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빈 최씨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숙빈 최씨
숙원, 숙의, 귀인, 빈
별명 숙원 최씨 (淑媛崔氏)
숙의 최씨 (淑儀崔氏)
귀인 최씨 (貴人崔氏)
배우자 숙종
자녀 영수, 영조, 왕자
왕조 조선 왕조
부친 최효원(崔孝元)
모친 정경부인 남양 홍씨
출생 1670년
사망 숙종 44년,1718년 3월 9일 무오일
창의동 사가
종교 미상

숙빈 최씨(淑嬪 崔氏, 1670년 12월 17일(음력 11월 6일) ~ 1718년 4월 9일(음력 3월 9일))는 조선의 19대 왕 숙종(肅宗)의 총관후궁 이자, 21대 왕 영조(英祖)의 생모이다. 본관은 해주(海州)이다.

생애[편집]

후일 영의정으로 추증최효원(崔孝元)의 딸로서 1670년 태어났다.[1]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흔히 무수리로 궁에 입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2] 다만 숙빈 최씨의 출신에 대한 이설 중의 하나로, 김용숙의 《조선조 궁중풍속 연구》에는 고종의 후궁 삼축당 김씨광화당 이씨가 고종에게 직접 전해 들은 이야기라고 하여 숙빈이 본래 침방 출신이라는 설이 수록되어 있다. 이 설이 설득력이 있는 이유는, 숙빈 최씨가 7살에 입궁했다는 기록이 있는데[3] 7살은 보통 궁녀들이 입궁하는 평균 연령대이고, 그렇기 때문에 최씨가 침방 나인으로 있었다는 설이 어느정도 가능성이 있다. 그녀의 아들 연잉군(영조)은 숙빈이 침방나인 시절 세누비가 가장 하기 힘들었다는 말을 듣고 평생 누비옷을 입지 않았다고 한다.[4]

최씨가 처음 승은을 입은 시기는 명확하지 않으나, 숙종 19년(1693년) 처음 종4품 숙원(淑媛)으로 책봉되었고 그해 10월 6일 아들 영수(永壽)를 낳으나 영수 왕자는 두 달만에 세상을 떠났다. 인현왕후가 복위된 해(1694년) 숙종의 특명으로 숙의(淑儀)가 되었고[5] 그해 9월 13일 연잉군(延礽君) 금(昑)을 낳았는데 훗날 조선의 21대 임금인 영조이다. 숙종 21년(1695년)에 귀인(貴人)이 되었고, 숙종 25년(1699년)에는 단종의 복위(숙종 24년(1698년)를 축하하면서 정1품 숙빈(淑嬪)으로 봉해졌다.

숙종의 제1계비 인현왕후 민씨(仁顯王后 閔氏)와는 친분이 두터웠으며, 인현왕후의 사후 숙종에게 장희빈의 저주굿을 발고하였다.[6] 일각에서는 장희빈 사후 숙빈 스스로 왕비가 되고자 했다고 말하지만 이는 신빙성이 없는 추측이다. 숙종이 후궁이 왕비가 되지 못한다는 국법을 만들지 않았다고 해도 숙빈은 다음 왕비후보가 될 수 없었다. 숙종의 후궁 중에는 서인 명문가 출신인 귀인김씨(영빈 김씨)가 있었고, 슬하에 아들이 있는 숙빈이 왕비가 되면 차기 왕위계승서열에도 차질이 있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숙빈 최씨, 귀인 김씨 모두 서인 세력이었고 서인에게 다음 정권이 돌아갔기 때문에 굳이 왕비가 되어야 할 사람이라면 자녀가 없는 명문가 출신인 귀인 김씨가 오히려 유리했을 것이다.

