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태
| 기본 정보 | |
| 국적 | |
|---|---|
| 출생 | 1938년 8월 9일 (73세) 경상남도 남해군 |
| 학력 | 서울대학교 법학과 |
| 주요 경력 | |
| 국회의장(전) 한나라당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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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원 정보 | |
| 한나라당 (경상남도 양산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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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원 선수 | 6선 (13, 14, 15, 16, 17, 18대) |
| 공식사이트 | |
박희태(朴熺太, 1938년 8월 9일 ~ )는 경상남도 남해에서 태어난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오랫동안 검사로 재직했으며, 1988년 경남 남해군·하동군 선거구에서 민주정의당 소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정계 입문하여 이후 5선을 기록한 한나라당의 대표적인 중진의원으로 알려졌으나, 18대 총선에서 공천을 받지 못해 정치생명에 위기를 맞았다. 2009년에는 와신상담 끝에 경남 양산에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하였고, 이 선거에서 정치신인 송인배에게 고작 3천여표 차의 신승을 거두었다. 김형오의원 후임으로 18대 국회 하반기 국회의장으로 선출되었다.[1] 2012년 2월 9일 돈봉투 등 붉어진 의혹에 대해 책임을 지고, 국회의장직을 사퇴하였다. [2]
목차 |
[편집] 이력
서울대 법학과 출신이며, 13회 고등고시 법학과에 합격했다. 이후 오랫동안 검사로 재직하였다. 1988년 총선에서 민주정의당에 영입되어 고향 남해군이 포함된 남해군·하동군 선거구에 출마, 당선되어 제13대 국회에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하여 이후 제14, 15, 16, 17대 선거에 계속 당선되었다. 1993년 김영삼 정부의 초대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되었으나, 이중국적을 가진 딸이 대학에 특례입학 혜택을 받은 것으로 논란의 대상이 되어 10일만에 사퇴하였다. 초선 때인 1988년 12월부터 당 대변인을 맡았다. 이후 4년 3개월간 대변인을 계속하였다.[3] 대변인 시절에 '정치 9단', '총체적 난국',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스캔들' 등의 정치 조어를 만들어냈다.[3] 17대 의원때는 국회 부의장직을 수행했다. 5선을 기록한 한나라당의 대표적인 중진의원으로 이름을 알렸으나, 2008년 4월 총선에서 한나라당 지도부와의 갈등으로 공천을 받지 못했다. 그 후 2008년 7월 3일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정몽준 의원을 제치고, 한나라당 당 대표로 선출되었다. 2009년 9월 7일 경남 양산 재출마 선언으로 당 대표직을 사퇴하였다. 2009년 10월28일 양산 재선거에서는 민주당이 내세운 친노 후보 송인배에게 쫓기며 고전하다 3천여표 차(박희태 3만801표(38.1%), 송인배 2만7천502표(34.1%))로 가까스로 당선됐다.
[편집] 논란
[편집] 친일파 인적청산 당시 논란
1993년 말부터 1994년 초 사이에 당시 민주당 김원웅 의원이 여야의원 137명의 서명을 받아 반민법의 취지를 이어받은 민족정통성회복특별법안을 제정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강력한 저항에 밀려 무산됐는데, 당시 법사위원장이었던 그가 완강히 심의를 거부하여 아예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4]
[편집] 폭탄주
1983년 가을 춘천지검장 시절 강원지역 기관장 모임에서 맥주잔에 양주를 가득부어 강요하는 군장성들 때문에, 최초로 폭탄주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이 폭탄주 문화가 검찰과 군을 중심으로 대한민국에 광범위하게 퍼졌다. [5]
[편집] 딸 편법 입학 논란
어렸을 때 귀국한 이후로 해외에 나가본 적이 없는 딸이 미국 국적으로 이화여대에 입학해 편법 입학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6]
[편집] 국회의원 혜택
전직 국회의원 혜택과 세비에 관한 발언에 누리꾼 사이에서 논란이 빚어졌다.[7]
[편집] 선관위 디도스 논란
2011년 서울특별시장 보궐선거당시 비서가 디도스에 연루되어 논란이 되었다.
[편집] 전당대회 돈봉투 논란
이 부분의 본문은 2008년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사건 및 의혹입니다.
