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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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순종
大韓帝國 純宗
Sunjong of the Korean Empire.jpg
대한제국의 제2대 황제
대한제국의 2대 황실 수장
본명 이척(李坧)
재위 1907년 7월 20일 ~ 1910년 8월 22일
종교 유교(성리학)
출생일 1874년 3월 25일
사망일 1926년 4월 25일 (52세)
황후 순명효황후
순정효황후
부황 고종
모후 명성황후
이전 황제 고종황제
다음 왕 (왕조 멸망) 일제 강점기

순종(純宗, 1874년(고종 11년) 음력 2월 8일(양력 3월 25일)~1926년 양력 4월 25일)은 대한제국의 제2대 황제[1]이다. 연호를 따 융희제(隆熙帝 : 재위 1907년~1910년)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李), 는 척(坧), 본관전주(全州), 는 군방(君邦), 는 정헌(正軒), 정식 시호는 순종문온무녕돈인성경효황제(純宗文溫武寧敦仁誠敬孝皇帝)이다. 고종명성황후의 아들이며, 고종의 장성한 자녀 중 유일한 적자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이왕(李王)으로 불렸다.

고종의 유일한 적자이자 장자로 명성황후 민씨 소생이며, 어려서부터 병약하였고 후사는 없다. 그의 아호 정헌(正軒)은 부황 고종이 그에게 내려준 아호였다.[2] 그는 한국 역사상 최후의 군주이기도 했다.

1907년 7월 20일부터 1910년 8월 22일까지 재위하는 동안 1907년 7월 20일부터 1909년 7월 12일까지 친정을 하였고 1909년 7월 12일 기유각서 사건으로 대한제국 주재 일본 통감 소네 아라스케(曾禰荒助)에게 실권이 박탈되어 1909년 7월 12일부터 1910년 5월 30일까지 소네 아라스케실권을 잡았으며 1910년 5월 30일부터 1910년 8월 29일 퇴위할 때까지 역시 대한제국 주재 일본 통감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内正毅)가 실권을 잡았다.

생애[편집]

왕세자, 황태자 시절[편집]

고종과 황태자 시절의 순종

순종은 1874년고종명성황후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명성황후는 순종 이외에도 몇 명의 자식을 더 낳았으나 장성한 것은 순종이 유일하다. 1875년왕세자로 책봉되었다. 1895년 모후 명성황후경복궁에서 시해되는 소식을 접하였다. 이때 그는 부황 고종과 함께 일본 낭인과 한국인 협력자들에 의해 창덕궁 또는 덕수궁에 감금당해 있었다. 1895년 홍범 14조 반포와 동시에 왕태자로 올랐고, 1897년에 대한제국이 수립되면서 황태자로 격상되었다.

그 뒤, 1898년 김홍륙(金鴻陸)이 고종과 황태자에게 해를 가할 목적으로 고종과 황태자였던 순종이 즐기던 커피에 다량의 아편을 넣었는데, 고종은 맛이 이상함을 알고 곧바로 뱉었으나, 순종은 그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다량을 복용하여 치아가 모두 망실되고 며칠간 혈변을 누는 등 심한 몸살을 앓았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김홍륙의 유일한 세력기반이 고종이었던 사실과, 김홍륙이 유배 당시 지속적으로 고종의 안위를 물었던 사실을 고려하면 실제로 김홍륙이 고종과 황태자에게 해를 가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그 정적들인 친일파가 김홍륙에게 누명을 씌워 제거하기 위해 자작극을 벌인 것을 추정할 수 있다.

재위[편집]

대한제국 순종
순종의 장례식

1907년고종헤이그에서 열리는 만국평화회의에 이준, 이상설 등을 비밀리에 밀사로 파견하였다. 그러나 헤이그 밀사 사건 실패 이후, 일본과 친일파의 압력으로 고종은 퇴위 요구를 받았다.

1907년 고종이 강제로 제위에서 물러나자 그 뒤를 이어 제위에 올랐으며(고종 양위 사건) 연호를 융희(隆熙)라 하였다. 그러나 그를 정식 군주로 인정하지 않던 일부 세력은 그를 황제나 주상이라 부르지 않고 전각의 이름을 따서 창덕궁 전하라고 불렀다. 순종은 건강이 좋지 않아 자식이 없었던 관계로 자신의 이복동생들 중에서 후계자를 정해야 했다. 그러나 이복동생 중 나이가 어린 영친왕황태자로 봉하였다.[3] 그러나 이복동생 중에는 의친왕도 있었고, 의친왕의 아들을 양자로 입양시켜서 황태자로 임명할 수도 있었는데 어떤 연유로 영친왕을 태자로 봉했는가의 배경은 미지수이다.

1907년 8월 17일 태황제 고종은 후사가 없는 순종의 황태자로 영친왕 이은을 결정하였다.[4][5] 이는 자신의 왕위를 계속 위협했던 이준용[6] 이강을 견제하려는 고종의 의도와 이준용파와 이강파가 득세하면 자신의 실권이 잠식될 것을 우려한 이완용의 정략이 맞아떨어진 결과였다.[7] 이로써 장기간 해외 망명생활 중에 끊임없이 잠재적 왕위계승자로서 대우와 주목과 견제를 받아왔던 이준용이강은 졸지에 순종의 동생이자 황태자의 숙부라는 지위로 격하되었다.[7]

즉위한 해인 1907년 할아버지 흥선대원군대원왕(大院王)으로 추봉하였다.

