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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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대표 황우여
최고위원 이혜훈
심재철
정우택
유기준
(이상 선출직 득표 순)
한기호
유수택
(이상 지명직)
원내대표 최경환
표어 국민이 하나되는 새로운 세상
창당 1997년 11월 21일
(한나라당 창당)
2012년 2월 13일
(새누리당으로 개명)
중앙 당사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70길 18, 한양빌딩
국가 재정 지원
(2010년)
28,980,000,000 원
당원  (2010년) 2,090,976명
293,470명(당비 납부)
이념/정치노선 자유 민주주의
보수주의
우익
원내교섭단체 새누리당
국제조직 국제민주연합
상징색 빨강
의회의석수
154 / 300
광역지방의회
의석수
352 / 762
기초지방의회
의석수
1,358 / 2,888
광역자치단체장
8 / 17
기초자치단체장
89 / 228
웹사이트
새누리당
중앙당사 모습
대한민국의 시계열적 정당 지도

새누리당(영어: Saenuri Party 또는 New Frontier Party)[1]1997년 11월 21일신한국당민주당이 합당하여 만들어진 대한민국의 정당이다. 창당 이후 2012년 2월 12일까지 한나라당(영어: Hannara Party 또는 Grand National Party[2])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2012년 1월 26일, 비상대책위원회는 한나라당의 이름을 개정하기로 하였으며, 새 당명 국민 공모 이후 비상대책위원회, 의원총회, 상임전국위원회, 전국위원회를 거쳐 2012년 2월 13일 새누리당으로 개명하였다.[3][4] '새누리'는 새로운의 '새'와 세상의 순우리말인 '누리'를 붙인 뜻으로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나라를 뜻한다. 새누리당의 상징빨강이다.

목차

역사 [편집]

민주자유당 [편집]

1990년 민주정의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3당 합당으로 탄생한 민주자유당은 의석수가 개헌선인 200석을 넘는 초거대 여당이 되었으며, 이를 통해 사실상 절대 권력을 쥐게 되었다. 민주자유당은 양심수들과 사회운동을 탄압하였고 학교에 경찰을 투입시키는 등 강압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에 국민들의 실망과 분노가 커져 1992년 총선에서는 149석을 얻어 과반 의석 확보에도 실패하였지만 같은 해 대선에서 김영삼이 당선되어 재집권에 성공하였다. 김영삼은 집권한 이후 정경유착을 해소하고자 했으며, 과거사 청산을 통해 조선총독부 철거 및 하나회 숙청 등의 정책을 펼쳤다. 이후 5공의 색채가 강한 민자당을 해체한 뒤 신한국당을 출범시켰다.

신한국당 [편집]

신한국당은 여러가지 불명예를 안기게 되었다. 이들은 무소속을 영입하여 의석 수를 더 올렸지만, 1996년 총선에서 또다시 의석을 잃게 되었다. 게다가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이들은 위기에 몰리게 된다.

IMF 구제금융사건으로 표현되는 경제 위기로 문민정부의 지지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신한국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이회창은 두 아들에 대한 병역기피 의혹에 휘말리고 신한국당에서 대선 후보 경쟁을 벌였던 이인제가 대선 후보 경선 결과에 불복하고 국민신당을 창당하고 대선에 독자 출마하면서 위기에 봉착해 있었다. 또한 김대중김종필, 박태준 등과 연대하여 이른바 'DJP 연합'을 구축하면서 충청도의 지지가 김대중으로 몰리게 되었다. 이회창은 김영삼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위해 김영삼을 탈당시키고 신한국당을 통합민주당과 합당시켜 1997년 11월 21일 한나라당을 창당하였다.

