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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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희룡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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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 | 1964년 2월 14일 (49세) |
| 거주지 | |
| 국적 | |
| 학력 | 서울대학교 공법학과 법학사 한양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 뉴미디어 석사 |
| 직업 | 정치인 |
| 정당 | 새누리당 |
| 종교 | 개신교 |
| 배우자 | 강윤형 |
| 자녀 | 2녀 |
| 웹사이트 | http://www.goodone.or.kr |
원희룡(元喜龍, 1964년 2월 14일 서귀포 ~ )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자 새누리당 서울시 양천구 갑 소속 제16,17,18대 국회의원이다. 제주도 서귀포 태생으로, 1982년 대입학력고사에서 332점으로 전국수석을 차지하고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수석 입학하여 매스컴의 주목을 받았다. [1] 법대 재학중 각종 학내시위에 참가했으며 1983년에는 시위과정에서 경찰에 연행되어 유기정학을 당하기도 했다. 이후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2]
1989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공법학과 졸업 후, 1992년 10월 제34회 사법시험에 수석합격했으며, 제24기 사법연수원을 5등으로 수료했다. [3] 1995년에 서울지방검찰청의 검사로 임용된 이후, 1997년 2월에는 수원지방검찰청 여주지청 검사로 임용됐다. [4], 1998년 3월에는 부산지방검찰청 검사로 임용됐으나,[5] 임관 3년 만인 1998년 8월 22일 부로 검사직을 사임했다.[6] [7]
2000년에 양천 갑 지역구의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됐다. 2003년에는 한양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 뉴미디어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땄다.
목차 |
생애[편집]
제주도 서귀포시에서 태어나서 초, 중, 고를 제주도에서 마쳤다. 제주도 제일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학창 시절 내내 전국 수석을 지키며 기대를 모아오던 중, 전국 학력고사까지 수석을 기록하며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 당시 신문 인터뷰에서 법사회학자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던 원희룡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한 후 신군부독재로 인해 민주주의가 사라진 시대적 상황 때문에 진로를 바꿨다.
주체사상이 아닌 노동자들 입장에서 함께 하는 노동운동을 하며 살겠다고 결심하고 야학과 노동운동에 투신한 원희룡은 90년 동구권의 몰락을 보고 사상적으로 전환을 하게 됐다고 고백했다. 이후 사회인으로서의 삶을 모색하던 중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것이 가장 빠르겠다고 생각하고 사법시험에 응시, 준비기간 2년 만에 다시 수석으로 합격하며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검사 시절 피라미드 판매 조직 소탕 등에 열중하다가 경제적인 이유로 검사를 그만두고 변호사를 개업했다. 그리고 1999년 즈음 당시 젊은 피 수혈에 열을 올리던 한나라당과 민주당 사이에서 합리적이고 개혁적인 보수를 이루겠다고 천명하며 한나라당에 입당, 2000년 한나라당 16대 양천 갑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그 이후 남경필·원희룡·정병국의 줄임말인 남·원·정으로 대표되는 당내 소장 개혁파의 운동을 주도하면서 당 지도부와 부딪히면서 정치 경력을 이어왔고, 2004년 총선 직후에 치러진 당 최고위원 경선에서는 박근혜 대표에 이어 2위로 최고위원에 선출됐다. 당 내에서 이념 공세에 시달리기도 했으나 전체적으로 개혁적인 성향이 있기는 하나 한나라당 내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중도 보수 성향이었다는 점에서 당에서 제명된 고진화 의원과는 차이가 있다.
제14대 한나라당 대표 출마[편집]
원희룡은 2011년 6월 20일 제14대 한나라당 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하는 전당대회에 2012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도전하여[8] 대의원 유효 투표 11만 4372표 명 중 2만 9086표를 얻어서 4위로, 최고 위원에 선출됐다.[9]
발언 논란[편집]
무상급식에대한 주장 번복[편집]
2011년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에 힘실어줘야[편집]
2011년 6월 24일 원희룡은 라디오 인터뷰를 통하여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라고 밝혔다.[10]
2010년 무상급식 전면 찬성[편집]
원희룡은 2010년 선별급식을 당론으로 정한 한나라당의 당론과 달리 무상급식에 대하여 전면 찬성 입장을 밝혔다.[11]
박근혜의 사학법 개정을 둘러싼 이념 투쟁은 병[편집]
2006년 1월 3일 발간된 한국의 주간지인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2006년 당시 한나라당 최고위원이던 원희룡은 2006년 당시 한나라당 대표이던 박근혜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밝혔다.