이 무렵 일본러일 전쟁을 통해 한반도에서 다른 식민지 열강 세력을 몰아내고 대한제국의 이른바 후견국을 자처하면서 한일 합방의 발판을 공고히 하였다. 여기에는 이토 히로부미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토 히로부미1909년 안중근에 의해 하얼빈에서 사살되었다.

한편 같은 해인 1909년 기유각서 사건으로 인하여 대한제국 황제 순종 임금의 실권은 제2대 대한제국 통감 소네 아라스케에게 박탈되고 순종 임금은 이듬해인 1910년까지 허수아비 임금의 신세가 되었다. 뒤이어서 제3대 대한제국 통감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대한제국의 실권을 쥐고 1910년 경술한일합방조약으로 대한제국은 사실상 멸망으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

퇴위와 생애 후반[편집]

1910년 일제는 순종에게 한일 병합 조약에 공식적으로 서명할 것을 강요하였다. 그러나 순종은 조약에 끝까지 동의하지 않았으며, 8월 22일 결국 당시 총리대신인 이완용이 이에 대신 서명하였다. 이로써 대한제국일본 제국에 합병되면서 멸망하였으며, 더불어 역사상 왕조는 끝을 맺게 되었다. 이후 순종은 모든 권한을 잃고 이왕이라 불리며 창덕궁에 거처하였다.

아버지 고종의 뒤를 이어 그는 원치 않는 왕위를 이어받지만 이미 일본이 모든 권력을 장악한 무렵이었다. 그는 여행이라는 명목 하에 도쿄를 방문해 천황을 알현할 것을 압박받는다.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는 것은 예의를 다해 마땅한 일이라는 무언의 압력으로 인한 일종의 협박이었다. 『순종 실록』의 부록에서는 이 사건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1917년 6월 8일: 남대문역에 직접 나가서 특별열차를 타고 도쿄로 행하였다. 6월 14일: 황궁에 나아가 천황과 황후를 봉황문에서 알현하고 현소에 참배하였으며, 이어 동궁의 처소를 방문하였다.”

1926년 4월 25일 53세를 일기로 사망하였으며, 능은 유릉(裕陵)이다. 그의 장례식에 6·10 만세 운동이 일어나기도 하였으나, 3.1 운동처럼 확산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민족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이 합작한 신간회가 결성되는 계기가 되었다.

순종이라는 묘호(廟號)는 1926년 5월 1일 이왕직 장관 민영기가 제안한 순종, 경종(敬宗), 성종(誠宗) 중 수망(首望)대로 결정했다.

가계[편집]

  • 고조부 선황제 조선 정조대왕, 대한 정조 황제(正祖 宣皇帝)[8] - 제22
  • 증조부 숙황제 조선 순조대왕, 대한 순조 황제(純祖 肅皇帝)[9] - 제23
  • 증조모 숙황후 조선 순원왕후, 대한 순원 황후(純元 肅皇后)안동 김씨, 섭정[10]
    • 숙조부 장황제 조선 철종대왕, 대한 철종 황제(哲宗 章皇帝) - 제25[11]
    • 숙조모 장황후 조선 철인왕후, 대한 철인 황후(哲仁 章皇后)안동 김씨
    • 사친조부 헌의대원왕(獻懿 大院王) 흥선대원군(興宣 大院君) 이하응(李昰應)
    • 사친조모 순목대원비(順穆 大院妃) 여흥부대부인(驪興府 大夫人)여흥 민씨

대중문화의 순종[편집]

영화[편집]

텔레비전 드라마[편집]

같이 보기[편집]

주석[편집]

  1. 조선 왕조의 제27대 으로 보기도 하나, 고종과 달리 조선왕의 신분으로 재위한 기간이 전무하였다.
  2.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3575273
  3. 영친왕을 황태자로 봉한 배경에는, 의친왕을 견제하려던 엄귀비의 입김도 작용했다[출처 필요].
  4. 국사편찬위원회, 《고종시대사 6》 (국사편찬위원회, 1969) 635
  5. 국사편찬위원회, 《고종시대사 6》 (국사편찬위원회, 1969) 641
  6. 오영섭 《한국 근현대사를 수놓은 인물들(1)》(오영섭 저, 한영희 발행, 2007.4, 경인문화사) 333쪽
  7. 오영섭 《한국 근현대사를 수놓은 인물들(1)》(오영섭 저, 한영희 발행, 2007.4, 경인문화사) 334쪽
  8. 정조 24년(1800) 졸
  9. 순조 34년(1834) 졸
  10. 철종 8 년(1857) 졸, 섭정 (순조 사후 ~ 철종 때까지)
  11. 철종 14년(1863) 졸, 철종은 제22대 정조의 동생 은언군의 친손자이기도 하다.
  12. 조선 문조 혹은 익종(추숭) 혹은 효명세자(孝明世子), 순조 19년(1819)에 왕세자에 책봉되었고, 순조 27년(1827) 부왕 순조의 명으로 대리청정을 하였으나, 청정 4 년만에 병으로 사망하였다. 순조 30년(1830) 졸
  13. 작위 남작, 고종의 정적
  14. 추대음모사건에 연루, 사사됨
전 임
고종
제2대 대한제국 황제
1907년 - 1910년 8월 22일
후 임
(왕조 멸망)
전 임
-
제1대 이왕
1910년 8월 22일 - 1926년
후 임
의민황태자
전 임
고종
한반도의 통치자
1907년 - 1910년 8월 29일
후 임
이승만 대통령(대한민국 임시정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