 방식으로 결정되었다. 이렇게 왕의 권력이 축소된 것에 반해 세종의 아들이자 문종의 동생인 수양대군 등 왕족의 세력은 나날이 팽창되어 갔다. 특히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의 세력 경쟁은 단종이 즉위한 지 1년 만인 1453년 음력 10월, 계유정난을 불러왔다. 계유정난으로써 수양대군이 정치적 실권을 거의 장악하자 단종은 단지 이름뿐인 왕이 되고 말았으며, 안평대군은 강화도로 유배를 가서 사약을 받았다.

이듬해에 수양대군이 단종의 나머지 측근들을 모두 죄인으로 몰아 유배하는 일이 일어나자 1455년(세조 1년) 단종은 수양대군의 측근 세력인 한명회·권남 등이 선위를 강요받아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으로 물러났다.

1456년 음력 6월에 성삼문·박팽년·하위지·이개·유응부·유성원 등 이른바 사육신이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발각되어 처형되는 일이 일어났다. 그 바람에 1457년 단종은 그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혐으로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되어 영월로 유배되었다. 같은 해 숙부인 금성대군 역시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발각되어 사약을 받고 죽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일로 단종은 서인(庶人)으로 내려지고 마침내 1457년 음력 12월 24일 17살의 어린 나이에 사약을 받았다.

단종은 죽은 뒤 묘호도 없이 노산군으로 불리다가, 1681년(숙종 7년)에 노산대군(魯山大君)으로 추봉되고, 1698년(숙종 24년)에는 복위되어 묘호를 단종이라 하였다.

[편집] 능묘

단종은 1457년 17세의 나이로 사약을 받고 죽은 이후 가매장되었다가, 59년 후 중종 11년 1516년 12월 15일에야 봉분을 갖추게 되었다.

능은 영월에 있는 장릉(莊陵)이다.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에 소재하고 있으며, 1970년 5월 26일 사적 제 196호로 지정되었다. 경국대전에 명시된 사대문 밖 100리 이내에서 벗어난 능 중의 하나이며, 다른 능과 달리 단종에게 충절을 한 여러 신하들을 장릉에 배향하기 위해 장릉 밑에 충신단이 설치되어 있다.

[편집] 무속에서 신격화된 단종

민간과 무속에서 군왕신(君王神)의 하나로 모셔진다. 노산군지신(魯山君之神)이라고도 부른다. 영월읍에 있는 영모전(永慕殿) 서낭당을 비롯하여 영월·정선군 등 태백산 인근의 무속에서 신으로 받들고 있다.

[편집] 가족 관계

[편집] 같이 보기

[편집] 주석

  1. 한자로는 端宗恭懿溫文純定安莊景順敦孝大王이다.
전 임
문종
제6대 조선 왕
1452년 - 1455년
후 임
 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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