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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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표: 북위 36° 36′ 32.7″ 동경 127° 21′ 34.4″ / 북위 36.609083° 동경 127.359556° / 36.609083; 127.359556

한국교원대학교
Korea National University of Education
KNUE-logotype.png
KNUE campus.JPG
표어 사랑·신뢰·인내
영어: Love, Confidence, Patience[1]
비전 국가와 인류의 이상 실현에 이바지할 우수한 교원 양성[2]
설립 1984년
종류 국립
총장 김주성[3]
부총장 조일영
국가 대한민국 대한민국
위치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내면
태성탑연로 250
규모 4대학, 1일반대학원
1특수대학원, 1전문대학원
교지: 771,663㎡ (2013)[4]
교사: 181,976㎡ (2013)[4]
학생 수 학부: 2,413명 (2013)[5]
대학원: 3,236명 (2013)[5]
교직원 수 전임교원: 201명 (2013)[5]
직원: 260명 (2013)[5]
상징 느티나무, 황새, 매화[1]
교색 청색      [1]
연간예산 ₩91,633,927,000 (2013)[5]
웹 사이트 http://www.knue.ac.kr/

한국교원대학교(韓國敎員大學校, Korea National University of Education)는 대한민국국립 종합교원양성대학이다. 약칭으로 교원대라 불리기도 하며, 영문 이니셜로는 KNUE를 사용한다.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내면에 있으며 고등교육법 제43조와 대통령령인 한국교원대학교 설치령에 근거해 1984년 설립되었다.[6] 대한민국에서 종합교원양성대학의 지위를 갖는 유일한 대학으로서 교육부 장관의 관할 아래 각급 학교의 교원을 양성하고 교원의 재교육을 담당하며 교육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는 등 교원양성, 교원연수, 교육연구의 3대 기능을 맡고 있다.[7]

4개 단과대학 23학과, 일반대학원 석사과정 4계열 46전공 3협동과정, 일반대학원 박사과정 4계열 45전공 3협동과정, 1개의 특수대학원, 1개의 전문대학원으로 구성되어 있다.[8]

연혁[편집]

1989년 4월 12일 민주화를 향한 열망을 담아 학생들이 인문과학관 앞 잔디광장에 심은 ‘교원나무’의 최근 모습

설립 경과[편집]

1978년 12월 한국교육개발원이 한국교육 30년을 기념하여 각계의 여론과 학자들의 연구를 토대로 작성한 《교육발전의 전망과 과제》 보고서에서 ‘교육대학사범대학을 통합 발전시켜 정예 교원양성과 연구의 중심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종합교원교육기관’의 설립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1980년 12월에는 대통령 산하 특수자문기관인 경제과학심의회의에서 프랑스고등사범학교(ENS)를 모델로 하는 국립사범대학교의 설립이 건의되었다.[9] 이와 관련해 한국교육개발원이 1981년 6월 열린 ‘교원인사제도의 개선방향 탐색을 위한 세미나’에서 ‘교원교육종합대학교(가칭)’의 설립을 정식으로 제안하였고, 정부는 이러한 구상을 같은 해 12월 제5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 계획 교육 부문에 반영하였다.

1982년 4월 28일 문교부는 1991년으로 예정된 중학교 의무교육 전면 실시에 대비하여 적정 수의 교원 확보와 배치를 위해 초·중등 교원을 통합적으로 양성하는 교원양성종합대학교의 설립을 확정하고 설립 기본 계획안을 발표하였다.[10] 설립 기본 계획안에는 전국 규모의 대학으로 별도 설립한다는 기본 방침을 포함하여 부지 약 50만 평과 건평 약 5.7만 평의 규모로 1985년 3월 개교하도록 한다는 계획이 담겼다. 이어 설립추진연구위원회와 임시건설본부가 구성되고 학사운영계획[11]·교육과정[12]·입시제도[13]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는 등 개교 준비를 시작하였다.[14]

한편 당시 여당이었던 민정당은 긴축 예산 편성으로 인해 신규 사업을 최대한 억제해야 한다는 이유로 정부 측에 설립 연기를 건의하겠다고 밝혔으나[15], 문교부는 서울특별시, 경기도, 충청남·북도의 10여 개 후보지를 두고 학교 설립 입지를 검토한 끝에 충청북도 청원군 강내면을 최종 위치로 확정하고 부지 확보에 나섰다.[16] 여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국 교원교육종합대학교의 신설 필요성이 설득력을 얻게 되어 1983년 2월 1일 ‘교원교육종합대학교 종합 기본계획’이 확정되면서 시설 규모가 구체화 되었다. 같은 해 7월 5일에는 그 명칭을 ‘한국교원대학교’로 확정하였으며 1983년 7월 14일 충청북도 청원군 강내면 다락리 부지에서 기공식을 가졌다.[17]

1980년대[편집]

1984년 3월 15일 대통령령인 ‘한국교원대학교 설치령’의 공포와 함께 설립되었으며, 초대 총장에 이규호 박사가 임명되었다.[18] 같은 해 3월 27일 설치된 사무국과 교수부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동숭동에 있는 한국학술진흥재단 건물에 임시 사무실을 두고 개교를 준비했으며 1985년 1월 10일 캠퍼스 부지에 완공된 교양학관으로 이전하였다.[19] 1985년 1월에는 1회 신입생 모집에서 전기대 지원 기간 이전에 특차로 원서를 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중지원 금지 조항을 위반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문교부와 학교 측은 ‘지원이 아닌 지망으로 지원 의사만 받아본 것이기 때문에 이중지원 금지 조항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20]

1985년 3월 제2대 총장에 권이혁 박사가 취임하고[21] 520명의 신입생을 받아 제1회 입학식을 실시하였다.[19] 같은 해 4월 17일에는 도서관이 개관하였다. 1985년 8월 30일 학부 신입생의 학비 보조 기간을 기존 1년에서 2년으로 늘리는 한국교원대학교 설치령 수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22] 같은 해 10월 31일에는 제1회 개교기념식을 가졌다.[23] 1986년 9월 1일에는 교육연구원이 개원하였으며, 같은 해 11월 12일에는 종합교육연수원이 개원하였다. 1987년 11월 2일에는 박물관이 개관하였다. 1988년 2월 26일 제3대 총장에 신극범 박사가 취임하였다.[24] 1988년 3월 1일에는 일반대학원 박사과정의 개설과 함께 부설유치원·부설초등학교·부설중학교가 개교하였다.

