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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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도
다른이름: 소코트라 암초, 파랑도, 쑤옌자오
지리
이어도-Ieodo (en-socotra rock).png
위치 동중국해의 북서쪽 지역
좌표 북위 32° 07′ 22.63″ 동경 125° 10′ 56.81″ / 북위 32.1229528° 동경 125.1824472° / 32.1229528; 125.1824472좌표: 북위 32° 07′ 22.63″ 동경 125° 10′ 56.81″ / 북위 32.1229528° 동경 125.1824472° / 32.1229528; 125.1824472
최고점 해저 -4.6 m
실효 지배
대한민국 대한민국
영유권 주장
대한민국 대한민국
중화인민공화국 중화인민공화국
이어도의 모습을 추정하여 그린 그림.

이어도(離於島), 파랑도(波浪島) 혹은 소코트라 암초(영어: Socotra Rock(Reef)), 쑤옌자오(중국어 간체: 苏岩礁, 정체: 蘇岩礁)는 동중국해 북서쪽 근방 한중 잠정 조치 수역 내에 있는 등수심선 50 m을 기준으로 길이는 남북으로 1800 m, 동서로 1400 m, 면적 약 2㎢의, 정상부를 기준으로 동쪽과 남쪽은 급경사를 이루고, 서쪽과 북쪽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는 수중 암초이다. 암초의 최정상이 바다의 평균 해수면에서 4.6 m 잠겨 있어 10 m 이상 파고파도가 칠 때를 제외하면 여간해서 그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1][2]

이어도는 약 1만1000년 전인 빙하기(glacial age)에는 제주도와 이어지는 육지였다. 이 곳과 그 일대는 현재의 간빙기(interglacial age) 해수면 상승에 의해 해저 대륙붕을 이루게 된 것이다.[3]

명칭[편집]

이어도파랑도는 한국어권에서 주로 쓰이며 쑤옌자오는 최근 중국 공산당에서 부르는 이름이다.[1] 영어권에서는 영국 상선 소코트라(Socotra)호가 1900년에 발견하였다는 것에 착안해 선박의 이름을 따서 소코트라 암초(영어: Socotra Rock(Reef))라 한다.

위치[편집]

북위 32° 07′ 22.63″ 동경 125° 10′ 56.81″ / 북위 32.1229528° 동경 125.1824472° / 32.1229528; 125.1824472에 위치해 있으며,

설화 및 역사[편집]

근·현대 이전 기록[편집]

한국[편집]

  • 제주도 사람들은 이 섬을 이상향으로 생각하는 전설이 있었다. 이 섬은 원래 구전되는 전설에 따르면 바다로 나가 돌아오지 않는 어부들이 가는 섬, 어부들이 죽으면 가는 환상의 섬으로 알려져 왔다. 구전되는 설화마다 세부사항은 다르지만, 크게 각 설화마다 대략적으로 일치하는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9]
"어부가 배를 타고 폭우가 쏟아지는 바다에서 방향을 잃었다가 처음 보는 작은 섬에 도착했는데, (대략 지금으로 치자면)초등학교 운동장만한 면적의 작은 섬이고 자갈바위 밖에 없는 섬이 있더라.

그런데 섬 한가운데에 돌을 쌓아 올려 만든 사당 같은 게 보여서 가보니 한칸짜리 사당 안에는 밥상이 있고 그 위에 김이 피어오르는 쌀밥 한 그릇이 놓여 있더라. 주위를 아무리 살펴봐도 사람의 흔적은 보이지 않고,

사람이 숨을 만한 장소도 없는데 막 지어 올린 듯한 쌀밥이 놓여 있으니 섬뜩해져서 비바람을 무릅쓰고 섬을 떠나 버렸다더라."

