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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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11월 25일, 카이로에서 열린 카이로 회담에 참석한 중화민국 총통 장제스,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즈벨트,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

카이로 선언(Cairo Declaration)은 1943년 11월 27일 ··의 3개 연합국이집트수도 카이로에 모여 발표한 공동선언이다. 5일간에 걸친 회담에는 루스벨트·처칠·장제스 등이 대표로 참가했으며, 회담 결과 발표한 이 선언에서 연합국은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후 최초로 일본에 대한 전략을 토의했다. 또한 회담에서 연합국은 승전하더라도 자국(自國)의 영토 확장을 도모하지 않을 것이며, 일본이 제1차 세계 대전 후 타국으로부터 약탈한 영토를 반환할 것을 요구했다. 특히 한국에 대해서는 앞으로 자유독립국가로 승인할 결의를 하여 처음으로 한국의 독립이 국제적으로 보장을 받았다. 카이로 선언의 조항은 포츠담 선언에서 재확인됐다.

카이로 선언 주요 내용[편집]

각 군사사절단은 일본에 대한 장래의 군사행동을 협정하였다. 3대 동맹국은 일본의 침략을 정지시키며 이를 벌하기 위하여 이번 전쟁을 속행하고 있는 것으로, 위 동맹국은 자국을 위하여 어떠한 이익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며 또 영토를 확장할 의도도 없다.

위 동맹국의 목적은 일본이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개시 이후에 탈취 또는 점령한 태평양의 도서 일체를 박탈할 것과 만주, 대만 및 팽호도와 같이 일본이 청국으로부터상태에 유의하여 적당한 시기에 한국을 자주 독립시킬 결의를 한다. 이와 같은 목적으로 3대 동맹국은 일본과 교전 중인 여러 국가와 협조하여 일본의 무조건항복을 촉진하는데 필요한 중대하고도 장기적인 행동을 속행한다.

  • 원문

"The several military missions have agreed upon future military operations against Japan. The Three Great Allies expressed their resolve to bring unrelenting pressure against their brutal enemies by sea, land, and air. This pressure is already rising.

"The Three Great Allies are fighting this war to restrain and punish the aggression of Japan. They covet no gain for themselves and have no thought of territorial expansion. It is their purpose that Japan shall be stripped of all the islands in the Pacific which she has seized or occupied since the beginning of the first World War in 1914, and that all the territories Japan has stolen from the Chinese, such as Manchuria, Formosa, and The Pescadores, shall be restored to the Republic of China. Japan will also be expelled from all other territories which she has taken by violence and greed. The aforesaid three great powers, mindful of the enslavement of the people of Korea, are determined that in due course Korea shall become free and independent.

"With these objects in view the three Allies, in harmony with those of the United Nations at war with Japan, will continue to persevere in the serious and prolonged operations necessary to procure the unconditional surrender of Japan."

이후의 논란[편집]

  • 일본의 가세 도시카즈 총무국 참사관(1947년 당시)은 일본 정부 내부적으로 대일강화조약 체결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카이로 선언은 일본 정부가 감수하기 곤란한 영토 조항을 담고 있다며 이를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1]
  • 양제츠 중국 외교부장(장관)은 2012년 9월27일(현지시각) 제67차 유엔 총회 일반 연설에서 "일본은 중국의 신성한 영토인 댜오위다오를 갑오전쟁(청일전쟁)이 끝난 1895년 불평등조약으로 부당하게 훔쳐갔다. (일본이) 중국 정부가 강제로 불평등 조약에 서명하게 만들었다"며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후 카이로선언과 포츠담선언은 일본이 댜오위다오와 그 부속도서를 중국에 돌려줄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고 말한 뒤 "일본의 댜오위다오 국유화 조치는 반(反) 파시스트 전쟁 승리의 결과를 공공연하게 부정할 뿐 아니라 전후 세계 질서와 유엔헌장의 취지 및 원칙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고 말했다.

주석[편집]

  1. 《독도1947》,정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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