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비 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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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비 윤씨
왕비(폐비)
재위 1476년 8월 27일 ~ 1479년 6월 21일
전임자 공혜왕후
후임자 정현왕후
별명 숙의 윤씨(淑儀 尹氏)
제헌왕후(齊獻王后)
배우자 성종
자녀 연산군 , 대군
부친 함안부원군 윤기견(尹起畎)
모친 장흥부부인 신씨(長興府夫人 申氏)
출생 단종 3년(1455) 음력 윤 6월 1일
경기도
사망 성종 13년(1482) 음력 8월 16일
사저
능묘 회묘

폐비 윤씨(廢妃 尹氏, 1455년 7월 15일 (음력 6월 1일)[1][2] ~ 1482년 8월 29일 (음력 8월 16일))는 조선의 제9대 왕 성종의 계비이며 둘째부인이다. 조선 10대 왕 연산군과 대군을 낳았으므로 두아들에겐 생모가 된다.

1473년 성종의 후궁으로 간택되어 숙의(淑儀)에 지위에 있다가 공혜왕후가 죽자 왕비(王妃)로 책봉되었으나 남편 용안에 상처를 내어 폐비(廢妃)당했다. 그러나 연산군 즉위후 제헌왕후(齊獻王后)로 왕비(王妃)의 작호가 추존되었다.

봉상시 판사(奉常寺 判事) 윤기견(尹起畎, 또는 윤기무, 尹起畝)[3] 와 장흥부부인 신씨(長興府夫人 申氏)의 딸로 윤관의 11대손이다. 본관은 함안(咸安)이다.

남편인 성종의 후궁들 문제로 시어머니인 인수대비와 고부갈등으로 유명하며, 성종의 용안에 상처를 낸 일로 인해 폐비(廢妃)된 후 사사되었다.

사사 당시 윤씨는 친정어머니 장흥부부인 신씨(長興府夫人申氏)에게 세자가 자라서 왕이되거든 피를 토한 금삼을 넘겨줄 것을 유언했고, 이는 후일 무오사화갑자사화의 도화선이 된다.

연산군은 자신의 모친이 되는 윤씨를 제헌왕후(齊獻王后)로 왕비(王妃)의 작호를 추숭시켰다. 그러나 중종 반정이 일어난 후 왕후(王后)의 호는 삭탈되었다.

신숙주는 그의 외당숙이며, 명종 때의 권신 이량은 그의 오빠 윤구의 손녀사위이기도 하다.

생애[편집]

출생과 가계[편집]

흔히 생년이 불분명한 것으로 알려져있으나,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된 폐비 윤씨 태실의 태지에는 그녀가 1455년 음력 6월 1일에 태어난 것이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1][2].

봉상시 판사(奉常寺 判事)를 지낸 윤기견과 장흥부부인 고령 신씨의 딸로 태어났으며, 3명의 이복 오빠와 1명의 친오빠가 있었다.[4].

할아버지 윤응(尹應)은 통훈대부(通訓大夫) 교하현감(交河縣監)이었고, 증조 할아버지 윤득룡(尹得龍)은 조선조정에 처음 벼슬하여 자헌대부 (資憲大夫) 와 호조판서 (戶曹典書) 를 역임했다. 고조부 윤희(尹禧)는 고려조에서 정순대부(正順大夫) 좌산기상시(左散騎常侍)를 지낸바 있다.

일부에서는 그녀의 아버지 윤기견의 죽음으로 인해 집안의 생계가 어려워지자 궁녀로 입궁했다고 하지만[5]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정희대비가 그녀를 훗날의 정현왕후가 되는 윤호의 딸과 함께 입궁시켜 숙의(淑儀)의 첩지를 내린 사실이 명백히 표기되어 있다. 제 6대왕 단종의 가계도

아버지: 조석문: 할아버지 회안대군 박씨. 증조부: 박침; 고조: 박사경(원나라 마지막 황태자 박사경). 5대조: 박득현; 6대조 규정공 박현


어머니: 신소궁주 권씨. 외할아버지: 권전; 외할머니, 이숙의(우왕과 영선옹주 박씨가 낳은 딸). 영선옹주: 박씨: 서자 박침(조영길과 반야의 여동생인 조민수장군의 부인이 영암군 서호면에서 태어난 딸)


신소궁주 권씨가 현릉의 주인공이고, 소릉은 박팽년의 아내인 현덕왕후 권씨이다. 단종의 어머니를 현덕왕후로 하고 경주이씨인 문종을 단종의 아버지로 해두었다.