한나라당 [편집]

1997년 11월 21일 신한국당과 통합민주당의 합당으로 탄생한 한나라당은 이회창을 제15대 대선 후보로 선출하였으나 이회창이 12월 18일 대선에서 낙선하여 한나라당은 야당으로 몰락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2000년 총선에서 승리하였고 2002년 제16대 대선 후보로 이회창을 선출하였지만 이회창은 2002년 대선에서도 새천년민주당의 후보 노무현에게 패배하며 집권에 실패한다. 게다가 노무현 탄핵 등의 여파로 국민들의 실망감이 높아져, 2004년에는 원내 제2당으로 밀려나는 비운을 겪게 되었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의 지지율은 이후 추락하였고, 한나라당은 재보선과 지방선거에서 압승하였다.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의 당선으로 10년 만에 재집권에 성공하여, 다시 여당이 되었다. 이어 치러진 총선에서도 압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광우병 소고기 등의 논란으로 시위가 터진 데 이어 노무현 자살의 여파로 지지율이 떨어졌다.

새누리당 [편집]

2011년 10.26 재보궐선거에서 패배하자 한나라당이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을 중심으로 재편되었으며, 2012년 2월 13일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바꾸었다. 이로써 1997년 이후 15년간 존속해오던 한나라당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한편 2012년 총선에서 패배가 예상되었으나 152석을 얻어 과반 의석 확보에 성공하며 사실상 승리하였다. 이후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가 당선되어 여당의 지위를 유지하게 되었다. 2012년 11월 선진통일당과 합당함으로써 2000년대 중반 이후 분열되었던 보수 정당들이 새누리당으로 모두 합당되어 분열이 종식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대한민국의 유일한 보수 정당이자 여당이다. 이명박1987년 이후 대선을 앞두고 당적을 버리지 않은 유일한 대통령이 되었다.

약력 [편집]

역대 지도부 [편집]

당대표 [편집]

대수 역대 대표 직함 임기
1 조순 총재 1997년 11월 21일 ~ 1998년 8월 5일
(임시) 이기택 총재권한대행 1998년 8월 5일 ~ 1998년 8월 31일
2 이회창 총재 1998년 8월 31일 ~ 2000년 5월 23일
(임시) 강창성 총재권한대행 2000년 5월 23일 ~ 2000년 5월 31일
3 이회창 총재 2000년 5월 31일 ~ 2002년 4월 2일
(임시) 박관용 총재권한대행 2002년 4월 2일 ~ 2002년 5월 14일
4 서청원 대표최고위원 2002년 5월 14일 ~ 2003년 1월 30일
(임시) 박희태 대표권한대행 2003년 1월 30일 ~ 2003년 5월 13일
5 박희태 대표 2003년 5월 13일 ~ 2003년 6월 26일
6 최병렬 대표 2003년 6월 26일 ~ 2004년 3월 23일
7 박근혜 대표 2004년 3월 23일 ~ 2004년 7월 5일
(임시) 김덕룡 대표권한대행 2004년 7월 5일 ~ 2004년 7월 19일
8 박근혜 대표최고위원 2004년 7월 19일 ~ 2006년 6월 16일
9 김영선 대표최고위원 2006년 6월 16일 ~ 2006년 7월 11일
10 강재섭 대표최고위원 2006년 7월 11일 ~ 2008년 7월 3일
11 박희태 대표최고위원 2008년 7월 3일 ~ 2009년 9월 7일
12 정몽준 대표최고위원 2009년 9월 7일 ~ 2010년 6월 3일
(임시) 김무성 비상대책위원장 2010년 6월 4일 ~ 2010년 7월 14일
13 안상수 대표최고위원 2010년 7월 14일 ~ 2011년 5월 8일
(임시) 황우여 대표권한대행 2011년 5월 9일 ~ 2011년 7월 4일
14 홍준표 대표최고위원 2011년 7월 4일 ~ 2011년 12월 9일
(임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2011년 12월 19일 ~ 2012년 5월 15일
15 황우여 대표최고위원 2012년 5월 15일 ~ 현재

원내대표 [편집]

대수 역대 원내대표 임기
이상득
하순봉
이부영
정창화
이재오
이규택
홍사덕
김덕룡
강재섭
이재오
김형오
안상수
홍준표
안상수
김무성
황우여
이한구
최경환

최고위원 [편집]

새누리당은 집단지도체제의 정당으로서, 대표최고위원과 선출직 최고위원, 지명직 최고위원, 당연직 최고위원(원내대표, 정책위의장)으로 지도부를 구성한다. 대표최고위원과 선출직 최고위원은 전당대회에서 대의원과 당원, 일반국민들의 투표에 의해 득표순으로 선출되며, 선출된 최고위원들은 최고위원회의에서 지명직 최고위원과 사무총장, 대변인 등의 당직을 임명한다.

