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원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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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원왕후
(순원숙황후)
왕비
재위 1802년 ~ 1834년
전임자 효의왕후
후임자 효현왕후
왕대비
재위 1834년
전임자 효의왕후
후임자 신정왕후(효유왕대비)
대왕대비
재위 1834년 ~ 1857년
전임자 정순왕후(예순대왕대비)
후임자 신정왕후(효유대왕대비)
추존 황후
재위 추존
별명 명경대왕대비
배우자 순조
자녀 문조
명온공주
복온공주
덕온공주
부모 김조순 / 청양부부인 심씨
출생 정조 13년(1789) 5월 15일
양생방(養生坊) 사저
사망 철종 8년(1857) 8월 4일
창덕궁 양심합(養心閤)
능묘 인릉

순원왕후 김씨(純元王后, 1789년 6월 8일/음력 5월 15일 ~ 1857년 9월 21일/음력 8월 4일)는 조선 제23대 왕인 순조의 정비(正妃)이자 문조(효명세자, 文祖)의 어머니이며 헌종의 할머니이다.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정식시호명경문인광성융희정렬선휘영덕자헌현륜홍화신운수목예성홍정순원왕후(明敬文仁光聖隆禧正烈宣徽英德慈獻顯倫洪化神運粹穆睿成弘定純元王后)이며 영안부원군(永安府院君) 김조순과 청양부부인 심씨(靑陽府夫人 沈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생애[편집]

1789년 6월 8일(음력 5월 15일)에 태어났다. 시파 계열이자 정조의 최측근으로 활약한 아버지 김조순의 영향으로 당시 왕세자였던 순조의 유력한 세자빈으로 떠올랐고 초간택과 재간택을 거쳐 사실상 세자빈으로 확정되었으나 1800년, 정조가 갑작스럽게 승하하자 최종적인 삼간택이 미루어졌고 결국 순조의 즉위 2년 뒤인 1802년에 왕비로 책봉되었다.

1805년, 대왕대비정순왕후의 수렴청정이 끝나고 순조의 친정이 선포되자 순조의 장인이자 순원왕후의 아버지인 영안부원군(永安府院君) 김조순김관주를 비롯한 경주 김씨의 벽파를 대규모로 숙청하고 김이익(金履翼)과 김이도(金履度) 등의 안동 김씨 시파를 등용하였는데 이들 중에는 천주교 신자들이 많아 정순왕후 집권 이후 계속된 천주교 박해는 다소 완화되었다. 그러나 이 대규모 숙청은 안동 김씨 세도정치의 시발점이 되었다. 이후 순원왕후는 1809년에 맏아들인 효명세자를 낳았는데 효명세자는 어릴때부터 총명하여 순조의 많은 귀여움을 받았다. 당시 순조는 안동 김씨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1819년, 풍양 조씨조만영의 딸을 효명세자의 세자빈으로 맞아들였는데 훗날의 신정왕후이다.

1827년, 순조는 효명세자로 하여금 대리청정을 하게 하였는데 이 대리청정 기간 동안 효명세자는 현재(賢材)를 등용하고 형옥(刑獄)을 신중하게 하는 등의 선정을 베풀었으나 1830년, 대리청정 4년 만에 갑작스럽게 급서하였고 1834년에는 순조마저 승하하자 당시 8세였던 왕세손이 헌종으로 즉위하게 되었다. 헌종이 즉위하자 효명세자를 익종으로 추존하고 순원왕후는 대왕대비가 되어 수렴청정을 하게 되었는데, 헌종의 왕비를 자신의 친척인 김조근의 딸로 맞아들였으니, 이가 헌종의 정비인 효현왕후이다.

순원왕후어필봉서.
순원왕후의 한글편지

그러나 1849년, 헌종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그녀는 친가인 안동 김씨 세력과 결탁하여 장헌세자의 서자이자 정조의 이복동생인 은언군의 손자 원범(元範)을 강화도에서 궁으로 데려와 덕완군(德完君)으로 책봉하고 자신과 순조의 양자로 입적하여 즉위시키니 조선의 제25대 왕인 철종이다. 철종을 즉위시킨 뒤에도 그녀는 철종의 왕비를 다시금 안동 김씨인 김문근의 딸(철인왕후)로 맞아들여 안동 김씨의 60년 세도정치를 이어나갔으며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가 절정에 달하던 1857년 9월 21일(음력 8월 4일), 창덕궁 양심각(養心閣)에서 69세를 일기로 승하하였다. 능은 서울특별시 서초구에 위치한 인릉(仁陵)으로 남편인 순조와 합장되어 있다.

이후 대한제국 광무(光武) 4년(1900년)에 남편 순조가 순조숙황제(純祖肅皇帝)로 추존되자 그녀도 함께 순원숙황후(純元肅皇后)로 추존되었고 순조와 순원왕후의 인릉에는 '대한 순조숙황제 인릉 순원숙황후 부좌(大韓 純祖肅皇帝 仁陵 純元肅皇后 祔左)'라는 묘비가 새로 세워졌다.[1]

대표적인 문화재로는 33통의 편지로 구성된 《순원왕후어필봉서》(純元王后御筆封書)가 있는데 가문에 대한 애틋한 감정과 당대 정치에 대한 관심 등을 표현하였고 글씨도 우아한 궁체(宮體)로 되어 19세기 한글 편지의 특징과 언어, 서체 이해에 소중한 자료가 된다.


가족 관계[편집]

안동 김씨(安東 金氏)

  • 고조부 : 예조참의 증 좌찬성 충민공 김제겸(禮曹參議 贈 左贊成 忠愍公 金濟謙, 1680∼1722)
  • 고조모 : 송병원(宋炳遠)의 딸 은진 송씨(恩津 宋氏)
    • 증조부 : 증 좌찬성 김달행(贈 左贊成 金達行, 1706~1738)
    • 증조모 : 이집(李潗)의 딸 한산 이씨(韓山 李氏)
      • 조부 : 서흥부사 증 영의정 김이중(瑞興府使 贈 領議政 金履中, 1736~1793)
      • 조모 : 부사 신사적(牧使 申思迪, 1683~?)의 딸 평산 신씨(平山 申氏)
        • 아버지 : 영안부원군 충문공 김조순(永安府院君 忠文公 金祖淳, 1765~1832)
        • 숙부 : 김평순(金平淳)
      • 외조부 : 증 좌찬성 심건지(贈 左贊成 沈健之, 1733~?)
      • 외조모 : 현감 이윤언(縣監 李胤彦, 1686~?)의 딸 전주 이씨(全州 李氏)
        • 어머니 : 청양부부인 청송 심씨(靑陽府夫人 靑松 沈氏, 1766~1828)
          • 오빠 : 영돈녕판사 김유근(領敦寧判事 金逌根, 1785~1840)
          • 오빠 : 증 이조판서 김원근(贈 吏曹判書 金元根1786~1832)
          • 동생 : 영돈녕부사 충익공 김좌근(領敦寧府事 忠翼公 金左根, 1797~1869)



왕가(王家 : 전주 이씨)

주석[편집]

  1. http://sillok.history.go.kr/inspection/inspection.jsp?mTree=0&id=kza - 『고종실록』 39권, 36년(1899 기해 / 대한 광무(光武) 3년) 12월 7일 4번째 기사


전 임
효의왕후
조선 역대 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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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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