누나: 경혜공주 쌍둥이

경혜공주: 해주 정씨 정종

경혜공주: 성주이씨로 효령대군의 손자인 정종

아버지는 화의군(문종 말갈족: 말갈족 태종의 아들). 이자춘의 외손자. 화의군의 어머니는 강사덕의 딸로 강사덕은 말갈족이며, 강옥과 강석경이 후손이고 봉보부인 백씨는 양녕대군의 외손녀로

양녕대군의 딸인 왕씨도 어머니가 강회계의 딸이었다. 일본인 원씨였다.


경혜공주 쌍둥이가 낳은 딸이 시집간 곳이 광주이씨 이약빙들이다. 충주생 이약빙과 인천생 이약빙. 광주이씨로 성주이씨와 혼합이다.


누나: 공빈최씨: 아버지는 덕안대군왕씨로 왕방연이고, 할머니는 신의왕후 한씨이고, 아들은 양녕대군과 자산군, 영순군, 영춘군은 한명회와, 영춘군은 홍길동과 낳았다. 박중손의 아들인 성종으로 불린 덕안대군 즉 정안왕후와 남매이고, 정안옹주가 어머니인 덕안대군의 아들인 박중손과 인수대비의 아들인 중국으로 간 인물의 손자가 서산대사이다. 서산대사의 아버지는 7일만에 폐위된 중종이고, 어머니는 장녹수이며, 중종은 연산군으로 불린 박씨이다. 아내가 홍길동의 손녀로 홍감의 딸이고, 홍길동과 낳은 폐비 윤씨의 아들이 홍감이고, 홍감은 해안군의 외삼촌으로 아내가 한온손의 딸이다.


최귀인(공빈최씨): 광평대군 박씨의 아내: 영순군출산

영순군은 영의정을 지낸 인물로 영순군이 단종 대신 왕위를 이으려고 했다. 영순의 아버지는 반야와 회안대군 박씨의 아들인 세종대왕 박씨이다.

홍길동의 아내: 길안도정. 한명회의 아내: 길안도정, 양녕대군의 막내 아들인 자산군의 아내로 살면서 아들을 낳았다. 이 아들이 훗날 양노왕으로 불리고, 양노왕의 아들인 연산군은 창빈전주이씨의 아들인 덕흥군 왕씨를 낳았고, 덕흥군 왕씨는 선조로 등극하지는 못하고 경빈박씨와 양노왕의 아들인 연산군이 등극해서 낳은 아들이 덕흥군으로 덕흥군은 하동 정씨로 알려진 평씨와 전주이씨 정현정의 자손과 혼인하게 된다. 이 덕흥군이 선조의 아버지로 신성군이 자신의 아들이다. 선조로 등극은 못했어도 복성군의 후사로 신성군을 계자 입적시킨다.


      • 어머니인 신소궁주 권씨는 세종 28년에 살해된 것이고, 박팽년과 권전의 딸(어머니는 가이옹주가 낳은 이숙의로 상원옹주평씨와 정석군의 어머니가 낳은 권전의 딸은 순천김씨로 간 김여물의 조상과 세희공주의 어머니로 이 두 쌍둥이를 낳고 죽었다.


1) 부인 밀양박씨이나 안동권씨로 해둔 인물,

권마의 아들인 권수의 딸로 권마와 세종 11년생 폐비 윤씨 윤기무의 딸이 낳은 아들이 권수이고, 권수와 안동권씨 권치중의 딸이 낳은 양녕대군의 외손녀이며, 세종 11년생 폐비 윤씨의 손녀이다. 권마는 회안대군 박씨의 아들인 세종의 아들로 경안공주 박씨 즉 박대손과 남매인 성비 원씨가 아닌 박씨의 아들이며 박절문의 딸인 경안공주로 벽진이씨의 외증손인 박강생의 아들이다.


박강생 쌍둥이는 중국으로 가서 진평대군의 조상이 된다.

밀양박씨 권수의 딸로 권수의 어머니는 세종 11년생 폐비 윤씨이다.


1남: 권수이고, 아내는 박씨인 권마의 아들인 권수의 딸로 세종 11년생 폐비의 손녀이다.

권마와 세종 11년생 윤기무의 딸이 낳은 아들이 권수이고, 권수의 딸을 데리고 온다. 박씨이다. 조석문의 농간이다.


