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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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
기본 정보
출생 1953년 7월 27일(1953-07-27) (59세)
대한민국 대한민국 전라북도 순창군
학력 서울대학교 국사학 학사
영국 웨일즈 대학교 대학원 저널리즘학 석사
종교 천주교
경력 MBC기자·앵커 (78~)
31대 통일부 장관 (04)
국회의원 정보
의원 선수 3선 (15,16,18대)
16대 새천년민주당대선 후보경선출마(02)
열린우리당 의장(04,06)
17대 대선 대통합민주신당 후보 (07)
정당 민주당
지역구 전북 전주 덕진구

정동영(鄭東泳, 1953년 7월 27일 ~ )은 대한민국 기자, 앵커, 정치인으로 전 통일부 장관과 열린우리당 당 대표를 역임하였다.

문화방송에서 앵커로 활동하였으며 제15대 총선에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전주시 덕진구에 출마하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대통합민주신당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 출마했으나 한나라당 이명박에게 큰 표 차이로 낙선했다.

목차

약력 [편집]

정동영은 1953년 7월 27일 전라북도 순창에서 태어났다.[1] 전주고등학교에서 수학하였으며, 1972년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학위를 취득하였다.[2] 이후 영국 웨일즈대학교대학원에서 저널리즘 학과를 졸업했다.[3]

1970년대 [편집]

1974년 유신반대 민주화 투쟁을 벌이다 구속되었다.[4] 이어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되었으며 강제징집되었다.[5]

1977년 육군 병장으로 제대했다.[6]

방송인 활동 [편집]

1978년 문화방송사에 들어갔고, 이후 정치부 앵커가 되었다.[7] 이후 1994년까지 정치부 기자를 지냈다.[8] 한편으로는 MBC뉴스데스크의 주말앵커, 통일전망대의 앵커 및 LA특파원으로 활약하며 대중적인 지지를 얻었다.[9]

정치 활동 [편집]

15대 총선에서 당선된 것을 계기로 정치 활동을 시작하였다.

국회의원 [편집]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새정치국민회의전주시 덕진구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 당선되어 15대 국회에 입성하였다.[10] 이로써 그의 정치 활동이 시작되었다.

한편 국회의원으로 재직하면서 새정치국민회의 대변인·총재 특보·청년위원장 등을 역임했다.[11]

2004년 총선 [편집]

2004년에는 17대 총선 당시 비례대표 22번으로 출마하였으나 젊은 층의 투표를 독려하기 위한 취지로 "어르신들은 투표를 안하고 집에서 쉬셔도 괜찮아요. 왜냐하면 그분들은 앞으로의 미래를 결정할 분들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젊은이들은 앞으로의 미래가 걸려있기 때문에 투표를 꼭 해야 합니다"라는 언급이 집중적으로 언론에 보도되었고, 이것이 노인 폄하 발언이라는 논란이 일자 선대위원장직을 사퇴하고 비례대표를 반납하였다.[12]

여당의 돌풍 [편집]

2007년 대통령 선거 [편집]

이후 통일부 장관으로 재직하다가 2006년열린우리당 당 의장에 취임하여 지방선거를 지휘하였다.

이후 16대 대통령인 노무현의 정책 기조에 반대하는 의사를 분명히 하여 당내 경선에서 승리, 제17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게 패하여 낙선하고 제18대 총선에서는 당의 요청으로 서울 동작구에서 출마하였으나 정몽준에게 패하여 낙선하였다.

2009년 4월 29일 재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제18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2010년 2월 10일 민주당에 복당했다.[13]

의혹 및 논란 [편집]

  • 한나라당 차명진 의원은 이해찬 후보를 지지했던 선병렬 의원이 작성한 문건을 제시하며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경선 당시, 불법 명의도용을 이용한 '명부떼기', 선거인단 대리접수를 통한 '박스떼기', 선거인단 동원을 통한 '차떼기', 모바일 선거인단 불법 모집을 통한 '콜떼기'를 했다는 게 신당의원의 주장"이라며 말하였다.[14] 이 가운데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명의마저 도용되어 경찰이 수사에 들어가기도 하였다.[15]

1997년 안기부 기획입북 발언 [편집]

