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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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출생 1961년 1월 4일(1961-01-04) (53세)
대한민국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성동구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본관 해주
학력 고려대학교 대학원 법학 박사
직업 법조인, 교육자, 방송인, 정치인, 공무원
종교 로마 가톨릭(세례명: 스테파노)
배우자 송현옥
자녀 2녀
친척 여동생 오세현
오세훈
1961년 ~
복무 대한민국 대한민국 육군
최종 계급 육군 예비역 중위
근무 보안사령부 정보처

오세훈(吳世勳, 1961년 1월 4일 ~ )은 대한민국의 변호사, 방송인, 시민운동가 출신 정치인으로 제16대 국회의원, 제33·34대 서울특별시장을 역임했다.

국회의원 시절 오세훈은 4년 연속 시민단체 주관'국정감사 우수위원 (2000~2003)으로 선정되었고 [출처 필요], 임기 말에는 5·6공 용퇴론을 주장하며 한나라당의 인적 쇄신을 요구하였다.[1] 지구당위원장직 사퇴에 이어 2004년 1월 6일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출처 필요]. 그 후 깨끗하고 투명한 선거를 목적으로 한 소위 "오세훈 선거법"을 남겼으나 이 법의 실효성에는 논란이 있다 [2].

2006년부터 2011년까지 서울시장 재임 시절, 오세훈은 창의시정과 디자인 서울을 주요 정책으로 하였으며 이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3]. 다산 콜 센터를 도입하였다. 오세훈은 서울시의 무상 급식 정책 논란 에서 주민 투표를 제안하며 패배할 경우 시장직에서 사퇴하겠다고 밝혔으며, 투표율 미달이 되자 사퇴하였다.

생애[편집]

생애 초반[편집]

학창 시절[편집]

오세훈은 1961년 1월 4일 서울 성수동에서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시절 답십리동, 삼양동, 부산광역시로 전학다니다 서울 미동초등학교중동중학교를 졸업했다.[4] 오세훈은 이 당시 '산꼭대기 동네에 살면서 호롱불 켜고 우물물 길러 다니면서 학원도 못 다닐 정도'로 어려운 집안 형편이었으며, "숙제는 해가 지기 전에 미리 끝내고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라고 회고했다.[5] 고등학교에 들어와서는 부인 송현옥의 오빠와 한 반이 되었고 그 인연으로 그의 여동생인 송현옥과 만났다. 그 뒤 송현옥과 같은 대학에서 만나 대학 커플로 이어지고 후에 결혼하게 된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 입학한 뒤 2학년때 고려대학교로 편입을 하여 대학 생활을 이어간다.[6]

사법시험 합격과 군 복무, 대학원 생활[편집]

1980년대 초반 사법시험 준비에 매진한 끝에 1984년 제26회 사법시험에 합격한다. 그 뒤 사법연수원에 17기로 입소하여 수료하고 육군에 입대했다. 고시 합격생 장교 임용에 따라 그는 육군 소위로 임관되었다. 당시 오세훈은 법무장교로 지원했으나 합격성적이 낮아 법무관이 못되어 보안사령부(현 국군기무사령부) 정보처(2처)에 전속되어 정훈장교로 복무하였다.

예편 이후 고려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하여 상법을 전공하여 1990년 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변호사를 개업했고, 동 대학의 박사과정에 진학하여 1999년 법학 박사 학위를 받는다.

변호사, 교육자 시절[편집]

변호사 개업 후에 1991년 부평 모 아파트에서 동과 동 사이의 거리가 너무 좁아 대낮에도 형광등을 켜야 할 정도로 일조권 침해를 받았다며 소송을 제기, 건설사로부터 13억원의 손해배상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최열 대표와 환경운동연합의 창립멤버로 참여했고, MBC에서 방영한 "생방송 오변호사 배변호사"에도 배금자 변호사와 함께 출연했다. 1992년 2월 환경운동연합 시민상담실 실장이 되었다.

1996년 5월에는 시사저널 지 편집자문위원에 위촉된 뒤, 10월에는 SBS 다큐멘터리 그것이 알고 싶다의 진행자로 발탁되었다.[7] 그리하여 1996년부터 1997년 9월, 다시 문성근씨가 그것이 알고싶다 진행자로 복귀하기 전까지[8] 1년간 sbs 다큐멘터리 그것이 알고싶다의 진행자를 맡게 됐다. 이 기간 중 이권단체들로부터 회유와 협박을 받았지만 굴복하지 않고 방송을 진행해 나갔다.

1996년부터 2000년까지 환경운동연합 법률위원회 위원장 겸 상임집행위원을 지냈다. 변호사 활동을 하며 1997년 9월부터 1998년 2월까지 숙명여대 법학과에서 민사소송법의 겸임 교수로 일했고, 1998년 1월부터 1998년 12월까지는 미국 예일 대학교에서 Law School Visiting Scholar로 있었다.

1995년 대한변호사협회 환경문제연구위원회 의원을 역임했고, 1999년 이장호, 김기수와 함께 합동법률사무소를 개업했으며 1999년 3월 다시 숙명여자대학교 법학과 민사소송법 겸임교수로 위촉되었다.

정치 활동[편집]

정계 입문 초기[편집]

2000년 4월 장모 사공정숙의 도움으로 한나라당 소속으로 제16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서울 강남구 공천을 받아 16대 국회의원이 되었으며, 2003년 한나라당 원내부총무 등을 역임했다.

2000년 환경운동연합 법률위원회 위원장 겸 상임집행위원 등을 지냈다. 2002년 제일국제법률사무소 및 김장리 법률사무소에서 변호사로 근무했고 2004년 법무법인 지성에서 대표변호사를 역임했다.[9] 1999년 함께 법률사무소를 개업했던 이장호 변호사[10]2011년 현재 서울시체육회 사무처장으로 제직 중이다.[11]

이후 한나라당 당내 소장파 의원 모임인 '미래를 위한 청년연대'(미래연대)에 가담하여 활동하다가 2001년 6월 미래연대의 공동대표로 선출되어 2002년 9월까지 대표로 있었다.

2003년 2월 환경재단 136포럼 운영위원에 위촉되었고, 그해 7월 한나라당 청년위원회 위원장에 위촉되고, 바로 한나라당 최고위원, 운영위원회 상임운영위원을 겸임하였다.

