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독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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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독립당
약칭 한독당 (비공식)
KIP (영문)
초대 당대표 조소앙
창당 1930년 1월 25일
해산 1970년 2월 3일
중앙 당사 중국 상하이(1930년 ~ 1946년)
서울특별시 종로구
이념/정치노선 민족주의
민주사회주의
보수주의
정치적 스펙트럼 중도좌익 ~ 우익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은 1930년 1월 25일 중국 상하이에서 결성된 대한민국의 보수정당,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여당이며, 대한의 독립을 위하여 일본과 맞써 싸운 단체로 조소앙, 홍진, 조시원이 중심이 되어 창립되었다. 1949년 당을 이루는 주요 세력이 자유당, 공화당, 신민당, 민주국민당 등에 흡수되었다. 그 후 1966년에 일어난 민주공화당 정부의 조작사건인 한독당 내란음모사건으로 인해 1967년 해산된다.

초기의 한국독립당[편집]

1930년 1월 조소앙 등에 의하여 임시정부 산하 정당으로 창당되었다. 1935년 5월 해체를 선언한 뒤 7월에 신한독립당, 의열단, 조선혁명당, 대한독립당과 함께 민족혁명당으로 합병되었다. 하지만 민족혁명당이 사회주의 계열의 김원봉과 의열단계에 의해 주도되어가자 조소앙 등은 7월 15일에 민족혁명당을 탈당하고 한국독립당을 재건하였다. 한편 민족혁명당에 참가하는 데 반대했던 김구1935년 11월에 한국국민당을 창당했으며, 지청천 역시 1937년에 민족혁명당을 탈당하고 조선혁명당을 창당했다. 한국독립당은 위의 두 당과 합당을 논의하여 1937년 8월 1일에 우익계열 독립운동 단체들의 연합체인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를 결성하였다. 1939년에는 한국독립당을 포함한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 산하 단체들과 좌익계열 독립운동 단체들의 연합체 조선민족전선연맹 산하 단체들 간의 통합 논의가 진행되어 좌우익을 아우르는 독립운동 단체들의 연합체 전국연합진선협회가 결성되었다.

민족진영의 통합[편집]

이후 중일전쟁 도중인 1940년 5월 충칭으로 옮겨온 뒤 우익 3당 한국국민당, 한국독립당, 조선혁명당 간의 통합을 이루어 김구를 중심으로 한 한국독립당으로 개편되면서 임시정부의 여당이 되었다. 1941년 김원봉민족혁명당(조선민족혁명당)이 임시정부에 참가한 이후로는 좌익계열과도 협력하였다.

또한 하와이 주에도 한국독립당 지부를 설치하고 한국독립당 하와이 지부라고 하였다. 한국독립당 하와이 지부에 이승만, 서재필 등이 입당하였고, 1945년 10월 이승만이 탈당하고, 1948년 1월 임병직 등이 탈당할 때까지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광복 후[편집]

한국민주당과 함께 양대 보수정당이었으며 1946년 4월 18일 국민당 등을 흡수 통합하였다. 그러나 1947년 6월초 김규식 및 여운형과 노선을 같이하던 한독당 내의 안재홍,박용희,조헌식,이의식,이승복,장지필,엄우룡 등 구 국민당 세력은 김구 등의 반탁 노선에 반기를 들고 미소공위의 성사를 위해 한독당을 탈당하였다. 이들은 '우리 민족의 총의인 자주독립을 쟁취키 위해서는 기동성 있는 총명 과감한 발전적 투쟁을 요한다' 면서 미소공위에 지지를 보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1][2] 1947년 6월 미소 공위의 참석에 찬성하는 혁신파와 민주파는 한독당을 이탈하여 신한국민당과 민주독립당을 결성하였다.

5·10총선거 당시 김구 중심의 한국독립당이 단독정부수립에 반대하여 불참하자, 제헌국회에서는 5·10총선거를 추진하던 이승만계열과 호남의 지주들이 중심이 되었던 한국민주당이 대다수 의석을 차지하였다. 1949년 신익희 등이 탈당하여 민주국민당으로 갔고, 조소앙이 탈당하여 사회당을 창당하였으며 이시영, 이범석 등은 이승만 진영으로 가면서 와해되었다.

김구의 사망 후 조완구가 한독당의 당위원장으로 추대되었지만, 한독당은 김구와 함께 사멸의 길로 들어서고 말았다. 이승만 정권의 노골적인 탄압도 문제였지만, 그보다 민심이 지지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3]

1962년 10월 한국독립당을 지키고 있던 김홍일을 중심으로 한 일파에 의해 구국일념의 야당을 선언하면서 재건되었으나, 1962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단 한 명의 당선자도 내지 못하였고, 1965년 보궐선거에서 김두한이 당선되어 원내의석을 가진 정당이 되었다. 1967년 제6대 대통령 선거전진한을 후보로 지명하였지만 낙선하고,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도 모두 낙선하였다. 1969년 김학규에 의해 다시 재건되었고, 자유당 등 보수정당으로 흡수되지 않은 나머지 재건파는 1970년 1월 25일 제7대 대통령 선거를 1년 앞두고 야당통합 움직임에 따라 신민당,민주국민당 등에 흡수되었다.

역대 대선 결과[편집]

실시년도 대수 후보자 득 표 득표율 결과 당락
1948년 초대 김구 13표
6.63%
2위 낙선
1967년 제6대 전진한 232,179표
2.13%
5위 낙선


역대 총선 결과[편집]

실시년도 선거 지역구 당선자 현황 비례대표 당선자 현황 국회 정원
당선자 수 당선비율 당선자 수 득표율 당선자 수 당선비율
1948년 제1대 1/200
0.5%
1/200
0.5%
1950년 제4대 0/210
0%
0/210
0%
1960년 제5대 0/233
0%
0/233
0%
1963년 제6대 0/131
0%
0/44
1.4%
0/175
0%
1967년 제7대 0/131
0%
0/44
2.2%
0/175
0%

같이 보기[편집]

주석[편집]

  1. 한성일보 1947년 6월 3일자 우사연구회 엮음 서중석 지음, 《남.북협상:김규식의 길, 김구의 길》(한울 2000) 22쪽에서 재인용
  2. 강준만, 《한국현대사산책》〈1940년대편 2권〉(인물과사상사, 2004) 30~31쪽
  3. 강준만 《한국현대사산책:1940년대편 2권》(강준만, 인물과사상사, 2004) 259

외부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