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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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여옥
출생 1959년 4월 9일(1959-04-09) (55세)
대한민국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거주지 대한민국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학력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 학사
서강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정치학 석사
직업 작가, 언론인, 방송인, 정치인
정당 국민생각
종교 천주교
배우자 이상만
웹사이트 http://www.oktalktalk.com

전여옥(田麗玉, 1959년 4월 9일 ~ )은 제17대 국회에서는 비례대표로 활동했고 한나라당 대변인을 지냈다. 작가로 활동하면서 일본과 마초이즘에 대한 비판으로 이름이 알려졌으며, 언론인으로도 활동했다. 2000년대 정계 입문 후에는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노무현 정권 당시 정부와 여당에 대한 강한 비판으로 반대자를 생성했다. 제18대 총선거에서 한나라당 영등포구 갑의 한나라당 후보로 당선됐다. 2012년 3월에는 당의 공천과정에 반발, 탈당한 뒤 국민생각에 입당했다.

생애[편집]

약력[편집]

경력[편집]

  • 한국방송공사에 입사하여 1981년부터 1994년까지 기자로 활동했다.
  • 1991년 1월부터 1993년 8월까지는 도쿄특파원이었다. 특파원시대에 쓴 독설적 일본론 《일본은 없다》를 냈으며 베스트셀러가 됐다.
  • 일본은 없다》의 표절의혹을 제기한 원작가인 유재순 제이피뉴스 발행인 등 5인에 대해서 손해배상으로 5억원을 청구하였지만, 2012년 5월 18일 대법원 확정판결로 유재순씨의 레포트를 표절한 것이 인정되어 패소했다.[1][2] 이에 대해 전여옥은 '표절이 아닌 아이디어 인용'일 뿐이라고 변명하였다.[3]

정계 입문 초기[편집]

  • 2004년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 2004년 5월 제17대 국회의원에 비례대표로 당선됐다.
  • 2004년 7월 제17대 대한민국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위원
  • 2005년 6월 2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에 출연하여 차기 대통령은 대학 나온 사람을 뽑아야 한다고 주장하여 논란을 일으켰다.[4]
  • 2006년 2월 22일 당내행사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을 가리켜 치매노인이라고 비하하여 논란을 일으켰다.[5]

정치 활동[편집]

제18대 국회의원 활동[편집]

대한민국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영등포 갑에 출마해 당선된 이후 통합민주당이 공직선거법 위반(허위 학력 및 경력 기재 등)으로 고발했지만 대법원의 원고패소 판결로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10]

2008년 5월 8일 촛불 시위에 대해 '악령이 출몰하는 사회'(칼 세이건의 문구)로 비유, 시위대를 비난하는 논평을 냈다.[11]

민가협의 집단 폭행 사건[편집]

2009년 2월 27일 대한민국 국회 본관 1층 복도에서 동의대학교 사건에 기인한 그의 '민주화 운동 관련자 명예 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 개정 추진으로 항의차 국회를 방문한 부산 민가협 대표 이 모 할머니에게 폭행당했다.[12] 당시 국회는 국회 사무총장 박계동이 국회 본청 출입제한조치를 한 시점이었다.[13] 폭행 이후 전여옥은 쓰러졌고 병원으로 이송됐다. 전여옥 의원측에서는 "집단에게 폭행당했다"고 주장했으며, 석방대책위 측에서는 "사건은 불과 20초 동안 일어났으며 집단폭행은 없었다"고 주장했다.[12] 가해자 이모씨는 밀쳤지만 때리지는 않았다며 혐의 사실을 전면 부인했고, 민주화운동정신 계승 국민연대(국민연대)도 28일 성명서를 통해 전 의원이 사건을 왜곡하고 있다며 경찰이 확보한 CCTV 공개를 요구했다.[13]