숙빈은 두 내전을 모실때, 아침 일찍부터 밤늦도록 게을리 하지 않았고 모든 비빈이나 궁인을 접할 때 공손하고 온화하여 숙종이 마음속으로 애중히 여겼다고 한다.[7] 인현왕후와 혜순자경대비(인원왕후 김씨) 역시 특별한 대우를 했으나, 더욱 겸손하고 두려워하였고, 남의 장단점을 말하기 좋아하지 않아 옆에서 모시는 자들이 어쩌다 이런 일이 있으면 곧 꾸짖었다고 한다.[8] 숙빈의 형제 중에 군문에 예속되었던 이들이 최씨가 왕의 후궁이 되자 직위를 사퇴하였는데, 숙빈이 조심하는 마음에서 그렇게 시켰다고 한다.[9] 연잉군이 겨우 걸음을 배웠을 때에 숙종에게 나아가면 반드시 무릎을 모아 앉고 물러가라는 명 없이는 하루 해가 다 가더라도 어려워하는 빛이 없었는데, 숙빈은 연잉군이 오래 꿇어앉았느라 발이 굽을세라 염려하여 넓은 버선을 만들어서 힘줄과 뼈를 펼 수 있게 하였다고 한다.[10] 그녀는 숙종의 후궁들 중 영빈 김씨(寧嬪金氏)와 사이가 가까웠는데[11] 영빈은 영조가 어릴 적 그에게 음식을 먹여주기도 했고[12] 영조 또한 영빈을 어머니라고 부르며 따랐다고 한다.[13]

숙종이 희빈 장씨 사사 후 계비가 입궁하기전인 1702년 5월 숙빈을 궁 밖으로 출궁 시켜버렸다는 설이 있는데 이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조선왕조실록 숙종 30년(1704년) 4월17일자 기사에 '연잉군(延礽君)의 어머니 숙빈(淑嬪) 최씨(崔氏)는 이현(梨峴)에 갑제(甲第)가 있는데'라는 글이 등장한다.[14] 숙종 재위 당시, 후궁으로 책봉되면 궐밖에 사제를 지어 주는 것은 흔히 있던 일이었다. 숙종의 또다른 후궁 유씨(소의 유씨)는 숙원으로 책봉된 후 전택 매입에 소요되는 값이 6천 금(金)에 이르렀고,[15] 숙원 박씨(명빈 박씨)의 궁에서도 강원도 춘천의 땔나무 터를 점유하는 일이 있었다.[16] 때문에 대사간 이희무(李喜茂)는 '선왕조에서는 후궁의 제택을 별도로 두지 않았는데 정해진 제도를 준수하여 분에 넘치는 일이 없게하라.'고 간언하기에 이르렀다.[17] 능원대군(綾原大君)의 옛 집인 이현궁(梨峴)은 최씨가 숙의(淑儀)였을때 그녀의 제택으로 정해졌는데,[18] 숙종은 처음에 이현궁(梨峴宮)을 최씨의 사제로 삼았다가 신묘년(1711년)에 그녀의 아들 연잉군의 제택으로 정하며 내사로 예속시켰다.[19]

사후[편집]

숙빈은 병신년(숙종 42, 1716년)에 병환이 들어 사가로 나아가 치료하라는 숙종의 명으로 3년동안 사가에 머물렀다. 그녀는 오래도록 임금과 왕비의 안후를 거르게 됨에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가졌고, 조금만 차도가 있으면 곧 대궐로 갔다고 한다.[20] 무술년(숙종 44, 1718년) 3월 9일 무오일에 창의동 사가에서 49세로 사망하였다. 세 내전(왕, 왕비, 동궁)에서 중궁의 관원을 보내어 조문하고 제사하되 부의가 특별히 두터웠고, 이 해 5월 경신일에 양주의 고령동 옹장리 서쪽 언덕에 예장(禮葬)으로 장사를 지냈다.[21]