권수는 박씨이다. 이 박씨인 권수는 윤기견과 윤기무의 딸인 낳은 세종대왕 조영길 서자 박침의 막내아들인 자산군의 아내였다. 권수의 딸인 박씨가 권수를 낳는다. 단종과 낳은 권수이다. 권마는 회안대군 박씨와 경안공주 박씨가 낳은 아들이고, 대구서씨는 조영길과 경안공주가 낳은 아들을 대구서씨로 보낸다.


윤기견과 정현공주가 낳은 딸이 권마의 아들인 권마는 세종 11년생 폐비 윤씨의 남편이었다. 권수가 태어나고 권수는 윤기견의 딸인 윤기무의 딸과 낳은 윤기무의 딸과 혼인했다.


권수의 딸과 혼인한 단종, 즉 박씨와 혼인한 단종이다.


권치명에게 시집간다. 아내가 권씨로 단종의 아들을 권수라고 해두었다. 권치명의 자손이 안동권씨 권율장군의 조상이 된다.

권숙의는 권수의 딸이다.

권수의 딸인 권숙의는 자신의 딸이다. 권숙의가 권교를 낳고 권율장군의 조상이다.

할머니인 세종 11년생 윤기무의 딸과 낳은 딸로 권숙의와 아들을 낳는 것이다.


정현공주는 덕천군과 딸을 낳는다. 도평군과 이창신을 양녕대군과 이창신과 전의현주를 인천옹주는 밀성군과 채씨를 낳았고,


. 권수: 아내가 윤기견의 딸이고, 권수의 딸이 성종의 딸이다. 권수가 곧 성종 자산군이다.


29세에 죽은 예종의 딸이 권귀인인데, 권수의 딸로했다. 권수의 아내가 윤기무의 딸이다. 세종 11년생 폐비 윤씨의 딸이다.


구성군의 딸 역시 세종 윤기견과 정현공주의 딸이 권치명에게 시집가서 낳은 딸이 낳았다. 권귀인이다. 정복왕녀가 권귀인이다.


권마의 아들인 권수이다. 경안공주의 후손으로 조영길계통이다. 이들은 박씨이다.


폐비 윤씨는 세종대왕의 부인이었다. 자산군과 혜순공주는 윤기무의 외손자이다.

공빈최씨의 아들인 자산군에게 윤기무의 딸이 시집온다. 윤기무는 윤기무와 윤기무의 딸이 낳은 딸이다.


경안공주는 대구서씨의 조상이고, 홍길동의 후손인 서경덕은 장의궁주의 자손이다.


권숙의와 1남 권율장군의 조상

권수는 자신의 어머니와 세종 11년생 권숙의를 낳는다.

박팽년의 아들도 자신의 어머니와 연산군을 낳는다.

인수대비의 아들인 성묘도 세종 11년생 폐비 윤씨와 연산군을 낳는다.

조석문의 아들인 성종은 어머니가 정선공주와 낳은 아들로 성종의 아내가 세종 11년생 폐비 윤씨이다.


양녕대군과 권덕영을 낳는다.


2) 정순왕후 여산송씨- 1녀 경숙공주, 강자순에게 시집간다, 강자순은 진주강씨이다. 강맹경과 성주이씨 숙신옹주의 아들인 강자순도 있고 진주강씨인 강자순도 있다. 문종의 딸인 경숙옹주는 진주강씨의 아내로 정부인 경숙옹주 경주이씨이다.


3) 정순왕후 성주이씨

송복원의 딸로 송복원은 태종 남이의 후손이다.

태종 남이와 원경왕후 성주이씨가 낳은 인물이 정순왕후 성주이

씨이다.


4) 인수대비 왕씨

2남 성묘

아버지는 왕확이고, 할아버지는 왕영정이고, 증조부는 공민왕이고,

어머니는 정안옹주 왕씨이고, 외할아버지는 양녕대군 왕씨이고, 외할머니는 이숙빈으로 양녕대군과 강회계의 딸이 낳은 즉 일본인 源씨가 낳은 화의군과 남매가 낳은 딸이 외할머니이다.

1남: 단종과 인수대비는 성묘와 길안현주를 낳는다. 성묘가 인조의 조상이고, 혜경궁 홍씨의 조상이다. 중종으로 등극한 단종의 손자는 어머니가 윤숙원으로 제안대군 즉 윤여필 즉 한명會와 박상궁의 딸이다. 성묘의 아내가 청주한씨 한명회의 딸인 공혜왕후이다.