16대 국회의원 시절[편집]

2003년 바로 국회 환경 노동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2003년 9월 4일 오세훈은 한나라당 의원 연찬회에서 다른 소장파들과 함께 "민주화 세대에게 한나라당은 5·6공 잔존세력에 불과하다"며 "5·6공 이미지를 가진 선배들을 향해 용퇴해달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12] 여기에 원로 인사들은 반발했고, 김용갑 등 소수만이 그의 주장에 일부 동조하였다.

이에 대해 홍준표 등 당내 중진은 "당내 민주화를 위해 상향식 공천이 필요하다며 당헌당규를 고치자고 해놓고 6개월도 안돼 이를 무시한 채 물갈이론을 내세운다면 동조할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며 반발했다.[13] 9월 5일 오세훈은 지구당 위원장직에서 사퇴하겠다고 발표하며 당내 소장파 의원들과 함께 지도부를 압박했다. 이들은 오픈 프라이머리를 전제로 한 상향식 공천과 공천심사위에 외부인사를 다수 참여시킬 것을 주장했다.[14]2003년 10월에는 안풍 사건으로 인해 논란이 일자 "당에 유입된 100억원의 추징 이야기가 나오기 전에 천안연수원과 중앙당을 매각해 스스로 갚자"고 주장하기도 했다.[15] 5,6공 용퇴론을 주장하며 자신도 함께 물러나겠다고 선언했던 오세훈은 2004년 1월 6일 "정치개혁과 한나라당의 공천혁명에 밑거름"이 되려한다며 17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다.[16]

2004년 3월 9일 의원총회에서 한나라당은 민주당과 함께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소추를 발의하였다. 오세훈은 소장파 의원들과 함께 이에 반대하여 서명하지 않았으나, 3월 12일 본회의에서의 표결에 참가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소추안은 가결되었으나 2명의 반대표가 있었고, 일부에서는 오세훈을 가장 유력한 반대표로 뽑기도 하였다.[17] 하지만 오세훈은 후에 서울시장 경선 과정에서 "당시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찬성했던 것에 대해 지금도 나의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한다"라며 탄핵 소추안에 찬성했음을 밝혔다.[18]

변호사 복귀 뒤[편집]

오세훈은 정치계를 떠난 뒤 법무법인 지성의 대표변호사로 법조계에 돌아온다.

2004년 6월 27일 오세훈은 속초시에서 철인 3종 경기에 출전해 3시간25분14초의 기록으로 완주했다. 또 6월 5일 통영에서 열린 트라이애슬론 경기에서 송일국, 배형진과 함께 릴레이로 철인 3종경기에 출전하기도 했다.

오세훈은 총선 불출마 선언 후 2500만원의 의정활동 잔여금 중 1500만원은 환경재단에, 1000만원은 서울문화재단에 기부했고, 신문광고 수익금 3000만원을 장애 아동과 북한 어린이들을 위해 사회복지법인 대한사회복지회에 기탁했다.[19] 일부에서 기부활동이 서울 시장 출마를 위한 것 아니냐는 의혹에 3월 10일자 연론에서 오세훈은 "서울시장에 출마한다는 이야기는 엉터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부문화 확산에 기여하는 활동은 계속 할겁니다"라며 대응했다.[19]

서울 시장 출마와 당내 경선[편집]

서울시장 출마에 대해 부인하던 오세훈은 2005년 6월 여론조사 결과 서울 시장 선호후보 1위로 선정되고,[20] 이에 대해 "목석같이 아무 생각이 없다고 하면 사람도 아니고 거짓말이지"라며 "정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의 사회참여"라고 언급해 서울 시장으로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또 8월 31일 라디오 인터뷰에서는 "내가 그 자리에 가면 과연 잘하는 시장, 잘하는 행정가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21] 선거 와중인 그해 8월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자문위원회의 위원으로 위촉되었다.

11월 2일 오세훈은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출마하지 않는 쪽으로 기울었다"며 "불출마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고 말했으나,[22] 4월 5일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이 서울 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한 뒤, 한나라당 소장파들이 적극적으로 오세훈의 영입을 주장했다. 이에 당 중진과 지도부는 오세훈에게 "백의종군"식의 경선 참여를 요구했다.[23] 결국 4월 9일 오세훈은 경선 참여를 선언하였고, 4월 12일 박진은 '오세훈 바람'에 밀려 눈물과 함께 중도 포기를 선언하였다.[24] 이 후 홍준표는 오세훈에게 "당원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며 "서울시장을 염두에 두고, 정책을 준비해 왔다면 '정수기 광고'는 엄연한 불법"이라고 경선의 경쟁자인 오세훈을 공격하였고, 일부에서는 오풍(오세훈 바람)에 맞서 맹형규홍준표의 단일화를 주장했다.[25]

경선을 6일 앞둔 4월 18일, 오세훈이 2년간 당원 신분은 유지하고 있으면서 당비를 내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이로 인해 피선거권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이에 대해 오세훈은 "국회의원 시절에 자동납부가 되고 있었기 때문에 국회의원을 그만두고 본업인 변호사로 돌아와 착각"했다며 양해를 구했다.

2006년 4월 25일 오세훈은 여론조사에서 65.05%의 지지율을 얻으며 총 41%의 득표로 한나라당의 서울 시장 후보가 됐다.

첫 번째 서울시장 도전[편집]

열린우리당강금실한나라당의 오세훈이 맞붙은 서울 시장 선거에 대해 초반부터 많은 언론들은 이미지 싸움이 성패를 좌우할 것이라고 예측했다.[26] 또 중장년과 여성층은 오세훈을, 청년층은 강금실을 선호한다는 분석도 있었다.[26] 하지만 5월 2일 강금실열린우리당 서울시장 후보로 당선된 직후 나온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세훈은 지지율 면에서 20%이상 강금실을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27] 심지어 20대 연령대에서도 강금실은 오세훈에게 추월당한 상태였다.[27]

오세훈은 강금실의 임대아파트 16만호 건설에 대해 (11평형은) "방으로 치더라도 어떤 때는 대각선으로 누워서 자야 할 정도로 좁다"라고 발언해 열린우리당으로부터 "서민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비난을 듣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에서는 "주택난 해소를 위한다면 오피스텔이 아닌 4인 가족 기준에 맞는 적정한 규모의 아파트가 필요한 것아니냐는 게 오 후보의 문제제기"라고 반박했다.[28] 또 오세훈이 변호사 시절 찍었던 정수기 CF가 선거일 90일 전부터 본인이 등장하는 동영상, 사진 광고를 금지한 선거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고소되기도 했다.[29]

5월 21일 지충호는 신촌 현대백화점 앞에서 오세훈 후보의 유세를 돕던 박근혜 대표를 문구용 칼로 피습했다.[30] 이 영향으로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40%를 상회하게 되었고 오세훈과 강금실의 격차는 더 크게 벌어지게 되었고,[31] 서울시장에 당선되었다.

