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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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학교
LibraryOfChungAngUniv.jpg
표어 의에 죽고 참에 살자
설립 1918년
종류 사립
총장 안국신
국가 대한민국 대한민국
위치 서울특별시 동작구 흑석로 84 (흑석동 221)
경기도 안성시 대덕면 서동대로 4726 (내리 655)
규모 2캠퍼스, 10대학, 17대학원
학생 수 학부: 32,017(2010)
대학원: 6,413(2009)
상징 느릅나무, 청룡상
학교법인 중앙대학교
웹 사이트 http://www.cau.ac.kr/

중앙대학교(中央大學校, Chung-Ang University)는 서울특별시 동작구 흑석로 84 (흑석동 221)과 경기도 안성시 대덕면 서동대로 4726 (내리 655)에 있는 대한민국사립대학 중 하나이다. 줄여서 CAU로 표기하기도 한다. 해방 이후 국가의 번영을 꾀하고 인류의 이상을 위하며 의와 참을 추구하는 이념 아래 승당 임영신 박사의 주도로 설립되었다. 대한민국 최초로 약학, 경영학, 신문방송학, 광고홍보학, 사진학, 연극영화학 전공이 개설되었고, 약학, 언론, 예술 분야에서 유명하다. 단일 학과로는 전국의 모든 대학 중에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출신이 주요 언론사 부장급 이상 언론인을 가장 많이 배출한 것으로 조사[1] 되었고, 중앙대 광고홍보학과는 가장 많은 광고인을 배출[2]하였다. 주요 대학원으로는 경영전문대학원(MBA),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의학전문대학원 등이 있다. 2008년에 글로벌기업 두산을 학교법인으로 영입하여 새로운 발전계획 * CAU 2018+를 수립하였다. 이는 중앙대 개교 100주년이 되는 2018년에, 세계 100위 명문대 진입을 목표로 세계적 수준의 지식과 학습역량을 창조하며 보유하는 대학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계획이다.

목차

[편집] 위치

중앙대학교 야경

[편집] 서울캠퍼스

서울캠퍼스는 초대 총장인 임영신 박사가 부지를 구입한 흑석동에 위치해 있다. 2011년 현재, 서울캠퍼스는 389,228㎡의 부지에 25개 건물이 위치해 있다. 서울캠퍼스는 체육대학과 예술대학(공연영상창작학부 제외)을 제외한 전 계열의 대학이 위치해 있으며, 서울캠퍼스의 주변에는 중문 근처의 부속유치원과 정문 근처에 위치한 중앙대학교 부속병원을 비롯하여 흑석동에 있는 부속초등학교과 부속중학교가 있다. 또한 강남구 도곡동에는 중앙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가 있으며, 종로구 동숭동에는 공연영상예술원이 위치해 있다.

[편집] 안성캠퍼스

안성캠퍼스는 1980년 건립이 시작되었는데, 경기도 안성시 대덕면에 위치해 있다. 안성캠퍼스는 962,669㎡의 부지에 40여 개의 건물 및 기타장소가 있다. 안성캠퍼스에는 사회과학대학의 사회복지학부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인문학부의 일부 학과, 자연과학대학의 생명자원공학부와 식품공학부, 경영경제대학, 예술대학 중 공연영상창작학부를 제외한 전 학과 및 체육대학이 있다.

[편집] 교통편

[편집] 연혁

[편집] 일제시대

중앙대학교의 역사는 1918년 4월 중앙유치원의 설립에서부터 시작되었다.[3] 이후 중앙유치원의 "교육활동을 통한 실력양성으로 독립을 얻자"는 유치원 교육운동이 활발해지면서 1920년대에 여러 유치원이 만들어졌다. 중앙유치원에 사범과를 설치하여 유치원교사를 양성하는 등 전문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해 나가기 시작하였다. 1922년 중앙유치원의 사범과는 중앙보육학교로 승격되었는데, 법령상으로는 전문학교가 아닌 각종학교였지만, 사회통념상으로는 전문학교로 여겨졌다.[4] 중앙보육학교의 운영은 일제의 탄압으로 인해 1932년에는 개인집으로 옮기고 학생수도 10명에 그쳤다. 이러한 중앙보육학교를 1933년임영신 선생이 인수하여 교장에 취임하였다. 임영신 선생은 1932년 미국에서 귀국하여 민족을 구하기 위해서는 교육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하였고, 이를 위해 흑석동에 학교 부지를 샀고, 교장에 취임하였다.[5]

흑석동에 교지를 마련했지만, 교육장이 마땅치 않아 피어선(Pierson) 성경학교를 빌어서 교육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재정적 한계와 일제의 탄압으로 학교 운영상의 어려움은 계속되었다. 학교 발전을 위해 미국에 건너간 임영신 선생은 모금활동을 통해 중앙보육학교를 후원할 파이퍼재단을 설립하고 귀국하였다. 그리하여 1938년 5월, 흑석동에 영신관을 건립하고 학교를 이전하였다.[6]

