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왕후 (조선)
신정왕후(神貞王后, 1808년 ~ 1890년 음력 4월 17일)는 조선의 추존왕 문조(文祖)의 아내이며 헌종(憲宗)의 어머니이다. 정식시호는 효유헌성선경정인자혜홍덕순화문광원성숙렬명수협천융목수령희강현정휘안흠륜홍경태운창복희상의모예헌돈장계지경훈철범신정왕후(孝裕獻聖宣敬正仁慈惠弘德純化文光元成肅烈明粹協天隆穆壽寧禧康顯定徽安欽倫洪慶泰運昌福熙祥懿謨睿憲敦章啓祉景勳哲範神貞王后)이다. 정식 시호가 56자로 조선의 왕후 가운데 가장 긴 시호를 가지고 있는 왕후이기도 하다. 풍은부원군(豊恩府院君) 조만영(趙萬永)과 덕안부부인(德安府夫人) 송씨(宋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흔히 조대비(趙大妃)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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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생애
[편집] 생애 초기
1819년, 왕세자였던 효명세자와 혼례를 올리고 세자빈이 되었다. 그러나 1830년에 남편인 효명세자가 대리청정을 한 지 4년 만에 훙서하여 버렸으며 그 뒤 1834년에 시아버지인 순조가 승하하고 아들 헌종(憲宗)이 왕위에 오르자 왕대비(王大妃)가 되었다. 그러나 1849년, 헌종이 후사없이 승하하고 헌종의 할머니이자 선왕 순조의 정비였던 순원왕후는 친가인 안동 김씨 세력과 결탁하여 전계군(全溪君)의 아들 철종(哲宗)을 옹립하여 외가인 안동 김씨의 세도를 계속 이어나갔다.
[편집] 왕실 수장
하지만 1857년, 시어머니인 순원왕후가 승하하자 대왕대비(大王大妃)가 되었으며 1863년에 철종이 또다시 후사 없이 승하하자 당시 대왕대비로서 왕실의 최고어른이었던 신정왕후는 흥선군(興宣君)과 사전모의하여 흥선군의 둘째아들인 이재황(李載晃)을 익종과 자신의 양자로 입적시켜 왕위에 옹립하였는데 조선의 26대 왕인 고종(高宗)이다.[1]
이후 신정왕후 자신은 고종의 법적인 어머니로서 수렴청정을 하였으나 얼마 되지 않아 고종의 친부로서 대원군에 책봉된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에게 전권을 주고 물러났다. 한편 안동 김씨가문에 빼앗겼던 세력을 되찾아오고자 했던 조대비는 고종의 비를 자신의 친정 일가인 조면호의 딸로 정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이 역시 흥선대원군의 반대로 취소해야 했다.
1890년 음력 4월 17일, 83세의 나이로 경복궁(景福宮) 흥복전(興福殿)에서 승하(昇遐)하였으며 능은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 내에 남편 익종과 합장되어 있는 수릉(綏陵)이다. 승하한 지 9년 뒤인 광무(光武) 3년, 남편인 익종이 문조익황제(文祖翼皇帝)로 추존되자 함께 신정익황후(神貞翼皇后)로 추존되었다.
한편 고구마를 조선에 들여온 이조판서 조엄은 조대비의 증조할아버지였다.
[편집] 가족 관계
[편집] 주석
- ↑ 유주현에 의하면 신정왕후가 사람을 보내 옥새를 안동 김씨보다 먼저 차지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