1990년대[편집]

1990년 3월 1일 동·하계 방학을 이용하여 3주씩, 총 3년 6학기 체제로 운영되는 일반대학원 계절제 석사과정이 개설되고 678명의 신입생이 입학하였다.[25] 1990년 10월 8일에는 헌법재판소가 국립 사범계 대학 졸업생들의 교원 우선 임용을 규정한 교육공무원법 제11조 1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자[26] 이에 대한 거센 저항이 이어졌다. 학생들은 문교부교원임용시험 조기 확대 실시 방침에 대항하여 10월 15일부터 전면적인 수업 거부와 교육실습 연기에 돌입하였다. 2학기 내내 수업 거부와 상경 투쟁, 특별법 청원 운동 등 다양한 투쟁을 진행하였지만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전국적인 투쟁 열기가 침체되기 시작하였고, ‘이미 입학한 학생들에 대해서는 경과조치를 두어 신뢰이익을 보장하겠다’는 문교부의 발표 이후 투쟁 사태는 마무리 되었다.[27]

1992년 2월 17일에 제4대 총장 신극범 박사가 전체 유권자 118명 중 60표를 받아 첫 직선제 총장으로 취임하였다.[28][29] 같은 해 3월 6일 제4대학이 신설됨과 동시에 제3대학에 있던 음악교육과, 미술교육과, 체육교육과가 제4대학으로 소속을 변경하였으며 제3대학에는 컴퓨터교육과와 기술교육과가 신설되었다. 1994년 3월 1일에는 부설고등학교가 개교하였다. 1996년 2월 9일에는 정문 옆 고층 아파트 건립 계획이 알려지면서 교육환경 사수 투쟁이 일어났으나[30], 법적 대응 끝에 ‘아파트 공사 중 지상 10층을 초과하는 부분의 공사를 금지한다’는 법원의 승소 판결을 받았을 뿐 결국 아파트 건설을 막는 데는 실패했다. 1996년 2월 16일 제5대 총장 우종옥 박사가 취임하였고[31], 같은 해 3월 1일 제3대학에 환경교육과가 신설되었다. 1997년 3월 1일에는 일반대학원 계절제 석사과정 등이 분리되어 교육대학원이 개원하였다.

2000년대 이후[편집]

2000년 1월 18일 전교 교수회의에서 총장 간선제 도입안이 통과됨에 따라[32] 2000년 2월 21일에 간선제 방식으로 치러진 선거에서 당선된 제6대 총장 정완호 박사가 취임하였다.[33][34] 2001년 11월 15일에는 교육인적자원부의 ‘초등교원 충원대책’ 방침에 따라 경기도교육청으로부터 초등교육과 특별학사편입생을 선발하기로 하고 당해 초등교육과 입학 정원의 400% 규모에 이르는 650명의 편입생 모집을 공고했다.[35] 이에 대한 전국교육대학생대표자협의회와 초등교육과의 반발 속에[36][37] 결국 특별편입은 성사되어 2002년 3월 5일 초등교육과 특별편입생 입학식이 열렸다.[38] 2003년 3월 3일 교육정책대학원이 개원하고 40명의 신입생이 입학했다.[39] 2004년 3월 2일에는 다시 직선제 방식으로 전환된 총장 선거에서 당선된 제7대 총장 박배훈 박사가 취임하였다.[40]

2006년 10월 26일 교원대의 ‘’과 교사의 ‘T’를 형상화한 슬로건 모티프와 최고의 교사 양성을 의미하는 슬로건 ‘Teacher of Teachers’ 등을 포함한 새로운 U.I 선포식을 가졌다.[41] 2007년에는 교육인적자원부에서 실시한 교과용 도서연구개발 공모에서 교과용 도서연구개발기관으로 선정되었다.[42] 2008년 3월 2일 제8대 총장 권재술 박사가 취임하였다.[43] 같은 해 10월 22일에는 교육정책대학원이 교육정책전문대학원으로 전환 승인되었다. 2009년 3월 1일 교수학습센터가 개소하였고, 같은 해 5월 1일 글로벌언어교육원이 개원하였다.

2010년 3월 1일 제1대학에 교육학과가 신설되었으며 11월 16일에는 기존의 박물관이 교육박물관으로 재개관하였다. 2012년 3월 2일에 제9대 총장 김주성 박사가 취임하였으며[44] 같은 해 12월 15일에 유아교육원이 개원하였다.[45] 2013년 4월 13일에는 제3대학 소속의 영재교육연구소가 부속시설인 영재교육원으로 확대 개편·개원하였으며[46] 10월에는 교육기관 평가, 교육인력과 교육행정인력의 선발을 위한 평가 및 관련 연구를 수행하는 교육평가원을 신설하였다.[47]

특징[편집]

종합교원양성대학[편집]

교육박물관 옥상에서 바라본 대학본부와 도서관

고등교육법 제43조에 근거해 교육대학과 사범대학의 목적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대한민국 내 유일의 종합교원양성대학으로서 교원양성, 교원연수, 교육연구의 3대 기능을 수행한다.[7] 이 같은 특수성으로 인해 각 권역 교육대학 총장이 차관급 예우를 받는 것과 다르게 종합교원양성대학인 한국교원대학교의 총장장관급 예우(특1호봉)를 받는다.

