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빈 최씨
숙빈 최씨(淑嬪 崔氏, 1670년 12월 17일 (음력 11월 6일) ~ 1718년 4월 9일 (음력 3월 9일)는 조선의 19대 왕 숙종(肅宗)의 후궁이자, 21대 왕 영조(英祖)의 생모이다. 본관은 해주(海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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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편집]
후일 영의정으로 추증된 최효원(崔孝元)의 딸로서 1670년 태어났다.[1]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흔히 무수리로 궁에 입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2] 다만 숙빈 최씨의 출신에 대한 이설 중의 하나로, 김용숙의 《조선조 궁중풍속 연구》에는 고종의 후궁 삼축당 김씨와 광화당 이씨가 고종에게 직접 전해 들은 이야기라고 하여 숙빈이 본래 침방 출신이라는 설이 수록되어 있다. 이 설이 설득력이 있는 이유가 있는데 숙빈 최씨가 7살에 궐에 입궁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7살은 보통 궁녀들이 궁궐에
입궁하는 평균 연령대이고, 그녀가 7살에 입궁했다는 기록자체가 남아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침방 나인으로 있었다는 설이 어느정도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필자의 소견을 덧붙이자면, 그녀가 나중에 얼굴도 모르는 인현왕후의 탄신일 기념을 위해 탄신상을 마련한 것을 보면 그녀가 7살의 나이로 입궁하여 인현왕후 를 모시는 교태전의 침방나인으로 들어가 한때 그녀를 섬기었기 때문인 것이 아닌가 라는 추측이 든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다.
1689년 인현왕후가 폐서인이 되고 희빈 장씨(禧嬪 張氏)가 왕비가 된다. 이후 숙빈 최씨는 숙종의 승은을 받고 1693년 4월에 숙원(淑媛)이 된다. 숙종 19년(1693년) 10월 6일 아들 영수(永壽)를 낳으나 영수 왕자는 두 달만에 세상을 떠났다. 인현왕후가 복위된 해(1694년) 9월 13일, 최씨는 연잉군(延礽君) 금(昑)을 낳았는데 이는 훗날 조선의 21대 임금인 영조이다. 같은해인 1694년 최씨는 숙의(淑儀)가 된다. 최씨는 숙종 21년(1695년)에 귀인이 되었고 숙종 25년(1699년)에는 단종의 복위(숙종 24년(1698년))를 축하하면서 정1품 숙빈(淑嬪)으로 봉해졌다.
숙종의 제1계비 인현왕후 민씨(仁顯王后 閔氏)와는 친분이 두터웠으며, 희빈 장씨가 중전일 때는 그녀에게 모진 박해를 받다가 인현왕후가 1694년 갑술환국으로 복위되자 평상을 되찾았다고 전한다. 인현왕후의 사후 숙종에게 장희빈의 저주굿을 발고하였다. 숙종이 장희빈을 처형하기 전에 후궁에서 왕비로 오르지 못하게 하는 새로운 법을 만들었기 때문에 인현왕후가 죽기 전부터 서인 세력은 숙빈 최씨를 왕후로 추대하려고 하였지만 숙종이 후궁은 중전이 되지 못한다는 비망기를 내려 숙빈 최씨를 왕비로 추대하려던 일은 시행되지 못하게 된다. 그렇지만 내부적으로 숙빈의 출신을 문제삼은 세력도 적지 않아 왕비가 될수 있는지에 대한 정통성에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었고, 숙종 스스로도 희빈 장씨의 아들인 세자 균을 지키기 위해 희빈 장씨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던 숙빈을 쉽게 왕비로 책봉할 명분이 없었을 것이다.
만약에 숙빈 최씨가 신분, 국법을 극복하고 왕비가 되었다면 연잉군(영조)도 적자가 되어 연잉대군이 되기 때문에, 그렇게 되면 많은 대신들은 연산군과 같은 화를 당하지 않기 위해 이미 사사당한 희빈 장씨의 아들 균을 폐위하고 연잉대군을 새로운 세자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을 것이 자명하다. 그렇게 되면 세자 균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세자 균을 지켜주려고 했던 숙종의 의도와는 상당히 벗어나기 때문에 어떤 이유를 보더라도 숙빈 최씨가 왕비가 될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숙종의 후궁 중에서는 명문가 서인집안에서 태어난 귀인 김씨가 있었기 때문에 숙종이 후궁이 왕비가되지 못한다는 국법을 안만들었다고 해도 다음 왕비후보는 귀인 김씨 였다. 더군다나 귀인 김씨는 인현왕후가 직접 간택한 후궁인데다 자녀까지 없어 이미 영조를 낳아 기르고 있는 숙빈보다는 오히려 귀인김씨가 왕비가 되기 쉬웠을 것이다. 숙빈 최씨, 귀인 김씨 모두 서인 세력이었고 서인에게 다시 정권이 돌아갔기 때문에 굳이 왕비가 되아야 사람이라면 자녀도 없고 명문가 출신인 귀인 김씨가 오히려 강력한 다음 왕비 후보였을 것이다. 그 후에 들어온 인원왕후 역시 서인집안 사람이기 때문이다. 귀인 김씨는 희빈 장씨가 죽은 다음 해인 1702년 숙종으로 부터 정1품인 영빈에 봉해진다.