  • 박희태 대표는 2009년 10.28 재보선 출마를 위해 2009년 9월 사퇴하였고, 2008년 전당대회에서 2위를 득표한 정몽준 최고위원이 대표직을 승계하게 되었다. 그러나, 2010년 6.2 지방선거가 당의 패배로 끝나자, 정몽준 대표를 비롯한 최고위원 전원이 6월 3일 총사퇴하였으며, 약 1개월 동안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한나라당이 운영되었다.
  • 2010년 7월 14일 한나라당 제11차 전당대회에서, 대표최고위원으로 안상수, 최고위원으로 홍준표·나경원·정두언·서병수 의원이 선출되었으나, 2011년 4.27 재보궐 선거가 패배로 끝나면서, 대표최고위원을 비롯한 최고위원 전원이 2011년 5월 8일 총사퇴하였고, 약 2개월동안 원내대표 체제로 한나라당이 운영되었다.
  • 2011년 7월 4일 한나라당 제12차 전당대회에서, 대표최고위원으로 전직 지도부 중 1명인 홍준표 의원이 선출되었고, 최고위원으로 유승민·나경원·원희룡·남경필 의원이 선출되었다. 최고위원 당선자 4명 중 나경원·원희룡 의원 역시 전직 지도부였다. 그러나, 2011년 10.26 재보궐선거 서울특별시장 선거에서 한나라당 최고위원인 나경원 후보가 박원순 야권단일후보에게 패하자, 대표최고위원을 비롯한 최고위원 전원이 2011년 12월 9일 총사퇴하였고, 2011년 12월 19일부터 2012년 5월 15일 전당대회까지 약 5개월동안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운영되었다.

의원 총회 [편집]

새누리당 의원 총회는 새누리당의 원내단체로 두 개의 산하 위원회를 두고 있다. 원내대책위원회는 원내대표가 책임을 맡고 있으며 현재 이한구 의원이다. 정책위원회는 당 강령 및 전국규모 선거의 정책공약 등 주요정책을 수립한다. 현재 진영 의원이 정책위의장을 맡고 있다.

사무처 [편집]

최고위원회의의 하부 기구로 사무처는 당무집행기구, 원내대책위원회 및 정책위원회의 지원의 업무를 수행한다. 사무총장이 관할하는 중앙사무처는 당의 조직관리, 재정, 행정지원, 인사를 총괄하며, 시,도당 사무처를 관장한다. 현재 서병수 의원이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사무처에는 대표최고위원이 통솔하는 전략기획본부가 있어 주요정치현안 및 전략을 관장한다. 홍보기획본부는 당의 이념과 정강, 정책 및 당 활동 등의 홍보를 관장한다.

중앙당사는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14-31번지 한양빌딩에 있다.

기타 [편집]

야당 시절 [편집]

이회창 후보의 대통령 선거 낙선으로 야당으로 전락하였으며, 최병렬 대표가 2003년 6·26 전당 대회에서 ‘포스트 이회창’의 첫 대표로 선출되어 전성기를 맞았으나 '차떼기'논란과 탄핵 역풍을 이겨내지 못하고 퇴임하였다. 한나라당은 제17대 총선 참패 위기에 처하였으나 박근혜 신임 대표의 활약으로 121석을 확보하여 거대 야당의 영향력을 유지하였다.[5] 박근혜 대표는 16대 대선 이후 불거진 이회창 후보 진영의 800억원대 차떼기 오명을 씻기 위해 천막 당사를 세우고 당을 쇄신하는 ‘청소부’ 역할을 맡았다.[6]2005년 7월 28일 불법 대선 자금과 천안 연수원을 국가에 헌납하였다.[7] 이후 참여정부의 4대 법안을 반대하는 대표적인 보수 야당의 역할을 하였고,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제안한 대연정을 거부했다. 2003년 11월 30일 최병렬 대표는 '신행정수도 이전' 통과를 약속했고 당론으로 확정되었다. 그러나 박근혜 대표는 2004년 6월 지자체 재보선 승리 뒤, 행정수도 이전에 반대로 돌아섰고 헌법재판소의 신행정수도특별법 위헌 판결이 나오자 열린우리당과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특별법을 합의하여 가결시켰다.[8]