교원양성[편집]

교원양성을 위해서 학부 과정을 두고 유·초·중등 간의 구분 없이 복수전공을 허용해 통합적인 양성 기능을 수행한다. 이를 위해 제1대학에 유아교육과와 초등교육과를 제2·3·4대학에 중등 사범계 학과를 두고 있으며, 본 과정을 마치는 졸업생에게는 교원자격증과 교육학사(Bachelor of Education) 학위를 수여한다.[48] 개교 이후 2014년 현재까지 1만 4천여 명의 학부 졸업생을 배출하였으며, 대부분이 교직에 진출하여 교원 및 교육전문직으로 활동하고 있다.[5]

1990년까지의 학부 졸업생들은 희망하기만 하면 자동적으로 공립 학교 교원에 임용되었으나 1990년 10월 이 같은 규정을 담은 교육공무원법 제11조 1항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이 난 이후[49] 1991년부터는 교원임용시험을 통과해야 교원이 될 수 있다. 공립 학교 교원을 경쟁 선발하는 교원임용시험이 도입된 이후로도 매년 많은 수의 합격자를 배출해[50][51][52] 전국 교원양성기관 중 전체 정원 대비 교원 배출 비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53] 2014학년도 교원임용시험에서는 총 548명의 최종 합격자를 배출해 입학정원 581명 대비 94.3%의 합격률을 달성, 매년 전국 최고 임용률을 나타내고 있다.[54][55]

교원연수[편집]

교원연수를 위해서 종합교육연수원과 교육대학원을 설치하고 현직 교원의 재교육과 전문성 신장을 돕는다. 종합교육연수원은 유치원장·원감, 초·중·고등학교 교장, 수석교사의 자격연수를 담당하고 있으며 중등교원 특별양성과정, 영어교사 심화연수(IETTP), 학력향상 연수, 상담교사 연수 등의 직무연수를 실시해 교원의 전문성 향상을 도모한다.[56] 특히 교장 자격연수의 경우 정책 연수, 시·도 연수, 본연수로 구성된 총 204시간(31일)의 연수 시간 중 180시간 분량의 본연수를 자격연수 지정기관인 한국교원대학교 종합교육연수원에서 이수하도록 하고 있다.[57] 개원 이래 2013년 현재까지 총 11만여 명의 교원을 대상으로 각종 연수를 진행했다.[5]

교육연구[편집]

교육연구는 대학원과 교육연구원 등 학내에 설치된 연구 기관들을 중심으로 정부·대학·학교 현장간 협력을 통한 실천 중심의 연구 활동을 지향하고 있다. 2008년 12월에는 전임교원 1인당 한국학술진흥재단 등재 학술지 게재 논문수가 가장 많은 학교로 나타났다.[58] 교육연구 활동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교육연구원은 교육의 기초 이론과 교과교육, 교원교육, 교육과정, 통일교육 등에 관한 연구를 수행해 학교교육의 질적 향상에 기여함을 목표로 하며, 2013년 7월에는 ‘2013 교수·학습방법의 선진화를 위한 스마트교육 지원 정책연구’ 지원 사업에 ‘스마트교육정책중점연구소’로 선정되어 교육부한국연구재단으로부터 2015년까지 연구비 7억 5천만 원을 지원받게 되었다.[59][60]

학비 보조[편집]

교육연구관과 대학원의 모습

한국교원대학교 설치령 제12조에 근거해 학부생 전원에 대하여 입학금과 전학년의 수업료가 모두 면제된다. 매 학기 실제로 납부하는 등록금은 사실상 기성회비 뿐이며, 1학년과 2학년은 사도교육원 생활관 입사를 의무로 하되 식비를 포함한 생활관비와 피복비를 전액 국고에서 지급하고 있다.[6] 대한민국의 국·공립대 중 등록금이 가장 저렴하고[61][62] 학생 장학금 수혜율이 가장 높아[63][64] 재학생들의 학비 부담은 타 국·공립대나 사립대에 비해 상당히 적은 편인 것으로 나타났다.

2014학년도 학기당 등록금 현황(학부)[65]
계열 입학금 수업료 기성회비
인문·사회 0원 0원 1,437,000원
이학 수학 1,437,000원
수학 외 1,800,000원
공학 1,800,000원
체육 1,800,000원
예술 1,951,000원

사도교육과정[편집]

외국어연수관 앞뜰에 위치한 조형물 ‘큰 스승의 길’

도입 목적[편집]

대학 설립 당시 기존 사범대학의 교원양성 시스템에 대한 문제 의식을 바탕으로 바람직한 교원양성의 대안적 모델을 만들기 위해 도입되었다. 교사로서의 인성 함양 필요성에 따라 교원양성 과정인 학부 입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2년간의 교육과정이며, 부속시설인 사도교육원이 그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공동체 생활 공간을 교육공간으로 활용한다는 미국 대학의 ‘기숙형 대학(residential college)’ 개념을 차용해 인성 함양을 위한 교육을 생활관 하에 독립적 교육과정으로 편성하고 필수 이수하도록 설계하였다.[66]

과정 운영[편집]

