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 기본 정보 | |
| 국적 | |
|---|---|
| 출생 | 1953년 7월 27일 (58세) |
| 학력 |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영국 웨일즈대학원 저널리즘 석사(88) |
| 종교 | 천주교 |
| 본관 | 동래 정씨 |
| 주요 경력 | |
| MBC기자·앵커 (78~) 31대 통일부 장관 (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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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원 정보 | |
| 민주당 (전북 전주 덕진구) 외교통상통일위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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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원 선수 | 3선 (15,16,18대) 16대 새천년민주당대선 후보경선출마(02) 열린우리당 의장(04,06) 17대 대선 대통합민주신당 후보 (07) |
| 공식홈페이지 트위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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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鄭東泳, 1953년 7월 27일 ~ , 전북 순창 출생)은 대한민국 정치인으로 대통합민주신당의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 후보였고, 전 통일부 장관과 열린우리당 당 대표를 역임하였다. 정계로 나오기 전에는 기자, 앵커 등으로 언론계에서 활동했다.
목차 |
[편집] 정치 활동
제15대 총선에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전주시 덕진구에 출마하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17대 총선 당시 비례대표 22번으로 출마하였으나 젊은 층의 투표를 독려하기 위한 취지로 "어르신들은 투표를 안하고 집에서 쉬셔도 괜찮아요. 왜냐하면 그분들은 앞으로의 미래를 결정할 분들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젊은이들은 앞으로의 미래가 걸려있기 때문에 투표를 꼭 해야 합니다"라는 언급이 집중적으로 언론에 보도되었고, 이것이 노인 폄하 발언이라는 논란이 일자 선대위원장직을 사퇴하고 비례대표를 반납하였다.[1] 이후 통일부 장관으로 재직하다가 2006년 초 열린우리당 당 의장에 취임하여 지방선거를 지휘하였다.
이후 16대 대통령인 노무현의 정책 기조에 반대하는 의사를 분명히 하여 당내 경선에서 승리, 제17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게 패하여 낙선하고 제18대 총선에서는 당의 요청으로 서울 동작구에서 출마하였으나 정몽준에게 패하여 낙선하였다.
2009년 4월 29일 재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제18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2010년 2월 10일 민주당에 복당했다.[2]
[편집] 의혹 및 논란
- 한나라당 차명진 의원은 이해찬 후보를 지지했던 선병렬 의원이 작성한 문건을 제시하며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경선 당시, 불법 명의도용을 이용한 '명부떼기', 선거인단 대리접수를 통한 '박스떼기', 선거인단 동원을 통한 '차떼기', 모바일 선거인단 불법 모집을 통한 '콜떼기'를 했다는 게 신당의원의 주장"이라며 말하였다.[3] 이 가운데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명의마저 도용되어 경찰이 수사에 들어가기도 하였다. [4]