1997년 오익제 천도교 교령의 월북사건이 터지자[16] 당시 정치권은 "오익제 천도교 교령이 새정치국민회의 상임 고문을 지낸 경력이 있다"며 당시 집권당인 신한국당에서 국민회의에 오익제 월북에 대한 해명을 촉구했다. 신한국당의 공세에 당시 국민회의의 정동영대변인은 "정보기관이 밀파했을 가능성이 높고 기획입북의 가능성이 있다"며 역공세를 취했다.[17] 그러자 당시 국가안전기획부가 즉각 반박하여 국민회의당사에 안기부 요원을 파견하여, "정동영 의원을 안기부에 대한 명예훼손혐의로 조사한다"며 국민회의를 압박했다.[18] 국가안전기획부는 정동영 의원을 "국가기관인 안기부에 대한 명예훼손혐의로 형사고발한다"며 국민회의를 위협하는 상황이 벌어져 험악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19] [20] 안기부가 국민회의 정동영의원에 대해 "정동영의원이 논평에서 언급한 제보자를 조사하겠다"며 수사에 나서자[21] 정동영의원은 "자신의 기획입북 주장이 오해의 소지를 사게 됐다"며 자신의 잘못을 시인한다.[22] 그러나 안기부는 기획입북 발언의 잘못을 시인까지 한 정동영 의원에 대해 "8월 27일 10시까지 안기부 청사로 나오라"며 소환을 요구하여 과거 군사정권식의 야당탄압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이에 대해 국민회의는 소환에 불응하였으나 [23] 안기부는 소환에 불응하는 국민회의와 정동영의원에 대해 "강제구인의 조치가 있을 것"이라며 과거 군사정권수준의 횡포를 보여주었다.[24] 안기부는 정동영의원에 2차 소환장을 보내 "정동영 의원이 소환에 불응할 경우 정식 구인하겠다"며 위협하자 [25] 정동영의원은 결국 9월 8일 참고인 자격으로 한 조사에서 기획입북이나 밀파 의혹 등은 제보자의 말을 설명하면서 기획입북 주장은 무의식적으로 한 명백히 잘못된 것이라고 진술했으며, 안기부 직원들의 명예를 훼손한데 대해 사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기부는 국민회의측이 납득할 만한 사과와 해명을 하지 않을 경우 법적인 조치를 밟아 가겠다고 국민회의를 위협했다.[26] 이렇게 김영삼말기까지 대선에까지 개입하여 야당의원을 탄압하며 횡포를 부리던 안기부는 1998년 국가정보원으로 개칭되어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노인 폄하 논란 [편집]

2004년 3월 26일 대구 그랜드호텔에서 국민일보의 VJ팀(동영상팀)과 가진 인터뷰에서 "(이번 총선에서) 60대 이상 70대는 투표 안해도 괜찮다. 그 분들은 집에서 쉬셔도 된다" 는 발언으로 노인폄하 논란이 일었다.[27]

미래는 20대, 30대들의 무대라구요. 그런 의미에서 한 걸음만 더 나아가서 생각해보면 60대 이상 70대는 투표 안해도 괜찮아요. 꼭 그 분들이 미래를 결정해놓을 필요는 없단 말이에요. 그분들은 어쩌면 이제 무대에서 퇴장하실 분들이니까... 그분들은 집에서 쉬셔도 되고 20대, 30대는 지금 뭔가 결정하면 미래를 결정하는데 자기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잖아요.[28]