그녀의 아들 연잉군왕세제를 거쳐 왕으로 등극하니, 바로 조선의 제21대 왕 영조(英祖)이다. 영조는 즉위 원년, 어머니 최씨의 사당을 지어 숙빈묘(淑嬪廟)라 하였고, 영조20년(1744년) 육상묘(毓祥廟)라고 올렸다가 다시 영조 29년(1753년) 육상궁(毓祥宮)으로 승격시켰다. 육상궁은 현재 칠궁에 합사되어 있다. 묘소 또한 영조 20년에 소령묘(昭寧墓)라고 올렸다가 29년에 소령원(昭寧園)으로 다시 승격시켰으며, 사당과 무덤에 궁호와 원호를 올릴 때 함께 화경(和敬)의 시호를 올렸다. 후일 여러 차례에 걸쳐 휘덕안순수복(徽德安純綏福)의 존호가 더 올려졌다.[22] 영조 29년 육상궁에 관제(官祭)를 지낸 후, 명나라 효종(孝宗)이 생모를 추존하여 모비(某妣)라 하였다가 다시 황모(皇母)라고 칭한 예에 따라 숙빈은 왕의 사친(私親)이 아닌 선비(先妣)로 정호되었다.[23] 영조는 살아생전 '사친은 항상 소심(小心)하고 신중하였다.'고 자주 회고했다.[24] 영조 49년, 용강의 박흥조가 신문고를 울려 소녕원을 능으로 봉하는 일을 청했으나 식량을 주어 쫓아보냈다.[25]

가족관계[편집]

해주 최씨(海州崔氏)

  • 조부 : 의정부 좌촨성 겸 의금부 판사 최태일(崔泰逸)
  • 조모 : 정경부인 평강장씨(平康張氏)
  • 부 : 의정부 영의정 최효원 (崔孝元, 1638 ~ 1672)
  • 모 : 정경부인 남양 홍씨 (홍계남 洪季男 의 딸)



왕가(王家 : 전주 이씨)

  • 시종고조부 : 제15대 광해군(光海君, 1575~1641, 재위 1608~1623)
  • 시종고조모 : 문성군부인 폐비 유씨(文城郡夫人 廢妃 柳氏, 1576~1623)
  • 시고조부 : 추존 원종대왕(元宗大王, 1580~1619)
  • 시고조모 : 추존 인헌왕후 구씨(仁獻王后 具氏, 1578~1626)
    • 시증조부 : 제16대 인조대왕(仁祖大王, 1595~1649, 재위 1623~1649)
    • 시증조모 : 장렬왕후 조씨(莊烈王后 趙氏, 1624~1688)
    • 시증조모 : 인렬왕후 한씨(仁烈王后 韓氏, 1594~1636)
      • 시종조부 : 소현세자 왕(昭顯世子 汪, 1612~1645)
      • 시종조모 : 민회빈 강씨(愍懷嬪 姜氏, 1611~1646)
      • 시조부 : 제17대 효종대왕(孝宗大王, 1619~1659, 재위 1649~1659)
      • 시조모 : 인선왕후 장씨(仁宣王后, 1619~1674)
        • 시아버지 : 제18대 현종대왕(顯宗大王, 1641~1674, 재위 1660~1674)
        • 시어머니 : 명성왕후 김씨(明聖王后 金氏, 1642~1684)
          • 시누이 : 명선공주(明善公主, 1660~1673)
          • 시누이 : 명혜공주(明惠公主, 1665~1673)
          • 시누이 : 명안공주(明安公主, 1667~1687)
          • 남편 : 제19대 숙종대왕(肅宗大王, 1661~1720, 재위 1674~1720)
            • 1남 : 영수(永壽, 조졸)
            • 2남 : 제21대 영조대왕(英祖大王, 1694~1776, 재위 1724~1776)
            • 며느리 : 정성왕후 서씨(貞聖王后 徐氏, 1692~1757)
            • 며느리 : 정순왕후 김씨(貞純王后 金氏, 1745~1805)
              • 손자 : 추존 진종소황제(眞宗昭皇帝, 1719~1728)
              • 손주 며느리 : 효순소황후 조씨 (孝純王后 趙氏)
              • 둘째 손자 : 추존 장조의황제(莊祖懿皇帝, 1735~1762)
              • 둘째 손주며느리 : 헌경의황후 홍씨(獻敬懿皇后 洪氏, 1735~1815)
                • 증손자 : 의소세자 정(懿昭世子 琔, 1750 - 1752)
                • 종손자 : 제22대 정조(正祖大王,1752~1800)
                • 증손주 며느리 : 효의왕후 김씨(孝懿王后 金氏, 1789~1857)
            • 3남 : 왕자(조졸)