여기서 사당이 아닌 초가집 혹은 쌀밥이 아니라 보리밥이라 하는 여러가지 변주가 있으나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씨에 섬이 나타나더라."는 점은 변형되지 않는 공통점으로 보여진다. 1984년 제주대학교가 이곳을 탐사한 뒤, 이 섬을 파랑도라고 명명하고 이를 전설상의 이어도와 결부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아직 전설상의 이어도와 이 섬의 상관관계는 밝혀지지 않았다.
"8월 1일 새벽에 우리는 조그마한 섬 근처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떻게 해서든 섬 뒤편에 을 내릴 만한 장소를 찾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결국 위험을 무릅쓰고 우리는 닻을 내리는 데 성공했다.

그 섬 바로 뒤편에 큰 암초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닻을 내린 상태로 있어야만 했으며 바다는 더욱더 거세어졌다."

중국[편집]

  • 중국의 고대 지리서이자 각종 신화·전설들을 기록한 산해경(山海經, B.C.475년 ~ B.C.221년 경)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11]
『 東海之外、………、大荒之中、有山名曰猗天蘇山 』

"동해(중국 기준, 한국 기준으로 황해를 의미) 밖 태황 가운데 산이 있으니 이름하여 의천소산(蘇山, 쑤옌)이라 한다."

로서, 쑤옌이라는 섬이 있다는 기록이 있지만 이것이 현재의 이어도를 의미하는 것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12][13]

근·현대 기록[편집]

