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국민당 (1981년)
| 약칭 | 국민당 |
|---|---|
| 초대 당대표 | 김종철 |
| 창당 | 1963년 2월 26일 (민주공화당) 1981년 1월 23일 (한국국민당) |
| 해산 | 1987년 11월 (신민주공화당에 흡수) |
| 이념/정치노선 | 자유민주주의 |
| 상징색 | 녹색 |
한국국민당(韓國國民黨)은 제5공화국 시기에 존재하였던 대한민국의 보수 정당이다. 약칭은 국민당이다. 구 민주공화당 및 유신정우회 계열 인사들에 의해 창당 조직되었으며 사실상의 민주공화당의 후신 정당이었다. 제5공화국 기간 중 제2야당으로 존속하다가 1988년 신민주공화당에 흡수되어 사라졌다.
김종철, 김영광, 이만섭 등을 중심으로 당시 일부 구 민주공화당 및 유신정우회계의 인사들이 주축이 되어 1981년 1월 23일 창당발기위원회를 열고 창당되었다. 이후 공화당 당무위원 김종철을 당 대표 최고위원으로 선임했다.[1] 전두환과 신군부의 정치정화법에 묶였다가 풀려난 정치인 및 정치규제법에 묶이지 않았던 구 공화당 및 유정회 인사들이 국민당으로 입당했다.
구 여당이었던 국정 경험을 기초로 원내 제1당으로 발돋움한다는 목표를 세웠으나 창당 후 3월 25일에 실시된 제11대 국회의원 총선거 에서 지역구와 전국구를 합쳐 총 25석을 확보, 새한국민당에 이은 제2야당이 되었다. 그러나 전국정당에는 실패하고 충청권 일부와 수도권의 극소수 및 전국구로 만족해야 했으며, 박정희 정권의 경제성장 성과를 바탕으로 홍보에 주력하였으나, 박정희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 역시 국민당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1984년 구 공화당계 출신 이만섭이 대표대행이 되었다가 대표최고위원이 되었다. 1985년 2월 12일에 실시된 제12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는 지역구와 전국구를 합쳐 총 20석을 확보하는 데 그쳐 당세가 위축되었다.
1987년 10월 정치활동금지에서 풀려난 김종필(金鍾泌)이 신민주공화당(新民主共和黨) 창당을 추진하자, 소속 국회의원 중 16명이 탈당하여 8명은 신민주공화당에 참여하고 8명은 집권당인 민주정의당에 입당하였다.
그 결과 한국국민당에는 총재 이만섭을 비롯한 4명의 의원만이 남게 되었고, 1988년 4월 26일에 실시된 제13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11명의 지역구후보를 공천하였으나 단 한명의 당선자도 내지 못하여 사실상 와해되었고 신민주공화당에 흡수되어 사라졌다.[1]
목차 |
역대 선거 결과 [편집]
역대 대선 결과 [편집]
| 실시년도 | 선거 | 후보자 | 득표율 | 득표수 | 결과 | 당락 |
|---|---|---|---|---|---|---|
| 1981년 | 12대 대선 | 김종철 | 81표 | 3위 | 낙선 |
역대 총선 결과 [편집]
| 실시년도 | 선거 | 국회정원 | 당선자 현황 (지역구/전국구) |
득표율 |
|---|---|---|---|---|
| 1981년 | 11대 총선 | 276 (184/92) | 25 (18/7) | |
| 1985년 | 12대 총선 | 276 (184/92) | 20 (15/5) | |
| 1988년 | 13대 총선 | 299 (224/75) | 0 | 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