졸업 요건으로 요구되는 사도교육과정을 이수하기 위하여 모든 학부생은 4학기 동안 의무적으로 사도교육원 생활관에 입사하여야 한다. 인성 함양을 위해 서로 다른 지역 출신 및 서로 다른 전공의 학생들끼리 한 방을 쓰도록 하는 호실 배정 규정을 두고 있다.[67]

사도교육원 생활교육부에서는 신입생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공동체 인성 함양 프로그램과 2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리더십 함양 프로그램을 비롯하여 THC(Teacher-Healer-Counselor) 양성 교육과정, 퍼실리테이터형 교육리더 양성과정, 명사 초청 특강, 환경 미화 활동, 호신술 교육, 심폐소생술 교육, 안전 교육 등의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각 프로그램을 이수할 때마다 소정의 사도교육과정 점수를 부여한다. 매 학기 60점 이상의 사도교육 점수를 취득해야 해당 학기 사도교육과정이 이수 처리되며 4학기 동안 총 4번의 이수 확인을 받아야 졸업이 가능하다.[68]

사도교육원 학생상담부는 개인상담, 집단상담, 심리검사 등을 제공함으로써 사도교육원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이 대학 생활 중 겪게 되는 심리적 문제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도우며 그 외에도 성희롱 예방교육, 양성평등 교육, 성문제 상담실을 운영하여 학내 성 관련 교육도 전담하고 있다.[69]

학술 교류[편집]

아시아 교원교육 협의체 구축과 해외 사범대학과의 복수 학위제 실시 등 국·내외 외부 기관과 학술 교류 관계를 맺고 있다. 중국북경사범대학, 일본도쿄 가쿠게이 대학, 미국켄터키 주립 대학교 등 35개 외국 대학과 학술 교류 협정을 체결하고 있으며 2009년 12월 결성된 대학간 협의체인 동아시아 교원양성 국제컨소시엄의 회원 대학으로 참여하고 있다.[70] 2014년 11월에는 ‘디지털시대의 스마트교육과 교사교육’을 주제로 제9회 동아시아 교사교육 국제심포지엄을 주관하기도 했다.[71] 한국교육과정평가원, 한국교육개발원, 한국직업능력개발원, 17개 시·도 교육청 등 국내 교육 관련 기관과 52개 국내 대학과도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72]

2013년 7월에는 ‘글로벌 교원양성 거점대학’(GTU, Global Teacher's University)으로 선정되어 교육부로부터 매년 약 2억 원씩, 12년간 약 23억 원의 사업비를 받는다. 학부 및 대학원 과정에 글로벌 교원양성 프로그램을 설치하여 해외대학과의 공동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복수학위 및 해외 교원자격증 취득을 지원한다. 이 외에도 해외교육실습 및 양방향 교류를 확대하여 국제교육 역량 확대를 추진할 계획이다.[73]

구성[편집]

총장 산하에 1부 2처 1국 1단 9과의 행정 기구와 4개의 단과대학, 3개의 대학원, 21개의 연구소, 11개의 부속 시설, 4개의 부설학교가 있다.[74]

대학[편집]

2014년 현재 4개의 단과대학에 23개의 사범계 학과가 설치되어 있다. 단과대학 명칭은 편의상 숫자로 명명했을 뿐 특별한 의미가 없다.

대학원[편집]

2014년 현재 일반대학원 1개, 특수대학원 1개, 전문대학원 1개로 총 3개의 대학원이 설치되어 있다.

일반대학원[편집]

일반대학원은 일반전형으로 선발된 학사 학위 소지자와 특별전형으로 선발된 교직 경력 3년 이상의 현직 교원에게 입학이 허용된다. 석사(M.A.) 및 박사(Ph.D.) 과정이 개설되어 있으며 대학의 교수 요원과 기타 교육 연구 기관에서 활동할 교육 전문가 양성을 목표로 한다. 2014년 현재까지 석사 9천여 명, 박사 8백여 명을 배출하였다.[5]

교육대학원[편집]

교육대학원은 타 대학교에 설치되어 있는 것과 달리 현직 교원의 재교육 차원에서 특별전형 과정만 운영하므로 원생 전원이 현직 교원으로 구성된다. 교육 경력 2년 이상이면서 학사 학위를 소지한 현직 교원, 장학관, 장학사, 교육연구관, 교육연구사면 별도의 추천 없이 지원이 가능하다. 석사(Ed.M.) 과정만 개설되어 있으며, 2014년 현재까지 석사 7천여 명을 배출하였다.[5]

교육정책전문대학원[편집]

교육정책전문대학원은 교육정책에 대한 전문적 소양 배양과 실무적 이해 증진, 실증적 교육정책연구 방법론의 지식과 적용능력 배양을 위해 시·도 교육청교육부의 교육전문직과 일반직 5급 공무원의 연수 기능을 담당한다. 2년 과정의 석사(Ed.M.) 및 3년 과정의 박사(Ed.D.) 과정이 개설되어 있으며 주간 2학기제로 운영되고 있다. 2014년 현재까지 석사 4백여 명, 박사 6명을 배출하였다.[5]

부속 기관[편집]

연구소[편집]

부속 시설[편집]

교육 학술 분야 전문도서관인 한국교원대학교 도서관의 모습

부설학교[편집]

캠퍼스[편집]