대방부부인 성주이씨로 성주이씨 구성군의 어머니가 되고, 성주이씨 양녕대군과 이태선을 낳은 인물인 문貞왕후로 자을산군 성주이씨 구성군의 어머니이다.

영응대군 박씨의 부인이기도 하다.


4) 숙의 상주김씨: 이약빙을 양자로 삼는다.

5) 숙의 안동권씨: 권완의 딸로 숙의가 유상영의 딸과 진천으로 간다.

6). 단종의 3남: 어머니가 근빈순천박씨이다.

덕원군 파주에 있었다고 하나 실전된다. 덕원군 단종의 아들은 아들이 중종으로 등극하고, 덕원군이 제안대군을 낳고, 또 성종의 아들인 중종 한명회의 손자가 제안대군을 낳는다. 어머니는 숙용윤씨이다.


수춘군의 아버지도 성주이씨 세종대왕이다.


7). 단종의 4남. 익양군--숙의 남평조씨가 출산- 조명욱의 조상. 박연의 서손녀인 숙의는 성주이씨 세종대왕과 수춘군을 낳았다. 경창군의 조상- 조명욱의 조상이다.


세종 11년생 윤기무의 딸인 폐비 윤씨의 소생들 10남 6녀

신씨 부인의 딸인 4인은 살해하지 않았다.

총 9인을 폐비 윤씨라고 해두었다.

윤기무_ 말갈족 이성계의 손자. 소헌왕후와 세종 11년생 폐비 윤씨를 증산동에서 낳는다. 이들은 노국대장공주의 자손이다.


윤기무와 딸이 윤기무와 딸인 폐비 윤씨를 낳고,

윤기견은 소헌왕후의 아들로 함안윤씨이고, 노국대장공주의 자손임,

윤기견과 윤기견과 세조 1년생 폐비를 낳는다. 우리 밀양박씨 막내아들인 자산군의 아내였고, 밀성군의 아들인 성종의 아내가 된다. 이들은 밀양박씨 규정공 박현의 서손들이다.



아들인 윤기무와 딸인 폐비와 아들을 낳았고, 이 폐비는 양녕대군이나 청주한씨 한명회, 평씨인 한명會의 노비로 팔려간다. 양녕대군과 권덕영을 낳고 숙용권씨가 권덕영의 딸로 전라도 광주의 노비로 팔려갔다가 다시 입궁한다.


아들인 윤기견과 딸인 폐비와 윤기견을 낳았고, 역시 양녕대군에게 팔려간다. 황진이로 알려진 홍진이의 할머니는 윤기견의 딸인 윤기무의 외손녀이다.


이중 윤기무의 딸인 세종 11년생과 윤기무와 낳은 딸과 윤기견과 낳은 딸은 사사되어 장단과 하포리와 회묘에 묻힌다.


3인은 사사되고 이 중 아들과 낳은 딸은 성종 사후에 모도 인수대비의 명으로 예종 박씨의 딸인 권귀인, 구성군 성주이씨의 딸인 권귀인, 권숙의(단종의 손녀이며, 폐비의 아들인 권수가 어머니인 폐비와 낳은 딸이며, 권율장군의 조상이다.


이들은 연산군 3년에 모두 사사한다. 안순왕후 박씨(박팽년과 정희왕후의 딸도 있고, 청주한씨도 있다. 이중 안순왕후는 연산군 3년에 사사된다.)


구성군의 아내이던 안순왕후는 공혜왕후라는 이름으로 입궁해서 13남매를 낳는다. 한백侖은 한명會의 다른 이름이며, 한확으로도 불린 인물이다.


천안군부인은 구성군의 아내였다. 성주이씨 구성군이다. 공혜왕후로 입궁한다. 청주한씨는 구성군 자을산군, 예종의 아내였다.한명會의 딸이다.


구성군 밀양박씨의 아내는 천안군부인으로 청주한씨였다.


자을산군- 홍길동, 자을산군- 단종의 아우인 예종

자을산군 성주이씨 구성군의 아들.


