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혜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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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혜왕후
추존 왕후
재위 추존
별명 의비
배우자 환조
자녀 태조, 정화공주
부모 최한기 / 조선국대부인 이씨
출생 미상
사망 미상
능묘 화릉

의혜왕후 최씨(懿惠王后 崔氏, ?~?)는 조선 환조(桓祖·추존)의 왕후로 태조의 어머니이다. 태조1년(1392년) 조선 개국왕(開國王)의 어머니로서 의비(懿妃)로 추존되었다가[1] 태종 11년(1411년)에 왕후로 격상되어 의혜왕후(懿惠王后)로 추숭되었다.[2]

생애[편집]

의혜왕후 최씨는 본관이 영흥(永興), 처음 성은 조씨(趙氏)로 선수천호(宣授千戶) 조조(趙祚, 뒤에 최한기로 개명)의 딸이다. 본래 중국 등주(登州, 지금의 중국 산동성 봉래시) 사람으로 함경도에 이주하여 살았는데, 돈을 많이 모아 큰 부자가 되었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남다른 데가 많았으며, 가년이 되자 부모가 김린(金麟)의 아들에게 시집보내고자 하였으나 그녀가 말을 듣지 아니하자 가재(家財)를 반으로 나누어주겠다고 하였다.

최씨는 그 소리를 듣고 슬피 울면서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큰 인연이 있는데 어찌 뜻밖에 김린의 아들에게 시집갈 수 있겠는가. 배필이 곧 이를 것이다.”라고 거절하였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아버지인 환조(子春, 이자춘)가 볼일이 있어 조조의 집에 갔는데, 그때 그녀가 용 두마리가 하늘에서 내려와 한마리는 뱃속으로 들어가고 한마리는 뜰에 서 있는 좋은 꿈을 꾸자 자춘에게 청혼을 하여 그에게 시집갔다.

아버지 조조(후에 최한기)는 그 복을 완전하게 받고자 성을 바꾸어 외가의 성인 최씨로 하고 이름도 그가 자(字)로 쓰던 한기(閑奇)로 고쳤다고 한다. 그녀는 회임한 지 14개월 만에 이성계를 낳았다.

그녀의 생존시에는 삼한국대부인(三韓國大夫人)에 봉하여졌고, 조선이 개국되어 태조가 즉위하자 의비(懿妃)로 봉하여졌다. 뒤에 조선 태종이 의혜왕후로 추봉하고 능을 화릉(和陵)이라 하였다.

1471년(성종 2) 영녕전(永寧殿)에 이안하였고, 1795년(정조 19) 영흥본궁(永興本宮)에 추제(追躋)하였다. 슬하에 1남(조선 태조 이성계) 1녀(정화공주)를 두었다. [3]

능침[편집]

의혜왕후 최씨의 부친은 영흥부원군 정효공 최한기(永興府院君 靖孝公 崔閑奇·본명 조조)로 추승되었고 본관은 영흥(永興)이 되었다. 환조 이자춘의 아내이자 태조 이성계의 어머니로 잘 알려져 있다.

능침은 함경남도 함흥시 동흥리(추정)[4] [5]정화릉 내에 위치한 화릉(和陵)으로, 남편 환조의 능과 이웃하고 있다[3].

가족 관계[편집]

  • 아버지 : 영흥부원군 정효공 최한기(永興府院君 靖孝公 崔閑奇·본명 조조)
  • 어머니: 조선국대부인 이씨 (朝鮮國大夫人 李氏)
  • 남편 : 환조(桓祖)
  • 장남 : 태조(太祖)
  • 장녀 : 정화공주(貞和公主)

주석[편집]

  1. 《조선왕조실록》태조 2권, 1년(1392 임신 / 명 홍무(洪武) 25년) 11월 6일(계미) 1번째기사
  2. 《조선왕조실록》태종 21권, 11년(1411 신묘 / 명 영락(永樂) 9년) 4월 22일(임자) 1번째기사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의혜왕후(懿惠王后), 한국학중앙연구원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는 화릉의 옛 소재지(함남 함주군 동천면 경흥리)가 명시되어 있다. 이를 북한지역정보넷([1])에서 검색해본 결과에 의하면, 화릉 소재지의 2002년 현재 지명은 함남 함흥시 동흥리인 것으로 추정된다.
  5. 정화릉(定和陵), 동아일보(1934.01.02 10면 사회 기사(뉴스) 참조

참고 자료[편집]

  • 「내시와 궁녀 비밀을 묻다」, 역대 왕실 세계도, 박상진 저, 가람기획(2007년, 392~395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