전여옥이 민가협 측에게 구타당할 당시 목격자들이 있었으나 말리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14] 당시 국회에 견학온 한 고등학생이 사건 장면을 핸드폰으로 촬영한 동영상이 있다고 알려진 뒤, 동영상이 수사기관에 확보되어 경찰이 분석중에 있다.[15] 서울 순천향병원에서는 한겨레 등 언론사와의 기자회견에서 전여옥이 전치 8주의 상해를 입었다고 밝혔다.(최초3주진단 1주일후 8주로 변경됨) [16]

또한 같은 날 민가협 등에서 가해자들에 대한 구속이 부당하다며 제기했던 구속적부심은 기각됐다.[17] 또한 경찰은 전여옥 폭행 용의자 4명에 대해 10일까지 경찰에 출석하도록 통보했다. 앞서 5일에 용의자 중 한 명이었던 배씨(34, 여)는 혐의점을 찾지 못해 귀가 조치된 바 있었다.[18] 일부 네티즌들은 전여옥 폭행사건에 대해 "'전치 8주지만 부상은 경미하다'고 밝힌 의료진의 발표를 이해할 수 없다", "70대 할머니가 전치 8주의 상해를 입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는 등의 의혹을 제기했다.[19] 석방대책위 측에서는 경찰에 국회 CCTV 화면 공개를 요구했으나, 경찰측에서는 CCTV 화면이 없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대책위 등에서는 "경찰이 객관적 증거도 내놓지 못하면서 전의원 주장만 따른다"고 비판했다.[13][20] 전여옥은 바로 병원으로 입원했다.

한편 한나라당 공성진 의원이 이 사건을 "국회의원의 공무집행을 방해한 테러"라고 규정했다. 반면 창조한국당 유원일 의원이 용산참사 진상조사중 폭행당한 사건에 대해서는 "경찰의 공무집행을 방해한 것이며, 당시 경찰들은 그가 국회의원인지 몰랐다"고 주장했다. 이에 유원일 의원은 진상조사는 국회의원의 법률상 직무이며, 처음부터 경찰에게 국회의원임을 밝혔다며 강하게 항의했다.[21]조중동이 이번 사건에 대해 지나치게 편향적인 보도를 한다는 비판도 제기됐다.[22] 2009년 5월 30일 법원은 전여옥 의원을 폭행한 민가협 공동대표 이모씨와 조모씨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법원은 사안이 무거우나 초범인 데다 공탁금 500만 원을 맡긴 점, 68세의 고령 등을 참작했다고 밝혔다.[23]

비판과 논란[편집]

6·15 선언 폄하[편집]

"김정일이 껴안아 주니깐 (김대중 전 대통령이) 치매 든 노인처럼 얼어서 서 있다가 합의한 게 6·15 선언"이라고 비난했다.[24] "6.15 선언은 실패라고 이야기한 것은 사실이다. 전쟁이 끝난다고 했는데 핵무기가 나왔으니 실패라고 볼 수밖에 없다. 공항에서 열렬히 환영하는 것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흥분해 자구를 제대로 보지 못한 것 같다는 말 정도를 했을 뿐이다."라고 해명했다.[25]

학벌주의 옹호 논란[편집]

2005년 6월 2일, 전여옥이 CBS 라디오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에 출연하여 “국민의 학력 형태도 대학 졸업자가 60%이기 때문에 다음 대통령은 대학을 다닌 경험이 있는 분이 적절하지 않나 생각한다”라고 말했다.[26]

표절 논란[편집]

전여옥은 2007년, 자신의 대표적인 베스트셀러인 《일본은 없다》의 표절 의혹을 제기한 오마이뉴스 기사[27] 와 관련하여, 제이피뉴스 발행인 유재순과 기사를 작성한 오마이뉴스의 박철현 기자, 편집장 정운현, 오마이뉴스 대표 오연호, 그리고 인터넷 정치평론 사이트인 서프라이즈의 논객 김동렬 등 5명을 상대로 낸 5억 원의 손해배상 명예훼손 손배청구의 소를 제기했으나 패소했다.