공약[편집]

2006년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자의 공약은 강북 개발과 대기질 개선 사업에 초점을 맞춘 공약을 내걸었다. 세운상가와 동대문 운동장 철거, 강북 중심의 뉴타운 50곳 건설, 영어 체험마을 설치 등을 통해 강북의 환경을 개선하고, 대기질 개선을 위해 경유버스를 천연가스 버스로 교체하고 오래된 화물차를 폐기 유도한다는 정책을 내세웠다.[32]

두 번째 서울시장 도전[편집]

2010년에 치루어진 민선 5기 지방선거에서 오세훈 시장은 재선에 도전했다. '재선시장 프리미엄'이라는 이점을 안고 한나라당 당내경선에서 나경원, 김충환 등의 경쟁자를 물리쳤고,[33] 본 선거전에서도 언론들이 여론조사 기관들에 의뢰해 실시한 복수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한명숙 후보에 비해 우위에 설 것으로 예측되었다.[34] 하지만 6월 2일에 치루어진 지방선거에서는 개표 내내 한명숙 후보에게 뒤지는 열세를 보이다가, 막판 강남 3구의 개표가 시작되면서 간신히 역전하여 민선 5기 제 34대 서울특별시장으로 재선되었다.[35][36]

공약[편집]

2010년 오 시장은 4대 분야 20대 과제를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선거에 임했다. '따뜻한 서울', '균형있는 서울', '행복한 서울', '활기찬 서울'로 4대 분야를 제시했다.[37]

  • 따뜻한 서울
    • 공교육강화에 1조원을 투자하여 사교육 부담 완화
    • 공공보육시설 확충과 무상보육 확대
    • 사회기업 1,000개, 청년창업 2,000개, 일자리 100만 개
    • 어르신 행복타운 건립
    • 시프트(SHift) 공공임대주택 10만 호 건설
  • 균형있는 서울
    • 강남북 균형발전을 통한 지역격차 완화
    • 희망드림프로젝트를 통한 소득격차 완화
    • 계층격차 완화
    • 정보격차 완화
    • 다문화격차 완화
  • 행복한 서울
    • 전기자동차 3만 대 보급
    • 세계 최고의 대중교통 보급
    • 쾌적한 공원도시 만들기
    • 안전도시 만들기
    • 다양한 문화 도시 만들기
  • 활기찬 서울
    • 신성장동력산업 육성
    • 가기 쉽고, 즐길 수 있는 한강과 지천 만들기
    • 서울성곽 복원 및 4대문 안 세계문화유산 지정 노력
    • 지하철 지상구간 지하화 및 도시공간구조 개편
    • 수도권 30분 시대 열기
개표 과정[편집]

개표 초반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가 잠시 앞서 나가는 듯 했으나, 개표가 본격화됨에 따라서 민주당 한명숙 후보가 선두를 차지한 후 개표 후반까지 계속 이러한 추세를 유지했다. 개표 중반에 오세훈 후보가 한명숙 후보를 1% 차이도 안 나게 잠시 추격하기도 했으나, 결국 역전은 성공하지 못한 상태로 새벽까지 한명숙 후보의 우세로 개표는 계속 진행되는 가운데 오 후보 캠프에서는 역전이 어려울 것 같다는 추측이 나돌았고, 이에 따라 당초 오 후보측에 진을 쳤던 취재진들도 한 후보 측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38]

그러나 개표 후반 강남지역 선거구들의 개표가 뒤늦게 본격적으로 이루어지자 이 지역에서 한 후보에 비해 20% 가량 높은 지지를 얻으면서, 결국 한명숙 후보를 0.6% 차이로 막판에 간신히 역전할 수 있게 된다.[39]

이러한 까닭에,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주요 일간지들과 KBS, MBC, SBS의 공중파 방송 등에서는 "강남 3구 표밭에서의 몰표 덕분에 오세훈 후보의 당선이 가능했다" 혹은 "강남3구가 오세훈을 살렸다"는 분석과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40][41] 이에 대해 오 시장은 강남권 득표율이 지난 지방선거 때보다 감소했다는 점, 민주당 구청장 후보가 당선된 중구 등 5개 구에서 오 시장이 한 후보에 비해 0.3 ∼ 8.2%포인트 높은 득표를 기록했다는 점, 25개 전 지역에서 40대 이상 연령층으로부터 고른 득표를 얻었다는 점을 들며 세간의 평가에 대해서 반박했다.[42]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68%인 17곳에서 한명숙 후보는 오세훈 후보를 제쳤고, 32%인 8곳에서는 오세훈 후보가 한명숙 후보를 제쳤다.[41] 구체적으로, 오세훈 후보가 앞선 선거구에서의 우세를 보면 강남구(+59,206, +25.68%), 서초구(+43,820, +23.66%), 송파구(+23,814, +8.19%), 강동구(+11,097, +5.33%), 용산구(+8,579, +8.24%), 양천구(+1,078, +0.51%), 영등포구(+1,017, +0.57%), 중구(+238, +0.39%) 등이었다.

당선 소감[편집]

2010년 6월 3일, 재선이 확정되고 난 다음 선거캠프에서 밝힌 소감이다. 지방선거운동 과정에서 오세훈 후보의 지원을 받은 한나라당 구청장 및 시의원 후보자들이 대거 낙선했던 점과 강남 3구에서의 압승 덕분에 당선될 수 있었다는 세간의 평가를 의식해서, "다양한 시민들 특히, 저를 지지하지 않은 많은 분들의 뜻도 깊게 헤아려, 균형 잡힌 시정이 이뤄지도록 항상 유념하겠습니다"는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서울 시민여러분, 정말 고맙습니다.
비록 이긴 선거이지만 저 자신을 깊이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실상 패배했다는 겸허한 마음으로 오늘의 승리를 받아들이겠습니다.