정문과 캠퍼스 중심을 잇는 진입로인 ‘청람대로’의 가을 풍경

2013년 현재 약 77만㎡의 부지에 총 55동의 건물이 위치해 있다.[4] 캠퍼스 서쪽 끝에 위치한 정문과 동쪽 끝 제2체육관을 잇는 약 1 km 길이의 청람대로가 동서축으로 자리잡고 있고, 북쪽에 위치한 후문과 청람대로의 중간 지점을 잇는 느티나무길이 남북축 역할을 한다. 두 길이 만나는 지점에 중앙 로터리가 위치해 있으며, 캠퍼스 내 건물은 중심 도로축인 청람대로와 중앙 로터리를 중심으로 배치되어 있다. 각 부분의 위치와 담당 기능에 따라 중앙 지역과 학습 지역, 연수·연구 지역, 생활관 지역, 녹지 지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중앙 지역[편집]

중앙 로터리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으로 대학의 기본 기능을 담당하는 기관들이 배치되어 있다. 총장실 및 각종 행정 부서들이 입주해 있는 대학본부를 비롯해 도서관, 학생회관, 교원문화관, 교육박물관이 위치한다. 학생회관은 2013년 8월부터[77] 2014년 12월까지 약 1년 4개월의 리모델링 기간을 거쳐 새롭게 개관하였다.[78] 현 도서관 서쪽 부지에는 총사업비 282억 원을 투입해 연면적 14,200㎡의 ‘미래도서관(가칭)’이 2017년까지 신축될 예정이다.[79]

학습 지역[편집]

캠퍼스의 동쪽과 남쪽을 아우르는 지역으로 각 단과대학이 사용하는 건물들이 모여 있다. 교양학관, 인문과학관, 종합교육관, 자연과학관, 융합과학관, 응용과학관, 음악관, 미술관, 제1체육관, 제2체육관이 있으며 인문과학관과 종합교육관, 자연과학관과 융합과학관은 각각 서로 연결되어 있다. 각 건물에는 단과대학의 학장실과 행정실, 각 학과 사무실, 부속 연구소, 교수 연구실, 강의실 등이 입주해 있다. 인문과학관 앞에 펼쳐진 넓은 잔디광장은 청람대로가 바로 옆을 지나고 캠퍼스 어디에서든 접근성이 양호한 곳에 위치하고 있어 청람축전이나 동아리 대동제 등 대규모 행사가 열리는 공간으로 활용된다.

연수·연구 지역[편집]

11층 규모의 연수생 기숙사로 1인실 392실을 갖추고 있는 함덕당

캠퍼스의 북쪽 지역으로 교원연수와 교육연구의 기능을 담당하는 기관들이 중앙 로터리와 후문을 잇는 느티나무길을 따라 늘어선 형태로 배치되어 있다. 대학원, 교수회관, 교육연구관(교육연구원), 교원연수관(종합교육연수원), 함덕당, 외국어연수원, 외국어연수원 기숙사, 지진관측소가 있다. 인접한 곳에 부설고등학교가 위치하고 있다. 후문 서쪽에는 13,700㎡의 대지에 ‘교육 리더십 센터(가칭)’가 임대형 민자사업(BTL) 방식으로 신축되고 있다. 이 시설은 연수생 44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지하 1층, 지상 17층 규모의 생활관과 500석 규모의 종합강의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총사업비 161억 원을 투입해 2015년까지 완공할 예정이다.[80]

생활관 지역[편집]

캠퍼스의 북동쪽 지역으로 사도교육원이 운영하는 4~5층 높이의 생활관 건물들이 모여있다. 사도교육원 관리동, 신뢰관, 사랑관, 인내관, 사임당관, 율곡관, 청람관, 다락관, 대학원관, 지혜관, 복지관이 있다.[81] 이 중 지혜관은 1인실과 2인실로 구성되어 있고, 신뢰관과 대학원관은 3인실, 사랑관은 4인실, 나머지 생활관은 모두 2인실로 구성되어 있다. 사도교육원 관리동에는 학생식당이 위치하고 있으며 복지관에는 구내매점, 안경원, 세탁소, 미용실, 체력단련실 등의 편의 시설이 입주해 있다.

녹지 지역[편집]

중심축에 해당되지 않는 캠퍼스의 녹지 지역에는 기타 건물들이 위치하고 있다. 학습 지역과 생활관 지역의 사이에는 대운동장이 있으며, 학습 지역의 남쪽에는 학군단과 청람천문대, 황새생태연구원, 테니스장 및 골프장이 있다. 교육박물관 남쪽 옛 총장 공관 자리에는 유아교육원이 있다. 부설고등학교에서 서쪽으로 조금 떨어진 지역에는 1997년 대교그룹이 건립해 기증한[82] 교수아파트 다섯 동이 위치하고 있다.

학생 활동[편집]

파일:KNUE posters.JPG
학술제 개최 알림, 교육실습생 격려, 생일 축하 등을 위해 교내 게시판 곳곳에 붙어 있는 손수 그린 자보들

총학생회[편집]

총학생회는 학생들의 요구를 대외적으로 관철시키기 위해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학생 자치 기구이다. 1985년 4월 2일에 제1대 총학생회장단을 선출하고 집행부를 구성하면서 발족하였으며 1988년 관선총장의 취임 거부 및 학원 자율화를 요구하는 취임식 농성을 시작으로[83] 국가고시제 도입 철회를 위한 총장실 점거 농성과 수업거부 투쟁[84], 1991년 반민자당 투쟁 및 동맹휴업 결의[85], 1999년 학부 정원 축소 및 총·학장 선출의 간선제 도입 등 6개 구조조정안에 대한 저지 투쟁[86][87], 2005년 기성회비 인상 반대 총궐기[88] 등을 주도하며 학내·외의 크고 작은 사안에 대해 학생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역할을 해오고 있다. 또한 새내기 미리 배움터, 해오름식, 청람축전(대동제), 명사 초청 특강, 교육봉사 활동, 귀향버스 운행, 퇴사택배 사업 등을 기획하고 추진하는 일도 맡고 있다.