숙빈 최씨를 다룬 작품[편집]

서적[편집]

  • 김이영 글, 백철 그림,《동이》(2010년, 이가서)
  • 정재인, 김이영, 이병훈 《동이》(2010년, MBC 프로덕션)
  • 이준혁, 《동이》(2010년, 문예춘추사)
  • 김종성, 《최숙빈》(2010년, 부키)

같이 보기[편집]

주석[편집]

  1. 출처 《숙빈 최씨 신도비명(淑嬪崔氏神道碑銘)》
  2.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숙빈최씨
  3. 숙빈 최씨 신도비명(淑嬪崔氏神道碑銘)
  4. 김용숙, 《조선조 궁중풍속 연구》
  5. 《조선왕조실록》, 숙종 27권, 20년(1694 갑술 / 청 강희(康熙) 33년) 6월 2일(무술) 1번째기사
  6. 《조선왕조실록》, 숙종 27년 신사(1701,강희 40) 9월23일 최종기사
  7. 숙빈최씨 신도비(淑嬪崔氏神道碑)
  8. 숙빈최씨 신도비(淑嬪崔氏神道碑)
  9. 숙빈최씨 신도비(淑嬪崔氏神道碑)
  10. 영조 대왕 행장(行狀)
  11. 《조선왕조실록》, 영조 80권, 29년(1753 계유 / 청 건륭(乾隆) 18년) 8월 6일(무자) 1번째기사
  12. 《조선왕조실록》, 영조 51권, 16년(1740 경신 / 청 건륭(乾隆) 5년) 1월 9일(신해) 1번째기사
  13. 《조선왕조실록》, 영조 40권, 11년(1735 을묘 / 청 옹정(雍正) 13년) 1월 12일(계미) 1번째기사
  14. 《조선왕조실록》, 숙종 30년 갑신(1704,강희 43) 4월17일 최종기사
  15. 《조선왕조실록》, 숙종 32권, 24년(1698 무인 / 청 강희(康熙) 37년) 8월 2일(계묘) 2번째기사
  16. 《조선왕조실록》,숙종 33권, 25년(1699 기묘 / 청 강희(康熙) 38년) 2월 27일(정묘) 1번째기사
  17. 《조선왕조실록》, 숙종 39권, 30년(1704 갑신 / 청 강희(康熙) 43년) 5월 27일(을축) 2번째기사
  18. 《조선왕조실록》, 숙종 27권, 20년(1694 갑술 / 청 강희(康熙) 33년) 10월 7일(신축) 1번째기사
  19. 《조선왕조실록》, 숙종 50권, 37년(1711 신묘 / 청 강희(康熙) 50년) 6월 22일(경진) 2번째기사
  20. 숙빈최씨 신도비(淑嬪崔氏神道碑)
  21. 숙빈최씨 신도비(淑嬪崔氏神道碑)
  22. 《조선왕조실록》
  23. 《조선왕조실록》, 영조 80권, 29년(1753 계유 / 청 건륭(乾隆) 18년) 10월 22일(계묘) 1번째기사
  24. 《조선왕조실록》, 영조 1권, 즉위년(1724 갑진 / 청 옹정(雍正) 2년) 9월 21일(신유) 2번째기사
  25. 《조선왕조실록》, 영조 120권, 49년(1773 계사 / 청 건륭(乾隆) 38년) 윤3월 28일(정해) 2번째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