(중략)

다양한 시민들 특히, 저를 지지하지 않은 많은 분들의 뜻도 깊게 헤아려, 균형 잡힌 시정이 이뤄지도록 항상 유념하겠습니다.

한나라당 구청장, 시의원, 구의원 후보 여러분께서 낙선하셨습니다.
시장후보로서 책임감을 느끼는 한편으로 서울시를 여소야대로 만들어 주신, 유권자 여러분의 뜻을 받들겠습니다.
저부터 새로운 각오로 시작하겠습니다.
한나라당의 당원 동지 여러분과 함께 보다 깨끗하고, 보다 따뜻하고, 보다 개혁적인 정당이 될 수 있도록 앞장서 노력하겠습니다.

더욱 열심히 듣고 소통하겠습니다.
분열이 아닌 통합의 정치, 과거로의 회귀가 아닌 미래비전의 정치, 반드시 이루겠습니다.
또한 오세훈, 시민 여러분께 약속드린 '시민이 행복한 서울, 세계가 사랑하는 서울'
바로 지금 이 순간부터 혼신을 다해 만들어가겠습니다.
시민여러분들과 함께 열심히 앞만 보고 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0년 6월 3일
,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오세훈 드림[43]

국회의원 재직 시절[편집]

2000년 4월 한나라당 소속으로 제16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출마해 16대 국회의원이 된 오세훈은 2003년 한나라당 원내부총무, 청년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한나라당 최고위원까지 역임했다. 국회의원 오세훈은 4년 연속 시민단체 주관 국정감사 우수위원으로 선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5,6공 용퇴론총선불출마를 선언한 직후 소위 '오세훈선거법'의 개정을 주도함으로써 대한민국 정치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총선불출마 선언[편집]

17대 총선을 앞두고 오세훈 의원은 한나라당내 '5·6공 인사 퇴진론'을 주장한데 이어, 스스로 17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함으로써 기득권 포기를 통해 정치개혁의 물꼬를 텄다.

오세훈 의원은 기자회견을 통해 "정치개혁의 실현을 목표로 삼았던 시대에 오히려 '개혁의 상실'을 경험했으며, 그 현실에 대해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며 자신의 불출마가 "미래지향적인 정당을 만드는 조그마한 계기가 되기를 바라고, 나아가 정치권 전반에 '내 탓이오' 정서가 만들어지는 시발점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아울러 자신이 주장한 용퇴론과 관련 "조그마한 기득권이라도 이를 버리는 데에서 정치개혁이 시작된다고 주장했던 대로 이제 실행하려 한다"며 "그러한 고민의 산물이 지난번 지구당위원장직 사퇴에 이은 이번 불출마이며, 이것이 정치권의 새로운 변화를 바라는 국민들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불출마 선언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오세훈선거법의 입법정신 및 개정내용[편집]

2004년 3월에 개정된 정치자금법 등 정치관계법을 일명 '오세훈법'이라고 부른다. 2004년 총선을 앞두고 '불출마'를 선언했던 오세훈 의원이 주도했기 때문이다. 당시 정치관계법 개정은 '차떼기'로 상징되는 정경유착 등 후진적 정치문화를 개혁하라는 국민 여론이 높았던 시기였다. 이에 따라 '돈은 묶고, 입은 푼다'는 오세훈선거법의 정신과 목표 아래 상당히 개혁적인 입법이 이루어졌다. 선거법, 정당법, 정치자금법의 주요 개정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선거법

먼저 선거법은 ‘고비용 선거구조’의 변화와, ‘선거비용 지출의 투명화’가 핵심이다. 이에 따라 대규모 인원을 동원하는 합동 연설회·정당후보자 연설회 등을 폐지하고, 신문·방송 등 각종 미디어매체를 통한 선거운동을 확대했으며, 선거비용의 축소와 투명화 부분을 강화한 ‘선거공영제’를 제도화했다.

  • 선거구제와 의원정수
    • 소선거구제와 의원 정수는 299명으로 유지
    • 개별 시·도의 지역구의원 수는 최소 3인으로 하도록 해 제주도 의석수 3개 유지
    • 전체 지역구 의석수는 227석에서 243석으로, 비례대표는 현행 46석에서 56석으로 조정
  • 1인2표제 도입
    • 지역구 후보와 지지정당에 대해 각각 투표를 실시토록 해 비례대표의 대표성을 강화 하였고, 정당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 배분
  • 선거운동 확대 및 공정성 강화
    • 선거일전 120일 전부터 예비후보자로 등록한 자는 선거사무소를 설치
    • 후보자 본인의 명함 직접 배부, 이메일 발송, 선거관리위원회의 규칙에 따라 인쇄물 발송의 방법으로 선거운동 가능
  • 선거공영제 확대
    • 합동연설회·정당·후보자연설회 폐지하되, 거리연설은 가능
    • 정당행사의 금품, 음식물 제공 금지
  • 후보자 신상공개 확대
    • 선관위는 후보자의 학력·경력·재산·납세실적·병역·전과기록 등 신상정보를 투표안내문과 함께 각 세대에 발송
  • 인터넷실명제
    • 인터넷에 선거에 관한 의견을 게시할 때 의견 게시자가 기입하는 성명과 주민등록번호의 일치여부를 확인한 후, 의견을 게시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적 조치 의무화
  • 선거비용규제 강화
    • 선거비용 사용시 수표나 신용카드 사용 의무화
    • 선거관리위원회는 후보자의 수입·지출에 대해 상시 조사 가능
    • 후보자·선거사무장·사무소 회계책임자 외에도 의심 가는 자에 대해 계좌개설내역·통장원부 사본확인 등 자료제출요구 가능
    • 후보자·회계책임자·가족 등 선거와 관련된 모든 사람이 선거비용제한액을 초과 지출하거나 허위로 선관위에 신고할 경우, 또 금품제공 등으로 인해 3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선고 받은 경우 당선 무효
  • 제한·금지사항의 변경
    • 현역의원 의정활동보고, 후보자의 출판기념회는 선거일전 90일부터 선거일까지 금지
    • 선거기간 중 확대당직자회의 금지
    • 어깨띠 사용은 후보자만 가능
    • 3인 이상이 무리를 지어 연호하거나 인사하는 행위 금지
  • 처벌 규정
    • 선거관리위원회는 위법행위 적발시 현장의 증거를 수집하거나, 적발된 자의 동행 및 출석요구 가능
    • 정당한 사유 없이 이에 불응할 경우, 300만원 이하 과태료 부과
    • 전화 등을 이용한 불법선거를 막기 위한 통신자료 제출요구권 신설
    •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 무효된 경우, 기탁금과 보전 선거비용 환수조치 가능
    • 유권자가 받은 금품이나 음식물 가액의 50배에 해당하는 과태료 부과

(2) 정당법

정당법은 고비용 저효율의 정당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 ‘지구당 완전폐지’와 더 많은 여성들의 원내진출이 이뤄지도록 개정되었다.

