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 군사 정변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5.16 군사정변에서 넘어옴)

5·16 군사정변1961년 5월 16일, 박정희 소장(군수사령부 사령관) 주도 하에 해병대, 6군단 포병대 등이 일으킨 군사정변이다. 박정희 대통령과 그의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혁명으로 평가하는 견해도 있다.[출처 필요]

5·16 군사정변의 주도 세력은 5월 18일에 군사혁명위원회를 국가재건최고회의로 이름을 바꾸면서 입법·사법·행정의 3권을 행사하게 하였다. 첫번째 군사내각은 5월 20일에 발표되었으며, 1963년 12월 17일 제3공화국이 수립되면서 해체되었다.

[편집] 원인

제2공화국의 정치력 부재와 사회적 문제, 그리고 군 내부의 문제로 인하여 촉발된 성격이 강하다. 다양한 사회세력은 각각 정치적 요구를 주장하고 정국의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혁신계 정치세력의 부상과 세력의 진출이 민족자주화운동, 통일촉진운동으로 전개되어서 반공 분단국가의 위협이 되었다. 특히나 4·19 혁명 이후 학생의 과도한 정치개입, 치안의 대혼란으로 인한 각종 범죄의 빈번, 반공의 약화로 인한 국가정체성의 약화, 정치깡패 및 군부의 부패한 장성들에 대한 숙정 등이 미비했고, 이에 대처하는 정부는 무기력하게만 보였던 것이 그 원인이다.

[편집] 영향

5.16 군사정변으로 인해 민주적으로 선출된 장면 내각은 붕괴되었고, 군사정변으로 집권한 박정희 의장은 조만간 원대복귀 하겠다던 애초의 혁명공약 제6조를 추후 번복하고 1963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현직 대통령이었던 윤보선을 물리치고 제5대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이후, 박정희 정권은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급격한 경제성장을 일구어 냈으나 민주인사 탄압과 장기집권은 부정적으로 평가 받고 있다.

이 문서는 한국사에 관한 토막글입니다. 서로의 지식을 모아 알차게 문서를 완성해 갑시다.
다른 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