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겸
| 김부겸 | |
| 출생 | 1958년 1월 21일 (54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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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적 | |
| 학력 |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학사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
| 직업 | 정치인 |
| 정당 | 민주당 |
| 웹사이트 | http://www.hopekim.co.kr |
김부겸(金富謙, 1958년 1월 21일 ~ )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자 현재 민주당 국회의원이다.
1958년 대한민국 경상북도 상주시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대구중,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6년 서울대 정치학과에 입학했다. 1977년 유신 반대 시위를 주도하여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학생 지도부로 활동하였다. 그 해 5월 1일 복학생 대표로 서울대 아크로폴리스에서 12,000명 학생앞에서 민주화투쟁을 호소하여 당시 분열의 조짐을 보이던 학생운동을 단결시켰다. 향후 이 연설은 '아크로폴리스의 사자후'라고 불리었다. 5월 15일 '서울의 봄'이라 불리는 서울역 집회에서 시위를 중단하고 학교로 돌아가자는 입장에 반대하고 민주화투쟁을 지속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 연루 제적 구속되었다.
재야운동에 투신, 1986년부터 민통련(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간사로 활동했고, 1987년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집행위원으로 활동하면서 6월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다. 1988년 민청학련 세대가 추축이던 한겨레민주당 창당에 참여하면서 정계에 입문하여 동작갑구에 출마하여 낙선하였다. 1989년 1990년 재야운동단체였던 진보정치연합과 민주연합추진위원회를 거쳐 이후 1991년에는 야권통합을 위해 ‘꼬마’민주당에 입당하였다. 1991년 9월 당시 김대중 총재의 평민당과 합당한 민주당에서 본격적인 정치인의 길을 걷는다.
1992년 이른바 이선실사건에 연루되어 구속 불고지죄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민주당에서 1994년까지 부대변인과 당무기획실 부실장을 지냈다.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가 창당되는 상황에서도 민주당에 남아 김원기, 이철, 제정구, 노무현 등과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를 만들었다. 1997년 통추가 해산되면서 제정구, 이철, 김홍신, 이미경 등과함께 조순-이회창이 연대한 한나라당에 합류하였다.
1999년 30-40대 남경필, 오세훈, 이성헌 정병국 등과 함께 신진개혁세력의 모임인 '미래를 위한 청년연대' 공동대표가 되었다. 2000년 군포시한나라당 의원으로 당선되었다. 국회의원 임기 시작 이틀 만에 한달치 세비를 받는 것을 반대해 세비반대를 결의하고 관계법을 수정하는 것을 주도하였다. 한나라당의 쇄신 특히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였다. 2003년 2월 노무현대통령이 당선되고 열린 첫 국회에서 한나라당이 '대북송금특검법안'을 상정하자 한나라당 국회의원으로써는 홀로 반대하였다. 2003년 7월 이우재, 이부영, 안영근, 김영춘 등과 함께 한나라당을 탈당하여 ‘독수리 5형제’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2003년 11월 민주당 탈당파, 개혁당 의원들과 함께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2004년 4월 총선에서 재선되었다. 2004년 열린우리당 신기남의장의 비서실장이 되었다. 2005년 가을 정기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각자다운 정치'라는 제하의 연설을 하며 노무현대통령이 국민통합에 힘쓸 것을 주장하여 친노세력과 갈등을 겪었다. 2005년 정세균 원내대표 하에 원내수석부대표을 역임하였다. 이 때 2004년 국회처리에 실패했던 과거사법 및 사립학교법을 처리했다. 2006년 열린우리당이 지방자치선거에서 참패한 뒤 상임비상대책위원을 하였다. 2007년 손학규가 한나라당에서 탈당하자 제일 먼저 지지 선언하고 손학규 선대본의 부본부장(본부장 공석)을 엮임하였다. 2008년 통합민주당에서 공천심사위원으로 일하며 당 지도부와 공심위의 갈등을 조정하였다.
2008년 선거에서 3선 의원이 되었으며,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장을 지냈다. 2009년, 2010년 민주당 원내대표 선거에서 연거푸 고배를 마셨다. 이후 민주당의원들에게 '한나라당 출신 낙인을 벗겨달라'는 편지를 보냈다. 2011년 12월 2012 총선에서 3선한 군포지역구를 떠나 지역주의 타파를 위하여 한나라당 텃밭으로 불리는 대구에서 출마할 것을 선언하였다.
목차 |
[편집] 약력
[편집] 경력
- 1977년 유신반대시위로 구속, 제적
- 1980년 계엄령위반 구속, 제적
- 1992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
- 1996년 통합민주당 과천ㆍ의왕지구당 위원장
- 1998년 한나라당 경기 군포 지구당 위원장
- 2000년 제16대 한나라당 국회의원 (경기 군포, ~ 2003년)
- 2002년 한나라당 대외협력위원장
- 2003년 제16대 국회의원 (경기 군포, 무소속)
- 2003년 제16대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경기 군포)
- 2004년 제17대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경기 군포)
- 2004년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위원
- 2006년 국회 행정자치위원회 위원
- 2005년 열린우리당 원내수석부대표
- 2006년 열린우리당 비상대책위원회 상임위원
- 2007년 제17대 대통합민주신당 국회의원 (~2008.2)
- 2008년 제17대 통합민주당 국회의원
- 2008년 제18대 통합민주당 국회의원 당선 (경기 군포)
- 2008년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
- 2009년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위원
- 2012년 민주통합당 최고위원
[편집] 정치역정
1988년 한겨레민주당 공천으로 서울 동작구에 출마해 3위로 낙선하면서 정계에 발을 들였다. 1992년에는 이선실 간첩사건으로 구속되는 바람에 낙천했고, 1996년에는 통합민주당에 잔류해 과천·의왕 지역에 출마했다가 신한국당의 안상수에 패해 연거푸 낙선의 고배를 들이켰다.
2000년 한나라당 소속으로 군포에 출마해 새천년민주당의 유선호를 꺾으며 3전 4기 끝에 국회입성에 성공하고, 이 후에 국가보안법 폐지와 한총련 학생 석방을 주장하면서 한나라당의 소장개혁파로써 보수세력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다.
2003년 7월, 이우재, 이부영, 안영근, 김영춘과 함께 한나라당을 탈당해 새천년민주당의 친노세력들과 함께 열린우리당을 창당했으며, 17대 총선에서 재선의원이 된 데 이어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이 됐다.
[편집] 외부 링크
| 전 임 유선호 |
제16대 국회의원(군포시) 2000년 5월 30일 - 2004년 5월 29일 한나라당→열린우리당 |
후 임 김부겸 |
| 전 임 김부겸 |
제17대 국회의원(군포시) 2004년 5월 30일 - 2008년 5월 29일 열린우리당 |
후 임 김부겸 |
| 전 임 김부겸 |
제18대 국회의원(군포시) 2008년 5월 30일 - 2012년 5월 29일 통합민주당 |
후 임 (현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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