  • 정당구조개혁
    • 지구당 폐지
    • 중앙당의 유급사무원수는 100인 이내, 시도당의 경우 5인 이내로 축소
  • 인터넷정당 활성화
    • 전자문서를 통해 정당의 입·탈당이 가능해지고 투표행위가 인터넷을 통해 가능해지는 등 인터넷정당의 법적 근거 마련
  • 민주적 당내경선 활성화
    • 정당은 공직후보자를 추천하기 위한 당내경선을 실시할 수 있도록 하고, 경선탈락자의 본선거 출마 금지
    • 당내 경선사무 중 투·개표 사무 등을 선관위에 위탁 가능
  • 여성의 정치참여 확대
    • 비례대표 후보자의 50%이상을 여성으로 추천토록 하고, 지역구 총수의 30% 이상을 여성후보로 공천할 경우 보조금 추가 지급

(3) 정치자금법

정치자금법은 소액다수 후원의 활성화, 정치자금의 조달과 수입, 지출과정이 투명하게 드러나도록 하여 음성적 정치자금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이 가장 큰 골격이다. 또 정당에 대한 보조금 배분을 합리적으로 개선하고, 정치자금의 부정사용 등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등 깨끗한 정치문화 조성을 목표로 다양한 제도가 도입되었다.

  • 정치자금 투명성 확보
    • 1회 100만원 이상의 정치자금 기부와 1회 50만원 이상 지출시, 수표·신용카드 등 실명이 확인되는 방법 사용 의무화
    • 현금지출은 연간지출 총액의 20% 초과 금지
    • 무정액 영수증의 경우 10만원 이하의 후원금에 한해 사용 가능
    • 연간 120만원(중앙당 500만원)을 초과한 기부자의 경우 인적사항 공개
    • 정치자금의 수입은 선관위에 신고된 복수계좌로 하되, 지출은 단일신고계좌를 사용해야 하고, 회계책임자만이 정치자금 수입·지출 가능
  • 정치자금 조달
    • 모든 공직선거 후보자의 후원회를 통한 모금 가능
    • 국회의원 예비후보자는 선거일전 120일부터 후원회를 설치 가능
    • 법인(기업)이나 단체의 정치자금 기부 금지
    • 모금방법도 신용카드·예금계좌·전화·인터넷 등을 통한 다양한 후원회 방식이 가능하되, 집회를 통한 방법은 금지
  • 처벌 조항 강화
    • 정치자금법 위반에 대한 형량을 1~3년까지에서 3~5년까지로 늘려 처벌 강화
    • 위반시 행위자 처벌과 별도로 후원회 또는 법인에 대해서도 벌금형 부과

오세훈선거법의 의미[편집]

2004년 정치관계법 개정은 이전 제도에 비해 의미가 큰 변화였다.

  • 선거법의 경우, '1인2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의 도입은 이전에 지역구 득표율을 토대로 비례대표 의석까지 배분하던 것을, 유권자가 지역구와 비례대표에 따로 투표하게 함으로써 비례대표의 대표성이 강화되었다.
  •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정치신인에게도 제한적이나마 선거운동을 허용하여 현역의원 프리미엄을 대폭 줄이려고 했다는 것이다. 예비후보자로 등록한 사람은 선거일 120일 전부터 사무소 설치·명함 배포·전자우편 발송 등 제한적 선거운동을 할 수 있도록 하였고, 대신 현역의원이나 정치신인 모두 선거일 90일 전부터는 의정활동 보고회나 출판기념회 등을 열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공평한 기회를 부여하고자 했다.
  • 선거법 개정의 또 다른 핵심인 ‘선거비용 투명화’를 위해 선거비용 지출 때 반드시 수표·신용카드 등을 사용하도록 했다. 또 선관위의 선거비용 수입·지출에 대한 확인·조사가 상시적으로 이뤄지도록 했다. 이와 함께 군중 동원 등의 폐해로 고비용 정치의 상징으로 꼽혔던 합동연설회와 정당연설회는 폐지되었고, 선거일 180일 전부터 금지되던 기부행위를 상시적으로 금지했다. 돈이나 향응을 제공받는 유권자를 근절하기 위해 받은 금품이나 음식물 가액의 50배에 해당하는 과태료를 물리도록 변경한 것도 이때다.
  • 정치자금법은 기업의 정치자금 후원을 완전히 금지하는 대신 ‘개미’로 상징되는 다수의 소액 기부자들의 자발적인 후원을 적극 장려하도록 했다는 점이 가장 큰 변화다. 이러한 후원을 확대하기 위해 개인의 정치자금 기부 때 10만원까지는 세액공제를, 그 이상에 대해선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 정치자금을 받거나 사용할 때, 일정액 이상은 반드시 수표·신용카드를 쓰도록 하는 한편, 선관위에 신고된 계좌를 통하게 하는 등 정치자금의 ‘입구’와 ‘출구’를 투명하게 만들었다. 또 연간 개인후원회에 120만원, 중앙당후원회에 500만원 이상을 기부하는 고액 기부자의 명단을 공개하도록 했다.
  • 정당법은 ‘돈먹는 하마’로 불리는 등 폐해가 지적됐던 지구당이 전격적으로 폐지되었다. 대신 인터넷을 통한 입·탈당과 투표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인터넷 정당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여 정당의 운영경비 절감을 유도하고, 효율적인 여론수렴을 도왔다.
  • 여성의 정치참여 확대를 위해 각 당마다 비례대표 후보 가운데 절반 이상을 반드시 여성 후보로 추천하도록 했고, 지역구에서 여성 후보가 30% 이상일 경우 국고보조금을 추가로 지급하는 조항을 신설하여 더 많은 여성의 정치참여를 유도했다. 이와 함께 당내 경선에서 탈락한 사람은 본선에 출마할 수 없게 함으로써 경선 불복을 금지한 것도 새롭게 만들어진 조항이다.
  • 오세훈이 주도했던 이상의 정치관계법 개정은 당시로서도 획기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당분간 큰 골격이 유지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상당히 개혁적인 입법이었다고 평가된다.

