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도조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도조(度祖, ?~1342년)는 조선시대 추존왕이자 환조(桓祖)의 아버지, 태조(太祖)의 조부이다. 이름은 이춘(李椿)이며 아명은 선래(善來), 몽골식 이름은 발안첩목아(바얀티무르 : 孛顔帖木兒)이다.

생애[편집]

원나라로부터 아버지인 이행리(李行里)의 천호(千戶) 관직 계승과 함께 발안첩목아(勃顔帖木兒)라는 몽골식 이름을 받았다. 처음에 박씨(朴氏)와 결혼하여 이자흥(李子興)과 이자춘(李子春)을 낳았으나, 얼마 후 박씨가 죽자 쌍성총관(雙城總管)의 딸인 조씨(趙氏)와 재혼하고 집을 의주에서 화주(和州, 함흥)로 옮겼다.[1] 화주로 옮긴 것은 농업과 목축에 편리한 점도 있으나 후처인 조씨가 조휘(趙暉)의 손녀이므로 처가의 정치세력을 이용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훗날 이자춘과 조씨의 소생들 사이에 후계자 쟁탈전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조선 개국 이후 손자인 태조에 의해 도왕(度王)으로 추봉되었다가 증손자인 태종 때 도조(度祖) 공의성도대왕(恭毅聖度大王)으로 재추봉되었다. 능(陵)은 함경남도 함흥시에 위치한 의릉(義陵)으로 아내인 경순왕후(敬順王后) 박씨(朴氏)의 능(陵)인 순릉(純陵)은 함경남도 흥남시에 위치해 있다.

설화[편집]

조선왕조실록에 실려 있는 설화에 의하면, 어느 날 도조의 꿈에 백룡이 나타나 "나의 거처를 빼앗으려 하는 흑룡을 몰아내 주십시오." 하며 부탁하였다. 도조는 이를 예사 꿈으로 여기고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얼마 후 꿈에 다시 백룡이 나타나 "공은 어찌 내 말을 생각하지 않습니까?" 하며 와야 할 날짜까지 제시하였다. 이상하게 여긴 도조는 기일에 활과 화살을 들고 약속한 곳으로 갔는데, 그 곳의 못 위에서 백룡과 흑룡이 한참 싸우고 있었다. 도조가 활으로 흑룡을 쏘아 맞히니 흑룡은 못으로 떨어졌다. 뒤에 꿈을 꾸었는데, 백룡은 "장차 자손 중에 큰 경사가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2]

가족 관계[편집]

  • 부왕: 익조대왕
  • 모후: 정숙왕후 최씨
    • 왕후: 경순왕후 박씨
    • 후궁: 후궁 조씨(后宮 趙氏, 쌍성총관 조휘의 손녀)
      • 완원대군(完原大君) 이자선(李子宣), 완자불화(完者不花)
      • 완천대군(完川大君) 이평(李平), 나해(那海)
      • 완성대군(完城大君) 이종(李宗)
      • 문혜공주(文惠公主), 하가(下家), 대장군(大將軍) 문인영(文仁永)
      • 문숙공주(文淑公主), 하가(下家), 다루가치(達魯花赤) 김마분(金馬粉)
      • 문의공주(文懿公主), 하가(下家), 허중(許重)

주석[편집]

  1. 조선왕조실록, 태조 1권 총서 15번째기사 娶趙氏, 雙城摠管之女
  2. 조선왕조실록. 《태조실록 총서》. 2010년 2월 26일에 확인.

참고 자료[편집]

  • 《청소년을 위한 조선왕조사》, 이병권 저, 평단문화사(2006년, 11~57p)
  • 《조선왕조실록》, 영광과 좌절의 오백년, 이상각 저, 들녘(2009년, 97~145p)
  • 《정도전을 위한 변명》, 조유식 저, 휴머니스트(2014년, 23~79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