친이, 친박계 갈등 [편집]

당의 경선중 박근혜 측에서 BBK 의혹을 제기하면서부터 친이(親李, 친이명박) 진영과 친박(親朴, 친박근혜) 진영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박근혜 측은 결과에 승복해 갈등은 사라지는 듯하다가, 본격적으로 갈등이 심화되어 집단탈당사태가 일어난건 공천파동에서였다. 이후 친박연대가 창당되면서 미디어법 등 몇 가지 정책들에서 친이계와 친박계의 미묘한 의견 차이는 있어왔으나, 2010년 1월 이명박 대통령이 세종시 사수안을 번복하고 제안한 세종시 수정안 방침에 대해 친박연대를 비롯한 당의 주요 친박계 의원들이 반발하면서 그 갈등이 더욱 커지고 있다. 박근혜는 원안 추진을 재차 강조하고 있어 화합의 가능성이 낮아지고 있으며 심지어 분당 가능성까지 나오고 있다.[9] 이전에 홍준표는 박근혜의 세종시 원안 추진론 발언에 대해 '탈당' 이야기까지 나온 상황이며,[10] 정몽준이 당론을 변경해야 한다는 말에 박근혜가 "국민의 신뢰를 잃은 것에 대해 책임지실 문제"라며 정몽준 책임론을 들고나왔으며, 정운찬 국무총리를 비롯한 정부 고위직 관계자들까지 박근혜를 압박하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11][12] 이러한 갈등 속에서 야당들이 추진했던 정운찬 총리 해임안을 여당 내 친박계 의원들이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히자 친이계 의원들은 "총리 해임안에 찬성하는 것은 분당하자는 것" 이라며 계파간의 대립이 극화되었다.[13] 6월 29일 세종시와 관련해서 친박계 의원들을 비롯하여 야당의원들이 반대하는 가운데 수정안이 부결되었다. 이 때문에 친이, 친박간의 갈등이 당분간 해소되기 어렵다는 관측들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2010년 8월,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가 전격 회동하면서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양측은 우호적인 분위기를 유지하다가 2011년에 들어서면서 친이명박계가 급속히 몰락하면서 당 중심이 친박근혜계로 이동하였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주요 선거 기록 [편집]

역대 대선 결과 [편집]

대수 후보자 득표율 득표수 결과 당락
15대 이회창
38.7%
9,935,718표 2위 낙선
16대 이회창
46.6%
11,443,297표 2위 낙선
17대 이명박
48.7%
11,492,389표 1위 당선
18대 박근혜
51.6%
15,773,128표 1위 당선

역대 총선 결과 [편집]

실시년도 선거 국회정원 당선자 현황
(지역구/비례대표)
득표율
2000년 16대 총선 273(227/46) 133 (112/21)
39%
2004년 17대 총선 299(243/56) 121(100/21)
35.7%
2008년 18대 총선 299(245/54) 153(131/22)
37.5%
2012년 19대 총선 300(246/54) 152(127/25)
42.8%

역대 지방선거 결과 [편집]

실시년도 선거 광역자치단체장 당선자 현황 기초자치단체장 당선자 현황 광역자치의회의원 당선자 현황 기초자치의회의원 당선자 현황
당선자 수 당선비율 당선자 수 당선비율 당선자 수 당선비율 당선자 수 당선비율
1998년 2회 6/16
38%
74/232
32%
224/616
36%
2002년 3회 11/16
69%
136/227
60%
467/682
69%
2006년 4회 12/16
75%
155/230
67%
557/733
76%
1621/2888
56%
2010년 5회 6/16
38%
82/228
36%
287/762
38%
1247/2888
43%

비판 [편집]

