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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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光化門)은 경복궁의 남쪽에 있는 정문이다. ‘의 큰 덕(德)이 온 나라를 비춘다’는 의미로 광화문(光化門)이라 이름 지었다. 1395년에 세워졌으며, 2층 누각인 광화문 앞의 양쪽에는 한 쌍의 해태 조각상이 자리잡고 있다. 광화문의 석축부에는 세 개의 홍예문이 있다. 가운데 문은 이 다니는 문이고, 나머지 좌우의 문은 신하들이 다니던 문이었다[출처 필요]. 광화문의 천장에는 주작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광화문은 전쟁으로 두 차례 소실되었으며, 월대와 해태 등을 제외한 일부 복원공사가 완료되어 2010년 8월 15일에 공개되었다.

역사[편집]

광화문과 해태상 (1900년경)

임진왜란경복궁과 함께 방화로 소실되었으나, 조선 후기에 흥선대원군(헌의대원왕)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재건되었다.

광화문은 일제강점기에 총독부 청사를 지으면서 그 위치가 옮겨졌고, 한국 전쟁때 목조부분이 불에 타 없어졌다[1]. 이후 1968년에 석축은 그대로 두고 현판은 새로 만들고 상부는 철근 콘크리트를 사용하여 자리는 경복궁의 본래축이 아닌 총독부건물의 축에 맞춰 재건축하였으나[2], 건축 전부터 겉모양만 복원하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지적이 있었다.[3]

1995년문민정부에서는 2003년부터 광화문을 철거하고 2009년까지 본래의 위치에서 석축 위의 목조 건물로 복원할 것을 발표하였다.[4]

2006년문화재청 주도의 경복궁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기존의 광화문을 고종 중건기 모습으로 복원하기 위해 철거 · 해체하였다.[5] 광화문 복원 사업은 2010년 10월에 완료될 예정이었으나[6] G20 서울 정상회의의 개최로 인해 앞당겨져 8월 15일 광복절에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다.

광화문 편액(扁額)은 조선 후기 경복궁 중건 시 훈련대장(訓鍊大將)으로 영건도감 제조(營建都監 提調)를 겸하여 서사관(書寫官)으로 광화문 편액을 쓴 임태영 장군의 서체를 원형 복원한 것이다.

찾아가는 길[편집]

같이 보기[편집]

주석[편집]

  1. 광화문 복원(光化門 復元), 《동아일보》, 1966.2.17.
  2. 광화문(光化門) 복원, 《경향신문》, 1968.12.11.
  3. 광화문 복원(光化門 復元)에 이론(異論), 《경향신문》, 1968.3.20.
  4. 광화문(光化門)도 제모습 찾는다, 《경향신문》, 1995.2.28.
  5. 경복궁 창건 당시 광화문 터 보존한다, 세계일보, 2007년 12월 24일
  6. 경복궁 광화문 복원 상량식…내년 10월 복원 완료, 뉴시스, 2009년 11월 26일

좌표: 북위 37° 34′ 33.76″ 동경 126° 58′ 37.27″ / 북위 37.5760444° 동경 126.9770194° / 37.5760444; 126.97701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