서울 시장 재직 시절[편집]

서울 시장 1기[편집]

오세훈 서울시장2006년 6월 1일최열 환경재단 대표와 제타룡 전 도시철도공사 사장을 공동인수위원장으로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서울특별시 시장으로서의 직무를 수행하기 시작했다.

서울 시장 2기[편집]

2010년에 있었던 지방선거에서 오세훈은 한명숙에 가까스로 승리하였지만 시의원은 79석을 얻은 민주당에 비해 한나라당은 27석을 얻는데 그쳐 여소야대 구도를 이루었다. 이에 따라 오세훈의 시정 운영은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44] 2기 임기가 시작된 이후 민주당 소속 40명의 서울시의원들에게 설문을 한 결과 50%가 '오세훈 시장은 잘한 것이 없다'는 답변을 하였으며, 시정 운영중에 가장 먼저 바꾸어야 할 문제로 '서울광장 운영 방식'을 꼽았으며 실제로 서울시의회는 이 부분을 가장 먼저 변경했다.[45] 오세훈은 전국의 지자체장중에서 의회 출석률 전국 꼴찌를 기록했다. 전국 지자체장 평균 출석률 84.84%보다 3배 가량 낮은 29.72%를 기록했다. 조례안 처리율도 46.46%로 광역지자체 평균 89.43%보다도 2배가량 낮았다. 이에 대해 오세훈이 무상급식 반대에 몰두해 다른 시정을 등한시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46] 서울시는 소외 계층을 대상으로하는 매우 제한적 무상 급식을 시행중에 있으나, 주로 야당이 다수인 서울시의회 및 교육감은 전면 무상급식을 주장하였다. 서울시는 8%에 불과한 무상급식 대상을 30%로 확대하도록 하겠다는 주장을 폈으며, 최대 하위 50%까지는 무상급식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47]

그러나 2011년 1월 6일, 서울시의회는 서울시와 한나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의장 직권으로 오전 0시30분에 본회의가 열려 민주당 단독으로 처리되었다. 서울시는 서울시의회 민주당 의원들이 단독으로 처리시킨 무상급식조례안에 대해 공포를 거부함과 동시에 법원에 무효소송을 내기로 했고,[48] 서울시의회는 오세훈의 공포 거부에 따라 익일 시의회 의장 직권으로 공포했다.[49] 이에 대해 서울시는 무상급식 조례안에 대해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50] 논란이 사그라들지 않자 오세훈은 무상급식과 관련한 시민들의 의사를 직접 묻기 위해 주민투표를 서울시의회에 제안하였다. 민주당은 전체 무상급식에 들어가는 비용이 1년에 695억원인데, 주민투표를 위해 182억을 낭비하는건 무리수라고 주장하였다.[51] 그러나 오세훈과 서울시는 유권자의 판단비용일 뿐이며 오히려 전면무상급식에는 최소 4000억이 들고 복지정책은 한번 시행하면 중단할 수 없는 불가역성 등을 고려하면 비용이 더 늘어난다고 주장했다. 대중영합주의 정치를 넘어서야 진정한 민주주의가 성장할 수 있다며 주민투표의 추진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반박했다.[52] 오세훈은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사흘앞두고 실패할 경우 사퇴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투표가 향후 대한민국내 복지정책의 흐름을 결정짓는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생각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오 시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아무리 험난해도 이번 주민투표를 통해 대한민국 복지 방향을 정립하지 않으면 우리 서울의 미래가, 대한민국의 미래가 이대로 주저앉아 버릴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53] 오세훈은 그러나 2010년 지방선거 전후에 "임기를 꽉 채우겠다"고 반복해서 강조한 것에 대해서는 어떠한 해명도 없이 번복·사퇴했다.[54] 민주당은 "우롱하는 수준을 넘어선 위협과 협박을 통한 정치 사기극이고, 서울 시민에 대한 테러"라고 비판했고 자유선진당과 민주노동당 등도 비판을 제기했다. 한나라당은 당혹감을 드러내며 "시장직 신임 투표가 아닌 정책 투표에 시장의 거취를 연계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한나라당 일부에서 "오세훈을 제명시켜야 한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55]

수해

  • 2011년 7월 서울에 폭우가 내려 큰 피해를 입혔는데 오세훈의 디자인 서울이 원인으로 비판이 됐다. 빗물을 지하로 보내는 빗물받이가 1m는 돼야 하는데 대부분 40㎝이다. 게다가 이마저도 관리가 안 돼 오물이 끼어 악취가 나는 것은 당연하며 결국 오세훈이 추진하는 서울 디자인에 신경을 쓰다 보니 구멍이 좁아졌고, 결국 피해를 불렀다는 것이다.[56] 또한 서울시는 보도블록과 간판에 디자인을 도입한다며 디자인거리와 르네상스거리에 2133억 원을 투입했다. 그러나 30곳의 디자인거리 중 26곳은 물 빠짐 기능이 거의 없는 화강판석을 사용한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57] 수해 방지 예산도 오세훈의 취임 이래 매년 줄더니 1/10 규모가 됐다는 주장이 나오자 서울시는 올해 수해방지 예산이 3436억으로 2007년에 비해 두 배 늘었다고 주장했다. 서울시는 민선 1기부터 5기가 시작된 올해까지 풍수해 관련 예산을 분석한 결과, 특별회계를 포함한 예산 규모가 매년 지속적으로 증가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수방관련 예산이 일반회계와 특별회계·재난관리기금으로 이뤄져 있는데 이를 다 합친 규모가 아니라 일반회계만 보고 오해했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이에 대해 "이전까지 수해방지 예산 항목에 없었던 하수도 특별회계를 이번에 끼워넣었다. 게다가 서울시가 수해방지 예산에 집어넣은 재난관리기금 항목에 보면 수해방지와 무관한 제설자재구입·복구비 등 약 900억원이 포함돼 있어 수해예산관련 부분들은 수방예산으로 보기는 힘들다"고 반박했다[58][59]