  • 정체성: 새누리당의 공약이 포퓰리즘이 아니냐는 비판이 있다.[14] 당은 무상급식을 야당의 포퓰리즘적 정책이라며 비난해 왔으나 2010년 6월 2일에 치러질 지방선거를 앞두게되자 제한적 무상급식 확대 방침을 밝혀 포퓰리즘 논란이 일고 있다. 2010년부터 서울시를 중심으로 제기된 무상급식 논란에 대해서 당은 오세훈이 추진하는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를 공식 지원하기로 하였으나[15] 2011년 8월 0세 무상보육 정책을 들고 나오면서 민주당의 복지정책과 무상급식에는 반대하면서 다른 무상정책은 추진하는 정책적 모순점에 대한 지적이 제기됐다.[16][17] 민주당 박주선 최고위원은 "3조원이 필요한 4세까지의 영유아 보육에 대한 무상보육은 세금폭탄이 아니고, 서울시에서 부담해야하는 700억원의 초중학교 무상급식 비용은 세금폭탄으로 돌아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라고 비판했다.[18] 또한 민주당이 내놓은 반값 등록금 정책에 대해서 그동안 반대해왔던 당시 한나라당은 황우여가 원내대표에 당선된 이후로 긍정적인 쪽으로 급격히 정책을 선회한것도 보수주의자들의 비판의 대상이 되고있다.[19] 2009년 7월 21일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는 당시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수정안 내용과 관련, “한나라당은 정책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20]
  • 뇌물 수수 사건들: 2002년 16대 대선 당시 이회창 후보가 LG로부터 150여억 원가량의 뇌물을 현금으로 트럭째 받은 것을 비롯, 대통령 선거운동에 필요한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삼성, SK, 현대자동차, 롯데 등의 대기업으로부터 각 100억원씩 등 총 823억 원의 뇌물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21]. 그 때문에 당에 '차떼기정당'이라는 명칭이 씌워졌다. 2006년 지방선거에는 공천 후보들을 대상으로 한 공천 뇌물 파문으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22] 2004년 2월 4일 최병렬 당 대표는 "불법대선자금에 대해서는 한나라당 당사와 천안 연수원 등 당의 재산을 팔아서 국민여러분께 돌려드리겠습니다."라며 사과했다. 2004년 10월 26일에는 국무총리였던 이해찬이 국회에서 "한나라당은 차떼기당"이라는 발언을 해 국회 파행이 빚어지기도 하였다.[23] 2010년 지방선거에서도 당의 공천을 둘러싼 시비는 끊이지 않았고,[24], 2012년 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당지도부가 뇌물을 받고 비례대표를 공천해 해당 후보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25]
  • 여론조작 당원 공천: 2010년 2월 울산매일신문과 추진했던 울산지역에 대한 여론조사 과정에서 뇌물을 수수하며 자당에 유리하도록 여론조사를 조작하다 적발되었으며 그 중 당과 관계된 사람은 9명으로 이들은 모두 현역 단체장으로서 2010년 6월 지방선거에도 출마할 예정이었다.[26] 이전에 이명박은 지방선거에서 부정부패를 척결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당시 한나라당은 비리 사실이 폭로된 단체장들을 공천해서 더욱 강한 비판들이 제기되었고,[27] 민주당은 '울산 전지역 공천을 포기하라'고 공세를 펼쳤다.[26]
  • 인터넷 여론 조작: 2007년 대선후보를 선출하는 당시 한나라당 경선에서 대학생을 고용해 특정 후보에 유리한 댓글을 작성하도록 한 한나라당 당원[28]이 실형을 선고받기도 하였다.[29]
당시 한나라당 측에서 댓글 알바를 고용해 여론을 유리한 쪽으로 조작하려 한다는 비판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민주당 이석현 의원은 "아고라의 일부 IP를 조사해 보니 한나라당이 위촉한 국민소통위원이었다."라고 주장하였다.[30][31] 이들은 아고라에서 욕설댓글을 집단적으로 작성하여 여론을 조작하려 한다고 이 의원은 지적했다.[32] 한나라당과 국민소통위는 "돈을 받고 고용된 것이 아니고 자발적으로 활동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알바라고 할 수 없다."라고 주장하였다.[33][34]