박근혜 대표의 사학법 개정을 둘러싼 이념투쟁에 대해 병이라고 생각한다., 박 대표가 사학법 문제를 전교조의 사학 장악 음모와 국가 정체성 문제로 규정한 것과 관련하여서는 "예부터 등장한 편협하고 경직된, 시대에 맞지않는 논리다. 박 대표는 편협한 국가 정체성 이념에 비춰 자기 틀에 안 맞으면 전부 빨갱이로 본다", 대표가 민생에 고민이 많은 지 모르지만 막상 그것으로 승부를 걸 생각은 없다", "연말만 되면 색깔론으로 강경 보수층에 결집을 요구하며 극단적 대결로 몰아가는 것은 결국 겉 패션과 달리 그 리더십의 저수지 밑바닥에는 과거 회귀적, 대결적, 관념적 이념틀이 자리잡고 있다. 나머지는 그저 패션"[12]
이에 대하여 2006년 당시 한나라당 대표이던 박근혜는 2006년 1월 5일 오전 염창동의 한나라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원희룡에게 공개 경고했다.[13]
비판[편집]
1994년 노상방뇨 시비[편집]
1994년 9월 15일 자정 무렵, 원희룡과 그의 동료는 술에 취한 상태로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동의 모 가게 앞 도로에서 노상방뇨를 하다, 이를 나무라는 가게 주인을 폭행하고, 인근 파출소에서 "우리 사법연수원생들을 우습게 보느냐"며 기물 등을 부쉈다. [14] 이에 서울성북경찰서는 원희룡과 그의 동료를 공무집행방해및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혐의로 입건조사했다.[15]
2007년 대선 후보 경선을 앞두고, 원희룡은 "1994년 당시 노상방뇨 시비로 인해 기소유예 판정이 한때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모든 것을 철저하게 검증받을 생각이다"고 긍정적인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16]
그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 “ | 1994년 사법연수원을 마칠 무렵 이후 진로를 놓고 동기들과 저녁모임을 가졌는데 길어졌다. 노상방뇨를 실제로 한 것은 아니고 그렇게 오해할 수 있는 상황에서 동네 주민이 우리들을 전부 파출소에 신고해서 붙들려가서 조사를 받았다. 나와 다른 한명이 대표로 조사를 받았는데 그 과정에서 경찰관에게 항의하고 시비해서 소란이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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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로거와의 대화, 원희룡 의원,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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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배 사건[편집]
2007년 1월 2일 '이제 그만 갈등과 증오의 역사를 녹여가야 한다'며 전두환 전 대통령을 방문하고[18][19], 이어 3일에는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집을 방문했다. 각 전직 대통령에게는 황태가 전달됐다. 애초에 의미는 전직 대통령들을 모두 방문하는 과정에서 얼었다 녹았다 하는 식으로 제작되는 황태를 건넴으로서 화합의 역사를 열어 나가자는 의도였다. 그러나 전두환에게 세배를 한 것이 네티즌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이에 원희룡은 1월 4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 사건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 “ | 과거의 상처가 아직 너무나 생생하고, 이를 받아들일 여건이 안 됐다고 생각하시는 분들께, 오해를 불러 일으켜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죄송합니다. | ” |
평가[편집]
- 그는 세계경제포럼이 선발한 '차세대 지도자'(YGL.Young Global Leader)로 선정됐다.[20]
-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을 완주하여 '한나라당의 희망이자 미래' 라고 타 후보들로부터 평가받았다.[21]
- 시사저널이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분석한 결과 그는 차세대 정치리더 1위로 선정됐다.[22]
- 부경대학교 교수 이상윤이 쓴 《안철수 등의 한판승부 - 박근혜 벗기기》에 씌여진 원희룡에 대한 평가에 따르면, 원희룡은 박근혜와 사학법개정을 둘러싸고 언쟁을 벌이는 등 보수진영 한나라당에서 나름대로 소장개혁파로서 제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23]
경력[편집]
- 16, 17, 18대 국회의원(한나라당, 양천구 갑)
- 2004년 ~ 2006년 한나라당 최고위원
- 2007년 8월 20일,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경선에서 3위로 탈락[24]
- 국회 지식경제위원회(구 산업자원위원회) 위원
- 저탄소녹색성장국민포럼 대표
- 2009년 5월 11일 한나라당 쇄신특별위원회 위원장
- 고 노무현 전대통령 장의위원
저서[편집]
역대 선거 결과[편집]
| 선거명 | 직책명 | 대수 | 정당 | 득표율 | 득표수 | 결과 | 당락 |
|---|---|---|---|---|---|---|---|
| 16대 총선 | 국회의원(양천구 갑) | 16대 | 한나라당 | 52,099표 | 1위 | ||
| 17대 총선 | 국회의원(양천구 갑) | 17대 | 한나라당 | 69,056표 | 1위 | ||
| 18대 총선 | 국회의원(양천구 갑) | 18대 | 한나라당 | 49,847표 | 1위 |
주석[편집]
- ↑ “82학번 원희룡변호사 “불행한 세대였지만 자부심 느낍니다””, 《조선일보》, 1999년 3월 2일 작성. 2009년 5월 26일 확인.