이즈음 일본은 1937년중일전쟁을 일으켰고, 1941년에는 진주만을 공격하여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 더불어 1940년동아일보조선일보를 폐간하고, 1943년에는 교육에 관한 전시비상조치령을 공포하였다. 중앙보육학교는 교장인 임영신 선생이 미국에서 유학한 점과 기독교 신자라는 점에서 탄압이 더욱 심하였다. 제2차대전 말기에는 일제의 탄압으로 중앙보육학교는 결국 1944년에는 신입생을 모집할 수 없었고, 폐쇄를 당하게 되었다.[6]

[편집] 해방과 한국전쟁

1945년 8월에 해방이 되고, 임영신 선생은 같은 해 9월 28일에 중앙보육학교의 문을 열었고, “의에 죽고 참에 살자”라는 교훈과 교가를 제정하였다. 그 후 신생조국을 건설해 갈 인재를 양성하고 그들의 정신적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같은 해 10월 1일에 중앙보육학교를 중앙여자전문학교로 개편하였다. 또 1946년 11월에는 재단법인 중앙문화학원을 설립하여 학교발전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리고 다시 1년 뒤인 1947년 4월에는 중앙여자대학으로 개편하고 다시 1948년 5월에는 남녀공학의 중앙대학으로 학칙을 변경하였다.[7]

그 후 1950년 5월에 제 1회 학사학위수여식을 가졌으나, 한국전쟁으로 휴교하였고, 9월 28일의 서울 수복 후에 학생의 재등록을 받다가 1.4후퇴로 학교의 모든 서류를 부산으로 옮기고 그곳에 중앙대학 임시사무소를 설치하였다. 그리고 1951년 4월에는 부산 송도의 전시연합대학이 아닌 중앙대학의 단독개강을 진행하였고, 이어서 이리서울에도 분교를 설치하여 강의를 시작하였다.[7] 이러한 노력으로 1951년부터 1953년까지 2~4회 의 학사학위수여식을 부산에서 가질 수 있었다.

[편집] 종합대학으로 승격 및 발전

1953년 2월, 중앙대학은 종합대학으로 승격되었다. 그리하여 문리과대학, 법정대학, 경상대학, 약학대학 등 4개 대학 9개 학과 및 대학원을 설치하고, 총장에는 임영신 박사가 취임하였다. 그 후, 휴전으로 8월에 교사를 부산에서 흑석동으로 옮겼으나, 미8군이 주둔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교사에서 강의를 진행하였다. 1954년 4월, 미군으로부터 교사를 인수하였다.[8]

그 뒤 1955년부터 1959년까지 학과를 증설하여 4개 대학 19개 학과 정원 2,850명 규모로 대학이 성장하였다. 이러한 학과의 증설과 학생의 증가에 부응해 1956년에 파이퍼홀을 준공하였고, 1959년에는 중앙도서관도 준공하여 개관하였다. 동시에 연구활동을 강화하기 위하여 국제문화연구소 등을 두었고, 또 교육의 체계화를 위해서 교과과정을 끊임없이 보완·수정하였으며, 교육의 계열화를 위해서 자매학교로서 낙양중·공업고등학교, 영신여자중학교, 영신중학교, 부속유치원 등을 두고 체계적인 교육을 할 수 있도록 교육사업도 확장하였다.[8]

1960년3.15 부정선거에 항의하여 4.19가 일어나 중앙대학교 학생들도 이에 참가하였고, 1961년에는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는 등 여러가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1961년에 제 2대 총장 임성희 박사가 취임하였으나, 1963년 5월 다시 임영신 박사가 3대 총장에 취임하였다.[9]

1965년 1월에는 문리과대학을 분리하여 문과대학, 이공대학, 사범대학으로 개편하고 법정대학, 경상대학, 약학대학을 합하여 6개 대학으로 증설했다. 또한 자매 중·고교를 사범대학 부속중·고교로 개칭하고 부속국민학교를 설치하여 부속유치원과 함께 한 재단 아래에서 같은 교육이념 아래 유치원부터 대학원까지 일관된 교육을 할 수 있게 되었다. 1967년 2월에는 사회개발대학원을 설치하였고, 1968년에는 문과대학, 이공대학, 사범대학, 법과대학, 정경대학, 경영대학, 농과대학, 약학대학 등 8개 단과대학으로 증설 개편하였으며, 1971년 12월에는 의과대학을 설치하고 대학부속병원으로 서울 중구 필동에 있는 성심병원을 흡수함으로써 내실화를 기하였다.[9]