  •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촛불집회에 대한 태도: 재협상한 FTA를 서둘러 통과시킨 새누리당은, 2008년 촛불집회 당시 한나라당은 국민의 민심을 수용한다며 반성한다던 모습에서 2010년에는 촛불 시위를 대국민 사기극으로 규정하였다. 이에 대한 일부 언론들과 누리꾼들의 비판이 거세게 일기도 하였다.[35] 미디어오늘은 "한나라당이 역풍을 자초하였다"고 보도하였다.[36] 노영민 민주당 대변인은 "당시 대통령이 사과하고 정부가 재협정의 가능성을 열어놓음으로써 정부 또한 촛불시위의 정당성을 인정해놓고 이제 와서 딴소리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비판했다.[37]
  • 성추행: 2006년 12월 17일 당시 한나라당 충남 당진군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 정석래는 서울특별시 강남에서 강간미수 혐의로 구속되었다.[38] 사건 직후 한나라당에서‘원외 위원장의 강간 미수에 대해 사과 논평 않겠다' 는 발언이 나와 논란이 일었다.[39] 한나라당 소속의 의원들은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한 경우도 있었다. 대표적인 사건으로 2007년 1월,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가 중앙일간지의 원색적인 연재소설 주인공인 '조철봉'을 언급하며 "조철봉이 요즘 왜 안 해? 하루에 세 번 하더니 한 번은 해 줘야지. 너무 안 하면 철봉이 아니라 낙지야 낙지"라고 한 발언도 논란이 된 바 있으며,[40] 최연희의 여기자 성추행 사건, 이명박의 '마사지걸' 발언, 박계동의 술집 여종업원 성추행,[41]2010년 7월에는 대학생들과의 뒤풀이 모임에서 벌어진 강용석의 성희롱 발언 등 성추행 파문이 끊이지 않았다. 이 사건들은 개인 의원들의 실수이지만, 한나라당에서 이러한 사건이 자꾸 터지면서 '성나라당', '성희롱당'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언급되며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42][43]
  • 날치기 사건들: 새누리당은 2008년 총선 이후로 원내 과반석을 차지하였으며 이명박의 당선으로 집권여당이 되었다. 원내 과반수의 찬성이 있으면 법안은 통과될 수 있기 때문에 당시 새누리당은 이를 악용해 각종 법안들을 야당과 협의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처리했다. 날치기는 주로 새해 예산안 처리 혹은 서민 생계 등과 관련되어 야당이 반대하였던 법안 등에서 많이 나타났는데 이러한 예산안의 날치기 처리는 정상적인 검토, 심사가 되지 않기 때문에 부실 예산안이라는 비판도 뒤따른다.[44] 새해 예산안은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후로 3년 연속 새누리당이 단독으로 처리하거나, 야당과의 합의 없이 단독으로 통과되었고 미디어법과 재협상한 한미FTA, 최저임금, 4대강 관련 예산안 등도 같은 방법으로 새누리당에 의해 날치기되었다. 이에 대해 야당과 일부 언론들은 새누리당이 날치기로 처리했다고 비판했다.[45][46] 2011년 예산안은 박희태 국회의장이 질서유지권을 발동하여 국회 경호원들의 호위 속에 처리되었다.[47] 날치기는 물리적 충돌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국민들이 국회 전반에 대해 불신을 갖게하는 계기라는 지적도 제기된다.[48] 결국 예산안 처리에서 새누리당이 약속했던 것과 다르게 처리된것이 많았으며 이에 대해 고흥길 정책위의장이 사퇴하기도했다.[49]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았고, 12월 28일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 야당들은 집회를 갖고 날치기 7적을 규정하며 사퇴를 요구했다.[50]
  • 돈봉투 사건: 고승덕 국회의원은 2008년 전당대회 당시 박희태 후보가 돈봉투를 살포한 사실을 폭로하였다. 돈봉투는 고승덕 의원 외에도 다른 의원들에게 광범위하게 살포되었으며, 박희태 국회의장 전 비서 고명진씨가 당시 캠프 상황실장인 김효재 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에게 돈봉투를 진술하였다는 논란이 거듭되었다. 논란이 거듭되자 부인하던 박희태 국회의장과 김효재 대통령수석비서관은 국회의장과 대통령수석비서관에서 결국 사퇴하였고, 검찰에 불구속 기소되었다. 이후 고승덕은 새누리당 공천을 받지 못하였다.[51] 이후 박희태는 이명박에 의하여 특별사면되었다.[52]
  • 불법 선거운동: 2012년 12월에 이뤄질 18대 대선 과정에서 새누리당이 불법 선거운동 사무실을 차려 정직원들을 고용하여 인터넷으로 선거운동을 한 사실이 KBS와 선거관리위원회에 적발되어 수사를 받았다. 선관위는 사무실을 수색한 후 검찰에 수사 의뢰를 하였다. 정세균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이보다 더한 박근혜 후보측의 불법 선거운동 증거가 어디 있겠는가"라며 비판하였다.[53]