매년 선거를 통해 총학생회를 선출하고 있으며 2013년과 2014년에는 입후보자가 나오지 않아 2년 연속으로 총학생회 없이 확대운영위원회 체제로 활동하다가 2015년 제28대 총학생회 선거에서는 단독 출마한 ‘반올림’ 선거운동본부가 96.37%의 지지율로 당선되었다. 학생지원과가 총학생회 활동의 지원을 담당하고 학생 복지를 관장하는 학생복지위원회와 자치 언론인 교지편집위원회가 총학생회의 하위 기구로 설치되어 있다.[89]

동아리연합회[편집]

동아리연합회 산하 공연 분과, 사회 분과, 전시 분과, 종교 분과, 체육 분과, 학술 분과 소속의 40여 개의 동아리를 중심으로 매년 10월에 동아리 대동제를 개최하며, 2014년 현재 제21대 ‘단비’ 동아리연합회가 출범해 활동하고 있다.[90]

기타[편집]

한국교원대학교에는 체육 특기생이 없지만 총장을 단장으로 하는 축구부가 존재한다. 1987년 창단해 대학축구연맹에 정식 팀으로 등록되어 있는 한국교원대 축구부는 1988년 첫 출전한 전국대회에서 숭실대 축구부에 0대 19로 패한 것을 시작으로 연패를 기록하고 있다.[91][92]

교내 언론[편집]

신문방송사와 교지편집위원회가 입주해 있는 응용과학관의 모습
  • 한국교원대신문 : 한국교원대학교 신문방송사 국자편집실에서 발행하는 격주간지 《한국교원대신문》은 1985년 3월 31일 타블로이드판 8면의 《한국교원대학교신문》으로 창간하였다. 1986년 3월 5일 발행된 제13호에서 《교원대신문》으로 제호를 변경하고 블랭킷판으로 판형을 바꾼 뒤, 1997년 11월 제호를 《한국교원대신문》으로 변경해 오늘날까지 발행해오고 있다. 현재는 블랭킷판 12면으로 학기 중 총 6회, 동계 방학 중 1회 발행하며, 격주 월요일에 학내에 무료로 배포하고 학외 구독자에게도 발송하고 있다. 국자편집실 주최 행사로 1997년부터 청람문학상을 매년 1회씩 공모하고 있다.[93]
  • INDIGO : 신문방송사 영자편집실에서 발행하는 《INDIGO》는 1996년 10월 14일 《The Kyowondae Times》로 창간한 이후 16호에서 《INDIGO》로 제호를 변경한 뒤 2000년 11월 스탠다드판 8면 발행에서 잡지 형태로 전환해 발행해오고 있다. 연 4회 발행하는 영자신문이며 학내에 무료로 배포하고 학외 구독자에게도 발송하고 있다. 영자편집실 주최 행사로 2002년부터 에세이 콘테스트를 실시해오고 있다.[94]
  • KNUE TV : 1998년 10월 16일 매체제작연구소의 교내 TV 방송국으로 개국한 이후[95] ‘교육방송국’으로서 교육연구원 교수학습센터 산하에 있었으나, 2012년 5월 1일 신문방송사 방송편성실로 통합되었다. 학내 정규방송, 입시특별생방송, 인터넷 방송, 학교 행사 지원 등을 담당한다.
  • 교지 《청람문화》 : 재학생들이 매 학기 납부하는 학생회비의 일부를 지원받아 확대운영위원회 산하 기구인 교지편집위원회에서 발행한다. 교지는 책자 형식으로 연 2회 발행하며 학내와 각 대학 교지편집위원회에 무료로 배포된다.

사건·사고[편집]

농활 대학생 익사 사고[편집]

무엇이 보이는가, 그대

새들도 울지 않은 그날 우리의 여름은
절망했오
그러나 벗이여! 슬퍼마오 앞서간
벗들을 따라 내딛는 힘찬 걸음 있으니
우리 모두 주인되는 그날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되살아 오소서

1992년 가을 벗들의 넋을 기리며

1990년 6월 27일 오후 5시 반경 충청북도 청원군 옥산면 천수천에서 이 마을에 살던 6살 어린이가 물놀이를 하던 도중 실종되자 심형주(당시 22세·초등교육과 3학년)군과 우종형(당시 20세·물리교육과 1학년)군 등 재학생 2명과 마을 주민 1명이 구조에 나섰다가 골재 채취 웅덩이에 빠져 모두 익사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두 학생은 이날 학교 버스편으로 동료 학생 20명과 함께 옥산면으로 7박 8일 일정의 농촌봉사활동을 가던 중 오후 1시경부터 실종 어린이의 수색작업을 벌이던 마을 주민들의 요청을 받고 주민 10여 명과 함께 수색작업을 벌이다 변을 당했다.[96][97]

충청북도 청원군은 익사한 학생 2명과 마을 주민 1명을 대해 재해구제로 인한 의사상자로 인정해 줄 것을 보건사회부에 건의하였고,[98] 같은 해 7월 30일 보건사회부는 세 사람을 의사자로 결정하였다.[99] 1991년 6월 익사 학생들의 1주기를 맞아 이들을 기리는 비석과 조형물이 대운동장 옆 잔디밭에 조성되었다. 1992년에는 시비가 세워졌으며, 시비의 앞면에는 ‘무엇이 보이는가, 그대’라는 제목의 추모시가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1990년 6월 27일 여름농활시 장동리 입구 천수천에서 실종된 어린이를 찾던 중 심형주(초등88), 우종형(물리90) 학형이 급류에 휩쓸려 사망하다.’라는 내용의 사건 경과가 적혀있다.

