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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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건립 연대 1410년 이후
현 소재지 대한민국의 국기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청계천(淸溪川)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남산, 북악산 등에서 발원하여 종로구, 중구, 동대문구, 성동구 등을 거치며 중랑천과 합류한 뒤 한강으로 흘러드는 마른 하천이다. 본래의 이름은 개천(開川)이었으나 일제 강점기에 "청계천"으로 바뀌어 오늘날의 이름이 되었다.

목차

[편집] 역사

일제시대의 청계천

본래 자연하천이었던 청계천은 한양을 서울로 한 조선시대 내내 개거, 준설 등 치수 사업의 대상이었다. 1930년대부터 시작된 복개 사업과 1970년대에 완공된 청계고가도로의 환경 오염 및 노후에 따른 안전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었다.

[편집] 복원 사업

청계천 복원 공사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의 공약사항으로 추진되었으며, 2003년 7월 1일부터 2005년 9월 30일까지 고가도로를 철거하고 복개를 걷어내는 복원 사업이 서울특별시에 의해 추진되었다. 이 사업으로 광화문 동아일보사 앞부터 성동구 신답 철교에 이르는 약 5.8 km의 구간이 복원되어 산책로, 녹지 등이 설치되었다. 복원된 청계천에 흐르는 물은 청계천 본래 지류가 아닌 잠실대교 부근의 자양취수장에서 취수한 한강물과 도심의 지하철역 부근의 지하수를 정수·소독 처리하여 조달한다.

청계천 복원 사업에 대해 환경 문제 등을 이유로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 일례로 경제학자 우석훈은 자신의 저서 《직선들의 대한민국》에서 복원된 청계천을 "인공호수"라며 호되게 비판한 바 있다.

[편집] 다리

청계광장에서 처음 만나는 모전교

모전교에서 시작하여, 고산자교에 이르기까지 22개의 다리가 있다. 이 중 광통교와 장통교, 수표교, 세운교, 새벽다리, 나래교, 맑은내다리, 두물다리는 보도용으로 사용되고, 나머지는 차도, 보도를 혼용하여 사용된다.[1]

[편집] 모전교

청계천에서 처음 만날 수 있는 다리로, 무교동 길에 위치하고 있다. 모전(隅廛)이란 '과일가게'를 이르던 옛말이었다. 모전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모전교로 이름지었다. 1412년 태종 12년 석교로 개축하였고, 태종 때에는 '신화방동구교'라고 부르다가, 영조 연간의 기록에는 모전교로 전해진다.

[편집] 광통교

두번째 다리 광통교

광통방에 있었던 큰 다리였기 때문에 광통교라고 부렀다. 처음에는 대광통교라고 부르다가 광통교란 이름으로 정착되었으며, 정월 대보름에 다리밝기 놀이를 하던 곳으로 유명하였다. 처음에는 토교였다가 1410년 태종 10년 8월에 석교로 만들어진 가장 역사가 오래된 다리이다. 이 다리는 완전히 새로운 돌로 만든 것이 아니라 그 역사적 의미를 기념하기 위해 기존에 남아 있었던 돌을 다리와 석벽에 같이 배치를 하여 재조합하여 만들었다.

[편집] 광교

남대문로의 광교 사거리에 위치를 하고 있으며, 옛 광통방 근처에 넓은 다리라는 의미로 광교로 불렀다.

[편집] 장통교

중부 장통방에 있던 다리라서 장통교 또는 장교라고 부른다.

[편집] 삼일교

삼일로를 연결하기 때문에 삼일교라고 이름 붙였다. 삼일로는 독립선언을 한 탑골공원과 인접한 거리를 기념하여 이름 붙였다.

[편집] 수표교

1441년 홍수에 대비하기 위해 청계천에 수위를 측정하는 수표가 있었는데, 이 수표의 이름을 따서 수표교라고 불렀다.

[편집] 관수교

관수란 수위를 관찰한다는 의미이며, 옛 준천사에서 청계천의 수위를 관측하였다.

[편집] 세운교

세운상가에 연결된다는 의미로 지어진 이름이다.

[편집] 배오개다리

배오개길과 연결되는 다리이다. 옛날 이 고개의 입구에 배나무가 심어져 있었다고 배고개라고 하던 것이 배오개로 되었다.

[편집] 새벽다리

옛 재래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천막의 이미지를 막구조로 적용하여 동대문 재래시장의 역사성과 향수를 연출하였다. 주단과 포목을 팔던 광장재래시장과 인쇄와 지물을 팔던 방산재래시장 등 이른 새벽에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녔기 때문에 상징적으로 이름을 지었다.

[편집] 마전교

마전이란 옛 방신시장 앞에 있던 다리로 부근에 우마를 팔고사는 마전이 있었기 때문에 생긴 유래이다. 근처의 마장동의 이름 유래와 비슷하다.

