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정왕후
| 효정왕후 (효정성황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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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비 | |
| 재위 | 1844년 ~ 1849년 |
| 전임자 | 효현왕후 |
| 후임자 | 철인왕후 |
| 대비 | |
| 재위 | 1849년 ~ 1857년 |
| 전임자 | 없음 |
| 후임자 | 철인왕후(명순대비) |
| 왕대비 황태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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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위 | 1857년 ~ 1897년(왕대비) 1897년 ~ 1903년(황태후) |
| 전임자 | 신정왕후(효유왕대비) |
| 후임자 | 없음 |
| 별명 | 명헌대비, 왕대비, 명헌태후 |
| 배우자 | 헌종 |
| 자녀 | 없음 |
| 부모 | 홍재룡 / 연창부부인 안씨 |
| 출생 | 순조 31년(1831) 1월 22일 함열현(咸悅縣) 관사(官舍) |
| 사망 | 광무 8년(1904) 1월 2일 경운궁 수인당(壽仁堂) |
| 능묘 | 경릉 |
효정왕후(孝定王后, 1831년 ~ 1903년)는 조선의 제24대 국왕인 헌종(憲宗)의 계비(繼妃)이다. 본관은 남양(南陽). 정식시호는 명헌숙경예인정목홍성장순정휘장소단희수현의헌강수유령자온공안효정왕후(明憲淑敬睿仁正穆弘聖章純貞徽莊昭端禧粹顯懿獻康綏裕寧慈溫恭安孝定王后)이며 돈령부영사(敦寧府領事) 홍재룡(洪在龍)의 딸이다.
[편집] 생애
1844년, 헌종의 정비(正妃)인 효현왕후(孝顯王后)가 승하하자 헌종의 계비로써 중궁에 책봉되었으나 5년 뒤인 1849년에 남편 헌종이 승하하고 철종이 즉위하자 19세의 어린 나이로 대비(大妃)가 되었다. 1857년 시조모 대왕대비 순원왕후가 에 승하하자 왕대비(王大妃)가 되었다. 왕대비가 된 뒤 소생없이 생활하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하여 대비인 철인왕후와 함께 어린 궁녀를 대비전에서 돌보았었는데 이 아이가 조선의 마지막 궁녀인 천일청(千一淸)상궁이다.
1863년, 철종이 승하하고 고종이 즉위하자 홍성(弘聖)의 존호가 가상되었고 1890년, 대왕대비인 신정왕후가 승하하자 왕실의 최고어른이 되었다. 대한제국이 개국하면서 황태후에 책봉되었다. 1903년(광무 7), 경운궁(慶運宮) 수인당(壽仁堂)에서 73세의 나이로 붕어하였다. 능은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東九陵) 내에 위치한 경릉(景陵)으로 남편인 헌종과 정비인 효현왕후와 함께 안장되어 있으며 조선왕조의 왕릉 중에서 유일하게 삼연릉(三連陵)의 방식으로 조성되어 있다.
대왕대비(大王大妃), 왕대비(王大妃)에 이어 세 번째 등급에 해당하는 대비(大妃)시절에 받은 명헌(明憲)이란 존호때문에 일부 자료에서는[출처 필요] 그녀를 명헌왕후(明憲王后)로 부르기도 하나, 그녀의 왕후로서의 정확한 시호는 효정왕후(孝定王后)이다. 다만 실제로 대한제국 개창 후 명헌태후(明憲太后)로 불린 적이 있다.
[편집] 가족관계
- (부) 익풍부원군(益豊府院君) 홍재룡(洪在龍)
- (남편) 헌종
- 양시동생:고종
- 동서:명성태황후 민씨(明成太皇后 閔氏)
- 시조카:순종
- 시조카며느리:순명효황후 민씨(純明孝皇后 閔氏)
- 시조카며느리:순정효황후 윤씨(純貞孝皇后 尹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