재판부는

전씨는 친하게 지내던 유재순씨가 일본에 대한 책을 출간하려고 초고를 작성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유씨로부터 들은 내용을 무단으로 사용하거나 인용해 《일본은 없다》의 일부분을 작성했다고 보인다. … 이 같은 결론이 유씨와 가까운 증인들의 진술에 근거하기는 하지만 책이 출간된 지 10년이 넘어 유씨의 취재 자료나 초고가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유씨 측 증거가 전씨 측 것보다 더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 오마이뉴스의 기사 및 칼럼은 전체적으로 진실한 사실로 볼 수 있고 공익성이 인정되므로 전씨의 손해배상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라고 설시하여 전여옥이 타인의 아이디어를 무단으로 인용했음을 인정했다.[28]

전여옥은 1심에 불복하여 항소했으나, 2010년 1월 13일 다시 패소했다. 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 민사13부(부장판사 여상훈)는 13일 전 의원이 <일본은 없다>에 표절 의혹을 제기한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와 르포작가 유재순을 상대로 낸 5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해 1심과 같이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전씨는 유씨가 일본 사회에 관한 책을 출간할 예정이라는 사정을 알면서도 그로부터 들은 내용을 소재로 사용, 책의 일부를 썼다고 볼 수 있다

라고 설시했다. 대법원에서도 패소했다.[29]

노숙자 정리 파문[편집]

2008년 3월 27일 18대 국회의원 선거 유세 도중 노숙자를 정리하겠다 는 발언이 파문이 되기도 했다.[6][30][31] 종교단체와 인권단체 등은 노숙자들에게도 인권이 있다 하며 발언 내용을 비판했다.[6][30][31] 한편 박사모 대표 정광용 등은 그를 퇴출시켜야 한다며 비판하기도 했으며, 네티즌들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31]

학력 의혹[편집]

2008년 4월 민주당 후보자였던 김영주는 전여옥의 허위 학력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32][33] 김영주는 그가 공식유세기간동안 사용한 공보물에 허위학력을 기재했다고 주장했고, 사실에 대한 검찰 고발, 당선·선거소송 등 법적으로 보장된 모든 방식으로 18대 총선 영등포갑지역의 선거 무효와 부당성을 입증할 계획이라 발표했다.[34]

김영주 등이 주장한 그의 위법사항은 학력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 선거공보물의 위법, 허위경력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 등이며 '학력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를 들었다.[34][35] 이대 정치학과 박사과정은 5학기 이상을 등록하고 논문자격시험을 통과해야만 최소 수료가 되는 과정”이라며[34][35] “전 의원은 예비후보자 홍보물과 후보자 공보물을 비롯 홈페이지에 자신의 학력사항으로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 박사과정 4학기 마침’으로 표기했다”며 “선관위의 유권해석, 법원 판례로 볼 때 이는 명백한 선거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34][35] 또한 인터넷 홈페이지와 예비후보자 홍보물, 후보자 공보물, 명함 등 홍보물에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일본특사’라고 표기한 것 역시 김영주는 허위사실이라 하며 외교통상부가 국회에 제출한 ‘대통령 당선인 특사관련 자료’ 문서에는 전 당선인은 분명히 이상득 일본 특사의 수행원으로 기재되어 있다며 허위사실 공표한 것으로 공직선거법 제250조 위반에 해당된다고 주장했다.[35] 하지만 그에 따른 판결은 공직선거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박근혜와의 결별[편집]

2007년 4월 "박근혜 대표 주변사람들은 무슨 종교집단같다"고 발언했을 때 그의 변심은 이미 예고됐었다. 대변인으로 '박근혜의 입'이라 불리던 전여옥 의원이 '배신'했다. 전여옥은 2007년 7월 12일 여의도 당사와 이명박 캠프 사무실에서 잇따라 기자회견을 갖고 "이명박 전 시장을 돕는 길만이 정권교체의 지름길이라 확신한다"며 이명박 후보 지지를 공개 선언했다. 그는 "박 전 대표와 함께 간다면 편할 수도 있었겠지만 5년 뒤 과연 국민이 어떤 평가를 내릴까를 생각했다"는 말로 박 전 대표와의 결별이유를 설명했다.[36] 박사모에서는 전여옥 의원을 "표절과 배신의 여인"으로 규정한 뒤, "정치인이 배신을 밥 먹듯 하는 것은 자신의 신념에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 그 피해는 고스란히 그 사람을 찍어 준 영등포 구민이 입게 된다"며 낙선운동을 하면서 당위성을 주장했다.[37]

