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보수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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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시계열적 정당 지도

대한민국의 보수정당은 대한민국 정당사에서 보수주의반공주의세력이 만든 정당으로, 대체적으로 강경우파반공주의, 국가주의, 민족주의적인 성격이 강한 정당이다. 1945년 이후 오랫동안 권위주의적 성격을 띈 여당이 주류로 등장했으며 1990년 3당 합당 이후에는 민주당계가 대부분 참여하여 일부 온건보수주의적인 성격을 보이기도 한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로 한나라당은 중도실용주의 노선을 띠고 있어 다른 보수정당과 구별된다.[1] 보수성향의 정당에 대해 지나친 권위주의 및 구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기간 중의 여당으로 활동하면서 벌인 권력남용에 대한 불신과 친일파 척결 문제에 관련된 비판, 한나라당의 대중영합주의에 대한 웰빙성향이라는 일부 우익 시민단체의 비판 등 정체성과 정통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어 왔다.

대한민국의 보수정당의 구성은 김구, 이시영, 김규식 등의 반공주의적 독립운동가 세력, 이승만대한민국 건국에 참여한 반공주의민족주의 세력, 지청천·이범석한국 광복군 출신 계열, 박정희·전두환·노태우군부권위주의 통치세력 등이 있다. 그밖에 민주당계 정당에서 건너온 김영삼을 비롯한 3당 합당 이후에 참여한 반박정희 세력(대한민국의 민주당계 정당 참조), 운동권에서 활동했던 민중민주계에서 전향한 386세대 등이 지지, 주요 세력이다.

2009년 당시 대한민국의 보수정당은 일반적으로 크게 3가지 세부 성향의 정당으로 다시 분류된다. TK를 중심으로 한 영남권을 기반으로 하는 거대 대표 보수정당, 충청도 지역 기반의 보수정당, 친박근혜 성향의 보수정당이 그것이다. 2013년 현재, 충청도를 기반으로 하는 선진통일당과 친박의원들이 만든 친박연대 모두 새누리당과 합당하여 새누리당이 유일한 보수정당으로 남아있다.

해방 직후[편집]

한국독립당 (1945년)[편집]

1920년에 창당된 임시정부의 정당. 임시정부의 여당이던 한국독립당(1945년)이 귀국후 대한민국의 보수 우익 정당으로는 최초로 등록하였다. 김구의 암살후 몰락하였으며 일부는 신민당으로 이시영, 이범석 등 일부는 자유당 등으로, 신익희지청천 등은 대한국민당으로 흡수되어 해체되었다.

조선민주당 (1945년)[편집]

1945년 조만식 등에 의해 설립된 정당. 1950년 조만식 사후 조직이 붕괴되고 일부는 월남한다. 6.25 동란 중 흐지부지되어 1954년 해체되었다. 한근조 등 일부는 호헌동지회에 참여했고 이윤영 등은 자유당으로 건너갔다.

여자국민당 (1945년)[편집]

1945년 임영신 등에 의해 창당. 1949년 윤치영·임영신 등에 의해 창당된 친이승만계 정당인 대한국민당에 흡수되었다. 1956년 5월 별도로 제3대 정부통령 선거에 임영신을 출마시키기도 했다. 1960년 대한국민당과 함께 자유당에 흡수되었다.

한국민주당 (1945년)[편집]

약칭은 한민당. 1945년 9월 16일고려민주당, 조선민족당, 한국국민당 등이 만든 보수정당으로 송진우, 김성수, 장덕수, 조병옥, 윤보선 등이 참여하였다.

대한독립촉성국민회 (1946년)[편집]

1946년 2월에 창당한 이승만이 이끄는 우익 계열 정당이다. 초대 총선에서 원내 1당을 차지하고, 초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을 후보로 선출하여 당선시켰다. 1951년 이승만을 중심으로 자유당이 창당되자 흡수되었다.

민족자주연맹 (1946년)[편집]

1946년 12월 좌우합작위원회 해산 후 김규식 등에 의해서 창당된 민족주의적 보수 정당. 좌우합작과 남북협상에 참여하였으며 제2대 총선거 이후에는 선거에 참가하였다. 1950년 6.25 이후 지도부의 납북과 정권의 탄압으로 몰락하였다.

제1공화국[편집]

대한국민당 (1948년)[편집]

1948년 11월 13일 신익희[2], 윤치영 등에 의해 친이승만계 정당으로 대한국민당을 창당되었다. 이어 임영신 등의 여자국민당, 지청천대동청년단을 흡수했다. 그러나 최고위원 중 한사람인 정부 수립 후 이승만과 멀어지기 시작한 한민당김성수의 제의를 받아들여 한민당과 통합, 1949년 민주국민당을 결성하면서 해체되었다.