  • 1900년: 영국 상선 소코트라(Socotra)호에 의해 이어도가 범 국제적(한반도 주변국 외), 공식적으로 발견되었다.[1]
  • 1910년: 영국 해군 측량선 워터 위치(Waterwitch)호에 의해 그 깊이가 5.4m 정도인 암초로 측정되었다.[14] 이와는 별개로, 영국 해군 중장이었던 Archibald Day는 그의 저서 <1795~1919년간의 영국 해군 본부 수로 측량국(기록), (영어: The Admiralty Hydrographic Service, 1795~1919)>에서 해당 측량 조사가 1901년에 행해졌다 주장하기도 하였다.[15]
  • 1938년: 일본에 의해 해저진선 중계시설등대시설을 설치할 목적으로 직경 15미터, 수면 위로 35미터에 달하는 콘크리트 인공 구조물을 설치할 계획이었으나 태평양 전쟁의 발발로 무산되고 말았다.[14]
  • 1944년 12월 25일 오후 7시 경, 미 해군은 미 해군의 전함(잠수함) Icefish 호를 수면위로 떠오르게 한 뒤, 황해를 향하여, 서쪽으로 진행하다 이윽고 북진하며(각각 마라도-이어도와, 제주도-흑산도에서 최종적으로 상하이로 이어지는 경로를 따라가며)[16], 순찰하던 중 소코트라 암초(Socotra rock)를 미 해군 Icefish 호의 2차세계대전 2번째 순찰 보고서《USS Icefish, 2nd War Patrol Report-2nd patrol》에 기록하였다.[17]
  •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되었으나, 국공내전이 아직 진행 중에 있었으므로, 저우산도(중국어 간체: 舟山岛)근처의 동중국해는 중화민국 해양 순시선 관할 하에 있었다. 그러나 해당 순시선은 이어도의 정확한 위치를 알아내지는 못하였다.
  • 1951년: 국토규명사업을 벌이던 한국산악회대한민국 해군이 공동으로 이어도 탐사에 나서 높은 파도와 싸우다 바다 속의 검은 바위를 눈으로만 확인하고 ‘대한민국 영토 이어도’라고 새긴 동판 표지를 수면 아래 암초에 가라앉히고 돌아왔다.[14]
  • 1952년: 당시 대한민국이승만 정부는 《국무원 고시 제 14호》를 통해, 한국 인접해양에 대한 한국의 주권 내용을 담고 있는 평화선을 공식적으로 선언하여 이어도를 포함한 한반도 주변 해역을 영해와 한국 관할 평화선(평화선이란, 현 국제 해양법 상 배타적 경제 수역 개념과 유사하며, 당시 해당 개념을 관습적으로 따르는 경향이 있었으나, 현 배타적 경제 수역 개념과의 세부적 차이와 당시 해당 개념이 법적으로 명문화 돼 있진 않았으므로, 편의상 직접적으로 배타적 경제 수역이라 부르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적다.)[18] 내부 수역으로 포함, 명문화시켰다. 이때, 당시 중화인민공화국은 별다른 반응을 내놓거나, 항의를 하지 않았다.[19]
  • 1950년대 중화인민공화국 인민해방군 소속 동해함대가 이어도에 대한 조사를 시행하였다.
  • 1963년: 5월 1일 13시 55분경, 중화인민공화국이 자체 제작한 최초의 원양화물선 "약진"(Yuejin)호(15,930톤)가, 칭다오를 거쳐 일본 나고야로 가기위해 처녀항행중 해수면 및 어떤 물체에 부딪혀 침몰하였으나, 다행히도 승선했던 선원 59명은 부근에서 조업중이던 일본 어선에 의해 구조되었다.(5월 2일 19시30분경 귀환) 사건 초기엔 어뢰의 공격을 받았다고 주장한 선원들의 발언에 의해 국제 분쟁으로 발전할 뻔했으나, 사건이 해명되는 과정에서, 당시 배는 이어도를 향해 가다 부딪친 것으로 밝혀졌고, 어뢰공격설은 선원들의 방향 오판으로 인한 착각으로 간주되어 사건이 일단락되었다.[20] 사건이 마무리 되가고 있었을때, 한국과 주변국들은 큰 반응을 내보이진 않았다.
  • 1963년 5월 1일-6월 3일 상하이해상(수로)관함대가 난파선을 이어도기준 남서쪽으로 2.8 km 거리만큼 떨어진 곳에서 발견하였다. 이에 대해 한국정부는 공식적으로 별다른 반응을 내놓진 않았다.
  • 1970년: 대한민국 정부가 이어도 해역을 제 4광구로 지정한 해저광물자원개발법을 제정하였다. 이에 대해 중화인민공화국은 별다른 공식적 반응을 내놓진 않았다.[21]
  • 1982년: 82년도에 개최된 제 3차 국제 해양법 회의에서, 94년부터 발효된 해양법에 관한 국제 연합 협약에 따른 배타적경제수역(EEZ) 개념이 채택되었다. 여기서 몇가지 의미있는 사항을 짚고 넘어갈 수 있는데, 이 협약 제 121조 1항에서 섬이란 자연스럽게 형성된 육지이고 물에 둘러싸여 만조시에도 수면위에 있는 것으로서 정의내리고 있다는 것과, EEZ개념의 등장 이래, 인접성의 기반 위에 있는 국가 간 해안 경계 획정시 중간선 원칙등과 같은 형평성 원칙을 기본으로 하며, 그 외 상호 간 자연적 요소는 고려하되, 인구, 경제력등의 사회적 요소는 일반적으로 배제시키는 경향을 일반화 시켰다는 점이다.[22][23]
  • 1984년: 제주대학교-KBS 파랑도 학술탐사팀의 조사에 의해 그 정확한 위치가 다시 확인되었다.[14]
  • 1986년: 대한민국 수로국(현 대한민국 국립해양조사원) 조사선에 의해 암초의 수심이 4.6미터로 측량되었다.[14]
  • 1987년: 대한민국 해운항만청이 이어도 최초의 구조물인 이어도 등부표(선박항해에 위험한 곳임을 알리는 무인등대와 같은 역할을 하는 항로표지 부표)를 띄우고 국제적으로 공표하였다.[14]
  • 1995년: 대한민국 해양수산부가 해양연구·기상관측·어업활동 등을 위한 이어도 과학기지 설치를 위해 해저지형 파악과 조류관측 등 현장조사를 실시하기 시작하였다.[1]
  • 1990-2001년에 걸쳐 대한민국 정부는 이미 이어도 해양조사 시설을 설치/운용하였으나, 해상경계 획정 협약(EEZ)에도 불구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의 반발로 인하여 갈등/긴장이 고조되었다. 일례로, 중공측 정찰기에 의한 정찰이 수번이나 있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는 것을 들 수 있다.[1]
  • 2001년: 한ㆍ중 어업협정에서 이어도 유역이 대한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 어선의 공동 조업지대로 설정되어, 논란을 불러 일으키기도 하였으나, 단순 어업 한정으로 맺은 협정이므로, 한-중간 근본적인 해안 경계 획정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1]
  • 2001년에 대한민국 정부가 이어도에 해양과학기지건설을 착공하여 2003년 6월경 완공하였다.[1]
  • 2006년: 한ㆍ중 양국이 이어도는 수중 암초이 아닌 만큼 영토분쟁의 대상이 아니라는 데 기본적인 합의를 하였다.(국제 해양법 상 이어도는 원래 암초로 분류됐고, 영토의 지위를 갖지 못하기 때문에 이에 대해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이전부터 불가능하였다. 또한 EEZ 해안 경계 획정과 영토분쟁은 해양법 상 다른 차원의 문제이므로, 이것 또한 한-중간 근본적인 해안 경계 획정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1]
  • 2013년 11월 23일 :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이어도를 포함하는 방공식별구역을 선포.
  • 2013년 12월 8일 : 대한민국도 방공식별구역을 이어도까지 확장 선포.