[편집] 노인 폄하 논란
2004년 3월 26일 대구 그랜드호텔에서 국민일보의 VJ팀(동영상팀)과 가진 인터뷰에서 "(이번 총선에서) 60대 이상 70대는 투표 안해도 괜찮다. 그 분들은 집에서 쉬셔도 된다" 는 발언으로 노인폄하 논란이 일었다. [5]
미래는 20대, 30대들의 무대라구요. 그런 의미에서 한 걸음만 더 나아가서 생각해보면 60대 이상 70대는 투표 안해도 괜찮아요. 꼭 그 분들이 미래를 결정해놓을 필요는 없단 말이에요. 그분들은 어쩌면 이제 무대에서 퇴장하실 분들이니까... 그분들은 집에서 쉬셔도 되고 20대, 30대는 지금 뭔가 결정하면 미래를 결정하는데 자기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잖아요.[6]
– 2004년 3월 26일 국민일보 인터뷰 중 정동영 발언-
이 발언이 알려지면서 야권 및 시민 단체등으로부터 노인 폄하라며 비판을 받게 되었고 대한노인회는 정동영의 정계은퇴를 요구하며 항의집회를 열기도 했다. 민주당 김재두 부대변인은 "세대간 갈등을 부추기는 망언을 개탄한다" 고 비판했고 한나라당 한선교 대변인은 "정 의장 발언은 60~70대를 반대세력으로 선전하며 20~30대 결집을 유도한 의도적 발언으로 의심된다"고 말했다.[7][8] 전국노년유권자연맹 전수철 총재는“정 의장의 노인 비하 발언으로 전국 400만 노인들이 분노하고 있다”고 항의했다. 당시 열린우리당 박영선 대변인은 "60, 70대를 거론한 부분은 어린 학생기자들에게 미래의 주역임을 강조하다 나온 얘기로 답변의 본뜻이 아니었다"며, "정치적 관심이 높은데도 정작 투표는 잘 안하는 20, 30대에게 투표토록 독려한 게 진의였다"고 해명하였다. 또한 당시 직접 취재한 기자는 "발언이 확대보도 되고 있다"며, "우리의 모든 프로그램 전체(총 8분 내외)를 모두 보지 않은 채 그 부분만을 강조하는 기존의 언론태도에 더욱 당황스럽다"며 "우리는 기존의 매체와는 다른 보도 형태를 보여주고자 시도하였고 우리의 순수한 동기가 조금 왜곡되는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하다"며 취재 후기를 밝혔다.[9] 그러나 파문은 가라앉지 않았고 결국 정동영은 비례대표 후보를 사퇴하며 17대 총선에서 낙선하였다.
[편집] 노동자 폄하 논란
2007년 11월 28일 부평 롯데백화점광장의 대선유세 중 “청년들이 원하는 일자리는 토목공사장이 아니다. 운하파고 삽메고 다니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느냐”며 “여기 모인 분들도 자식들이 공사장에서 일하기를 바라느냐”고 발언해 논란이 일었다. 전국건설노동조합연맹, 뉴라이트신노동자조합 등으로부터 건설현장을 무시하고 건설노동자들이 못배운 사람들이며 인생의 막장들이라고 표현한 것은 직업군에 대한 폄훼라고 지적되었다. [10]
[편집] 정동영 캠프 '명의도용'
서울경찰청의 조사에 따르면 대통합민주신당 소속 구의원이 통합신당 대선후보 경선 선거인단 등록에 명의 도용을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람을 동원해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 연예인 등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가 적힌 명단을 넘겨받아 통합신당 선거인단으로 허위 등록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씨는 정 후보 캠프에서 ‘여성선거대책위 서울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정동영 후보는 대전지역 합동연설회에서 “정씨가 의욕에 넘쳐 열린우리당 당원 명부를 이용해 선거인단에 등록한 것으로 안다”며 “경위야 어찌 됐든 노무현 대통령에게 미안하고 국민 눈살을 찌푸리게 해 죄송스럽다”고 사과했다.[11]
[편집] 무소속 고향 출마
2009년 4월 6일 민주당이 정동영의 전주 덕진 공천을 배제키로 최종 확정했다.[12]그러나 이에 반발하고 국회의원 재선거에 나서겠다며 탈당했다. 지역기반이 유리한 호남 선거구로 옮겨 무소속으로 출마를 강행한 것은 지역당 굴레를 벗어나려는 민주당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면서“잠시 민주당의 옷을 벗지만 다시 함께할 것”이라며 무소속으로 당선된 뒤 복당할 뜻을 시사했다.[13]