그러나 원내 제1당이던 민주국민당국회에서 기존의 대통령 중심제의원내각제로 바꾸는 개헌을 추진하자, 이승만 대통령을 지지하는 세력이 개헌을 저지할 목적으로 1949년 11월 12일 신정회, 노농, 일민구락부 소속 의원들이 중심이 되어 다시 부활시켰다. 대한국민당은 자유당 창당 전까지 준 여당으로 활동하였으며, 자유당 창당 이후에도 친여 성향의 정당으로 존속하였다. 1958년 7월 해산하였다.

독립노농당 (1949년)[편집]

1949년 대한국민당을 탈당한 전진한근로인민당장건상, 유림, 김성숙 등과 함께 노동자의 권리 대변을 목표로 정당 건설. 1952년 자유당에 흡수되면서 공중분해됨

자유당 (1951년)[편집]

1951년 12월, 이승만 대통령의 신당 조직 의사에 따른 원외의 사회단체가 모여 자유당을 창당하고, 이와 별도로 원내의 공화민정회가 또 다른 자유당을 창당하였다. 1960년 이승만의 사퇴시까지 제1공화국의 여당이었으며, 제2공화국, 제3공화국의 야당으로 존재하였다.

제3, 4공화국[편집]

재건당 (1963년)[편집]

1963년 1월 10일 김종필과 군출신 인사들에 의해 조직되었으며 구 자유당계 및 대한국민당계를 흡수하여 민주공화당을 창당하고 1963년 2월 27일 흡수, 소멸되었다.

민주공화당 (1963년)[편집]

1963년 2월에 창당되었으며 제3공화국제4공화국의 여당이었다. 박정희는 창당 후에 47만 5천번째 당원으로 입당하여 제2대 총재가 되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사후 야당화되었으며 1980년 10월 27일 해산되었다.

유신정우회 (1972년)[편집]

제5, 6공화국[편집]

민주정의당 (1981년)[편집]

한국국민당 (1981년)[편집]

신민주공화당 (1987년)[편집]

약칭 공화당

민주자유당 (1990년)[편집]

1990년 민주정의당과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이 합당하여 창당했다.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시절[편집]

통일국민당 (1992년)[편집]

새한국당 (1992년)[편집]

  • 1992년 창당 - 민주자유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김영삼에게 패한 이종찬과 그의 지지자들이 탈당하여 창당.
  • 1995년 3월 해체.

신민당 (1994년)[편집]

  • 1994년 7월 8일 - 통일국민당과 신정치개혁당을 합당하여 신민당 창당
  • 1995년 5월 31일 - 자유민주연합으로 합당.

자유민주연합 (1995년)[편집]

약칭은 자민련.

  • 총재: 김종필 ⇒ 박태준(97.11.26) ⇒ 김종필 (재선)⇒ 김학원

신한국당 (1995년)[편집]

  • 1996년 2월 17일 - 민주자유당에서 당명 변경
  • 1997년 11월 24일 - 민주당(조순)과 함께 한나라당으로 신설합당하여 소멸

국민신당 (1997년)[편집]

한나라당 (1997년)[편집]

1997년 신한국당과 민주당이 합당하여 창당했다.

민주국민당 (2000년)[편집]

2000년 한나라당에서 탈당한 조순. 김윤환 등이 주도하여 창당하였다. 약칭 민국당.

참여정부 이후[편집]

한국미래연합 (2002년)[편집]

2002년 4월 22일 박근혜이회창과 갈등을 빚고 한나라당을 탈당하여 만든 정당이다. 약칭은 미래연합이었다. 2002년 지방선거에서 광역자치의원 당선자를 냈다. 국회에는 1석을 보유하고 있었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에 흡수합당되었다.

국민중심당 (2006년)[편집]

2006년 충청도에 기반해 창당된 사실상 지역주의정당이다. 참여정부는 수도권 집중화를 막고 국가균형발전을 꾀하는 정책 하에 행정수도 이전 계획을 내놓았다. 한나라당은 이 정책에 반대하였는데, 한나라당의 정책에 반대하는 충청권 인사들과 심대평 충남지사 및 신국환 의원, 구 신민주공화당, 자유민주연합, 한나라당 입당파를 제외한 국민신당 계열 인사들이 제휴해 2006년 1월 17일에 창당하였다. 2008년 2월 12일자유선진당에 통합되어 소멸하였다.