이러한 대학조직의 확장과 더불어 여건 조성도 함께 진행되었다. 1961년 7월에는 진선관과 대학극장이 준공되었고, 같은 해 10월에는 사회과학관을 준공하였다. 1968년 개교 50주년을 맞아 당시의 문서, 필적 등을 100년 후에까지 안전하게 보관ㆍ전달될 수 있는 청룡상을 건립하였다. 이때 승당관도 건립하였고, 다음 해인 1969년 12월에 봅스트홀을 준공하여 교육의 내실화에 기여하였다.[9]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임영신 박사는 고희를 넘기면서 총장의 직무를 감당할 수 있는 체력이 되지 않았다. 이에 1972년임철순 박사가 제 4대 총장으로 취임하였다. 이 때에는 국제교류가 점점 빈번해지고 사회도 다양화 되어가고 있어서 이러한 시대환경에 부응할 수 있도록 대학을 발전시키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였다. 따라서 기초학문의 발전 없이 응용학문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으므로 이공대학을 분리하여 공과대학을 설치하고 문과대학에 자연과학의 기초분야를 합쳐서 문리과대학을 두게 하였다. 예술분야를 위해서 1972년 6월에 기존의 학교법인인 서라벌예술학원이 운영하던 서라벌예술대학을 합병하였으며, 1974년에는 이를 예술대학으로 개편하였다. 또 2부 대학을 1978년에 병설하였고, 1979년 1월에는 국제경영대학원과 교육대학원을 설치하였다.[10] 대학 구조 확충에 따른 시설물의 확장도 진행되었다. 1972년 10월에 진선관을 증축하여 서라벌홀을 준공하였고, 1974년에는 의과대학 교사인 자연관을 준공하였다. 또 1976년 12월에는 학생회관을 준공했으며, 1978년 6월에는 서울 중구 필동에 있는 의과대학 부속성심병원의 신관을 준공하였다.[10] 1977년 2월에는 중앙대학교의 설립자이자 많은 발전을 이룩한 승당 임영신 박사가 서거하였다.

[편집] 제 2캠퍼스 건립

1980년 5월, 임철순 총장의 후임으로 문리대 철학과 교수였던 이석희 박사가 제 5대 총장에 취임하였다. 또한 11월엔 신문방송대학원을 설치하였으며, 12월에는 의과대학 부속병원의 별관을 준공하였다.[11]

이처럼 서울지역의 학교시설을 계속 확충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안성의 교육기구 확충에 힘을 기울였다. 1980년 3월에는 제 2캠퍼스 건립을 시작하여 경기도 안성에 제1차 교사동과 제2차 기숙사 및 제1차 학생회관을 준공하였다.[10] 1981년 10월, 안성교사를 외국어대학, 사회과학대학 및 가정대학 등 3개 대학으로 개편하였고, 1982년 3월부터는 서울에 있는 교육장을 제1캠퍼스로 안성에 있는 교육장을 제2캠퍼스로 명명하였다. 1982년 10월에는 예술대학에 있는 음악학과를 음악대학으로 확대 발전시켰고, 1983년 9월에는 농과대학을 산업대학으로 명칭 변경하고, 건설대학원도 두었다. 1984년 10월 안성에 있는 제2캠퍼스에 건설대학을 설치하여 제2캠퍼스에 7대 단과대학의 규모를 가지게 하였다.[11]

이러한 제2캠퍼스의 기구개편과 대학증설에 따라 교육시설도 속속 확장하였다. 1980년 12월 안성교사에 제2차 교사동을 준공했고, 1981년에는 대운동장과 제2차 학생회관을 준공하였다. 이어 1982년에는 교수연구동을 비롯하여 농과대학 실험동과 예술대학 건물을 준공하였다. 1983년에는 음악대학 강의동 및 강당동, 야외 수영실습장, 체육관을 준공하였다. 1984년에는 음악대학 증축건물과 제3차 교사동을 준공하여 현대적 캠퍼스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하였다.[11]

제2캠퍼스에 대한 많은 시설투자는 학교재정에 무리를 가져와 재단의 부채를 가중시킨데다 학교법인 산하 사업체의 부실경영으로 대학운영에 전반적인 문제점을 야기시켰다. 이러한 상황에서 1985년 3월, 문병집 총장이 6대 총장으로 취임하였다. 문병집 총장은 대학운영의 합리화를 기하기 위하여 운영체제개편에 착수하였다. 기획업무를 비롯, 예산 및 재무행정체제를 개편하고 대학운영에 관한 각종 규정을 정비하여 행정체계의 제도화와 합리화를 위한 작업을 추진하는 한편, 교학담당 부총장제와 사무담당 부총장제를 도입하고 취업지도과를 신설하였으며 중앙문화연구원과 의료원의 운영체제를 개편하였다. 그리고 폐과된 문과대학의 불어불문학과와 일어일문학과를 복과시키고 산업정보학과를 신설하였으며, 제2캠퍼스에 현대적인 중앙도서관 건립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누적된 학교재단의 부채는 재단의 존립을 어렵게 하였으며 대학의 운영에도 많은 어려움을 가져왔다.[11]

[편집] 대학 및 개설 학과

중앙대학교는 2011년부터 학문단위의 재편성 작업을 통해 이전의 18개 대학 79개 학과(부)에서 10개 대학 48개 학과(부)로 개편하였다.

[편집] 학부과정

학문단위 재조정으로 기존의 방대한 학문단위에서 5개 계열, 10개 단과대학, 48개 학과(부)의 학문단위로 개편하였다.