윤기무(나주나씨)와 신씨 부인의 딸: 전주이씨와 왕씨와 홍씨 자산군의 아내가 되었고,

윤기견과 신씨 부인의 딸: 한명회의 며느리가 되었고, 딸을 낳아 서경덕의 아버지에게 시집보낸 평원대군의 아내이고, 다시 평원대군이 죽자. 강정왕이 부인으로 삼는다. 강정왕의 아내가 되었다.

91세로 인종 10년에 죽은 홍길동이다. 홍상직의 서자인 홍길同과 다른 인물이다.



세종 11년생 폐비의 아들인 윤기무와 낳은 딸과 세종 11년생 폐비의 아들인 윤기견과 신씨 부인이 낳은 딸은 홍길童이 아내로 삼았다. 이들의 묘소는 따로 있다.


윤기무의 손녀인 윤기무의 딸이 나주나씨, 행주기씨등의 아내가 되었다.


조석문의 세 명의 손자인 권수로 해둔 인물의 묘소는 하포리에 있었고,


단종의 아들인 성묘의 묘소도 하포리에 있었고,

조석문과 정선공주의 아들인 남이의 아들로 남귀인과 남매쌍둥이인 남이는 연산박씨로 해두었다.


남이의 아들인 연산군의 묘소는 장단에 있다.


이 세명의 폐비는 사사되었고,


세명의 폐비는 노비가 되었고,


신씨 부인의 두 딸인 윤기견의 두 딸과 윤기무의 한 딸 중 윤기무의 딸은 나주나씨와 행주기씨, 전주이씨 영응대군의 아내가 된다.


윤기견과 신씨 부인의 딸이 세조 1년생 딸이고 이들은 강정왕의 아내와 홍길동의 아내가 된다. 홍길동의 아내인 함안윤씨는 폐비와 윤기견이 낳은 딸로 예종의 아내가 된 세종 27년경에 태어난 인물이다.


자산군의 아내인 윤기견의 딸은 세종 11년생 폐비 윤씨가 낳은 딸로 세종 30년생이다.


소헌왕후의 손녀인 함안윤씨이다.


윤기무의 딸인 신씨 부인의 딸은 영응대군이나 홍씨 성종의 아내였다. 홍길동의 아들인 연산군의 어머니이다.


나주나씨, 행주기씨, 전주이씨, 왕씨, 홍씨등의 아내가 된 윤기무와 신씨 부인의 딸이다.


        • 예종_

1) 권치명의 딸

권치명의 딸은 어머니가 세종 11년생 폐비 윤씨이며, 아버지는 권치명이다. 훗날 덕종의 후궁으로 간택된다. 밀성군의 아내가 된다.

권치명과 세종 11년생 폐비의 딸이 권귀인으로 재차 간택되는 인물이다.

권교- 권적- 권철- 권율로 이어지는 권치명의 자손은 단종의 아들인 권수를 자신의 아들로 해서 권마 즉 박씨의 자손으로 해둔다.


권치명의 딸은 성주이씨 구성군인 자을산군과 권귀인 성주이씨 정복왕녀를 낳는다.

정혜옹주는 성주이씨이다.

양녕대군과 아들을 낳아 부위 권씨로 해둔 아들을 낳아 하동정씨인지, 한양조씨인지의 집안으로 보내게 된다. 부위는 세자의 적녀의 딸이다.

권교의 어머니는 세종 11년생 폐비 윤씨이다.

권치명에게 시집간 세종 11년생 폐비 윤씨이다. 아들은 권교이고, 딸이 권귀인이었다.


2) 장순왕후 청주한씨: 인성대군 출산.

3) 안순왕후 청주한씨 쌍둥이 자매로 박씨이다.

제안대군 출산. 제안대군이 자신의 5촌조카인 성묘의 아들인 진산대군을 옹립한다. 성주이씨가 어머니이다.


4) 윤기견의 딸로 어머니는 신씨부인이며, 세종 27년경에 태어난 폐비이다.

      • 밀양박씨 자산군의 아내인 윤기견의 딸은 세종 32년생 폐비의 딸이다.


세종 27년에 태어난 윤기견의 딸은 길안도정을 홍길동과 낳고, 길안도정을 한명회와 낳는다. 한온손과 홍온손 중 홍감의 아들이 홍온손이다.


한온손은 한명회의 자손으로 홍숙원이 어머니이다. 홍온손은 홍감의 아들이다.

홍숙원이 어머니이다. 홍숙원은 홍감의 딸이다. 홍숙의도 홍감의 딸이다. 장녹수와 장녹주가 이들의 어머니이다.