미래희망연대 (2007년)[편집]

원래 2007년 대선에서 정근모 후보를 내세웠던 '참주인연합'에서 출발했다. 대선 이후 '미래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꿨으나 사실상 흐지부지된 상황에서, 한나라당18대 총선 후보 선출과정에서 친 이명박 계열이 많이 공천된 데 대한 반발로, 친 박근혜 계열 당원들이 한나라당을 집단 탈당하고 미래한국당에 입당하면서 박근혜를 전면에 내세우기 위해 당명을 '친박연대'로 바꿨다. 정작, 박근혜는 한나라당에 남아있었다. 이들이 한나라당으로 복당하려하자 친이 계열은 반대하였으나 결국 복당을 받아들였다. 당명 변경에 대한 요구가 끊임없이 제기되어 공모를 통해 2010년 2월 12일 당명을 미래희망연대로 변경했다. 2010년 7월에 열린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한나라당과의 합당이 의결되어 합당 소멸 되었다. 이 과정에서 이규택과 비당권파는 미래연합을 창당하였다.

자유선진당 (2008년)[편집]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당선 가능성에 논란이 일자, 일부 보수 세력은 정계 은퇴한 이회창을 대안으로 제시하게 된다. 무소속 후보로 대선에 출마한 이회창은 당선되지 못했으나, 여당이 될 한나라당을 견제할 정치 세력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창당을 준비한다. 대선 과정 중 후보 단일화를 이뤄낸 국민중심당의 협조로 2008년 2월 1일 창당한다. 동년 동월 12일 국민중심당을 통합하여 17대 원내 제4당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 또, 18대 총선 결과 18석으로 원내 제3당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 비교섭단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창조한국당과 연합하여 선진과 창조의 모임이라는 교섭단체를 구성하였으나,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의 공천 헌금 사건으로 교섭단체는 와해된다. 그 후, 이회창 총재와 심대평 대표의 갈등으로 심대평 대표는 탈당한다. 이회창 총재는 총재직에서 대표직으로 자리를 바꾼다. 2012년 5월 29일부터 이인제의 주도 하에 선진통일당으로 당명을 개칭하였다.

국민중심연합 (2010년)[편집]

2010년 심대평이 자유선진당을 탈당한후 창당하였다. 이후 2010년 6월에 열린 지방선거에서 공주시장 1명을 당선 시켰다. 2011년 10월 10일에 자유선진당과 합당해서 소멸되었다.

미래연합 (2010년)[편집]

친박연대미래희망연대로 당명을 바꾸고 한나라당에 통합되고 지방선거에 불출마 하기로 하자, 2010년 4월 이규택과 비당권파들이 탈당하여 창당했다. 친박근혜 성향은 기존의 친박연대와 동일하다. 지방선거에서는 기초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상주시장에 1명 당선자를 냈다. 그러나, 이규택 대표가 탈당하여 새누리당에 입당했으며 결국, 2012년 총선에서 득표수 미달로 등록 취소되었다.

새누리당 (2012년)[편집]

2011년 10.26 재보궐선거에서 패배하자 한나라당이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을 중심으로 재편되었으며, 2012년 2월 13일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개명하였다. 2012년 총선에서 패배가 예상되었으나 과반의석을 얻었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가 당선되어 여당의 지위를 계속 유지하였다. 기존의 한나라당에서 개칭하였기 때문에 정당등록일은 1997년 11월 24일이다. 2012년 10월 선진통일당과 합당함으로써 2000년대 중반 이후 분열되었던 보수정당들이 새누리당으로 모두 합당되어 분열이 종식되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박근혜, 이명박, 이재오, 정두언, 김무성, 정몽준, 서청원, 이한구, 김문수, 홍준표, 강재섭, 이인제, 이회창, 심재철, 최경환, 황우여 등이 있다.

선진통일당 (2012년)[편집]

자유선진당이 이인제 비상대책위원장을 중심으로 재편되었으며, 2012년 5월 29일부터 선진통일당으로 당명을 개칭하여 사용했다. 약칭은 자유선진당과 같은 선진당이다. 2012년 10월 25일에 새누리당과 합당을 선언하고 11월 16일 정식으로 흡수 합당되었다.

참고[편집]

주석[편집]

  1. 보수정당은 여당과 친여정당으로 구성되어 왔으며, 기타 보수정당 중 야당은 대한민국의 민주당계 정당 참고
  2. 이영훈, 《파벌로 보는 한국야당사》 (에디터, 2000) 30페이지
  3. 사단법인 건국대통령 이승만박사 기념사업회
  4. 칠곡군 문화관광 - 문화유산 - 칠곡문화역사 -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