고승덕 의원이 2008년 전당대회 당시 박희태 후보가 돈봉투을 살포하였다고 폭로하였다. 고 의원 외에도 다른 의원들에게도 광범위하게 살포한 것으로 알려져있으며, 고승덕 의원으로부터 300만원을 돌려받았던 박희태 국회의장 전 비서 고명진씨가 당시 캠프 상황실장이었던 김효재 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에게 돈봉투를 반환했다고 검찰에 진술하는 등 논란이 거듭되었다. 의혹이 거듭되자, 결국 국회의장직에서 사퇴했다. [8]
[편집] 역대 선거 결과
| 선거명 | 직책명 | 대수 | 정당 | 득표율 | 득표수 | 결과 | 당락 |
|---|---|---|---|---|---|---|---|
| 제13대 총선 | 남해군·하동군 | 13대 | 민주정의당 | 46,381표 | 1위 | ||
| 제14대 총선 | 남해군·하동군 | 14대 | 민주자유당 | 49,378표 | 1위 | ||
| 제15대 총선 | 남해군·하동군 | 15대 | 신한국당 | 49,874표 | 1위 | ||
| 제16대 총선 | 남해군·하동군 | 16대 | 한나라당 | 38,615표 | 1위 | ||
| 제17대 총선 | 남해군·하동군 | 17대 | 한나라당 | 34,106표 | 1위 | ||
| 제 18대 국회의원 재보선 | 국회의원(양산시) | 18대 | 한나라당 | 30,801표 | 1위 |
[편집] 참고 자료
[편집] 바깥고리
| 전 임 이정우 |
제42대 법무부장관 1993년 2월 26일 ~ 1993년 3월 7일 |
후 임 김두희 |
| 전 임 강재섭 |
제11대 한나라당 대표 2008년 7월 4일 ~ 2009년 9월 7일 |
후 임 정몽준 (박희태 대표 사퇴로 인한 승계) |
| 전 임 박익주,최치환 |
제13대 국회의원(남해군·하동군) 1988년 5월 30일 - 1992년 5월 29일 민주정의당→민주자유당 |
후 임 박희태 |
| 전 임 박희태 |
제14대 국회의원(남해군·하동군) 1992년 5월 30일 - 1996년 5월 29일 민주자유당→신한국당 |
후 임 박희태 |
| 전 임 박희태 |
제15대 국회의원(남해군·하동군) 1996년 5월 30일 - 2000년 5월 29일 신한국당→한나라당 |
후 임 박희태 |
| 전 임 박희태 |
제16대 국회의원(남해군·하동군) 2000년 5월 30일 - 2004년 5월 29일 한나라당 |
후 임 박희태 |
| 전 임 박희태 |
제17대 국회의원(남해군·하동군) 2004년 5월 30일 - 2008년 5월 29일 한나라당 |
후 임 여상규 |
| 전 임 김양수 |
제18대 국회의원 (양산시) 2009년 10월 29일[9] - 2012년 5월 29일 한나라당→무소속 |
후 임 (현직) |
| 전 임 김형오 |
제18대 국회 2기 국회의장 2010년 6월 8일 ~ 2012년 2월 9일 |
후 임 (미정) |
[편집] 주석
- ↑ 박희태 의원, 18대 후반기 국회의장 선출, KBS뉴스, 2010.6.8
- ↑ 박희태 의장 사퇴 "모든 것 짊어지고 가겠다", SBS뉴스, 2012.2.9
- ↑ 가 나 박희태 지음 "대변인"
- ↑ 다큐인포,《부끄러운 문화답사기》, 북이즈. 2003년(초판), p.388
- ↑ 폭탄주야, 폭탄주야, 넌 어디서 왔니?(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18977&code=115)
- ↑ 박희태 법무장관 딸 대학 편법입학, 한겨레 1993년 3월 3일 15면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editNo=5&printCount=1&publishDate=1993-03-03&officeId=00028&pageNo=1&printNo=1490&publishType=00010&articleId=1993030300289101001)
- ↑ ‘평생 120만원 연금도 모자라 세비 인상까지’ 누리꾼 뿔났다
- ↑ 고승덕 "박희태 측 돈봉투 여러개… 의원실 돌며 '돈배달'", 프레시안, 2012.01.09
- ↑ 10월 28일,재보궐선거에 당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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