- ↑ “대학시절 파란점철… 운동권 출신/사시 수석영예 원희룡씨”, 1992년 10월 24일 작성. 2009년 5월 17일 확인.
- ↑ 홍헌표 기자. “24기사법연수생 어제 수료식”, 1995년 2월 17일 작성. 2009년 5월 18일 확인.
- ↑ “인사”, 1997년 2월 23일 작성. 2009년 5월 18일 확인.
- ↑ “검사 536명 인사”, 1998년 3월 28일 작성. 2009년 5월 19일 확인.
- ↑ 이항수 기자. “엘리트검사 3명 imf로 ‘사표 ’”, 1998년 8월 20일 작성. 2009년 5월 19일 확인.
- ↑ “검찰 인사 명단”, 1998년 8월 22일 작성. 2009년 5월 26일 확인.
- ↑ “<원희룡 '총선불출마' 선언에 평가 엇갈려>(종합)”, 《연합뉴스 정치》, 2011년 6월 20일 작성.
- ↑ “홍준표, 한나라당 새 대표에…2위는 유승민”, 《프레시안 정치》, 2011년 7월 4일 작성.
- ↑ “원희룡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에 힘실어줘야"”, 《조선일보 정치》, 2011년 6월 24일 작성.
- ↑ “무상급식 찬성 원희룡, "대충 짭밥 먹이자는 거 아니다"”.
- ↑ “원희룡 "박대표 사학법 이념투쟁은 병"”, 《연합뉴스 정치》, 2006년 1월 4일 작성.
- ↑ “원희룡최고위원에게 공개 경고하는 박근혜대표”, 《연합뉴스 정치》, 2006년 1월 5일 작성.
- ↑ [세계일보] 1993-09-15 (사회) 가십 23면 판 403자
- ↑ 원희룡의 ‘개혁 마케팅’에 관한 우울한 명상.
- ↑ 강순옥 기자. ““한나라당의 최대 적은 한나라당””, 《중도일보》, 2007년 1월 19일 작성. 2009년 6월 8일 확인.
- ↑ "블로거와의 대화, 원희룡 의원".
- ↑ 가 나 성연철, “원희룡 “‘전두환 세배’ 죄송하다” (한국어)”, 《한겨레》, 2007년 1월 4일 작성. 2009년 6월 9일 확인.
- ↑ 김재용, “원희룡, 전두환 세배 논란 (한국어)”, 《MBC 뉴스》, 2007년 1월 3일 작성. 2009년 6월 9일 확인.
- ↑ “원희룡·이지현 'WEF 차세대 리더' 선정”, 《조선일보》, 2005년 1월 7일 작성. 2009년 6월 9일 확인.
- ↑ 권성훈, “경선 완주 원희룡·홍준표 의원…정치행보에 '힘'”, 《매일신문》, 2007년 8월 21일 작성. 2009년 6월 9일 확인.
- ↑ 소종섭, “(정치)‘뜨거운 젊은 피’들 뚝심과 패기로 구태 정치 벗긴다”, 《시사저널》, 2008년 12월 17일 작성. 2009년 6월 9일 확인.
- ↑ (한국어) [2011년 12월 15일] 《안철수 등의 한판승부 - 박근혜 벗기기》. 높은새. ISBN 9788993989045
- ↑ 당시 경선 최종 순위: 1위 이명박, 2위 박근혜, 3위 원희룡, 4위 홍준표
바깥 고리[편집]
| 전 임 (양천구 갑)박범진 (양천구 을)김영배 |
제16대 국회의원(양천구 갑) 2000년 5월 30일 - 2004년 5월 29일 한나라당 양천구 을: 오경훈 |
후 임 (양천구 갑)원희룡 (양천구 을)김낙순 |
| 전 임 (양천구 갑)원희룡 (양천구 을)오경훈 |
제17대 국회의원(양천구 갑) 2004년 5월 30일 - 2008년 5월 29일 한나라당 양천구 을: 김낙순 |
후 임 (양천구 갑)원희룡 (양천구 을)김용태 |
| 전 임 (양천구 갑)원희룡 (양천구 을)김낙순 |
제18대 국회의원(양천구 갑) 2008년 5월 30일 - 2012년 5월 29일 한나라당 양천구 을: 김용태 |
후 임 (양천구 갑)길정우 (양천구 을)김용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