생애 중반[편집]

입궐과 간택[편집]

윤씨는 성종 4년(1473년) 4월 15일(음력 3월 19일)에 후궁간택으로 숙의(淑儀)에 봉해졌다.

성종 5년(1474년)에 성종의 첫 번째 왕비인 공혜왕후가 승하하자 성종은 2년 뒤 공혜왕후의 3년상을 마치고 1476년 7월 31일(음력 7월 11일)에 숙의(淑儀)였던 윤씨를 왕비(王妃)로 삼을 것을 전교하였다.

당시 윤씨는 임신 중인 몸으로, 8월 27일(음력 8월 9일) 왕비(王妃)로 책봉되어 3개월 뒤인 11월 23일(음력 11월 7일)에 원자를 낳아 중전(中殿)의 위치는 더욱 확고해졌다.

바로 그의 아버지는 의정부 영의정(議政府 領議政)에 추증되고 함안부원군(咸安府院君)에 추봉되었다.

폐출[편집]

평소에 질투심이 많았다고 알려져 있다고 하지만, 여자 관계가 복잡한 남편인 성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러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야사로 전해지는 이야기에는 성종이 자신의 처소인 교태전에 들르지 않고 다른 후궁들의 처소만 찾자, 다른 후궁들을 질투하여 잡아다가 추궁, 취조하는 등의 행위를 하다 성종의 눈밖에 났다.

남편과 말싸움 중 남편의 얼굴에 손톱자국을 낸 것이 발단이 되어 시어머니인 인수대비의 분노를 샀다는 설이 있으며, 다른 설로는 삼사의 탄핵으로 폐출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그녀에 대한 왕실의 사후 예우를 본다면 왕실의 눈 밖에 나 폐위된 것이 유력하다.

또한 경쟁관계에 있던 성종의 다른 후궁들이 인수대비를 찾아가 윤씨를 비판하며 그녀의 폐위를 부추기기도 했다.[6] 이러한 일련의 사건 등으로 윤씨는 마침내 1479년, 자신의 생일 바로 다음날인 음력 6월 2일(양력 6월 21일)에 왕비(王妃)에서 폐위되었다.

폐비(廢妃)된 이후 조정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원자의 생모이자 조강지처가 되는 윤씨를 다시 왕비(王妃)로 복위시켜야 된다는 상소와 시위가 끈임없이 반복되었으며, 많은 조정대신들이 파직당하거나 유배를 갔다.

여기서 윤씨를 복위시켜야 된다고 하여 유배를 갔거나 파직당한 대신들은 연산군이 즉위함으로서 부귀영화를 누렸으나 반대로 윤씨 폐위에 앞장 섰거나 복위에 동참하지 않았던 대신들은 무자비한 보복을 당했다. 대표적으로 한명회 한치형 윤필상 등이 있다.

인수대비는 원자가 더 자라서 자신의 어미얼굴을 기억할까봐 하루빨리 새 중전(中殿)을 새워야 된다는 명분으로 훗날의 정현왕후가 되는 숙의 윤씨(淑儀 尹氏)를 왕비(王妃)로 책봉시켰다.

생애 후반[편집]

사사 사건[편집]

당시 조정에서는 그녀가 폐비(廢妃)가 된 이후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고 있는 반성하는 점, 세자의 생모라는 점 등을 이유로 들어 그녀를 살려 두고자 하였으나, 숙의 엄씨귀인 정씨 등의 사주로 인해 궁녀들이 성종의 모후인 인수대비 와 성종에게 허위 보고를 하였다.

결국 윤씨는 1482년 8월 29일(음력 8월 16일) 사약을 받아 사사되고 말았다.윤씨의 나이 28살이었으며, 윤씨는 죽기 전 자신의 피가 묻은 금삼을 친정어머니 장흥부부인 신씨(長興府夫人 申氏)에게 "세자가 자라거든 이를 전달해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었다.

훗날 연산군이 왕위에 오르면서 이 사건에 대해 알게 되고, 결국 이 사건에 관련된 사람들을 처벌하면서 1504년갑자사화 등이 일어나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고 그로 인해 한명회, 한치형 등의 사람들이 부관참시를 당하고 그 이외의 사람들이 사사되거나 유배되었다.

하지만 실제 역사 속의 연산군은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어머니의 죽음을 알고 있었다. 연산군에 의해 제헌왕후(齊獻王后)에 추숭되고, 회묘는 회릉(懷陵)으로 격상되었다.