무상급식 주민투표

오세훈 서울시장과 한나라당은 저소득층 30%에게 선별적으로 무상급식을 시행하도록 하겠다는 의견을 폈으나 민주당은 초등학교 저학년을 시작으로 중학생까지 전면 무상급식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며 갈등을 빚었다.[60] 2011년 8월 24일 오세훈이 추진해오던 주민투표에서 최종투표율 25.7%로 투표함을 개봉할 수 있는 투표율 33.3%를 달성하지 못해, 투표함이 폐기됨과 동시에 개표 득표율 33.3%에 미치지 못하였다. 오세훈의 하위 50% 지원 정책은 사실상 폐기되고 곽노현과 서울시교육청이 추진하는 전면 무상급식이 시행될 예정이며 오세훈은 약속대로 8월 26일 사퇴했다.

역대 선거 결과[편집]

선거명 직책명 대수 정당 득표율 득표수 결과 당락
제16대 총선 국회의원(서울 강남구 을) 16대 한나라당 59.0% 64,516표 1위 강남구을 국회의원 당선
제4회 지방선거 서울특별시장 33대 (민선 4기) 61.1% 2,409,760표 서울특별시장 당선
제5회 지방선거 34대 (민선 5기) 47.4% 2,086,127표

출연작[편집]

방송[편집]

영화[편집]

CF, 광고[편집]

  • 삼성물산 로가디스
  • 생명보험협회
  • 청호나이스 아이스콤보

학력[편집]

기타 경력[편집]

가계[편집]

기타[편집]

상훈 경력[편집]

  • 4년연속 시민단체 선정 국정감사 우수위원(2000~2003)
  • 제20회 코리아베스트 드레서 정치가부문
  • 2007년 12월 경향신문사 2007 대한민국 신뢰경영 CEO부문 대상
  • 2008년 한국정책과학협회 2008 뉴거버넌스 리더십메달 정책혁신부문
  • 2008년 7월 한국표준협회 제2회 대한민국 창조경영인상
  • 2008년 7월 경향신문사 제2회 대한민국 신뢰경영CEO 대상
  • 2008년 8월 한국경제신문사 글로벌리더상 미래경영부문 대상
  • 2008년 9월 한국품질경영학회, 포브스코리아 공동 주최 포브스 경영품질대상
  • 2008년 11월 월간중앙 '대한민국을 이끄는 21세기 경영리더' 창조경영부문 대상
  • 2009년 7월 행정안전부 시도공무원교육기관 창의심화과정 최우수상

저서 및 논문[편집]

어록[편집]

  • 2010년 12월 12일 오세훈 서울시장은 박근혜를 포함한 감세철회를 주장하는 정치인을 "한심하다"고 비판하였다.[61]

주석[편집]