같이 보기 [편집]

주석 [편집]

  1. 새누리당, 영문 표기 'Saenuri Party' 'New Frontier Party'(뉴스1). 새누리당을 영어로 직역하면 New World Party가 돼야 할 것이나, 영어명은 New Frontier Party로 정해졌다. 이 기사에 따르면 중국어 표기는 新国家党(정체: 新國家黨, 외래어 표기법: 신궈자당, 기사 본문의 발음 표기: 신궈지아당, 한국어 한자음: 신국가당), 일본어 표기는 セヌリ党(외래어 표기법: 세누리토)이다. 그러나 중화권 언론에서는 새누리당을 직역한 新世界党(정체: 新世界黨, 외래어 표기법: 신스제당, 한국어 한자음: 신세계당)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2. 새누리당, 영문 표기 'Saenuri Party' 'New Frontier Party'(뉴스1).
  3. 선관위 공고일은 2012년 2월 14일이다.
  4. 새누리, 당명ㆍ정강정책 확정..`박근혜당' 완성
  5. mid=sec&sid1=001&oid=022&aid=0000071934&
  6. '글로벌 석간 종합일간지' 아시아투데이
  7. mid=tv&oid=055&aid=0000050358 한나라당, 천안 연수원 국가 헌납
  8. 운명의 이력서: Save Internet 뉴데일리
  9. 이민기 기자. “한나라, '두나라 분당' 수순 밟나”, 《프론티어타임스》, 2010년 1월 22일 작성. 2010년 1월 22일 확인.
  10. 김동현 기자. “홍준표, 박근혜 겨냥 "탈당하고 당 만들어야"”, 《민중의소리》, 2010년 1월 19일 작성. 2010년 1월 22일 확인.
  11. 박영순 기자. “박근혜, “당론 바꿔 신뢰 잃은 건 鄭대표 책임””, 《포커스신문》, 2010년 1월 19일 작성. 2010년 1월 22일 확인.
  12. 정효식 기자. “박근혜 비판 자제하던 정운찬 “공격 앞으로””, 《중앙일보》, 2010년 2월 5일 작성. 2010년 2월 5일 확인.
  13. 김수진 기자. “정운찬, 박근혜 공격 파장‥총리 인책론 확산”, 《MBC》, 2010년 2월 5일 작성. 2010년 2월 5일 확인.
  14. 중도실용주의 포퓰리즘 변질 경계해야한나라당의 진짜 대선 징크스
  15. 한나라, 무상급식 주민투표 독려운동 본격화 한나라당 2011년 8월
  16. 무상보육 한다면서 무상급식은 왜 반대?” 딜레마 빠진 한나라당 헤럴드경제 2011년 8월
  17. 〈사설〉돈이 하늘에서 떨어지나 … 한심한 선거판 선심 경쟁 (중앙). 2010년 4월 20일에 확인.
  18. 한나라 ‘무상보육’, 아기들 밥은 돈 내고 먹어라? 미디어오늘 2011년 8월
  19. 보수층 절반 이상 한나라당에 등 돌렸다 조선일보 2011년 7월
  20. 고일환 기자. “이회창 한나라당 정체성 분명히 해야”, 《연합뉴스》, 2009년 7월 21일 작성. 2009년 7월 24일 확인.
  21. http://www.poli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483
  22. donga.com[뉴스]-昌측 823억-盧측 120억 불법모금… ‘차떼기’ 떠들썩
  23. 시사1번지 폴리뉴스
  24. 임형섭 기자. “검찰, 거제 '돈공천 의혹' 관련자 계좌추적”, 《연합뉴스》, 2010년 5월 25일 작성. 2010년 5월 26일 확인.
  25.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64662&PAGE_CD=N0001&CMPT_CD=M0016