학문단위 재조정
구 분 계 열 소속 대학
학부 인문사회 계열 인문대학, 사회과학대학, 사범대학
자연공학 계열 자연과학대학, 공과대학
경영경제 계열 경영경제대학
의약학 계열 약학대학, 의과대학
예체능 계열 예술대학, 체육대학

[편집] 대학원 과정

서울캠퍼스 대학원 전경

중앙대학교 대학원 과정의 경우 일반대학원과 전문대학원, 특수대학원으로 구분되어있다.

구 분 대학원 분류 소속 대학원
대학원
일반 대학원
전문 대학원
특수 대학원

[편집] 캠퍼스

[편집] 서울 캠퍼스

[편집] 도서관

  • 중앙도서관
중앙도서관

중앙도서관은 1949년 중앙보육학교 인수와 함께 시작되었다. 1956년에 희락관으로 이전하였고, 1960년 현재의 건물로 옮겼다. 2009년 8월에 14,258.2㎡(4,320평)으로 리모델링 및 증축을 완료하여 3,400여 석의 열람석을 비롯하여 다양한 이용자 편의시설을 갖췄다. 지난 60년간 교수와 학생들의 연구 및 학습을 지원하는 중앙 학문의 요람으로서 중추적 역할을 수행해 온 중앙도서관은 현재 100만여 권의 장서와 각종 비도서 자료를 보유하고 있으며, 2,500여 종의 연속간행물과 8만여 titles의 전자저널, 120여 종의 Web DB, 그리고 본교 학위논문 27,000여 권의 원문 DB, E-Book 4만여 권을 서비스하고 있다. 법학도서관은 법학관 1층과 2층에 각각 위치해 있으며 단행복과 참고도서, 정기간행물, 국내외DB를 보유하고 있다.[12]

중앙도서관 앞에는 4.19 혁명 때 산화한 6인의 열사를 기리는 의혈탑이 세워져 있다.[13]

  • 법학도서관

법학도서관은 1997년 (구)법학대학(현재의 제2공학관)의 4층에 413㎡ 규모로 법학도서실로 시작되었다. 그 후 2001년 같은 건물 6층으로 옮겼다가 2005년에는 법학도서관으로 승격되었다. 2007년 법학관의 개관과 함께 법학관의 1층과 2층에 위치해 있다.

[편집] 강의동

  • 법학관
법학관

2007년에 신축된 법학관에는 인문사회계열과 경영경제계열, 법학도서관이 사용하고 있다. 지하 1층에는 학생식당과 교직원식당, 컴퓨터실 등이 있으며, 2층에는 대강당이 있다. 6층과 7층에는 대학과 대학원 행정실이 위치해 있고, 10층부터 14층까지는 교수연구실과 각종 연구소가 위치해 있다.[13]

  • 서라벌홀

법학관 맞은 편에 위치하고 8층으로 이뤄진 서라벌홀은 1972년에 준공되었고 현재는 인문사회계열(인문대학, 사범대학, 사회과학대학)이 사용하고 있다. 1,2층을 제외한 전층에 걸쳐 각 학과 사무실과 교수 연구실과 강의실이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13]

  • 봅스트홀
봅스트홀

제 1공학관으로 1969년에 준공되었다. 현재는 사회기반시스템공학부(건설시스템 전공), 화학신소재공학부, 기계공학부, 전자전기공학부가 사용하고 있으며, 각종 연구실 및 실험실이 위치해 있다. 학생문화회관 뒤쪽에 자리하고 있다.[13]

  • 제 2공학관

제 1공학관과 더불어 건축학부, 컴퓨터공학부 및 사회기반시스템공학부(도시시스템 전공), 융합공학부가 사용하는 공간이다.[13] 다수의 PC실습실과 설계실이 있다.

  • 수림과학관

1995년에 지어진 건물로 외벽의 빨간 색이 특이점이다. 현재는 자연과학대학(물리학과, 수학과, 화학과, 생명과학부)이 사용하고 있는데, 기초과학 교육 및 연구실이 다수 위치해 있다.[13]

  • 의학관
의대 중축동

학생회관과 중앙도서관 근처에 위치해 있고 1974년에 제1의학관이 준공되어 의과대학이 사용하고 있다. 각종 연구실과 실습실이 위치해 있다. 제2의학관은 2005년에 완공되었고 의학전문대학원과 강의실, 연구실이 있다.[13] 제1의학관과 제2의학관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건물이다.

  • 파이퍼홀

1956년 완공된 파이퍼홀은 파이퍼 여사의 유지에 따라 E. H. Bobst가 기증한 10만 달러로 건축된 건물이다. 현재 약학대학이 사용하고 있으며, 각종 실험실과 연구실이 자리하고 있다.[13]

  • 약학대학 및 R&D센터

파이퍼홀의 정면에 위치한 약학대학 및 R&D센터는 지하4층, 지상11층 규모로 2011년 5월말 완공되었다. 식당, 서점 등의 편의시설과 함께 교수연구실을 비롯하여 강의시설, R&D센터 등이 위치해 있다.[13]

[편집] 그 외 건물

  • 영신관
영신관

정문에 위치해 있는 영신관은 1938년 5월 완성되었다. 영신관을 짓기 까지 많은 재정적 어려움이 있었다. 그 때 당시 일제의 개입이 커 기부금이나 모금활동이 불가능해 미국에 가서 모금운동을 전개했다. 그 이후 파이퍼 재단을 설립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영신관이 만들어졌고 지금의 중앙대학교의 터를 마련하였다. 1968년 8월까지 대학본부로 사용되었다.[13]

  • 본관

대학본부가 있는 곳으로 중문에 진입하면 바로 보이는 흰색 건물이다. 총장실, 학생지원처, 총무처, 홍보실 등이 자리잡고 있다.