대한민국의 종합 해양 과학 기지[편집]

대한민국 정부는 해양연구·기상관측·어업활동 등의 목적으로 1995년부터 해저지형 파악과 조류관측 등 현장조사를 실시해왔으며 2003년 6월 이어도 정봉에서 남쪽으로 약 700m 떨어진 곳에 이어도 종합 해양 과학 기지(동경 125도 10분 56.81초, 북위 32도 07분 22.63초)를 설치하였다.

배타적 경제 수역의 설정을 둘러싼 분쟁[편집]

국제법 UNCLOS에 따른 바다의 구분. 황해는 폭이 좁아 배타적 경제 수역을 그림처럼 200 해리로 설정할 수 없다. 이런 경우 중간선 원칙이나 역사적 배경, 여타의 기준을 근거로 겹치는 곳을 적당히 나눠 EEZ를 정해야 하는데, 대한민국중화인민공화국1996년 협상 시작 이후 현재까지 EEZ 획정 문제를 마무리짓지 못하고 있다. 이어도가 위치한 제주도 남쪽 바다는 협상의 주요 쟁점 가운데 하나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이곳을 이어도나 파랑도라는 이름으로 부르지만, 법적으로는 이 아니다. 대한민국 정부도 이어도를 섬이라고 하지 않고 있고 대한민국의 배타적 경제 수역(EEZ) 내에 있는 수중 암초라고 주장하고 있다[24]. 따라서 이어도나 파랑도라는 용어에 있는 도(島: 섬)는 단지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25]. 이어도는 법적으로 영토의 지위를 갖지 못하기 때문에 이에 대해(이어도를 중심 기점으로 한) 영유권을 주장하거나 배타적 경제 수역을 설정할 수 없다[26]. 대한민국 정부는 이어도 해양과학기지를 건설하여 운용 중이기는 하지만 이를 통해 배타적 경제 수역이 확장이 되는 것은 아니다[27].

한국측 주장[편집]

배타적 경제 수역(EEZ)은 영해로부터 일반적으로 200해리 지점이나, 두 나라의 수역이 겹칠 경우, 그 중간지점을 기준으로 삼는 국제 해양법 재판소 중간선 원칙 상 이어도 부근해역은 한국 관할지역이라는 주장이다.[28][23]

