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양 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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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향 | 풍양 |
| 시조 | 조맹(趙孟), 초명 바우(岩) |
| 주요 중시조 | |
| 주요 집성촌 | |
| 주요 인물 | 조엄, 신정왕후 등 |
| 인구(2000년) | 약 11만명 (2006년에 간행된 풍양조씨 대동보에 따르면 약 9만 2천명) (77위) |
풍양 조씨(豐壤 趙氏)는 한국의 성씨이다. 안동 김씨와 함께 조선 후기의 세도 가문 중 하나였다.
목차 |
[편집] 기원
시조 조맹(趙孟, 837년 ~ ?)의 원래 이름은 바위 또는 바우(岩,이두로는 破回)이다. 그는 풍양현(현 경기도 남양주시 북부)에서 태어나 농사를 지으며 천마산 기슭 바위동굴에 은둔해 살았던 도인이었다. 당시 신라를 정벌하던 왕건은 영해(현 경상북도 영덕)지방 전투에서 신라군에 참패를 당하여 휘하의 장군들을 모아놓고 중지를 모았을때 한결같은 대답은 풍양현에 숨어 사는 바우도인의 지략을 빌리자는 것이었다. 이에 왕건이 그를 찾으니 당시 나이가 70세이었다. 이때부터 신라정벌의 길에 올라 뛰어난 지략과 용맹으로 삼국통일을 이루자 태조 왕건이 조씨 성과 맹으로 이름을 내렸다.
벼슬은 문하시중(門下侍中) 평장사(平章事)이르렀고, 지금도 천마산에는 왕건을 만났다는 암굴(巖窟)이 있으며 현성암(見聖庵)을 세워 그를 수호하여 온다.
[편집] 파계
시조 직후 세계(世系)가 실전되고 후손 전직공 조지린(趙之藺)을 계조(系祖)로 하는 호군공파, 회양공파, 금주공파와 마찬가지로 후손인 평장사공 조신혁(趙臣赫)을 계조로 하는 남원공파, 마찬가지로 몇 대가 실전되었는지 알 수 없는 후손 조보(趙寶)를 계조로 하는 상장군공파로 총 5개의 파가 있다. 각 계(系)는 서로 촌수를 가릴 수 없어 항렬을 따로 사용한다.
- 전직공계(殿直公系) - 조지린(趙之藺)
- 조사충(趙思忠)을 중조로 하는 호군공파(護軍公派)
- 조신(趙愼)을 중조로 하는 회양공파(淮陽公派)
- 조임(趙袵)을 중조로 하는 금주공파(錦州公派)
- 평장사공계(平章事公系) - 조신혁(趙臣赫)
- 조계팽(趙季砰)을 중조로 하는 남원공파(南原公派)
- 상장군공계(上將軍公) - 조보(趙寶)
- 상장군공 조보(趙寶)를 중조로 하는 상장군공파(上將軍公派) (강진 조씨로 알려졌었으나 시조 조맹의 후손임이 밝혀진 후 대부분 풍양 조씨로 환적)
[편집] 인물
- 조익 - 성리학자
- 조엄 - 조선 후기의 문신. 한국 역사상 최초로 고구마 재배
- 조만영, 조인영 - 풍양조씨 세도정치의 중심인물
- 신정왕후 - 조선 익종의 비
- 조남철 - 바둑기사
- 조순 - 前 서울특별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