  • 중앙문화예술관
중앙문화예술관

중앙문화예술관은 1999년 10월에 개관하였다. 대극장과 소극장, 다용도 전시관, 실기실 및 세미나실, 강의실을 고루 갖추고 있다. 이곳에서 학교행사와 각종 공연들이 펼쳐진다. 예술대학원, 첨단영상대학원, 국제대학원 등이 사용하고 있다.[13]

  • 미디어공연영상관

법학관 뒷편에 자리한 작은 건물로 연기 실습과 영상제작에 관련된 실습의 용도로 사용되고 있으며, 영상시사실, 모델제작실 등이 있다.[13]

  • 다목적관

미디어공연영상관과 자이언트구장 사이에 위치한 건물로 영어전용강의실과 동북아물류유통연구소와 동아리실 등이 위치해 있다.[13]

  • 교양학관

1962년에 준공된 교양학관은 법학관이 생기기 전까지 이전의 정치경제대학이 사용했던 곳이다. 현재는 강의실과 실습실을 비롯하여 교양학부 교수 연구실이 위치해 있다. 교양학관의 원래 이름은 ‘4월 학생관’으로 당시 임영신 총장이 4.19 혁명 직후 학생 의거를 기념하기 위하여 신축한 건물이다.[13]

  • 학생회관

학생회관에는 각종 동아리와 학생식당 ‘슬기마루’, CAU버거, 은행, 여학생휴게실 등이 마련되어 있다.

  • 학생문화관
학생문화관

학생문화관에는 우체국, 카페, 문구점, 서점, 중대신문사, UBS방송국, 중앙문화 등이 있다.

  • 창업보육관

봅스트홀 뒷편에 위치한 창업보육관은 창업에 대한 지원과 외부 연구과제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13]

  • 교수연구동 및 체육관

후문 방향에 위치한 체육관은 교수연구동과 함께 있다. 각종 운동경기와 매학기 마다 실시되는 취업박람회 등이 개최되는 곳이기도 하다.

[편집] 기숙사

  • 생활관 (Blue Mir Hall)
블루미르홀

생활관은 2010년 8월에 완공되었다. 898명의 학생들을 수용할 수 있으며 식당과 편의점, 운동시설, 카페 등이 있다. 또한 각종 행사나 연구를 위해 단기 방문한 이용자와 외국인 교원을 위한 게스트 하우스가 있다.[13]

  • 구 남자기숙사

1961년에 완공되어 ‘현암학사’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블루미르홀의 완공 후 숙소 및 다양한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13]

  • 구 여자기숙사

1995년에 완공되어 ‘동마루’라는 이름을 가진 구 여자기숙사는 블루미르홀의 완공 후 고시반 학생들의 기숙사 및 숙소로 이용되고 있다.[13]

[편집] 기타 지역

  • 청룡상 & 청룡연못
청룡상

중문에 위치한 청룡상과 청룡연못은 1968년 개교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9] 청룡상은 작은 용 7마리의 축복을 받으며 지구를 감싸고 승천하여 대기권 밖을 향한 우주에의 달관을 뜻하는 것으로 중앙대학교의 번영을 상징하고 있다.

  • 해방광장

학교의 정가운데 위치해 있고 주변에 서라벌홀, 중앙도서관, 학생회관 등이 둘러싸고 있다. 위치적 이점 때문에 학생들이 이곳에 와 휴식을 취하고 축제 때 공간활용하기에 편리하다.

  • 대운동장

제2공학관 뒷편에 위치해 있으며 1981년에 만들어졌다.

  • 자이언트구장

다목적관과 학생문화관 사이에 위치해 있으며 농구장과 족구장이 갖추어져 있다.

  • 중앙마루 및 중앙광장

중앙마루는 2011년 1월에 만들어져 청룡연못과 중앙광장을 잇는 계단으로 교양학관과 영신관 사이에 위치해 있다. 중앙광장 또한 2011년에 완공된 녹지공간으로 영신관과 R&D센터 사이에 위치해 있다.

[편집] 안성 캠퍼스

안성 캠퍼스는 경기 안성시 대덕면에 위치한 중앙대학교의 또 다른 캠퍼스이다. 1948년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가 중앙대학으로 승격된 이후 1979년 중앙대학의 제2캠퍼스로 설립되었다.

