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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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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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군의 위치
하동군의 위치
현황
국가 대한민국 대한민국
면적 675.57 km²
세대 23,032 가구 (2013.12.31)
총인구 50,177 명 (2013.12.31)
1개
12개
군수 윤상기
국회의원 여상규(사천·남해·하동)
군청
소재지 하동읍 군청로 23 (읍내리 180-3)
홈페이지 http://www.hadong.go.kr/
상징
군목 은행나무
군화 철쭉
군조 비둘기

좌표: 북위 35° 04′ 02″ 동경 127° 45′ 06″ / 북위 35.0672798° 동경 127.7517417° / 35.0672798; 127.7517417

하동군(河東郡)은 대한민국 경상남도 최서단에 있는 이다. 서쪽으로 섬진강을 끼고, 전라남도와 경계를 이룬다. 군청 소재지는 하동읍이고, 행정구역은 1읍 12면이다. 해마다 하동 문화제가 열린다.

역사[편집]

삼한 시대에는 변한 12국의 하나인 악노국에 속했고, 삼국 시대에는 백제에 속했다. 광복 이후에는 좌익 공산주의자들의 많이 살던 지역이었으며, 빨치산의 거주 가능성을 이유로 청학동 주민들이 정부로부터 퇴거당하기도 했다.

  • 가야 대가야 대사(帶沙), 다사군(多沙郡) 또는 다사성(多沙城)
  • 백제 한다사군(韓多沙郡)
  • 신라 757년(경덕왕 16년) 하동군으로 개칭
  • 고려 진주목 하동현
  • 조선 1414년(태종 14년) 남해현과 합쳐 하남현으로 개칭
  • 1702년(숙종 28년) 악양현을 하동군에 편입하였다.
  • 1704년(숙종 30년) 하동도호부로 승격
  • 1895년 음력 윤5월 1일 도호부 제도가 폐지되고, 23부제가 시행되면서 진주부 하동군으로 개편 [1]
  • 1896년 8월 4일 13도제가 실시되면서 경상남도 하동군으로 개편 [2]
  • 1914년 4월 1일 곤양군 서면, 금양면을 편입하였다. (14면)
  • 1915년 1월 1일 전라남도 광양군 다압면 섬진리 일부를 하동군에 편입하였다.
  • 1916년 내횡보면을 횡천면으로 개칭하였다.
  • 1918년 동면을 진교면으로 개칭하였다.
  • 1928년 4월 1일 옥동면과 가종면이 옥종면으로 합면하였다.(13면)
  • 1933년 1월 1일 금양면을 폐지하여 진교면·금남면(구 남면)에 편입하였다.
  • 1933년 덕양면을 하동면으로 개칭하였다.
  • 1938년 10월 1일 하동면을 하동읍으로 승격하였다. (1읍 11면)
  • 1989년 4월 1일 금남면 갈사출장소를 금성면으로 승격하였다. (1읍 12면)

지리[편집]

하동군은 한반도의 남단, 경상남도의 가장 서쪽에 자리를 잡고 있으며, 북쪽으로 지리산을 이고, 남쪽으로는 한려해상국립공원인 남해 바다에 접한다. 섬진강을 경계로 하여 전라남도 광양시구례군, 지리산을 경계로 하여 전라북도 남원시와 경상남도 산청군함양군 그리고 진주시사천시에 닿아 있으며, 남해 바다를 경계로 남해군과 인접해 있는 복잡한 접경을 하고 있다. 총면적은 675.5km2로 경남의 6.4%를 차지하며, 현재 1개의 읍과 12개의 면 108개의 법정리, 319개 행정리, 520개반, 580개의 자연 마을이 존재한다.[3]

하동군에는 지리산국립공원한려해상국립공원 2개의 국립공원이 위치하고 있다. 또한 사적151호로 고소성군립공원이 존재한다. 하동읍 광평리에 있는 백사청송송림공원은 조선 영조 21년에 심었던 소나무가 250년의 세월을 거쳐 26,000평방미터의 거대한 솔밭이 되어 천연기념물 제445호로 지정되었다.[4] 다도해를 품고 있는 남해 바다에는 한려해상국립공원이 있으며, 백두대간의 끝자락에 치솟은 지리산으로 인해 토끼봉(1,533m), 영신봉(1,650m), 삼각고지(1,586m), 삼신봉(1,284m) 등 1,000m가 넘는 높은 봉우리들이 즐비하게 있다.