사진[편집]

같이 보기[편집]

참고[편집]

  1. 한국교원대학교 상징물 등에 관한 규정. 한국교원대학교. 2013년 8월 19일에 확인.
  2. KNUE's Vision. 한국교원대학교. 2013년 8월 11일에 확인.
  3. 총장약력. 한국교원대학교. 2013년 8월 11일에 확인.
  4. 대학알리미 대학개별공시. 대학정보공시센터. 2013년 11월 8일에 확인.
  5. 2013년 학교통계연보. 한국교원대학교. 2014년 3월 21일에 확인.
  6. 한국교원대학교 설치령. 한국교원대학교. 2012년 1월 3일에 확인.
  7. 본교의 특색. 한국교원대학교. 2013년 8월 9일에 확인.
  8. 대학원 소개 > 학위과정.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2013년 10월 10일에 확인.
  9. 敎育發展의 展望과 課題. 한국교육개발원. 2014년 12월 8일에 확인.
  10. 교원양성종합대학교 설립추진. 문교부. 2014년 12월 8일에 확인.
  11. 韓國敎員大學校 學事運營計劃硏究. 한국교원대학교. 2014년 12월 8일에 확인.
  12. 한국교원대학교 교육과정개발. 한국교원대학교. 2014년 12월 8일에 확인.
  13. 韓國敎員大學校 入試制度 硏究. 한국교원대학교. 2014년 12월 8일에 확인.
  14. "師範大·교육대 내년부터 敎員大로", 《동아일보》, 1982년 4월 28일 작성.
  15. "民正,敎員大 설립 延期 건의", 《경향신문》, 1982년 7월 8일 작성.
  16. "敎員大 장소 확정", 《동아일보》, 1982년 9월 1일 작성.
  17. "敎員대학교 起工 85년에 開校 계획", 《매일경제》, 1983년 7월 14일 작성.
  18. "한국敎員大 총장에 李奎浩씨", 《경향신문》, 1984년 3월 20일 작성.
  19. "본교 역사적 첫 입학식", 《한국교원대학교소식》, 1985년 3월 5일 작성.
  20. "敎員大 신입생 便法 선발", 《동아일보》, 1985년 1월 16일 작성.
  21. "權彜赫 敎員大 총장 內定", 《경향신문》, 1985년 2월 27일 작성.
  22. "教員大 기숙사學生 2年 동안 경비지급", 《동아일보》, 1985년 8월 30일 작성.
  23. "全大統領 教員大 개교식 致辭", 《동아일보》, 1985년 10월 31일 작성.
  24. "敎員大 총장 愼克範씨", 《경향신문》, 1988년 2월 16일 작성.
  25. "계절제 대학원을 알아본다", 《교원대신문》, 1990년 4월 12일 작성.
  26. "國·公立師大生 우선채용 違憲", 《경향신문》, 1990년 10월 8일 작성.
  27. "돌파구 못찾는 敎員(교원)공개 임용제", 《경향신문》, 1990년 12월 15일 작성.
  28. "신극범 후보 최다 득표", 《교원대신문》, 1992년 1월 29일 작성.
  29. "교원대 신극범 총장 유임", 《한겨레》, 1992년 2월 8일 작성.
  30. "교원대 정문옆에 아파트건설 웬말", 《경향신문》, 1996년 7월 26일 작성.
  31. "교원대 총장 禹鍾玉씨", 《경향신문》, 1996년 2월 17일 작성.
  32. "총장 간선제 시행 결정", 《한국교원대신문》, 1999년 10월 25일 작성.
  33. "6대 총장 선거결과 정완호 총장 당선", 《한국교원대신문》, 2000년 2월 22일 작성.
  34. "정부, 한국교원대 총장에 정완호 교수 임명", 《한국경제》, 2000년 2월 20일 작성.
  35. "경기도 교육청 특별학사편입 공고", 《한국교원대신문》, 2001년 11월 26일 작성.
  36. "교대협, 특별편입제 법적 대응", 《연합뉴스》, 2001년 11월 9일 작성.
  37. "4개교대 특별편입학 무효가처분신청", 《연합뉴스》, 2001년 11월 21일 작성.
  38. "초등교육과 특별편입 학사일정 시작", 《한국교원대신문》, 2002년 3월 18일 작성.
  39. "교육정책대학원 개원", 《한국교원대신문》, 2003년 3월 17일 작성.
  40. "교원대 총장에 박배훈씨", 《한겨레》, 2004년 3월 4일 작성.
  41. "한국교원대 새 U.I 개발", 《연합뉴스》, 2006년 10월 23일 작성.
  42. "한국교원대, 교과용 도서연구개발기관 선정", 《뉴시스》, 2007년 6월 8일 작성.
  43. "한국교원대 권재술 총장 취임", 《연합뉴스》, 2008년 3월 18일 작성.
  44. "한국교원대 제9대 김주성 총장 취임", 《교수신문》, 2012년 3월 8일 작성.
  45. "교원대 대학중 처음 유아교육원 개원", 《뉴시스》, 2012년 11월 15일 작성.
  46. 연혁. 한국교원대학교. 2013년 8월 9일에 확인.
  47. 한국교원대학교 교육평가원 개원 기념 학술대회 개최 안내. 한국교원대학교. 2013년 12월 10일에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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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 "교원대 임용고사 합격률 전국 최고", 《뉴시스》, 2006년 11월 8일 작성.