"맨 윗 지도에서 보다시피 대한민국마라도중화인민공화국퉁타오는 396km떨어져 있으며 그 중간지점은 198km지점이므로, 마라도에서 149km떨어진 이어도 주변해역은 당연히 한국관할 지역이 된다. 또한 이전까지 이렇다 할 시설물이 존재하지 않던 그곳에, 1990년을 기점으로 한국에서 해양과학기지를 설립했으며, 예전부터 대한민국측이 실효적으로 관리해 오고 있었던 것 역시 이런 주장의 당위성을 강화시켜 준다. 마지막으로, 역사 및 설화 사항에서 보이듯이 설화나 민담 등에서 과거부터 한국 관할지라는 점이 인지되어 왔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중국측 주장[편집]

중화인민공화국 측 입장은 배타적 경제 수역(EEZ)의 경계 획정은 중간선이 아닌 대륙붕을 기준으로 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29][30]

즉, 황하장강(양쯔)강에서 흘러내려온 퇴적물이 쌓이면서 형성된 해저 지형을 따라 EEZ 경계선을 그어야 한다는 것으로, 이 주장에 따르자면 동중국해의 3분의 2가 중국 관할 EEZ로 편입된다.

"중화인민공화국의 해안선이 더 길고 중국은 한국보다 인구가 훨씬 많으므로, 중간선을 기준으로 기계적으로 나눌 수는 없다. 또 공동 수역에서 중간선 원칙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양국의 합의가 필요한데 한중간 경계획정이 되지 않았으니 관할권이 합의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과거 중국 지도에 이어도 인근 해역이 중국측 해역으로 표기된 적이 있어, 한국과 유사하게 주변해역의 관할지 인식이 존재했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로서 각각 들 수 있다.
원론적으로, 국제법상 가장 중요한 대립점은 가장 위에 있는 중간선 원칙에 관련된 사항이며 나머지는 부가적인 사항이다.[31]

다만, 중화민국 정부에서는 센카쿠 열도 분쟁과 달리 이와 관련한 어떤 입장도 내놓지 않았다.

그 외 사건들[편집]

1999년 중화인민공화국 탐사단은 이 섬보다 대한민국 영해에 가까운 지점에서 암초인 파랑초(중국명: 딩옌)를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최근에는 한-중 양국이 유엔에 각각 이 암초에 대한 것을 제출하면서 영토 분쟁의 조짐화를 보이고 있다.[32] 중화인민공화국의 대표적인 검색엔진인 바이두(百度)에는 이 섬이 중국 영토라고 되어 있었지만, 하루 만에 독도를 제외한 이 섬과 관련된 부분을 삭제시켰다.[33] 하지만 2012년 3월에 중국이 이어도를 중국영토라고 주장하면서 대한민국정부는 중국대사에게 항의를 하기도 했다.[34] 심지어는 중국에서 이어도는 중국 문명의 연장선에 있다는 왜곡주장이 섞인 가요까지 나왔다.[35]

2011년 8월 5일, 김성만 전 해군 작전사령관(예비역 해군 중장)은 "중국이 이어도를 노리는 이유는 이어도 일대에 묻혀 있는 지하자원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도를 포함한 동중국해 전체의 원유 추정매장량은 최대 1000억 배럴, 천연가스는 72억 톤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36]

같이 보기[편집]

주석[편집]

