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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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이란 (正經) 말은 라틴어 canon의 번역어인데, 헬라어의 "카논"이란 말에서 유래하며, 그 헬라어는 곧은 막대기, 자 등을 지시하나, 상징적으로 규범을 의미하기도 했다. 교부들은 헬라어 "카논"이란 말로 기독교회에서 경전으로 인정받는 책들을 지시하였다. 요세푸스는 Contra Apionem 1.42, 43에서 정경이란 하나님의 영감을 통해서 특정한 기간에 저술된 한정된 수량의 현존 문헌들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했다.

목차

[편집] 정경이 정해진 이유

1세기 교회에서는 사도들이 그리스도예수의 올바른 말씀과 행적을 가르쳤기 때문에 정경의 구분(정경화, 正經化)가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영지주의, 마르키온주의 등의 이단들이 출현하자, 무엇이 기독교의 경전인지를 구분할 필요가 생겼다. 당시 영지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문서를 갖고 있었고, 교회내에서도 수많은 문서들이 나돌아다녔기 때문이다. 프로테스탄트, 즉 개신교회는 유대교의 얌니아 회의에서 경전으로 결정된 구약성서 39권을 그대로 받고, 신약성서는 397년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결정된 27권을 정경으로 인정하였다. 개신교에서 정경으로 포함되지 않은 성서는 외경위경이 있는데, 외경은 그리스어 성서인 70인역 성서등에만 있는 7권의 구약성서를 말한다. 이들은 로마 가톨릭교회정교회등에서 받아들인다. 위경은 헬라어 성경 (70인역)에도 들지 아니한 다른 문헌들로 경전으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간주되는 성서이다.

[편집] 구약 정경의 확립과 얌니아 회의

1871년 하인리히 그래츠는 (Heinrich Graetz) 미쉬나탈무드에 근거하여, 주후 1세기 어간에 유대교의 경전을 결정한 얌니아 회의가 있었으리라 주장했다. 이런 가설이 20세기에는 학자들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1960년대부터 잭 루이스 (Jack P. Lewis), 시드니 라이만 (Sidney Z. Leiman) 등과 같은 이들은 그래츠의 가설에 의문을 제기하였고, 보다 최근의 학자들은 미쉬나탈무드를 고찰한 결과 정경 목록에서 구약의 어떤 책이 퇴출되었다는 아무런 언급도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래서 학자들은 얌니아 회의에서는 구약의 정경 문제가 아니라 전연 다른 관심사 곧 자신들의 입지를 크게 축소시키는 기독교와 연관된 사항들을 의제로 다루었다고 주장하였다. 즉, 얌니아 회의에서는 1) 헬라권 유대교에서 널리 통용되었지만, 유대교가 정경으로 인정하지 아니한 외경이라 불리는 책을 첨가부록으로 담았던 헬라어 구약 성경을 (70인역) 배격할 것; 2) 자기들의 매일의 기도문에 (아미다 '항상 드리는 기도'라는 의미의 기도문으로 18개 항목의 기도문이므로 '쉐모나 에쉬레' [18]라 불리기도 한다) "이단들"을 (하미님; 주로 기독교도) 저주하는 문구를 삽입하는 일 등을 주 의제로 다루었다.

미쉬나 "야다임" 3.5에 의하면, 유대교 랍비들은 전도서아가서의 영감성에 대하여 의견이 분부했다고 기록한다. 즉, 다른 구약 책들의 지위에 대하여는 언급이 없으며, 전도서아가서도 그것들이 정경이냐의 여부가 아니라, 그 책들이 영감된 것인지 여부에 관한 논의였다는 것이 충분한 근거를 갖는다.