  • 예술대학 지역
안성캠퍼스 예술대학

예술대학 지역은 조형관, 공연영상관, 공예관, 조소관의 총 4개의 건물이 위치하고 있다. 예술대학은 문예, 조형, 공연, 영상, 디자인 등 각 장르가 망라된 10개 학과로 구성된 종합예술대학이다. 공연영상관은 사진전공, 무용전공 학생들이 사용하고 있으며, 조소관은 미술학부의 조소전공 학생들이 사용한다. 공예관은 디자인학부 공예학과 학생들의 실험실습실로 사용되며, 조형관은 한국화, 서양화, 공예, 산업디자인 전공 학생들이 사용하고 있다.[14] 이 4개의 건물에서 여러 학과들이 장르간 강의를 개방하는 교차교육은 물론, 멀티미디어 시설을 활용하는 입체교육체제를 지향하고 있다.

예술대학 지역에는 무대장치제작소와 외국어문화관, 교수연구관이 위치해 있다.[14]

  • 음악대학 지역
안성캠퍼스 영신음악당

음악대학 지역은 음악대학(제1관), 음악대학(제2관), 영신음악당의 총 3개의 건물이 위치하고 있다. 음악대학 건물은 작곡과, 성악과, 피아노과, 관현악과 학생들이 주로 사용하는 건물이며, 창작, 이론, 연주를 바탕으로 대학에서 충분한 실습을 가질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음악대학 옆으로는 교수회관 세 동이 위치해 있으며, 조금 떨어진 곳에는 생활과학관이 위치해 있다. 생활과학관은 현재 디자인학부 패션디자인전공, 실내환경 디자인전공, 사회과학대학의 가족복지전공이 사용하고 있다. 생활관의 옆에는 학생회관과 학생복지관이 자리하고 있다.[14]

  • 국악대학
안성캠퍼스 국악대학

국악대학은 영신음악당과 음악대학 사이 도로를 따라 ‘수상연못’쪽을 향해 걷다보면 연못에 이르기 전 왼편에 위치한 고풍스러운 건물이다. 우리나라 최초로 설립된 ‘민족음악대학’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외관에서부터 우리의 옛 정취를 느낄 수 있게 건축되었다. 널찍하게 자리잡고 있는 건물 중앙의 지붕은 우리 고유의 기와지붕 모습을 연상케 한다. 계단을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외관과는 대비되는 도회적인 느낌의 내부 구조로 이루어져있으며 국악대학의 모든 공간은 일반인들에게도 개방된다. 2층은 공연장인 ‘국악당’과 로비인 ‘덧마루’등으로 구성되어있으며 3층은 학생들의 개인 연습실이 있다.

  • 본관 및 중앙도서관

본관에는 대학본부와 산업창업경영대학원이 자리하고 있다. 중앙도서관은 1800여 석의 열람석과 50만 권의 장서와 비도서자료를 보유하고 있다. 중앙도서관 옆으로는 건설공학관이 있는데 현재는 교양학부에서 사용하고 있다. 또한 본관 뒷편에 위치한 수림체육관은 체육관을 비롯하여 체력단련실 등을 갖추고 있다.[14]

  • 원형관

원형관은 1985년에 준공된 8차교사동 건물로 현재는 경영경제대학, 자연과학대학, 사회과학대학에서 사용하고 있다.[14]

  • 수상무대
안성캠퍼스 수상무대

연못 위에는 부채꼴 모양의 ‘수상무대’가 마련돼 있어 야외공연장으로 활용된다. 연못가 주변에 잔디와 나무 벤치가 아름답게 어우러져 휴식을 취하기 좋으며, 안성캠퍼스 경관을 한층 돋보이게 하는 지역의 명소다.[14]

  • 기숙사

안성캠퍼스의 기숙사는 남자 전용기숙사는 예지동, 여자 전용기숙사는 명덕동이라는 명칭으로 불린다. 기숙사 주변으로 생활복지관과 학생후생관이 있으며, 대운동장, 테니스장, 골프장이 자리잡고 있다.[14]

  • 체육관

체육관에는 농구부 학생들이 이용하는 농구장이 있으며, 체육관의 앞,뒤로 축구장과 야구장이 위치해 있다.[14]

[편집] 의료원 및 학교

[편집] 의료원

중앙대학교 병원(흑석동)

중앙대학교 부속병원은 1968년 서울시 중구 필동에서 한국의과학연구소 부속성심병원으로 처음 시작되었다. 1971년 12월 28일, 중앙대학교 의과대학 부속 성심병원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그 후 1984년 7월 1일, 중앙대학교 부속용산병원의 개원으로 부속병원이 2개로 늘어났다. 필동의 부속병원은 2004년 12월 18일에 흑석동에 위치한 현재의 부속병원으로 옮겼고, 2005년 1월 18일에 흑석동에서 개원식을 갖고 중앙대학교병원이란 명칭으로 개원하였다. 중앙대학교 용산병원은 2011년 3월 25일에 진료를 마감하고 중앙대학교병원으로 이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15]

[편집] 부속학교

중앙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서울시 강남구 도곡동에 위치해 있다. 1934년에 조선직업강습학원으로 설립되어 1951년 낙양공업고등학교로 명칭을 변경하였고, 1961년의 낙양상업고등학교, 1962년의 서울명수대상업고등학교에 이어 1965년부터 학교법인 중앙문화학원으로 합병되면서 현재의 명칭을 사용하게 되었다. 1997년에는 중대부속여자고등학교와 통합하여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16]

중앙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중학교는 서울시 동작구 흑석동에 위치해 있다. 부속고등학교와 함께 1934년에 설립되어 1956년 낙양중학교로 개명되어 고등학교와 분리되었다. 그후 1965년에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으며, 1997년 중대부속여자중학교와 통합하였다.