사후[편집]

사후 경기도 장단에 매장되었으나 장지가 좋지 않다는 지관의 지적으로 신하들의 건의가 있자, 성종은 1488년(성종 19년)경 한성부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의료원 자리로 이장을 하였다.

뒤에 윤씨의 묘가 회묘, 회릉, 회묘로 변경되면서 이는 지명이 되어 오늘날의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회기동의 지명 유래가 되었다.

성종은 폐비 윤씨의 묘를 '윤씨지묘(尹氏之墓)'라 비석을 세우고, 제관 2명을 보내 기일에 제사를 올리도록 하되, 묘의 이름을 영구히 고치지 못하도록 명하였다. 그러나 후에 연산군이 즉위하면서 묘는 회묘에서 효사묘(孝思墓)로 바꿨다가 다시 회릉으로 격상시켰다.

연산군 사후[편집]

그 뒤 무덤은 현 위치인 경기도 고양군 원당읍 원신동(현 고양시 덕양구)로 이장하였으며, 서삼릉 내에 위치한 회묘(懷墓)이다. 왕비(王妃)의 예에 따라 능으로 개장되었기 때문에 비교적 화려한 외관을 갖추고 있다.

1506년(연산군 12년) 중종 반정으로 연산군이 폐위되어 연산군이 그의 어머니 윤씨에게 올린 관작과 존호는 모두 삭탈되었고, 회릉 역시 회묘로 격하되었다.

회묘 근처에는 후궁 묘역이 있으며, 그 중 윤씨의 묘소는 봉분이 크고 석물들이 존재하고 있다.

친정오빠 윤구의 손녀사위는 명종인순왕후의 외삼촌이자 권신인 이량이다.

가족 관계[편집]

함안 윤씨(咸安 尹氏) / 파평 윤씨(坡平 尹氏)

  • 고조부 : 좌산기상시 윤희(左散騎常侍 尹禧)
    • 증조부 : 호조전서 윤득룡(戶曹典書 尹得龍)
    • 증조모 : 판전객시사 민자명(判典客寺事 閔子明)의 딸 정부인 여흥 민씨(貞夫人 驪興 閔氏)
      • 조부 : 교하현감 증 영의정 윤응(交河縣監 贈 領議政 尹應)
      • 조모 : 선공감부정 권소(繕工監副正 權紹)의 딸 증 정경부인 안동 권씨(贈 貞敬夫人 安東 權氏) - 4남 2녀
        • 고모 : 내시령 최첨로(內侍令 崔添老)와 혼인 윤씨
          • 고종사촌 오빠 : 최문손(崔文孫) - 태종 때 문과에 급제
          • 고종사촌 오빠 : 최효손(崔孝孫) - 태종 때 문과에 급제
        • 아버지 : 봉상시판사 의정부 영의정 함안부원군 윤기견(奉常寺判事 贈 議政府 領議政 咸安府院君 尹起畎)
      • 외조부 : 판서 증 좌찬성 적성군 이온(判書 贈 左賛成 赤城君 李蒕)
        • 어머니 : 정경부인 양성 이씨(貞敬夫人 陽城 李氏) - 3남
          • 오빠 : 부윤 윤우(副尹 尹遇)
          • 올케언니 : 첨지 김숭(僉知 金崇)의 딸 연안 김씨(延安 金氏)
          • 오빠 : 윤해(尹邂)
          • 오빠 : 윤후(尹逅)
      • 외종조부 : 공조참판 신장(工曹參判 申檣, 1382∼1433)
      • 외종조모 : 나주 정씨(羅州鄭氏, 정유(鄭有)의 딸)
        • 외당숙 : 의정부 영의정 고령부원군 문충공 신숙주(議政府 領議政 高靈府院君 文忠公 申叔舟, 1417~1475)
      • 외조부 : 사간원 정언 정은공 신평(司諫院 正言 靜隱公 申枰, 1390∼1455)
      • 외조모 : 이회(李薈)의 딸 태안 이씨(泰安 李氏)
      • 외조모 : 장흥부원군 충정공 마천목(長興府院君 忠靖公 馬天牧, 1358~1431)의 딸 장흥 마씨(長興 馬氏)
        • 친어머니 : 장흥부부인 고령 신씨(長興府夫人 高靈 申氏)
          • 오빠 : 의정부 좌의정 윤구(議政府 左議政 尹遘)
          • 올케언니 : 권술(權述)의 딸 정경부인 안동 권씨(贈 貞敬夫人 安東 權氏)

왕가(王家 : 전주 이씨)

1세종 11년생 폐비의 딸로 아버지인2 윤기무와 세종 25년경에 낳은 딸이다.