지리산에 발원하여 남해에 이르는 섬진강은 하동의 젖줄이자 생명선이 되고 있다. 특히 이곳에서 나는 재첩은 이름 높은 특산물로 전국에 널리 알려져 있다. 섬진강에는 22개의 섬이 있으며, 그 중 유인도는 대도섬이 유일하다. [3] 덕천강은 낙동강 수계에 속하며, 낙동강의 제2지류(제1지류는 남강)이다. 길이는 국가하천 46.72㎞, 지방2급하천 43.55㎞, 하천연장 34㎞, 유역면적은 국가하천 445.14㎢, 지방2급하천) 391.54㎢에 이른다. 강물은 하동군 옥종면진주시 수곡면 사이를 흘러 사천시 곤명면 진양호로 흘러들어간다.

기후[편집]

봄에는 강한 바람이 불고 황사현상이 자주 나타나며, 여름에는 장마전선이 형성되어, 7,8월에는 집중호우를 동반한 태풍과 가을에는 맑고 청명한 날씨가 계속되고, 겨울에는 북서계절풍이 불어 추운 날씨가 계속되는 곳이다. 기온은 연평균 15.1도로 최고기온은 35.2도, 최저기온은 -10.9도를 기록하고 있으며, 년평균강수량은 1,683.8mm이다.[3]

행정 구역[편집]

하동군의 행정 구역은 1읍 12면 108개 법정리 557개 자연마을로 구성되어 있으며, 면적은 675.27㎢이다.[5] 인구는 2008년 12월 30일을 기준으로 22,066세대 53,765명이고 전체의 22.3%가 하동읍에 거주한다.[6]

읍·면 한자 세대 인구 면적 행정구역지도
하동읍 河東邑 4,512 11,964 29.5 Handong-map.png
화개면 花開面 1,407 3,651 134.36
악양면 岳陽面 1,750 3,946 52.64
적량면 赤良面 1,023 2,318 41.71
횡천면 橫川面 968 2,357 34.50
고전면 古田面 1,194 2,896 36.18
금남면 金南面 1,795 4,687 43.1
진교면 辰橋面 2,924 7,336 49.93
양보면 良甫面 967 2,357 34.42
북천면 北川面 994 2,145 32.94
청암면 靑岩面 792 1,853 75.63
옥종면 玉宗面 2,036 4,493 87.8
금성면 金星面 1,509 3,866 22.27

북천면은 가을이 되면 코스모스가 지천에 있다. 북천면사무소 앞의 마을은 북천역에서 한눈에 내려다보일 정도로 작고, 그 작은 마을을 돌아 산책길이 나 있다. 북천역에서 자전거로 10분 정도 거리에는 이병주 문학관이 있다. [7]

정치[편집]

문화[편집]

음식[편집]

하동군은 대표 지역 특산물인 녹차와 대봉감, 옥종면의 옥종딸기, 매실, 밤 등이 유명하며, 수자원으로 재첩참게가 유명하다.[8]

2011년 광주광역시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4회 대한민국 차 품평대회》에서 악양면 ‘죽향다원’이 녹차부분 대상을 수상했으며, 발효차 부문에서도 하동군 ‘황아차농원’이 금상을 수상했고, 하동군 ‘석천다원’이 최우수상을, 하동군 ‘매암제다원’과 ‘향남농원’이 우수상을 차지 하는 등 하동녹차가 대한민국 차 품평대회의 모든 부문의 상을 수상했다. [9]

섬진강 상류댐의 방류 부족으로 섬진강 하류의 유지수량 감소하여 염분 농도가 증가하면서 꾸준히 수량이 감소하고 있으며, 멸종 위기에 까지 몰려 있는 상황이다.[10]

축제[편집]

관광[편집]

화개장터

쌍계사

쌍계사화개면 운수리에 위치하고 있는 조계종 사찰로 지리산 국립공원 내에 위치하고 있다. 722년 신라 성덕왕 21년에 의상대사의 제자인 삼법스님이 창건하였는데, 처음에 옥천사라고 하였던 것을 887년 쌍계사로 개칭하였다. 쌍계사 진감선사 대공탑비는 보 제47호로 지정되어 있다. 쌍계사 부도는 보물 제380호로, 통일신라시대의 부도이다.