2004년 3월 26일 국민일보 인터뷰 중 정동영 발언-

이 발언이 알려지면서 야권 및 시민 단체등으로부터 노인 폄하라며 비판을 받게 되었고 대한노인회는 정동영의 정계은퇴를 요구하며 항의집회를 열기도 했다. 민주당 김재두 부대변인은 "세대간 갈등을 부추기는 망언을 개탄한다" 고 비판했고 한나라당 한선교 대변인은 "정 의장 발언은 60~70대를 반대세력으로 선전하며 20~30대 결집을 유도한 의도적 발언으로 의심된다"고 말했다.[29][30] 전국노년유권자연맹 전수철 총재는“정 의장의 노인 비하 발언으로 전국 400만 노인들이 분노하고 있다”고 항의했다. 당시 열린우리당 박영선 대변인은 "60, 70대를 거론한 부분은 어린 학생기자들에게 미래의 주역임을 강조하다 나온 얘기로 답변의 본뜻이 아니었다"며, "정치적 관심이 높은데도 정작 투표는 잘 안하는 20, 30대에게 투표토록 독려한 게 진의였다"고 해명하였다. 또한 당시 직접 취재한 기자는 "발언이 확대보도 되고 있다"며, "우리의 모든 프로그램 전체(총 8분 내외)를 모두 보지 않은 채 그 부분만을 강조하는 기존의 언론태도에 더욱 당황스럽다"며 "우리는 기존의 매체와는 다른 보도 형태를 보여주고자 시도하였고 우리의 순수한 동기가 조금 왜곡되는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하다"며 취재 후기를 밝혔다.[31] 그러나 파문은 가라앉지 않았고 결국 정동영은 비례대표 후보를 사퇴하며 17대 총선에서 낙선하였다.

노동자 폄하 논란 [편집]

2007년 11월 28일 부평 롯데백화점광장의 대선유세 중 “청년들이 원하는 일자리는 토목공사장이 아니다. 운하파고 삽메고 다니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느냐”며 “여기 모인 분들도 자식들이 공사장에서 일하기를 바라느냐”고 발언해 논란이 일었다. 전국건설노동조합연맹, 뉴라이트신노동자조합 등으로부터 건설현장을 무시하고 건설노동자들이 못배운 사람들이며 인생의 막장들이라고 표현한 것은 직업군에 대한 폄훼라고 지적되었다.[32]

정동영 캠프 '명의도용' [편집]

서울경찰청의 조사에 따르면 대통합민주신당 소속 구의원이 통합신당 대선후보 경선 선거인단 등록에 명의 도용을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람을 동원해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 연예인 등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가 적힌 명단을 넘겨받아 통합신당 선거인단으로 허위 등록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씨는 정 후보 캠프에서 ‘여성선거대책위 서울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정동영 후보는 대전지역 합동연설회에서 “정씨가 의욕에 넘쳐 열린우리당 당원 명부를 이용해 선거인단에 등록한 것으로 안다”며 “경위야 어찌 됐든 노무현 대통령에게 미안하고 국민 눈살을 찌푸리게 해 죄송스럽다”고 사과했다.[33]

무소속 고향 출마 [편집]

2009년 4월 6일 민주당이 정동영의 전주 덕진 공천을 배제키로 최종 확정했다.[34] 그러나 이에 반발하고 국회의원 재선거에 나서겠다며 탈당했다. 이 때문에 지도부의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의도를 무효시켰다는 의견과 공천 배제 자체에 대한 실망함을 느끼는 의견 등 한동안 논란이 되었다. 한편“잠시 민주당의 옷을 벗지만 다시 함께할 것”이라며 무소속으로 당선된 뒤 복당할 뜻을 밝히기도 하였다.[35][36]

금도장 로비 의혹 [편집]

2007년 제작된 국새제작에 순금 3000g이 도입되었으나 실제 국새에 사용한 금은 2053g에 불과해 이 남은 금으로 35개의 합금도장을 만들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정동영이 이 도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정동영은“금붙이도 아니고 놋쇠 도장에 불과하다”며 “대선 당시 누군가 들고 온 것을 뿌리치지 못해 받아둔 것 같다”고 해명했다. 이 도장은 일반인에게는 1500만원∼2500만원에 판매되기도 했다.[37]

개성공단 방북 불허 [편집]

"남북 관계의 숨구멍인 개성공단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내야 한다"를 말한 정동영의 발언에 불구하고 통일부는 그의 개성공단 방문을 불허하였다.[38]

폭행 피해 [편집]

2011년 8월 15일 정동영은 반값등록금 시위에 참석을 하였는데, 이 자리에서 50대로 추정되는 여성에게 머리카락을 잡히며 "김대중 노무현 앞잡이, 빨갱이"라는 말을 들었다.[39]

주장 [편집]

대통합신당 성격 [편집]