[편집] 나래교

평화시장 앞에 위치한 다리로, 나비의 힘찬 날개짓을 형상화 하였다. 동대문 의류 상권이 비상하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편집] 버들다리

통일상가 앞에 위치한 다리로, 과거 우간수문 상류에 왕버들이 많았다는 데서 명칭을 인용하였다. 주변에는 평화시장과 동화시장, 광의, 덕운 시장 등의 전통 재래시장이 있었다.

[편집] 오간수교

청계6가 흥인문로에 위치하고 있으며, 원래는 동대문에서 을지로 6가로 가는 성벽 아래 청계천 6가에 있떤 다리이다. 홍예문으로 다섯칸의 다리로 되어 있었다고 하여 오간수다리 또는 오간수문이라고 하였다. 이 오간수문은 물길이 잘 빠져가기 위해 가설한 것인데 조선시대에는 도성 안에서 죄를 지은 자가 도성을 빠져 달아나든가 혹은 밤에 몰래 도성 안으로 잠입하는 사람들의 통로로 곧잘 이용되기도 하였다. 1907년 일제가 청계천 물이 잘 흘러가도록 한다는 미명하에 오간수문을 모두 헐어버릴 때 함께 사라지고 콘크리트 다리로 교체되었다가 후에 성곽이 훼손되는 것과 함께 오늘날에는 그 자취를 찾아볼 수 없다.

[편집] 맑은내다리

인도 전용 다리로, 동평화 상가 앞에 자리를 잡고 있다. 청계천을 순우리말로 바꾼이름으로 청계천을 상징할 수 있는 다리 명칭으로 결정지었다. 이 다리도 날개를 활짝 편 나비의 형상과 힘찬 비상을 나타내는 아치구조로 되어 있으며, 패션 중심의 상징성을 부여하였다.

[편집] 다산교

다산 정약용의 이름을 딴 다산로를 연결하는 다리이다.

[편집] 영도교

인도 전용 다리로, 전통 대청양식을 도입한 이치교이다. 1458년 세조 4년 단종이 왕위를 빼앗기고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로 귀향갈 때, 그의 왕비인 정순왕후 송씨가 이곳까지 나와 영영 이별을 고하였다 하여 영이별 다리 또는 영영건넌다리라는 전설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그 후 정순왕후는 출가하여 일생을 불가에 귀의하였다. 고종흥선대원군경복궁을 중수할 때 석조를 헐어다가 사용하였는데, 후에 나무다리가 놓여졌으나 유실이 잦았다고 전한다.

[편집] 황학교

청계 8가 난계로에 위치하며, 황학동 도깨비 시장의 이름을 따서 황학교라고 이름 지었다. 옛날 이곳 논밭에 황학이 날아왔었다는 전설에서 황학동이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편집] 비우당교

새말길에 위치하며, 조선 세종 때 대표적인 청백리로 알려진 하정 유관 선생 댁이 이 다리 근처였는데, 비가 오늘 날에도 방안에서 우산을 받쳐들고 비를 피했다고 알렸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편집] 무학교

조선 조 한양을 도읍으로 지정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무학대사의 이름을 딴 무학로를 잇는 다리라는 의미에서 무학교라고 이름지었다.

[편집] 두물다리

두 개의 물이 만나는 다리라는 의미로, 청계천의 지류가 합류하던 지점에 만들어진 다리이다. 다리의 모양도 두 개의 물이 만나는 형상을 이루었다.

[편집] 고산자교

고산자 김정호의 호를 따서 이름 지은 고산자로를 잇는 다리라서 고산자교라고 이름지었다.

[편집] 부조물

[편집] 스프링

이 부분의 본문은 소라탑입니다.
올덴버그가 설계한 스프링-청계광장

청계천 입구에 위치하며, 스웨덴 출신의 미국 팝아티스트 클래스 올덴버그가 설계한 작품으로, KT가 34억의 비용을 들여 서울시에 기증한 작품이다. 높이 20cm, 폭 6m, 무게 9t이다. 일부에서는 한국적인 미가 결여되어 있고, 주변에 어울리지도 않는다는 비판과 풍수지리학적으로도 좋지 못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2]

[편집] 반차도

청계천 장통교 옆 벽면에 타일로 설치된 벽면 예술이다. 172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을 행차하는 것을 그린 반차도(班次圖)를 타일로 옮겨놓은 것이다.[3]

[편집] 갤러리

[편집] 교통

[편집] 버스

[편집] 지하철

[편집] 같이 보기

[편집] 청계고가 철거 관련

[편집] 바깥 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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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주석

  1. 다리와 조형물, 22개 다리. 서울시. 2008년 12월 2일에 확인.
  2. 조창현 기자 (2008년 10월 23일). 청계광장 스프링은 국운에 악영향 옮겨야. 동아일보. 2008년 12월 2일에 확인.
  3. 구룡초부 (2006년 12월 11일). 화성행차를 따라서 (1) 반차도. 2008년 12월 2일에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