화개장터

화개장터는 조영남의 노래 《화개장터》로 더욱 유명해진 곳으로 4월로 접어들때쯤이면 화개에는 그 좋은 벚꽃이 십리에 날려 화사하게 봄을 재촉한다. 화개의 꽃길은 이미 십리벚꽃으로 잘 알려진 길이다. 마치 꿈길과도 같은 이길은 서로 사랑하는 청춘남녀가 두손을 꼭 잡고 걸으면 백년해로 한다고 하여 일명 “혼례길”이라고도 한다.[11]

청학동

청학동 또는 도인촌은 지리산 삼신봉의 동쪽 기슭에 위치한 마을이다. 집단 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의 가옥은 한국 고유의 초가집과 기와집의 형태로 되어 있으며, 의생활도 전통적인 한복차림을 고수하고 있다. 미성년 남녀는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고 길게 땋아 늘어뜨리고 있으며, 성인 남자는 갓을 쓰고 도포를 입는다. 자녀들은 옛 전통 그대로 마을 서당에서 공부를 하기도 했다. 마을 사람들은 농업 외에 약초, 산나물 채취와 양봉, 가축사육 등으로 생계를 꾸려 나간다. 현재는 관광객들을 위한 전통 음식점을 경영하는 곳이 많이 있다.

최참판댁

박경리의 소설 《토지》의 무대가 된 곳으로 악양면 평사리에 위치하고 있다.

삼성궁

삼성궁은 청암면 묵계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청학동 산길을 돌아 1.5km 가량 떨어진 해발 850m 지점에 자리를 잡고 있다. 정식 명칭은 지리산청학선원 배달성전 삼성궁으로 이 고장 출신 강민주(한풀선사)가 1983년 고조선 시대의 소도를 복원하여 민족의 성조인 환인, 환웅, 단군을 모신 배달성전으로 민족의 정통 도맥인 선도를 지키고 신선도를 수행하는 도장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12]

금오산

금오산은 지리산이 동남쪽으로 뻗은 줄기로 하동군의 동쪽 남해 연안에 외연(外緣)히 자리잡은 높이 849m, 둘레80리의 우뚝솟은 웅장한 산이다. 북편 진교면 안심동에는 정일두 선생의 태지(胎址)가 있었던 곳을 태봉(胎峰)이라 전하여 온다. 동쪽 산 기슭의 둘러 앉은듯한 금남면 중평리(중태촌)당사동은 충의공 정기룡장군의 태지이기도 하다.

산 꼭대기엔 군사시설이 있을 때 사용되었던 군용도로가 완성되어 있고 통신 시설도 구비되어 있다. 하동군 금남면 중평리 금오산에 남아있는 금오산 성지는 고려때 왜구를 막기위해 축성했다고 하며, 지금도 성을 쌓은 돌이 그대로 남아 있으나 성체는 무너졌고 그 흔적만 이끼속에 흩어져 있다. 또한 하동군 금남면 노량리에 있었던 연태봉 산성은 옛날 봉화를 올리던 곳으로 작은 성이다. 눈아래 남해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며 왜구를 방어하던 요새로 수비군을 두었다고 한다.

말굽 모양의 산릉이 빙 두르고 정상 직하의 달바위 전망이 일품인 이 산은 그동안 군사시 설 때문에 정상을 오를 수 없어 등산객의 발길이 뜸했지만, 현재는 군사시설이 거의 철거되어 산행에 불편한 점은 없다.

진주에서 하동으로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달릴 때 보이는 금오산은 그 정상에 서 있는 송신탑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해안과 가까이 있기 때문에 우뚝 솟은 모습이 만만해 보이지는 않는다.

우리나라에는 동명이산(同名異山)의 금오산이 다섯 군데나 있다. 구미의 금오산과 밀양 삼랑진의 금오산(730m),하동 진교의 금오산 (849m),전남 여수의 금오산(323m).그리고 경주 남산의 금오산 (468m이 그것이다.

교육[편집]

  
  
  • 금남중학교
  • 악양중학교
  • 양보중학교
  • 옥종중학교
  • 옥종중학교 북천분교
  • 진교중학교
  • 청암중학교
  • 하동중앙중학교
  • 하동중학교
  • 화개중학교
  • 횡천중학교

교통[편집]

코레일 하동역

남해고속도로가 하동을 관통하고 있으며, 국도 제2호선, 제19호선, 59호선이 있다.

철도[편집]

경전선이 아래의 역을 지나간다.

버스[편집]

하동시외버스터미널은 하동읍 읍내리에 위치한 시외버스버스터미널이다.

방면 행선지
수도권 방면 서울 (남부터미널)
호남권 방면 구례, 화엄사
영남권 방면 진주, 전도, 악양, 곤양, 의신, 진교, 쌍계사, 서부산

인물[편집]

바다에서 22전 22승을 거둔 이순신과 육지에서 60전 60승을 거둔 정기룡 장군은 임진왜란 때 조선을 지탱하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선조가 직접 발굴했다는 전설이 있지만, 정중부와 마찬가지의 이유로 1599년 공신도감에서 처음 추품한 전쟁 영웅 26명 명단에는 당당히 이름이 올랐으나, 공신도감이 최종적으로 내놓은 9단계 109명의 명단에는 빠지게 된다. 그가 선무 1등 공신에 추품된 것은 5년 후인 1605년이었다. 그의 진가를 제대로 파악한 영조1773년에 충위공이라는 시호를 내리게 된다.[13] 금남면 중평리 금오산 아래 경충사에 영정이 모셔져 있다.