2007년 5월 20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대통합민주신당을 지역주의로 규정한 것에 반대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통합신당을 지역주의로의 회귀라거나, 호남과 충청의 연합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본질에 대한 분명한 왜곡"이라며 주장했다. 그는 "영남의 지역주의가 나쁘듯이 호남의 지역주의도 똑같이 나쁘다는 평면적인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이라며 "호남의 그것은 영남의 패권적 지역주의와 차별에 반대하는 저항적이며 개혁적이고 파생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정권에 대한 영남의 지지율을 올리는 것이 지역주의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식의 접근은 영남패권주의에 대한 굴복이며 대연정은 이 같은 시각과 인식의 산물"이라며 "대통령의 시도는 실제로도 성공하지도 못했고 지역 패권주의는 싸워야 할 대상이지 화해하거나 손잡을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한 "열린우리당을 포함한 비한나라당 세력이 지금 통합신당을 만들려는 것은, 평화와 개혁을 지향하며 수구에 반대하는 제반 세력을 복원하려는 작업"이라며 "그것을 두고 지역연합이라든가 지역주의 부활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개혁세력의 결집을 막는 일"이라고 덧붙였다.[40]

가계(家系) [편집]

  • 부: 정진철(1921년 ~ 1971년) 일제강점기 조선 전라도 순창군 면장, 조선식산은행 금융조합서기

약력 [편집]

통일부 장관 재직 시절 미 국무 장관인 콘돌리자 라이스와의 회견 모습

수상 [편집]

역대 선거 결과 [편집]

선거명 직책명 대수 정당 득표율 득표수 결과 당락
제15대 총선 국회의원(전주시 덕진구) 15대 새정치국민회의 89.9% 97,858표 1위 전주시 국회의원 당선
제16대 총선 국회의원(전주시 덕진구) 16대 새천년민주당 88.2% 98,746표 1위 전주시 국회의원 당선
제17대 대통령 선거 대통령 17대 대통합민주신당 26.1% 6,174,681표 2위 낙선
제18대 총선 국회의원(서울 동작구 을) 18대 통합민주당 41.50% 36,251표 2위 낙선
4.29 재보선 국회의원(전주시 덕진구) 18대 무소속 72.3% 57,423표 1위 전주시 국회의원 당선
제19대 총선 국회의원(서울 강남구 을) 19대 민주통합당 39.26% 48,419표 2위 낙선

저서 [편집]

  • 《개나리아저씨》(1999년)
  • 《개성역에서 파리행 기차표를》(2007년)
  • 《중산층 나라를 만들겠습니다》(2007년)
  • 《트위터는 막걸리다》(2010년) [42]

참고 자료 [편집]

외부 고리 [편집]

주석 [편집]