언론에서는 만평을 통해 전여옥 의원의 '변절'을 풍자하고 나섰다.[38]

세종시 되돌리자 발언[편집]

2009년 11월 9일 전여옥은 불교방송 '김재원의 아침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한나라당 지도부는 행정도시건설특별법이 나라를 위해 옳지 않은 것이지만, 이 법에 반대할 경우 충청권 의원들이 다 탈당하겠다고 하는 등 위기의식을 느껴 일단은 합의를 해주고 정권을 잡으면 되돌리자는 아주 쓰라린 선택을 했다고 본다”라고 주장했다.[39]

탈당, 그리고 낙선[편집]

전여옥은 국민생각 소속으로 전국구 비례대표로 출마하여 추천 1순위의 배번을 받았으나 국민생각은 전국구 투표에서 득표율이 너무 저조하여 전국구에서 단 한 명도 당선되지 못했다. 또한 지역구에서 역시 단 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하지 못한 데다가 2%의 최소지지율마저 채우지 못한 0.73%의 지지율을 얻은 것에 그치는 바람에 전여옥은 낙선되었으며 국민생각은 정당등록이 취소되었다.

자사고 '사배자' 전형 자녀 입학[편집]

전여옥의 아들은 자사고인 장훈고 지원자격에 미달되는 성적이었지만 다자녀 가정자녀라는 점을 이용해 2010년 사배자(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에 지원했고, 합격했다. 전 전 의원은 선거에서 이 고등학교를 자사고로 전환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어 당선됐고, 자사고로 전환된 첫해에는 입학식에 귀빈으로 참석키도 했다. 자사고에 입학했던 아들은 2012년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자퇴했다.[40]

역대 선거 결과[편집]

선거명 직책명 대수 정당 득표율 득표수 결과 당락
17대 총선 국회의원(비례대표) 17대 한나라당 35.8% 7,613,660표 비례대표 7번 비례대표 국회의원 당선
18대 총선 국회의원(서울 영등포구 갑) 18대 한나라당 43.8% 35,151표 1위 영등포구 국회의원 당선
제19대 총선 국회의원(비례대표) 19대 국민생각 0.7% 156,241표 비례대표 1번 낙선

저서[편집]

  • 《일본은 없다》 (1995)
  • 《여성이여 테러리스트가 되라》 (1995)
  • 《여성이여 느껴라 탐험하라》
  • 《간절히 @ 두려움없이》
  • 《대한민국은 있다》
  • 《폭풍전야》 (1,2권)
  • 《삿포로에서 맥주를 마시다》(2003)

같이 보기[편집]

가족[편집]

그는 KBS 재직 당시, 연애를 통해 남편 '이상만'씨를 만났음을 자신의 책인 <여성이여, 테러리스트가 되라> 에서 밝힌바가 있다. 연애 당시 이상만씨는 유부남이었고 전처와 이혼 후 전여옥과 결혼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파문이 일기도 했다.

바깥 고리[편집]

주석[편집]