국법은 다시 바꾸면 되기 때문에 그녀의 아들인 영조도 재위 52년 동안 천한 어머니를 소생으로 두어 평생동안 신분 컴플렉스를 가지고 살았다. 그래서 숙빈을 왕후로 추존하려고 하였지만 노론계 예학자들의 강경한 반대로 결국 뜻을 이루지 못했다. 연산군이 어머니 폐비 윤씨를 제헌왕후로 추존에 성공했던 것과 광해군이 어머니 공빈 김씨를 공성왕후로 추존했던 것과는 달리 영조는 어머니 숙빈 최씨를 결국 왕후로 추존하지 못했다. 물론 제헌왕후와 공성왕후는 아들들이 폐위후 다시 원래 신분을 되찾았지만 당시 연산군,광해군이 임금의 신분에 있을때에는 어머니를 왕후로 추존할 정도로 왕권과 대의명분이 있었는데 비해 영조는 국법을 다시 바꾼다고 해도 어머니인 최씨 만큼은 왕비로 추존하기에는 대의명분이 부족했을 것이다. 국법도 국법이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천한 핏줄의 임금을 두는 것도 모자라 천한 핏줄의 왕후까지는 종묘에 모실 수는 없다는 것이 당시 사대부들의 생각이었을 것이다. 영조는 신분 컴플렉스를 벗어나 기 위해 자녀 2남 7녀를 모두 명문가와 혼사를 맺었는데 사도세자의 부인인 혜경궁 홍씨도 당시 명문가였다.
숙빈 최씨는 1718년 3월 9일 아들 연잉군의 저택인 창의동 사제에서 49세의 나이로 병사하는데, 그녀가 병사한 장소가 궁궐 보경당이 아닌 창의동 사제였던 것도 이유가 있다. 숙종은 희빈 장씨 사사후 숙빈에 대한 총애도 식고 오히려 숙빈을 멀리하게 되는데, 이에 숙빈이 연잉군 사저로 나갈 것을 숙종에게 요청하였고 숙종도 거부를 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숙종도 숙빈을 왕비로 삼을 정도로 총애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나 싶다. 결국 숙빈은 말년을 숙종으로 부터 버림받은 채로 아들 연잉군 사저에서 살다 병사하게 된다.
선원록(선원계보기략) 등에 의하면 장남 영수와 영조의 아래에도 1698년에 조졸한 왕자가 한 명 더 있었다.
사후 [편집]
그녀의 아들 연잉군은 왕세제를 거쳐 마침내 왕으로 등극하니, 바로 조선의 제21대 왕 영조(英祖)이다. 그는 즉위 원년, 어머니 최씨의 사당을 지어 숙빈묘(淑嬪廟)라 하였고, 영조20년(1744년) 육상묘(毓祥廟)라고 올렸다가 다시 영조 29년(1753년) 육상궁(毓祥宮)으로 승격시켰다. 육상궁은 현재 칠궁에 합사되어 있다. 묘소 또한 영조 20년에 소령묘(昭寧墓)라고 올렸다가 29년에 소령원(昭寧園)으로 다시 승격시켰으며, 또한 사당과 무덤에 궁호와 원호를 올릴 때 함께 화경(和敬)의 시호를 올렸다. 후일에 여러 차례에 걸쳐 휘덕안순수복(徽德安純綏福)의 존호가 더 올려졌다. 영조는 자신의 어머니를 결국 왕후로 추존하는데에는 실패하였지만 이런 식으로 그녀에 대한 신분을 높이기 위하여 최대한 노력하였다. [3]
가족관계 [편집]
숙빈 최씨를 다룬 작품 [편집]
드라마 [편집]
- 《조선왕조 오백년 -인현왕후》1988년 MBC) - 배우 : 견미리
- 《장희빈》1995년 SBS) - 배우 : 남주희
- 《대왕의 길》(1998년, MBC) - 배우 : 김영애
- 《장희빈》(2002년, KBS2) - 배우 : 박예진
- 《동이》(2010년, MBC) - 배우 : 한효주(성년), 김유정(유년)
- 《장옥정 사랑에 살다》(2013년, SBS) - 배우 : 한승연
서적 [편집]
- 김이영 글, 백철 그림,《동이》(2010년, 이가서)
- 정재인, 김이영, 이병훈 《동이》(2010년, MBC 프로덕션)
- 이준혁, 《동이》(2010년, 문예춘추사)
- 김종성, 《최숙빈》(2010년, 부키)
같이 보기 [편집]
주석 [편집]
- ↑ 출처 《숙빈 최씨 신도비명(淑嬪崔氏神道碑銘)》
- ↑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숙빈최씨
- ↑ "무수리 어머니를 향한 영조의 회한"《연합뉴스》, 2009년 5월 3일 작성.
- ↑ 박영규 저의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에 희빈 장씨 소생인 대군 성수를 여자로, 최씨 소생인 왕자 영수와 이름 미상의 3남(숙종의 5남)을 여자로 잘못 기록한 탓에 오인되고 있다.[출처 필요] 숙종실록과 선원계보에 이들이 전원 왕자로 기록되어 있으며 승정원일기 숙종편에 장씨의 둘째 아들을 신생대군, 대군 아기씨로 기록한 기사가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