  1. 이어도 - 두산세계대백과사전
  2. 종합해양과학기지-이어도 소개-이어도 형상
  3. [이어도를 어떻게] 전설의 섬 ‘이어도토피아’가 해양영토 전초기지로
  4. 타이부자오 중국어 간체: 泰簿礁, 혹은 타이자오 중국어 간체: 泰礁, 또는 비에밍퉁타오중국어 간체: 别名童岛라고도 부른다.
  5. 중국의 대륙 영해부분 기준선 제 11번 기점
  6. 북위 31° 25′ 03″ 동경 122° 14′ 06″ / 북위 31.41750° 동경 122.23500° / 31.41750; 122.23500
  7. 한중해양과학공동연구센터
  8. 중국 "제주-이어도 점령이 제일 쉬웠어요" 한다면
  9. 전해오는 이야기. 이어도 종합해양과학기지. 2011년 5월 13일에 확인.
  10. 황윤정 기자(고충석 전 제주대 총장, 현 이어도연구회 이사장 건 발췌). ""하멜표류기에 이어도 추정 암초 기록 있다"", 《연합뉴스》, 2012년 3월 13일 작성.
  11. 산해경 - 두산세계대백과사전
  12. 주강현, 제주대학교 석좌교수. "이어도를 내버려둬라", 《Le Monde Diplomatique 한국판, 2012년 43호》, 2012년 4월 14일 작성.
  13. 주강현, 제주대학교 석좌교수(발췌). "이어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으신가요? -이어도는 어떻게 이어도가 되었는가, 이어도의 실체-", 《http://www.jynews.kr》, 2012년 6월 6일 작성.
  14. 종합해양과학기지-이어도 소개
  15. 영국 해군 중장 Archibald Day (1967년). 《The Admiralty Hydrographic Service, 1795 ~ 1919 <1795~1919년간의 영국 해군 본부 수로 측량국(기록)>》. HMSO, 200쪽
  16. 해당 문단에서의 Mara to는 마라도, Socotra rock는 이어도, Saishu to는 제주도를, 마지막으로 Kokuzan은 흑산도를 의미한다.
  17. 영어: USS Icefish, 2nd War Patrol Report-2nd patrol
  18. <국무원고시 제14호 인접 해양에 대한 주권에 관한 선언>, 한국사 데이터 베이스
  19. [1]
  20.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경향신문, 1963년 5월 2일자, 3면 상단기사(발췌)
  21. 국가기록원, 1970년 1월 1일 해저광물자원개발법 제정·공포
  22. 김석균 (2009). 《海事法硏究 第21卷 第1號(해사법연구 제 21권 제 1호)중 해양국제판례를 통해 본 해양경계획정의 원칙에 관한 소고》. 한국해사법학회, 225-250쪽
  23. 해양국제판례를 통해 본 해양경계획정의 원칙에 관한 소고
  24. 대한민국 국립해양조사원. 이어도 소개. 2012년 6월 6일에 확인.
  25. 남영우·최재헌·손승호 (2009년 8월 10일). 《세계화 시대의 도시와 국토(제5판)》. 법문사(法文社), 59쪽. ISBN 978-89-18-25065-6
  26. 남영우·최재헌·손승호 (2009년 8월 10일). 《세계화 시대의 도시와 국토(제5판)》. 법문사(法文社), 60쪽. ISBN 978-89-18-25065-6
  27. 남영우·최재헌·손승호 (2009년 8월 10일). 《세계화 시대의 도시와 국토(제5판)》. 법문사(法文社), 61쪽. ISBN 978-89-18-25065-6
  28. 제성호(중앙대 법대 교수). "<"중국의 이어도 시비는 국제법적으로 부당하다.">", 《월간조선》, 2006년 9월 20일 작성.
  29. 중국은 2004년 베트남과의 통킹 만 EEZ 경계를 획정 시 지금과는 반대로, 해저 지형 대신 중간선 원칙을 기준으로 정한 선례가 있다. 통킹 만 대륙붕은 지질 구조상 3분의 2가 베트남 쪽에, 3분의 1이 중국 쪽에 속해 있다.[2]
  30. 김찬규 경희대 명예교수 (국제법). "<(내 생각은…) 중국, 해양정책 일관성 유지해야>", 《중앙일보, CNN Joinmsn》, 2005년 4월 07일 작성.
  31. 2012년 4월 국제 해양법 재판소방글라데시미얀마벵골 만 해역의 경계선을 중간선 원칙에 의거, 양국의 중간선으로 결정했다.[3]
  32. 韓中 이어도 영유권 분쟁 불붙나
  33. 중국 바이두 '이어도는 중국 영토' 삭제
  34. 정부, 中대사에 `이어도 관할권주장' 항의(종합)
  35. 中 "이어도는 중국 문명의 연장" 선전가요까지 퍼뜨려
  36. “중국, 2016년 이어도 침공 가능성 높다”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