[편집] 금도장 로비 의혹
2007년 제작된 국새제작에 순금 3000g이 도입되었으나 실제 국새에 사용한 금은 2053g에 불과해 이 남은 금으로 35개의 합금도장을 만들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정동영이 이 도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정동영은“금붙이도 아니고 놋쇠 도장에 불과하다”며 “대선 당시 누군가 들고 온 것을 뿌리치지 못해 받아둔 것 같다”고 해명했다. 이 도장은 일반인에게는 1500만원∼2500만원에 판매되기도 했다. [14]
[편집] 개성공단 방북 불허
"남북 관계의 숨구멍인 개성공단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내야 한다"를 말한 정동영의 발언에 불구하고 통일부는 그의 개성공단 방문을 불허하였다.[15]
[편집] 폭행 피해
2011년 8월 15일 정동영은 반값등록금 시위에 참석을 하였는데, 이 자리에서 50대로 추정되는 여성에게 머리카락을 잡히며 "김대중 노무현 앞잡이, 빨갱이"라는 말을 들었다.[16]
[편집] 주장
[편집] 대통합신당 성격
2007년 5월 20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대통합민주신당을 지역주의로 규정한 것에 반대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통합신당을 지역주의로의 회귀라거나, 호남과 충청의 연합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본질에 대한 분명한 왜곡"이라며 주장했다. 그는 "영남의 지역주의가 나쁘듯이 호남의 지역주의도 똑같이 나쁘다는 평면적인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이라며 "호남의 그것은 영남의 패권적 지역주의와 차별에 반대하는 저항적이며 개혁적이고 파생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정권에 대한 영남의 지지율을 올리는 것이 지역주의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식의 접근은 영남패권주의에 대한 굴복이며 대연정은 이 같은 시각과 인식의 산물"이라며 "대통령의 시도는 실제로도 성공하지도 못했고 지역 패권주의는 싸워야 할 대상이지 화해하거나 손잡을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한 "열린우리당을 포함한 비한나라당 세력이 지금 통합신당을 만들려는 것은, 평화와 개혁을 지향하며 수구에 반대하는 제반 세력을 복원하려는 작업"이라며 "그것을 두고 지역연합이라든가 지역주의 부활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개혁세력의 결집을 막는 일"이라고 덧붙였다.[17]
[편집] 가족
정동영은 고등학교 때 부친을 여의고 18세에 모친과 서울로 상경하였다. 부인 민혜경 사이에서 2명의 아들을 두고 있으며 장남 정욱진은 고교 졸업 후 스탠퍼드 대학교 화공과 3학년 재학 중이며, 현재 국군 정보사령부에서 군복무 중이다. 차남 정현중은 연세대학교 재학 중이며 해병대에서 군복무 중이다.
[편집] 약력
- 전주고등학교 졸업
- 1972년 -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입학
- 1978년 - 문화방송 입사
- 1979년 -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졸업
- 1982년 - 문화방송 보도국 정치부 기자
- 1985년 - 《뉴스데스크 간추린 뉴스》 앵커.
- 1986년 - 《MBC 0시뉴스》 앵커
- 1988년 - 《MBC 뉴스데스크》 임시 주말 앵커(2월 20일, 2월 21일)
- 1989년 - 보도국 로스앤젤레스 특파원
- 1993년 - 《통일전망대》 앵커.
- 1994년 - 《MBC 뉴스데스크》 주말 앵커.