  1. "오세훈 "5·6共세력 떠나라"", 《한국일보》, 2003년 9월 3일 작성.
  2. "곽노현 친 '오세훈 선거법', 문제는 없나?", 《프레시안》, 2011년 9월 28일 작성.
  3. "평가 엇갈린 오세훈 서울시장 창의 시정 2년", 《중앙일보》, 2008년 7월 8일 작성.
  4. 권대열. "5·31 최대관심 서울시장 후보 얘기 오세훈", 《조선일보》, 2006년 5월 11일 작성. 2010년 6월 3일 확인.
  5. 오세훈(2009), 『시프트(SHIFT): 생각의 프레임을 전환하라』, 서울 : 리더스북
  6. "강금실-오세훈 후보 스토리", 《코리안위클리》, 2006년 5월 18일 작성. 2010년 4월 23일 확인.
  7. [1]
  8. [2]
  9. 오세훈 네이트 인물검색 2011-08-24 확인
  10. 이장호 로씨컴 2011-08-24 확인
  11. 이장호 네이트 인물검색 2011-08-24 확인
  12. 안수찬. "(한나라당)“선배님들 아름답게 물러나시죠", 《한겨레신문》, 2003년 9월 4일 작성. 2009년 6월 8일 확인.
  13. 박민혁. "“소장파, 물갈이 주장 자격 있나”…野 '용퇴론' 역풍 확산", 《동아일보》, 2003년 9월 5일 작성. 2010년 6월 3일 확인.
  14. 정연욱. "(한나라당)한나라 소장파 당 쇄신 거듭 압박", 《동아일보》, 2003년 9월 19일 작성. 2010년 6월 3일 확인.
  15. 안수찬. "(추석 앞둔 민주-한나라 '집안싸움' 가열)'5, 6共 논쟁'", 《한겨레신문》, 2003년 9월 9일 작성. 2010년 6월 3일 확인.
  16. 반병희. "오세훈의원 “총선 불출마…정계 떠날것”", 《동아일보》, 2004년 1월 6일 작성. 2010년 6월 3일 확인.
  17. 정유진. "“탄핵반대 소신2표를 찾아라”", 《경향신문》, 2004년 3월 15일 작성. 2010년 6월 3일 확인.
  18. 모규엽. "오세훈 “탄핵 찬성 지금도 판단 옳다고 생각한다”", 《국민일보》, 2006년 4월 12일 작성. 2010년 6월 3일 확인.
  19. 박응식. "노블리스 오블리제, 그리고 진정한 자유", 《머니투데이》, 2005년 3월 11일 작성. 2010년 6월 3일 확인.
  20. 이승우. "서울시장 선호후보 1위에 陳정통-오세훈", 《연합뉴스》, 2005년 6월 14일 작성. 2010년 6월 3일 확인.
  21. 이종호. "오세훈 "연정의 정지작업 생략된 느낌"", 《오마이뉴스》, 2005년 8월 31일 작성. 2010년 6월 3일 확인.
  22. 문수인. "오세훈 서울시장 안나갈듯", 《매일경제》, 2005년 11월 3일 작성. 2010년 6월 3일 확인.
  23. 홍영식. ""이제와서 경선하라니…" 망설이는 오세훈", 《한국경제》, 2006년 4월 6일 작성. 2010년 6월 3일 확인.
  24. 허범구. "'중도포기' 눈물 흘린 박진", 《세계일보》, 2006년 4월 12일 작성. 2010년 6월 3일 확인.
  25. 이충재. "맹형규 ´어떻게 해야 오풍(吳風)을 막지(?)´", 《데일리안》, 2006년 4월 13일 작성. 2010년 6월 3일 확인.
  26. 임석규. "오세훈VS강금실, 서울시장 선거 가상대결 ‘4대 변수’는?", 《한겨레신문》, 2006년 4월 27일 작성. 2010년 6월 3일 확인.
  27. 송봉석. "오세훈 57% 강금실30%...27% 격차", 《경향신문》, 2006년 5월 3일 작성. 2010년 6월 3일 확인.
  28. 이지은. "오세훈 “11평은 너무 좁아 대각선으로 자야”", 《한겨레신문》, 2006년 5월 12일 작성. 2010년 6월 3일 확인.
  29. 이순혁. "오세훈 후보 ‘정수기 광고’ 수사 착수", 《한겨레신문》, 2006년 5월 16일 작성. 2010년 6월 3일 확인.
  30. 조현철. "(박근혜 대표 피습) 단상 오르는 순간 기다린 듯…", 《경향신문》, 2006년 5월 21일 작성. 2010년 6월 3일 확인.
  31. 서울·경기, 피습 이후 1·2위 격차 더 벌어
  32. 조기원.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자 공약실행 준비 착수", 《한겨레신문》, 2006년 6월 5일 작성. 2010년 6월 3일 확인.
  33. 강주모. "이변은 없었다. 오세훈, 韓 서울시장 후보 확정", 《투데이코리아》, 2010년 5월 3일 작성. 2010년 6월 3일 확인.
  34. 김성환. "(선택 6·2) 승패 바뀌고… 격차 줄고… 여론조사 뒤집혔다", 《한국일보》, 2010년 6월 3일 작성. 2010년 6월 3일 확인.
  35. 김승섭. "강남 3구 몰표…오세훈 서울시장 재선", 《아시아투데이》, 2010년 6월 3일 작성. 2010년 6월 3일 확인.
  36. 심재현. "'서울시장 재선 성공' 오세훈 날개 달다", 《머니투데이》, 2010년 6월 3일 작성. 2010년 6월 3일 확인.
  37. 오세훈의 약속 - 민선5기 4대분야 20대 과제
  38. 김우영. "오세훈 '너무나 먼길 돌아' 시장으로 돌아왔다", 《헤럴드경제》, 2010년 6월 3일 작성. 2010년 6월 3일 확인.
  39. 김봉규. "서울의 잠 못드는 밤…4차례 '뒤집기' 롤러코스터", 《프레시안》, 2010년 6월 3일 작성. 2010년 6월 3일 확인.
  40. 김경민. "오세훈 서울시장 선거 강남 표밭이 살렸다", 《마이데일리》, 2010년 6월 3일 작성. 2010년 6월 3일 확인.
  41. 홍성규. "39만여표 vs 27만여표… “강남3구 몰표가 막판 원군” 오세훈 0.6%P차 신승 안팎", 《서울신문》, 2010년 6월 4일 작성. 2010년 6월 4일 확인.
  42. "오세훈 "전지역 고른 득표..非강남시장"", 《연합뉴스》, 2010년 6월 6일 작성. 2010년 6월 6일 확인.
  43. 박진영. "지방선거 서울시장 당선자 오세훈 소감문 (전문)", 《아츠뉴스》, 2010년 6월 3일 작성. 2010년 6월 5일 확인.
  44. 이동애. "'여소야대' 서울시‥단체장-지방의회 엇갈려", 《MBC》, 2010년 6월 3일 작성. 2010년 6월 4일 확인.
  45. 오세훈시장 잘한 것 하나도 없다” 50% 경향신문 2010년 7월 9일
  46. 오세훈 전국 광역단체장 중 시의회 출석률 꼴찌 뉴시스 2010년 7월
  47. 추경 편성’ 카드 꺼낸 오세훈 서울시장 “무상급식 마지노선 50%… 물러설 수 없어” 쿠키뉴스 2011년 1월 16일
  48. 서울시 무상급식조례 공포 거부...소송 전망 YTN
  49. 서울시의회, 무상급식조례 의장직권 공포 쿠키뉴스 2011년 1월 7일
  50. 서울시,무상급식 조례 대법원 제소 파이넨셜뉴스 2011년 1월 18일
  51. 695억 막으려고 182억 써버린다?... 오세훈의 ‘무리수’ 헤럴드경제 2011년 1월 11일
  52. [3] 헤럴드경제 2011년 7월 13일
  53. 오세훈, 주민투표에 왜 시장직 걸었나
  54. 오세훈 서울시장측 "시장 임기 충실하겠다는 방침 변함 없어 아시아경제 2011년 8월
  55. 시장직 건 오세훈‥여 "당혹" 야 "정치놀음 mbc 2011년 8월
  56. 29.5㎜ 비에도 '물바다'되는 도로… 빗물받이가 문제였다 조선일보 2011년 8월
  57. 콘크리트 서울’ 물 빠질 곳이 없다 경향신문 2011년 8월
  58. 작년엔 1492억이라더니 올핸 3436억으로 급증서울시 수해방지 예산 뻥튀기? 한겨레 2011년 8월
  59. 특별회계·기금 포함하면 수해방지 예산 오히려 늘어
  60. ‘친환경 무상급식’ 해결기미 가물가물 2010.10.22 아시아투데이
  61. 오세훈 “박근혜 감세철회 한심하다” 2010-12-12 한겨레

같이 보기[편집]

서울특별시[편집]

바깥 고리[편집]

전 임
이명박
제33·34대 서울특별시장(민선)
2006년 7월 1일 ~ 2011년 8월 26일
후 임
박원순
권영규(직무대리)
Emblem of the National Assembly of Korea.svg 전 임
서상목(강남구 갑)
홍사덕(강남구 을)
제16대 국회의원(서울 강남구 을)
2000년 5월 30일 ~ 2004년 5월 29일
한나라당
(강남구 갑)최병렬
후 임
이종구(강남구 갑)
공성진(강남구 을)
Emblem of the National Assembly of Korea.sv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