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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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咸鏡道)는 조선 시대의 행정 구역이다. 철령의 북쪽에 있다고 하여, 관북 지방(關北地方)이라고도 한다. 감영 소재지는 함흥부(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함흥시)였다. 1896년 함경북도함경남도로 분할되었다. 함흥과 경성의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지명이다.

옛 이름[편집]

예로부터 고구려, 발해의 영토였으며, 고려(高麗)대에는 영토로 편입시키지 못하여 여진족, 거란족 등의 북방 민족에 복속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북방 개척으로 말미암아 조선(朝鮮)대에 이르러 명칭을 가지게 되었다. 그 변천은 아래와 같다.

역사[편집]

고대[편집]

함경도 일대는 임둔(臨屯)이라는 소국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2세기위만조선에게 복속되었다. 기원전 108년에 위만조선이 한나라한 무제의 침입을 받고 멸망하자, 한사군중 하나인 임둔군이 설치되었다. 그러나 토착민의 반발로 폐지되어 현도군에 편입되었고, 현도군 마저 북쪽으로 옮기면서 다시 낙랑군에 편입되고 동부도위(東部都尉)의 관할을 받았다. 그러나 전한·후한 교체기의 혼란 중에 낙랑군은 동부도위의 영역을 포기하였고, 이후 옥저의 영역이 되었다가 고구려에 복속되었다. 고구려가 멸망한 후에 남부의 안변·원산 일대는 신라의 영역이 되었고, 나머지는 무주지가 되었다가 발해가 한반도로 진출하여 남경 남해부를 설치하면서 함경도 지역은 신라와 발해의 국경지대가 되었다.

고려[편집]

이후 후고구려의 영역이 되었다가,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면서 남부지역은 고려의 영토가 되었다. 그러나 화주(和州 : 지금의 영흥) 이북은 여진족의 땅이 되었다.

성종 때 10도를 두면서 강원도 지역과 함께 삭방도(朔方道, 삭방은 안변의 별호이다)가 되었다가 현종 때 5도 양계로 정비하면서 동계가 되었다. 윤관이 여진족을 정벌하고 동북 9성을 쌓으면서 한때 함경도 지역 대부분이 고려의 영토가 되었으나, 얼마 후 동북 9성은 여진족에게 돌려주었다. 1258년원나라가 차지하고 쌍성총관부를 설치하면서 1356년에 공민왕이 되찾을때까지 약 100년동안 원나라의 영토가 되었다. 이후 동북면(東北面)이 되었고, 또 강릉삭방도(江陵朔方道), 삭방강릉도(朔方江陵道) 등으로 불리다가 공양왕때가 되어서야 강릉도(강원도)와 분리되어 별개의 행정 구역이 되었다.

조선[편집]

조선시대가 되어 영토를 북쪽으로 더욱 확장했고, 세종육진을 개척하면서 지금의 함경도의 영역이 완성되었다.

태종 13년(1413년)에 도내 영흥부(永興府)와 길주목(吉州牧)의 이름을 따서 영길도(永吉道)가 되었다. 조사의의 난이 일어나자 1416년에 영흥을 화주목(和州牧)으로 강등하고 함주목(咸州牧)을 함흥부로 승격하여 감영을 함흥으로 옮기고 함길도(咸吉道)로 개칭하였다. 세종 때 화주목이 영흥대도호부로 승격한 이후에도 함길도라고 부르다가, 길주에서 이시애의 난이 일어나자 예종 원년(1468년)에 길주목을 길성현(吉城縣)으로 강등하고 길주대신 경성도호부의 머리글자를 따서 함경도(咸鏡道)가 되었다. 성종 1년(1469년)에는 함흥에서 반란군을 따라 관찰사를 살해했다 하여 함흥부를 군으로 강등하고, 감영을 다시 영흥으로 옮기고 영흥과 안변의 머리글자를 따서 영안도(永安道)가 되었다. 중종 4년 (1509년)에 감영을 함흥으로 옮기고, 함흥을 다시 함흥부로 승격시키고 영안도도 함경도로 개칭하였다. 이후 함경도라는 명칭이 정착되었다.

1895년팔도가 폐지되고 이십삼부가 설치되면서 함흥부, 갑산부, 경성부로 분할되어 함경도는 폐지되었다. 1896년에 이십삼부가 폐지되고 십삼도가 설치되면서 함흥부와 갑산부를 합쳐 함경남도, 경성부는 함경북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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