중앙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초등학교 서울시 동작구 흑석동에 위치해 있다. 1964년 12월에 설립인가를 받아 1965년에 개교하였다. 1969년에 1회 졸업생을 배출하였고, 1996년부터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하였다.

중앙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유치원은 1916년 9월에 정동교회부설 중앙유치원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1922년에 유치사범과가 설치되고, 1928년에는 유치사범과가 중앙보육학교로 승격되었다. 광복 후 1946년에 중앙여자전문학교 부설유치원으로 명칭을 변경하였고, 1956년에 중앙대학교 부속유치원으로 명칭 변경하였다. 1965년부터 현재의 명칭을 사용하고 있으며 서울시 동작구 흑석동에 위치해 있다.

[편집] 주요 학생단체

[편집] 총학생회

  • 연중 학생회 주요 행사

- 대학별 신입생 예비학교 - 4.19 기념행사 - 스승의날 행사(5월 15일) - 농촌봉사활동(봄, 여름, 가을) - 개교기념 축전행사 - 학생회 신·구임원 간담회 - 신입생 환영행사 및 특강 - 중앙인 체육대회 - 환경운동 - 학생간부 수련회 - 기타행사

[편집] 언론단체

1957년 4월 12일 개국한 중앙대학교 교육방송국. 경제의 격변기 속에서 우리 사회와 대학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고민과 함께 개국된 UBS는 한국대학 방송의 선두에서 대학언론과 사회를 선도하고 진정한 대학문화의 창달과 지성인들의 인격향상을 위해 해써왔다. 이 시대 대학과 대학방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항상 모색하며 매년 수습요원 선발로 미래의 방송인을 양성하기 위해 힘쓰고 있으며 각종 교내 행사와 동아리 활동등에 협조함으로써 진정한 대학방송으로서의 기능을 다하고 있다.
1947년 9월1일에 ‘중대학보’라는 제호를 달고 최초의 대학신문으로써 대안언론의 문을 열었다. 1948년 한국 언론사상 최초로 순한글판 가로쓰기 편집체제 도입.1989 대학신문 최초로 주 2회 발행등의 대학신문의 역사를 꾀할 만한 시도들을 해나가고 있다.

2003년 한국대학언론 사상 최초의 공식방북취재 성사등 21세기 대학신문의 선구자로서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편집] 기타

  • 응원단
중앙대학교 응원단은 1970년대에 댄스모임으로 시작하여 1979년에 정식응원단으로 승인을 받고 응원단활동을 시작하였다. 중앙대학교 응원단의 이름은 HURRAH - C 이다. HURRAH -C 의 이름은 영어단어에서 "응원하다,환호하다" 라는 의미를 가진 HURRAH 와 중앙대학교의 영문이 니셜의 앞글자 C를 따서 중앙대를 응원한다는 의미를 가진 HURRAH - C가 탄생하게 되었다.
중앙대학교 홍보대사
중앙대학교 홍보대사 중앙사랑은, 1997년 9월, 국내 대학 최초로 창설된 학생 홍보대사이다. 매년 높은 지원율 기록하고 있으며, 평균 12:1의 경쟁을 통해 선발되는 중앙대학교의 대표 지성이 모인 곳이다. 각종 취재활동 및 의전활동 그리고 학교를 홍보할 만한 사업을 기획하여 진행하는 일을 하고,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만큼 그 전통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편집] 사건 및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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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총장 부적절 발언 사건

2009년 2월 23일, 박범훈 총장은 이명박정부 출범 1주년 기념 한나라당 초청 강연회에서 여제자에게 이날 강연 도중 마이크 앞에 선 여성 제자를 가리키며 "토종"이라고 소개하며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요렇게 생긴 토종이 애기 잘낳고 살림 잘하는 스타일이죠. 이제 음식도 바뀌고 해서 요즘엔 키가 큰데 이쪽이 토종이고, 우리 때와 음식이 달라 길쭉해지고 했는데 사실 (조그만 게) 감칠맛이 있습니다. 이렇게 조그만데 매력이 있고, 시간상 제가 자세하게 여러 가지 내용을 설명 못 드리겠는데….".[17]

한편, 중앙대학교 대학 본부에서는 "국악하는 사람들은 키 큰 사람이 없고 작은 사람, 토종 체형을 가진 사람의 소리가 감칠맛이 난다는 의미였다"고 해명하였다.[18]

[편집] 비판 교지 전량 회수 사건

2009년 11월 29일, 교지 《중앙문화》 58호 3000여부가 학교 측에 의해 전량 회수되었다. 학교 측이 문제삼은 부분은 특집 기고문 및 박범훈 총장에 대한 비판이 담긴 만화로, 기고문에는 구조조정과 관련된 비판이 담겨 있었다.