전 임
정세현
제31대 통일부 장관
2004년 7월 1일 ~ 2006년 2월 9일
후 임
이종석
Emblem of the National Assembly of Korea.svg 전 임
오탄
제15대 국회의원(전주시 덕진구)
1996년 5월 30일 ~ 2000년 5월 29일
새정치국민회의새천년민주당
후 임
정동영
Emblem of the National Assembly of Korea.svg
Emblem of the National Assembly of Korea.svg 전 임
정동영
제16대 국회의원(전주시 덕진구)
2000년 5월 30일 ~ 2004년 5월 29일
새천년민주당열린우리당
후 임
채수찬
Emblem of the National Assembly of Korea.svg
Emblem of the National Assembly of Korea.svg 전 임
채수찬
제18대 국회의원(전주시 덕진구)
2009년 4월 30일[41] ~ 2012년 5월 29일
무소속→민주당
후 임
김성주
Emblem of the National Assembly of Korea.svg
전 임
김원기(임시)
초대 열린우리당 의장
2004년 1월 11일 ~ 2004년 5월 17일
후 임
신기남
전 임
유재건
제6대 열린우리당 의장
2006년 2월 18일 ~ 2006년 6월 9일
후 임
김근태
  1. 김선주 (2010년 10월 3일). [프로필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 2013년 5월 13일에 확인.
  2. 김선주 (2010년 10월 3일). [프로필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 2013년 5월 13일에 확인.
  3. 김선주 (2010년 10월 3일). [프로필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 2013년 5월 13일에 확인.
  4. 경향신문 (2007년 10월 15일). 정동영 상세 프로필. 2013년 5월 13일에 확인.
  5. 경향신문 (2007년 10월 15일). 정동영 상세 프로필. 2013년 5월 13일에 확인.
  6. 경향신문 (2007년 10월 15일). 정동영 상세 프로필. 2013년 5월 13일에 확인.
  7. 김선주 (2010년 10월 3일). [프로필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 2013년 5월 13일에 확인.
  8. 김선주 (2010년 10월 3일). [프로필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 2013년 5월 13일에 확인.
  9. 김선주 (2010년 10월 3일). [프로필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 2013년 5월 13일에 확인.
  10. 김선주 (2010년 10월 3일). [프로필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 2013년 5월 13일에 확인.
  11. 김선주 (2010년 10월 3일). [프로필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 2013년 5월 13일에 확인.
  12. 이성규 기자. “"60∼70대 투표하지 않고 쉬어도 된다"”, 2004년 4월 1일 작성. 2009년 9월 22일 확인.
  13. 홍상희 기자. “정동영 복당...민주당 당권경쟁 본격화”, 《YTN》, 2010년 2월 10일 작성. 2010년 2월 10일 확인.
  14. <국감현장>정무위 `후보 흠집내기' 경쟁”, 《연합뉴스》, 2007년 11월 1일 작성. 2009년 9월 22일 확인.
  15. (2007대선)`반전에 반전`..되돌아보는 `07 대선”, 《이데일리》, 2007년 12월 19일 작성. 2009년 9월 22일 확인.
  16. 전 천도교 교령 오익제씨 월북,북한 도착 성명 1997. 8. 16 mbc뉴스데스크
  17. 오익제 씨 월북을 둘러싼 여야 공방 갈수록 치열 1997.8.19 mbc뉴스데스크
  18. 안기부, 오익제 입북 의혹 제기한 국민회의에 수사 협조 요청 1997.8.21 mbc뉴스데스크
  19. 정동영대변인 명예훼손 검토 1997. 8. 23 동아일보
  20. 안기부, 오익제 기획입북설 제기 정동영의원 명예훼손으로 고발 1997.8.22 mbc 뉴스데스크
  21. 기획입북설'吳風(오풍)의 눈'으로 안기부,국민회의에 수사협조요청 안팎 1997. 8. 22 경향신문
  22. 기획 입북, 그런 뜻이 아니고 "물러선 정동영" 1997. 8. 23 동아일보
  23. 국민회의'鄭(정)대변인 출두'거부 1997. 8. 27 경향신문
  24. 국민회의-안기부 갈등 증폭 1997. 8. 30 경향신문
  25. 「吳益濟(오익제)씨 입북」北(북)서 유인 1997. 8. 29 동아일보
  26. 안기부,국민회의의 오익제 기획입북설은 꾸민 말 1997. 9. 11 mbc뉴스데스크
  27. ″60∼70대 투표 안해도 된다″ 鄭의장,본보 총선기자단 인터뷰 발언 파문 국민일보 2004-04-01
  28. 정동영 발언 동영상
  29. 정동영 60, 70대 유권자 폄하발언 논란 :: 네이버 뉴스
  30. <한.민 `노인 폄하' 공세계속> :: 네이버 뉴스
  31. 류정민 기자. ““정동영 발언, 확대보도 당황스러워””, 《미디어오늘》, 2004년 4월 2일 작성. 2010년 5월 6일 확인.
  32. "정동영, 건설노동자를 '인생막장'으로 표현" 프리존뉴스
  33. 정동영 캠프쪽 구의원이 ‘대통령 명의도용’ 지시
  34. 민주당, '정동영 고향공천 배제' 확정
  35. 정동영씨 무소속 출마 실망스럽다
  36. 정동영 배제? 민주, 전주덕진 전략공천키로
  37. 정동영 의원, 문제의 금도장 선물 받았다 조선일보 2010.08.19
  38. 통일부, 정동영 개성공단방북 불허통보 2010-12-27 연합뉴스
  39. 정동영, 보수단체 회원에 머리칼 잡혀 2011-08-15 중앙일보
  40. 정동영 " 盧, 지역주의 인식에 문제 있다"
  41. 2009년 4월 29일 재선거에서 당선하였다.
  42. 저자 이름은 트위터 아이디인 @coreacdy로 표기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