  52. "한국교원대, 2013학년도 교원임용시험에 455명 합격", 《뉴스1》, 2013년 3월 7일 작성.
  53. "선생님 꿈, 대학 교직과정 이수한 학생 4.6%만 이뤄", 《중앙일보》, 2010년 5월 12일 작성.
  54. "한국교원대, 교사 임용시험 전국 최고 합격률", 《충북일보》, 2014년 2월 26일 작성.
  55. "한국교원대, 교사 임용시험 합격률 94.3% “전국 최고”", 《아시아뉴스통신》, 2014년 2월 26일 작성.
  56. 연수과정 안내. 한국교원대학교 종합교육연수원. 2013년 10월 18일에 확인.
  57. 교장자격연수. 한국교원대학교 종합교육연수원. 2013년 10월 31일에 확인.
  58. "<표>전임교원 1인당 학술지 게재 논문수가 많은 학교 상위 10위-대학", 《뉴시스》, 2008년 12월 1일 작성.
  59. "한국교원대 스마트교육 정책중점연구소에 선정", 《한국교육신문》, 2013년 7월 22일 작성.
  60. 「스마트교육정책중점연구소」 개소식 행사 개최. 한국교원대학교. 2013년 12월 10일에 확인.
  61. "교원대 국공립대중 등록금 가장 저렴", 《뉴시스》, 2006년 9월 26일 작성.
  62. "'천차만별' 대학 입학금..고대 '103만원' vs 한국교원대 '0원'", 《이데일리》, 2013년 11월 29일 작성.
  63. "국공립대 장학금 수혜율 한국교원대 1위", 《한국대학신문》, 2009년 10월 14일 작성.
  64. "“국가장학금은 우리것”", 《한겨레》, 2003년 7월 12일 작성.
  65. 2014학년도 등록금 내역〉. 한국교원대학교. (PDF). 2014년 2월 8일에 읽어봄.
  66. 사도교육과정 안내. 한국교원대학교 사도교육원. 2013년 8월 9일에 확인.
  67. 사도교육원 규정시행세칙. 한국교원대학교 사도교육원. 2013년 8월 9일에 확인.
  68. 사도교육과정 개요. 한국교원대학교 사도교육원. 2014년 12월 9일에 확인.
  69. 학생상담부 소개. 한국교원대학교 사도교육원. 2014년 12월 9일에 확인.
  70. 동아시아 교원양성 국제컨소시엄 조직 소개. 동아시아 교원양성 국제컨소시엄. 2013년 11월 1일에 확인.
  71. 제9차 동아시아 교사교육 국제심포지엄 개최. 한국교원대학교. 2014년 12월 9일에 확인.
  72. 학술교류협정 체결대학. 한국교원대학교. 2013년 8월 9일에 확인.
  73. "2013년 「글로벌 교원양성 거점대학(GTU) 지원사업」 지원대학 선정", 《공감코리아》, 2013년 7월 9일 작성.
  74. 한국교원대학교 학칙. 한국교원대학교. 2012년 12월 10일에 확인.
  75. 전공소개. 한국교원대학교 교육정책전문대학원. 2013년 10월 10일에 확인.
  76. 연구소안내. 한국교원대학교 산학협력단. 2013년 10월 10일에 확인.
  77. 학생회관 입주 부서·단체별 이전 일정 안내. 한국교원대학교. 2013년 8월 9일에 확인.
  78. 학생회관 준공식 일정 안내. 한국교원대학교. 2014년 12월 8일에 확인.
  79. 미래도서관 건립위치 확정 및 결과공개. 한국교원대학교. 2013년 8월 9일에 확인.
  80. 2012년도 국립대학 BTL 기숙사 확충 사업 고시 알림. 교육부. 2013년 10월 31일에 확인.
  81. 기숙사 안내. 한국교원대학교. 2013년 8월 10일에 확인.
  82. "교원대 교수아파트 기증식", 《경향신문》, 1997년 9월 30일 작성.
  83. "신임총장 취임반대 시위", 《교원대신문》, 1988년 3월 17일 작성.
  84. "총장실 점거 농성과 수업거부 투쟁", 《교원대신문》, 1988년 6월 8일 작성.
  85. "반민자당 투쟁 전국 확산", 《교원대신문》, 1991년 5월 15일 작성.
  86. "교원대 구조조정, 정당한가?", 《한국교원대신문》, 1999년 5월 31일 작성.
  87. "교원대 총학생회, 정원 축소 철회 등 요구", 《연합뉴스》, 1999년 10월 19일 작성.
  88. "교원대 총학생회, 총장실 집기 들어내", 《연합뉴스》, 2005년 3월 16일 작성.
  89. 총학생회. 한국교원대학교. 2013년 10월 31일에 확인.
  90. 동아리연합회. 한국교원대학교. 2014년 3월 17일에 확인.
  91. "통산 전적 50승 50패 한국교원대 축구부", 《경향신문》, 1998년 8월 12일 작성.
  92. "'너희가 골맛을 알아?' 행복한 만년꼴찌 축구부", 《노컷뉴스》, 2007년 6월 27일 작성.
  93. 국자신문사 소개. 한국교원대학교 신문사. 2013년 10월 9일에 확인.
  94. 신문방송사. 한국교원대학교. 2013년 10월 9일에 확인.
  95. "교내 TV방송국 개국", 《경향신문》, 1998년 10월 29일 작성.
  96. "農活 대학생 2명 실종", 《동아일보》, 1990년 6월 28일 작성.
  97. "죽음부른 不法 골재채취 웅덩이", 《경향신문》, 1990년 7월 2일 작성.
  98. "익사한 농활 대학생 의사상자 보상 건의", 《한겨레》, 1990년 6월 30일 작성.
  99. "어린이 구하려다 익사 농활학생 보상금 지급", 《한겨레》, 1990년 7월 31일 작성.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