학교 측은 만화에 발행인인 총장을 조롱한 내용이 포함돼 있었으며, 원고가 늦어 미리 보지 못한 특집 기고 기사는 절차상 문제가 있었다면서, 재배포 여부는 알아서 결정하되, 추후 학교가 문제 삼을 경우 모든 책임을 발간처 측에서 져야 한다고 밝혔다.[19]

대학 본부는 사건 3개월 뒤인 2010년 1월, 《중앙문화》의 발간처인 교지편집부 예산의 전액삭감을 통보하여, 언론 탄압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20]

[편집] 퇴학생 미행감시 사건

2010년 7월 24일 오후, 서울특별시 동대문 두산타워 주변에서 두산중공업 소속 직원이 중앙대 학생들과 두산중공업 해고노동자들이 집회하는 장면을 몰래 촬영하다 학생들에게 붙잡혔는데, 중앙대에서 퇴학당한 학생의 퇴학생의 이날 행적과 동선, 다음날 일정 등 기록한 A4용지 3장 분량 문건을 소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독어독문학과에 재학 중이던 퇴학생은 두산그룹이 중앙대를 인수한 뒤 학과 통폐합 및 구조조정을 본격화하자, 이에 항의하여 학내 활동을 벌이다 퇴학 처분을 받았다.

이후 중앙대 총학생회 측은 학생사찰과 관련, 7월 27일에 두산그룹과 학교법인을 고소하였다.[21]

[편집] 졸업생 학생회실 방화 사건

2007년 4월 27일, 본교 졸업생이 문과대 7층에 있는 일어일문학과 학생회실에 불을 질러 내부 33㎡와 집기 등을 모두 태워, 소방서 추산 500만 원 상당의 재산 피해를 냈다. [22]

[편집] 서울, 안성 캠퍼스 통합

2011년 8월 18일, 대한민국 교육과학기술부는 중앙대학교가 제출한 캠퍼스 통합 운영 신청을 최종 승인했다.[23] 이에 따라, 기존에 별개의 대학으로 구분되던 서울 캠퍼스와 안성 캠퍼스가 하나의 동일한 대학으로 법률적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편집] 적십자간호대학 통합

2011년 8월 18일, 중앙대학교와 적십자간호대학의 법인 합병 및 대학 통폐합 신청이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인가를 받아 '중앙대 적십자간호대학'이라는 단과대학으로 통합되었다.[24]

[편집] 인근 교통

[편집] 주석

  1. 신문방송학과 출신 언론사 현직 간부 중앙대 "최다" - 중앙일보, 2002.09.29
  2. 특집기획 - 지표로 풀어보는 대학순위 14:졸업생의 사회진출 현황(광고인배출 순위), 한국대학신문, 1997.03.01
  3. 중앙유치원의 설립. 중앙대학교. www.cau.ac.kr. 2011년 8월 7일에 확인.
  4. 전문교육기관으로 발전하는 중앙. 중앙대학교. www.cau.ac.kr. 2011년 8월 7일에 확인.
  5. 任永信 교장과 중앙의 꿈. 중앙대학교. www.cau.ac.kr. 2011년 8월 7일에 확인.
  6. 발전과 탄압의 시련. 중앙대학교. www.cau.ac.kr. 2011년 8월 7일에 확인.
  7. 해방과 중앙의 역할. 중앙대학교. www.cau.ac.kr. 2011년 8월 7일에 확인.
  8. 종합대학으로 승격. 중앙대학교. www.cau.ac.kr. 2011년 8월 7일에 확인.
  9. 종합대학의 내실화. 중앙대학교. www.cau.ac.kr. 2011년 8월 7일에 확인.
  10. 미래에 대한 포석. 중앙대학교. www.cau.ac.kr. 2011년 8월 7일에 확인.
  11. 제2캠퍼스의 건설과 확장의 시련기. 중앙대학교. www.cau.ac.kr. 2011년 8월 7일에 확인.
  12. 중앙도서관 소개.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 중앙도서관. 2011년 8월 7일에 확인.
  13.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 캠퍼스맵
  14. 중앙대학교 안성캠퍼스 캠퍼스맵
  15. 중앙대학교의료원 역사. 중앙대학교의료원. 2011년 8월 7일에 확인.
  16. 중앙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학교소개-학교연혁. 중앙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2011년 8월 7일에 확인.
  17. 중대 총장 "조그만 토종이 감칠맛 있어"”- 오마이뉴스, 2009.2.23
  18. 女제자에게 “조그만 게 감칠맛 있다””- - 경향신문, 2009.2.26
  19. 비판 교지 회수 ‘시끌’… “학내 민주주의 위기”- 경향신문, 2009.11.30
  20. 교지발간 놓고 갈등”- 한국대학신문, 2010.04.26
  21. 총학 `사찰의혹' 두산·학교법인 고소”- 연합뉴스, 2010.07.27
  22. “중앙대 졸업생 모교 학생회실에 방화”- 조선일보, 2007.04.27
  23. http://www.cs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51186
  24. 중앙대-적십자간호대학 통합《뉴시스》2011년 8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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