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경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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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경왕후
세자빈
재위 1670년 ~ 1674년
전임자 빈궁 김씨(명성왕후)
후임자 빈궁 심씨(단의빈, 단의왕후)
왕비
재위 1674년 ~ 1680년
전임자 명성왕후
후임자 인현왕후
별명 왕세자빈
배우자 숙종
자녀 조졸 공주 2명
부모 김만기 / 서원부부인 한씨
출생 현종 2년(1661) 9월 3일
회현방(會賢方) 사저
사망 숙종 6년(1680) 10월 26일
경덕궁(경희궁) 회상전(會詳殿)
능묘 서오릉 익릉

인경왕후 김씨(仁敬王后, 1661년 10월 25일(음력 9월 3일) ~ 1680년 12월 16일(음력 10월 26일))는 조선의 왕 숙종의 정비이다. 본관은 광산(光山), 시호광렬효장명현선목혜성순의인경왕후(光烈孝莊明顯宣穆惠聖純懿仁敬王后). 광성부원군 김만기와 서원부부인 한씨의 딸이다. 그녀의 사후에 숙종의 계비가 되는 인현왕후와는 친·인척간이다.

생애[편집]

1670년 10세 때 세자빈에 간택되어 의동별궁에 들어갔으며, 다음해 음력 3월, 책봉되었다. 1674년 현종이 승하하고, 숙종이 즉위를 하자 왕비가 되고 1676년 16세의 나이로 정식으로 왕비에 책봉되었다. 두 명의 공주를 낳았으나 모두 일찍 죽었다.

1680년 음력 10월, 발병 8일 만에 천연두로 20세의 젊은 나이로 승하했다. 그러나 젊은 나이에 승하한 인경왕후와 오랫동안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인현왕후 때문에 인현왕후를 중심으로 하는 서인과 희빈 장씨를 중심으로 하는 남인이 대립하는 계기가 되어 후일 인현왕후가 폐위되는 기사환국갑술환국 등 조선 역사의 비극을 초래하게 된다.

능묘[편집]

무덤은 서오릉 중 하나인 익릉(翼陵)이다. 경기도 고양시 용두동에 있으며, 1970년 5월 26일 사적 제198호로 지정되었다. 숙종 연간에는 왕릉의 능제를 단순화하고 석물을 간소하게 제작하도록 명하였으나, 그 이전에 만들어진 능묘이므로, 《국조오례의》의 제도를 따르고 임진왜란 이후의 양식을 나타내고 있다.[1]

가족 관계[편집]

(친정)

인경왕후를 연기한 배우[편집]

같이 보기[편집]

주석[편집]

  1. 익릉
  2. 《승정원일기》숙종 3년 4월 27일 (계유) 원본259책/탈초본13책 (12/19)
  3. 《승정원일기》숙종 4년 윤3월 13일 (계축) 원본264책/탈초본14책 (18/34)
  4. 《승정원일기》숙종 5년 10월 23일 (갑신) 원본273책/탈초본14책 (6/18)
  5. 김계휘김은휘의 형으로, 김은휘송준길의 외조부이다. 송준길의 외손녀가 인경왕후의 사후에 숙종의 계비가 된 인현왕후로, 굳이 촌수를 따지면 인현왕후가 인경왕후의 11촌 아주머니 뻘이 된다.
  6. 김창국의 고종누이로, 김창국인현왕후숙종의 후궁으로 삼은 영빈 김씨의 아버지다.
  7. 김창협민진후의 장인


전 임
명성왕후
조선 역대 왕후
1674년 ~ 1680년
후 임
인현왕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