  1. '표절시비' 전여옥, 언론 상대 손배訴 대법서 패소 뉴시스 2012.5.18
  2. 전여옥, 표절 책으로 얼마나 벌었나 했더니… 한국일보 2012.5.18
  3. 전여옥 “표절 아니라 아이디어 인용일 뿐” 미디어오늘 2012.5.18
  4. "전여옥 차기대통령 대졸자론 논란", 2005년 6월 3일 작성. 2005년 6월 3일 확인.
  5. "전여옥 DJ 발언에 우리·민주당 발끈", 2006년 2월 24일 작성. 2006년 2월 24일 확인.
  6. 노컷뉴스
  7. 박사모 "전여옥 퇴출 위해 민주당 지지" - 머니투데이:투자뉴스
  8. 55개 국회의원연구단체 명단 - 오마이뉴스
  9. [쿠키뉴스] 갓 구워낸 바삭바삭한 뉴스
  10.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 의원직 유지"", 《법률신문》, 2008년 11월 14일 작성. 2009년 3월 5일 확인.
  11. "전여옥,'광우병 논란,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프리존뉴스》, 2008년 5월 8일 작성. 2009년 3월 5일 확인.
  12. "전여옥, 국회서 폭행 당해", 《오마이뉴스》, 2009년 3월 4일 작성. 2009년 3월 6일 확인.
  13. 전여옥 폭행 사건, '진실게임' 양상 시사이슈 2009년 03월 01일
  14. 전여옥 폭행사건, 봐도 모른 척? 시사인 2009년 03월 04일
  15. "검찰, '국회 폭력사건' 수사 속도전‥관련자 줄소환", 《MBC》, 2009년 3월 4일 작성. 2009년 3월 5일 확인.
  16. 주치의 “전여옥 의원 8주 치료 필요…마비성 상사시”- 한겨레 2009-03-06
  17. 법원 "민가협 대표, 구속이 적법하다"- 노컷뉴스 2009-03-06
  18. '전여옥 폭행' 용의자 재소환 통보-아시아투데이 2009-03-06
  19. "할머니가 원더우먼이냐?" vs "전의원 테러 당했다" - 노컷뉴스 2009-03-06
  20. "경찰, '전여옥 폭행' CCTV 왜 공개 못하나" - 프레시안 2009-03-02
  21. "전여옥 사건은 일반인 테러…유원일 사건은 공무집행방해"? -프레시안 2009-03-06
  22. "전여옥 폭행사건과 동아일보", 《경향신문》, 2009년 3월 2일 작성.
  23. [1] 동아일보
  24. 전여옥 의원, 4년 전 '100분토론'을 잊었나요? - 오마이뉴스
  25. 전여옥, 'DJ 치매노인' 막말 파문
  26. "다음 대통령, 대학 나온 사람이 돼야" - 한국일보, 2005년 6월 3일.
  27. 박철현 (tetsu) (2004년 6월 17일). "감옥갈 각오로 '표절' 진상 밝혀낼 것" [일본 현지인터뷰] 유재순씨가 밝힌 <일본은 없다> 표절의혹. 2010년 1월 16일에 확인.
  28. "`전여옥 `일본은 없다` 일부 무단 인용`", 《중앙일보》, 2007년 7월 12일 작성.
  29. "`전여옥, '표절 재판' 항소심에서도 패소`", 《뷰스앤뉴스》, 2010년 1월 13일 작성.
  30. 프런티어타임스
  31. 시사1번지 폴리뉴스
  32. 김영주,'전여옥 의원의 학력,경력사항은 허위사실입니다' :: 네이버 뉴스
  33. 4·9 끝났지만… 고소·고발 이제부터 시작 (국민일보) (쿠키뉴스) 2008년 04.11일자
  34. 전여옥, 허위학력 기재 논란 증폭 데일리서프 2008-04-11자
  35. 김영주 "전여옥 당선 무효다" 뷰스앤뉴스 2008-04-11
  36.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920596089&cp=nv 전여옥 결국 “이명박 지지”… 박근혜와 공식 결별)
  37. (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32526 박사모, '전여옥 낙선운동' 본격 돌입)
  38.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59003 '전여옥 변심' 풍자한 만평 봇물)
  39. 전여옥의 "집권 후 세종시 되돌리자는 선택했다" 발언 파문 뷰스앤뉴스, 2009년 11월 11일자.
  40. 전여옥 전 의원 아들도 '사배자' 전형 입학논란 아시아 경제 2013.3.8
Emblem of the National Assembly of Korea (1948-2014).svg 전 임
고진화(영등포구 갑)
권영세(영등포구 을)
제18대 국회의원(서울 영등포구 갑)
2008년 5월 30일 - 2012년 5월 29일
한나라당새누리당국민생각
(영등포구 을)권영세
후 임
김영주(영등포구 갑)
신경민(영등포구 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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