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재 (193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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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재(李佑宰, 1936년 9월 13일 예산 - )는 농민운동가 출신의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4.19 혁명 당시 서울대학교 수의학과 학생회장이었으며, 대학 졸업 이 후에는 크리스천 아카데미에서 활동하다가 1980년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1991년 민중당의 상임대표로 서울 구로구에 출마했으나 낙선하였고, 이 후 신한국당에 입당해 15대 총선에 당선되었고, 16대에는 재선거에서 당선한다. 당선 후에 국가보안법 개정에 반대하고 1996년 크리스마스의 노동법 날치기 개악에 참가한 탓에 시민단체의 낙천대상명단에 이름을 올리기도 한다.[1]
그러던 중 2003년 7월에 한나라당의 소장개혁파였던 이부영, 안영근, 김부겸, 김영춘과 함께 한나라당을 탈당한 뒤 천정배, 정동영, 신기남 등의 새천년민주당의 친노세력들과 함께 열린우리당을 창당한다.
그러나 17대 총선 후보 경선에서 민주당 지구당위원장이었던 이목희에 패한 뒤 2005년 4월부터 2008년 4월까지 한국마사회 회장을 지내고 정계에서 은퇴했다.
링크 [편집]
주석 [편집]
- ↑ 김당. “누가 '부적격 의원' 인가?”, 《신동아》, 2000년 2월 1일 작성. 2008년 4월 12일 확인.
| 전 임 (선거구 신설) |
제15대 국회의원(금천구) 1996년 5월 30일 - 2000년 5월 29일 신한국당 |
후 임 이우재 |
| 전 임 이우재 |
제16대 국회의원(금천구) (재선거) 2002년 8월 10일 - 2004년 5월 29일 한나라당→열린우리당 |
후 임 이목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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