- 1996년 - 제15대 국회의원 (새정치국민회의, 전북 전주시 덕진구)
- 2000년 - 제16대 국회의원 (새천년민주당, 전북 전주시 덕진구)
- 2002년 -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선거 후보 경선 출마
- 2004년 - 열린우리당 의장
- 2004년 - 31대 통일부 장관 취임(의장직 사임)
- 2004년 -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장
- 2006년 - 열린우리당 의장
- 2006년 5월 31일 - 지방선거 패배 후 의장직 사임
- 2007년 10월 15일 - 대통합민주신당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선거 후보
- 2009년 - 제18대 국회의원 (무소속, 전북 전주시 덕진구) [18]
- 2010년 2월 - 민주당 복당[2]
[편집] 수상
[편집] 역대 선거 결과
| 선거명 | 직책명 | 대수 | 정당 | 득표율 | 득표수 | 결과 | 당락 |
|---|---|---|---|---|---|---|---|
| 제 15대 총선 | 국회의원(전주시 덕진구) | 15대 | 새정치국민회의 | 97,858표 | 1위 | ||
| 제 16대 총선 | 국회의원(전주시 덕진구) | 16대 | 새천년민주당 | 98,746표 | 1위 | ||
| 제 17대 대통령 선거 | 대통령 | 17대 | 대통합민주신당 | 6,174,681표 | 2위 | 낙선 | |
| 제 18대 총선 | 국회의원(동작구 을) | 18대 | 통합민주당 | 36,251표 | 2위 | 낙선 | |
| 제 18대 총선 재보선 | 국회의원(전주시 덕진구) | 18대 | 무소속 | 57,423표 | 1위 |
[편집] 저서
- 《개나리아저씨》(1999년)
- 《개성역에서 파리행 기차표를》(2007년)
- 《중산층 나라를 만들겠습니다》(2007년)
- 《트위터는 막걸리다》(2010년)
[편집] 참고 자료
[편집] 외부 고리
| 전 임 오탄 |
제15대 국회의원(전주시 덕진구) 1996년 5월 30일 - 2000년 5월 29일 새정치국민회의→새천년민주당 |
후 임 정동영 |
| 전 임 정동영 |
제16대 국회의원(전주시 덕진구) 2000년 5월 30일 - 2004년 5월 29일 새천년민주당→열린우리당 |
후 임 채수찬 |
| 전 임 채수찬 |
제18대 국회의원(전주시 덕진구) 2009년 4월 30일 [18] - 2012년 5월 29일 무소속→민주당 |
후 임 (현직) |
| 전 임 정세현 |
제31대 통일부 장관 2004년 7월 1일 - 2006년 2월 9일 |
후 임 이종석 |
| 전 임 김원기(임시) |
제1대 열린우리당 의장 2004년 1월 11일 - 2004년 5월 17일 |
후 임 신기남 |
| 전 임 유재건 |
제9대 열린우리당 의장 2006년 2월 18일 - 2006년 6월 9일 |
후 임 김근태 |
[편집] 주석
- ↑ 이성규 기자. “"60∼70대 투표하지 않고 쉬어도 된다"”, 2004년 4월 1일 작성. 2009년 9월 22일 확인.
- ↑ 가 나 홍상희 기자. “정동영 복당...민주당 당권경쟁 본격화”, 《YTN》, 2010년 2월 10일 작성. 2010년 2월 10일 확인.
- ↑ “<국감현장>정무위 `후보 흠집내기' 경쟁”, 《연합뉴스》, 2007년 11월 1일 작성. 2009년 9월 22일 확인.
- ↑ “(2007대선)`반전에 반전`..되돌아보는 `07 대선”, 《이데일리》, 2007년 12월 19일 작성. 2009년 9월 22일 확인.
- ↑ ″60∼70대 투표 안해도 된다″ 鄭의장,본보 총선기자단 인터뷰 발언 파문 국민일보 2004-04-01
- ↑ 정동영 발언 동영상
- ↑ 정동영 60, 70대 유권자 폄하발언 논란 :: 네이버 뉴스
- ↑ <한.민 `노인 폄하' 공세계속> :: 네이버 뉴스
- ↑ 류정민 기자. ““정동영 발언, 확대보도 당황스러워””, 《미디어오늘》, 2004년 4월 2일 작성. 2010년 5월 6일 확인.
- ↑ "정동영, 건설노동자를 '인생막장'으로 표현" 프리존뉴스
- ↑ 정동영 캠프쪽 구의원이 ‘대통령 명의도용’ 지시
- ↑ 민주당, '정동영 고향공천 배제' 확정
- ↑ 정동영씨 무소속 출마 실망스럽다
- ↑ 정동영 의원, 문제의 금도장 선물 받았다조선일보 2010.08.19
- ↑ 통일부, 정동영 개성공단방북 불허통보 2010-12-27 연합뉴스
- ↑ 정동영, 보수단체 회원에 머리칼 잡혀 2011-08-15 중앙일보
- ↑ 정동영 " 盧, 지역주의 인식에 문제 있다"
- ↑ 가 나 2009년 4월 29일 재선거에서 당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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