[편집] 구약 정경의 확정 시기

학자들마다 의견의 차이를 보이는데, 구약 성경유대교에서 율법 (토라), 선지자들 (느비임), 문서들 (크투빔) 등으로 삼대분하였다. 이 중 토라이 (모세 오경) 가장 먼저 주전 15세기 어간에 정경으로 확정되었다고 보이는데, 이는 시내산 언약 체결시에 언약서가 기록되고 (출 20-23장), 다음에 오경의 나머지가 기록되어 다음 세대인들에 의해 정경으로 통용되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음에 선지자들, 곧 선지서는 추방 이후 귀환시기와 그 이후 주전 400년 전에 전부 기록되었고, 그 책들이 정경으로 인정된 것은 확실하게 말하기 어려우나 헬라어 구약 성경이 번역되기 전에 그러니까 주전 250년 전에는 정경으로 인정을 받았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구약의 나머지 제책들은 문서들, 혹은 성문서도 선지서와 비슷한 시기에 정경으로 인정받았으리라 추정된다.

이러한 추정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중요한 역사적 자료들에 근거한다. 우선, 주전 190년 어간에 기록된 것으로 보이는 집회서가 (Ecclesiasticus 벤 시라) 그 서문에서 "율법 자체와 예언들과 또 다른 책들"을 언급한다. 다른 증거는 신약 자체에서 등장하는데, 예수님은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이란 구약의 삼분법을 사용하였다 (눅 24:44). 마 5:17, 눅 16:16 등에서는 구약을 이대분하여 "율법과 선지자"라 불렀다. 이 경우에는 제3 그룹인 성문서가 선지서에 포함되었음이 분명하다.

요세푸스는 Contra Apionem i.8에서 (주후 95년경) 유대인들이 22권의 진정한 책들을 원래 상태로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구약을 기독인들이 상하로 구분하는 구분이 없이 계수하여 전부 22권으로 고려했던 것이다. 상하 구분만 없애고 계수 할 뿐 아니라, 룻기사사기에, 애가서예레미야서에 첨가된 것으로 간주하여 각기 한 권으로 계수하였다. 요세푸스는 그 구약 책들은 1) 모세시대부터 알탁세륵세스 1세 (주전 465-424년) 시대 어간에 영감된 사람들에 의해 기록되었고, 2) 그 자료의 거룩함은 다른 세속 문서와 구분되며, 3) 그 책들은 수자에서 한정되며, 4) 그 책들이 말씀은 신성불가침이다 라고 했다.

제2 에스드라서 14:18-48에 의하면 (주후 100년경) 정경은 에스라에 의해 확정되었다고 한다. 예루살렘이 파괴당했을 때, 에스라가 40일간 다섯 명의 조수들에게 손실된 문헌들을 구술하여 받아 적게 했다 한다. 그 책들은 모두 24권의 정경 책들과 지혜자를 위한 70여 권의 다른 책들이다.

이상과 같은 증거들에 근거하여 기독교회는 역사적으로 구약 정경은 적어도 주전 300년 즈음에 완성된 것으로 확신해왔다. 그러나 계몽운동의 여파로 시작된 비평적 경향으로 비평적 학자들은 구약 정경의 확립 시기를 주전 100년에서 주후 100년 어간으로 늦추어 잡는다. 그것은 앞서 언급한 그래츠의 얌니아 정경 확립 가설 때문이다.

또한 비평 학자들은 모세 오경의 확립 시기를 아주 늦게 주전 500-400년 언간으로 잡는데, 이는 소위 문서설이란 가설 (Documentary hypothesis) 때문이다. 문서설에 의하면, 오경은 모세의 저작이 아니라, J, E, D, P라는 네 개의 독립 문서들의 짜집기에 불과하며, 이 독립 문서들은 각기 주전 9, 8, 7, 5세기 저작들인데, 이 네 문헌들이 추방 이후에 하나로 편집되어 현재의 오경이 되었다 한다. 이런 문서설은 오늘날도 여전히 비평적 학자들이 인정하는 학설이지만, 전통적인 기독교의 입장과는 거리가 멀다.

[편집] 각 교회들의 정경

  • 성공회 : 외경은 준정경으로 하고, 신약성서와 구약성서 66권을 정경으로 함.
  • 천주교 : 외경을 제2의 경전으로 인정하여, 정경에 포함함. 도합 73권.
  • 정교회 : 외경을 제2의 경전으로 인정하여, 정경에 포함함.
  • 유대교 : 구약성서 39권만 정경으로 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