  26. 김동현 기자. “MJ의 울산, '한나라 여론조사 조작' 파문에 휘청”, 《뷰스앤뉴스》, 2010년 3월 9일 작성. 2010년 4월 20일 확인.
  27. 조선영 기자. “한나라당, 금품여론조작 후보 공천 '비난 후폭풍'”, 《울산CBS》, 2010년 4월 20일 작성. 2010년 4월 21일 확인.
  28. 정영일 기자. “'알바' 고용 조직적 댓글 與당원 법정구속”, 《머니투데이》, 2008년 4월 27일 작성. 2009년 12월 30일 확인.
  29. 대학생 고용해 대량 댓글 선거운동원 실형”, 《KBS》, 2008년 4월 28일 작성. 2009년 9월 16일 확인.
  30. 이석현, "아고라에 여당 '알바' 침투"”, 《YTN》, 2009년 2월 12일 작성. 2009년 9월 16일 확인.
  31. 이준기 기자. “이석현 "한나라, 아고라에 수백명의 '알바' 투입"”, 《뷰스앤뉴스》, 2009년 2월 11일 작성. 2009년 12월 28일 확인.
  32. 손주영 기자. ““정부여당 토론의 꽃밭에 재 뿌리고 있다””, 《브레이크뉴스》, 2009년 3월 4일 작성. 2009년 12월 31일 확인.
  33. 김현 기자. “정두언 "돈 안 받는 알바가 어딨나"”, 《데일리안》, 2009년 1월 6일 작성. 2009년 12월 31일 확인.
  34. 국민소통위 '알바'관련 성명서 보도자료
  35. 김광호 기자. ““촛불민심 수용” “국정 쇄신” 외쳤던 한나라 …”, 《경향신문》, 2010년 5월 13일 작성. 2010년 5월 13일 확인.
  36. 김상만 기자. “청와대-조선일보 '촛불 반성', 역풍 자초”, 《미디어오늘》, 2010년 5월 13일 작성. 2010년 5월 13일 확인.
  37. 조현우 기자. ““2년 전엔 사과하더니” MB ‘촛불 반성’ 발언 파문 확산”, 《쿠키뉴스》, 2010년 5월 11일 작성. 2010년 5월 13일 확인.
  38. 성폭행 미수 한나라당 간부 구속
  39. 한나라당, ‘원외위원장 강간 미수에 대해 사과 논평 않겠다’
  40. 강용석 파문, `性나라당` 오명 벗으려면 중앙일보 2010년 7월 20일
  41. 선일보가 전한 강용석 '성희롱 의혹' 실체 미디어오늘 2010년 7월 21일
  42. MB '마사지걸' 발언부터 강용석 "너만 쳐다보더라"..."역시 성나라당" 민중의 소리 2010년 7월 20일
  43. 한나라당을 괜히 ‘성희롱 정당’이라 하겠는가 경향신문 2010년 7월 20일
  44. 국회 예산안 심사, 3년째 부실 졸속 처리 mbc 2010년 12월 8일
  45. 미디어법 날치기 1년, 재입법이 근본처방이다 경향신문 2010년 7월 21일
  46. 민주 "'4대강예산' 날치기처리, 원천무효" 머니투데이 2009년 12월 8일
  47. 박희태 국회의장, 국회 질서유지권 발동 경향신문 2010년 12월 8일
  48. 예산안 여당 단독처리…날치기 통과에 '몸싸움' sbs 2010년 12월 9일
  49. 사과, 사과, 사퇴…' 고개숙인 한나라당 노컷뉴스 2010년 12월 13일
  50. 서민예산 몽땅 도둑질...날치기 7적 물러나라 오마이뉴스 2010년 12월 29일
  51. “고승덕을 어찌할꼬”
  52. http://www.joseilbo.com/news/htmls/2013/01/20130129169833.html
  53. 선관위, 새누리당 관계자 불법선거운동 고발 kbs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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