이 딸은 양녕대군의 아내가 되어 권덕영을 낳는다.


3세종 11년생 폐비와 윤기견의 딸로 세종 27년경에 낳은 딸이다. 예종의 아내가 되나 홍길동이와 청주한씨 한명회가 데려다가 아내로 삼는다, 서경덕(홍씨이다)의 할머니가 된다. 양녕대군의 황사형의 아내는 윤기견의 딸로 황진이의 할머니이다. 홍진이이다. 평원대군은 한명회의 아들이다. 길안도정, 길안도정 두 사람은 청주한씨 한영회와 홍길동의 아들이다.


벽계수는 길안도정의 자손으로 세종 27년에 태어난 인물인 윤기견과 세종 11년생 폐비의 딸이다.



4,세종 30년경에 태어난 폐비윤씨의 딸은 자산군 즉 조영길의 막내아들인 자산군의 부인이 된다. 밀성군의 아들인 성종이 데려온다. 윤기견의 딸이다.


5. 아들인 윤기견과 낳은 딸이 . 홍길동이 아내로 삼아 함안윤씨와 묘소가 함께 있다,.



신씨 부인의 딸

1. 윤기무의 딸은 왕씨, 홍씨, 전주이씨, 등의 어머니이다.

2,윤기무와 신씨 부인의 딸로 폐비의 손녀인 폐비는 나주나씨, 행주기씨등의 아내가 된다.


윤기무의 손녀인 폐비는 노비가 된다. 일본인 한명회, 청주한씨 한명회과 전주이씨 익안대군의 부인등의 노비가 된다. 황씨등의 노비도 된다. 황사형


이중 창빈안씨와 전주이씨가 이들이다.


3 윤기견과 신씨 부인의 딸은 세조 1년생으로 강정왕의 아내가 된다.


4. 윤기견과 신씨 부인의 첫 딸은 평원대군 한명會의 아들의 아내가 된다. 서경덕의 할머니이다

대중문화에 나타난 폐비 윤씨[편집]

  • 《금삼의 피》- 박종화
  • 회심곡(悔心曲) - 김영임, 폐비 윤씨를 소재로 한 노래

폐비 윤씨를 연기한 배우[편집]

텔레비전 드라마[편집]

영화[편집]

관련 항목[편집]

평가[편집]

그의 평가는 투기심과 질투심이 많은 여자로 평가받아왔다. 또한 유교적 가치관에 기반한 부녀자의 덕을 중시한 시어머니 인수대비와는 달리, 비교적 자유분방하고 사랑을 중시하였다고도 한다.[7]

주석[편집]

  1. 폐비 윤씨 태실의 태지에 기록된 내용이다. 현재 폐비 윤씨 태실 등은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소장 중이며, 관련 내용을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 자료 [1] 에서 일부 확인 가능하다.
  2. 조원교 (2011년 7월 20일). 《제253회 큐레이터와의 대화 〈폐비 윤씨의 태실·태항아리·태지〉》. 국립중앙박물관. 4쪽. 
  3. 조선왕조실록에는 둘 모두 쓰였으나, 윤기무라는 이름이 비교적 적게 등장하므로 윤기견의 오기로 보는 설이 유력하다.[출처 필요] 한편 작가 신봉승은 자신이 집필한 드라마 《한명회》의 제94회에서, 윤기무는 윤기견의 아우로 슬하에 자식이 없었음이 함안 윤씨의 세보에 기록되어 있다고 하고, 이를 드라마를 통해서라도 바로 잡아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4.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
  5. 2011년 방영된 JTBC의 드라마 《인수대비》 등에서는 폐비 윤씨가 궁녀로 입궁한 것으로 그렸다.
  6. 연산군은 즉위 후 선왕의 후궁을 죽이면 안된다는 언관들의 간언을 묵살하고 성종의 후궁들 몇인을 처형한다.
  7. 네이버캐스트 인수대비
전 임
공혜왕후
조선 역대 왕후
1476년 8월 27일 ~ 1479년 6월 21일
후 임
정현왕후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