경남 하동 출생으로 일본 메이지 대학 문예과를 졸업하고, 〈국제신문〉 편집국장을 등을 지냈으며, 《지리산》 등의 대표적인 작품이 있다. 1991년 3월 폐암선고를 받고 1992년 4월 3일 눈을 감았다. 《2007 이병주 하동국제문학제》가 개최되었으며, 소설 지리산의 무대인 이명산 자락 북천면 직전리 양보마을에 조성되는 문학예술인촌은 나림 기념관, 문학관, 창작관 등이 들어서게 된다. 하동읍 읍내리 섬진강가에 서 있는 나림 이병주 문학비에는 소설 《산하》에 나오는“태양에 바래지면 역사가 되고 월광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14]

하동 출생의 시인으로 초등학교 1학년 때 대구로 이사하여 그곳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시집으로 《서울의 예수》,《새벽편지》,《별들은 따뜻하다》 등이 있으며 시선집으로 《흔들리지 않는 갈대》가 있다. 제3회 소월시문학상을 받았다. 양희은의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나 안치환의 ‘소금인형’ 등 정호승의 몇몇 시는 가수들에 의해 노래로 창작되어 음반으로 출시되기도 했다. 시편 〈부치지 않은 편지〉(백창우 작곡)는 가수 김광석의 유작앨범에 수록되었다. 〈이별노래〉는 최종혁 작곡으로 이동원이 불러 대중에 널리 알려졌다.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준다면/ 그대 떠난 뒤에도 내 그대를/ 사랑하기 아직 늦지 않으리.… …”

전 국가대표 배구 선수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강스파이커로 명성을 떨쳤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처음 국가 대표로 발탁되었으며, 한창 활약할 당시 ‘아시아의 거포’라 불렸다. 현대자동차 서비스 배구단을 거쳐 일본에서 활동하다 은퇴하였고, 이후 현대 배구단과 국가대표 감독을 역임했다..

1934년 고전면 성평리에서 태어난 성촌(星村) 정공채 시인은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57년 박두진 시인의 추천을 받아 ‘종이 운다’ 등 시 3편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이후 부산일보․학원사․민족일보 기자와 MBC 프로듀서를 거쳐 1963년 MBC 라디오 인기 프로그램 ‘전설따라 삼천리’ 제1회부터 3개월간 집필 활동을 했다. 또한, 문인협회 이사와 현대시인협회 부회장, 한국현대시인협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한국 시단에 큰 족적을 남겼다. 등단 3년만인 1960년 ‘석탄’, ‘자유’ 등으로 현대문학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해 시문학상, 한국문학협회상, 편운문학상, 한국문인협회 한국문학상 등 수많은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시인은 2008년 4월 30일 타계하기 전까지 첫 시집 ‘정공채 시집 있습니까’를 시작으로 ‘해점(海店)’, ‘아리랑’, ‘미8군의 차’, ‘새로운 운수’와 수필집 ‘너의 아침에서 나의 저녁까지’, 평전 ‘아, 전혜린’, 역사소설 ‘초한지’ 등의 저서를 남겼다.

자매결연현황[편집]

국제교류[편집]

국내교류[편집]

산학협력[편집]

주석[편집]

  1. 칙령 제98호 地方制度改正件 (1895년 음력 5월 26일)
  2. 칙령 제36호 地方制度官制改正件 (1896년 8월 4일)
  3. 하동관광리플릿
  4. 《하동관광리플릿》, p43. 2011년 7월 29일 확인
  5. 하동통계연보 - 면적, 2011년 7월 12일 확인
  6. 하동통계연보 - 인구, 2011년 7월 12일 확인
  7. "느린 열차마저 그곳에선 풍경이 된다", 《조선일보》, 2010년 9월 8일 작성.
  8. 하동군 '명품 하동' 만들기 본격 시동, 부산일보, 2009년 11월 24일
  9. 역시 하동녹차 - 차 품평대회에서 대상 수상, 뉴시스, 2011년 6월 26일
  10. 하동 명물 ‘재첩’ 멸종 위기, 서울신문, 2011년 7월 6일
  11. 화개장터 십리벚꽃, 2011년 7월 12일 확인
  12. 《하동관광리플릿》, p54.
  13. 바다에 이순신, 육지엔 정기룡 장군이 있었다, 주간한국 2009년 1월 2일
  14. [1], 조선희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