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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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화인민공화국의 자치구는 티베트 자치구를 참고한다. |
| 티베트 망명정부가 주장하는 티베트의 영역 | ||||||
| 중국 정부가 정한 티베트 영역 | ||||||
| 티베트 자치구 | ||||||
| 인도가 악사이 친의 일부라고 주장하는 지역 | ||||||
| 중국이 티베트 자치구의 일부라고 주장하는 지역 | ||||||
| 그 외의 티베트 문화 영향권 | ||||||
티베트(티베트어: བོད 보드, 중국어: 西藏 시짱[*])는 중앙아시아에 위치한 고원 지역으로, 토착 티베트인들의 고향이다. 평균 고도는 약 4,900m이며, 지구상의 육지에서 가장 높은 곳이어서 '세계의 지붕'이라고 불린다.
티베트는 현재 중국의 일부(시짱 자치구)이다. 관점에 따라서는 일부가 인도에 포함되기도 하며, 대만에서는 공식적인 자국의 영토로 주장하기도 한다. 티베트의 주권과 관련하여, 중화인민공화국(중국)과 티베트 망명 정부는 티베트가 중국의 일부가 된 시기와 티베트가 중국에 합병된 것이 국제법상 효력이 있는 것인가에 대하여 이견이 있다.
목차 |
[편집] 개요
티베트는 중국과 인도의 사이에 위치해 있으나 히말라야 산맥과 티베트 고원에 둘러싸여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히말라야 산맥의 북측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 지역의 평균 고도가 4900m가 넘어, '세계의 지붕'이라고 일컬어진다. 티베트는 지리적으로뿐만 아니라 외교적으로도 고립된 지역이다. [1]
[편집] 티베트 신화
티베트 신화는 진화론과 과거 티베트 지역의 상당부분이 바다였음을 알고 있었던 듯한, 관찰할 만한 신비로운 성격을 띠고 있다.
'먼 옛날 이 설역 고원은 바다였다. 바람이 일고 파도가 치니 거품이 일어나고 이 거품들이 쌓이고 쌓이자 육지를 형성하였다 …(중략)… 시간이 또 흘러 남해 바닷가 보따낙가산 관음보살은 변종으로 나타난 원숭이를 보고 그를 대륙으로 보내어 살게 했다. 원숭이는 불도를 지키며 얄룽계곡의 한 동굴에 살게 되었는데, 남자(수컷)원숭이는 '투' 였고, 여자(암컷)원숭이는 '초' 였다. …(나찰녀가 나타나 원숭이와 결혼한 내용. 중략)… 그 후 나찰녀와 원숭이 사이에서 서로 다른 성격과 외모를 가진 여섯 자식을 낳았다. 그 후손들은 점차 털이 줄고 꼬리가 짧아지면서 일어나 사람처럼 변하였고, 결국 사람이 되었다.
[편집] 역사
[편집] 선사시대
1만여 년 전부터 티베트 지역에서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고고학적인 증거가 있다.[2] 중국어와 고대 티베트미얀마어군은 티베트인들은 유목 생활을 하고 중국인들은 황하에서 밀을 재배하기 시작한 기원전 4,000년경에 분리되었다고 추측된다. 티베트인들은 약 500년경에 미얀마와 분리되었다.[3][4]
철기시대의 구릉지 마을과 매장지가 티베트 고원에서 발굴되었는데, 티베트의 고대 문서를 따라 샹슝(Zhang Zhung, 象雄)문화로 명명되었다. 이들은 뵌(Bön) 지역 문화의 기원으로 알려졌다.
[편집] 티베트 왕국(토번)
티베트민족과 한족의 마찰은 기원전 2세기 한나라의 서역 개척 무렵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티베트의 기록된 역사는 7세기초에 남리루쩬(囊日論贊)왕이 중국에 사신을 보냈음이 확인된다(중국 사서로 보면, 「신당서」엔 4세기 첸뽀(贊普, 토번 왕을 이르는 명칭) 라토토리넨쩬(拉托托日年贊)이 '줘떠투두' 로 기록되어 있다).[5] 티베트의 역사는 야루짱부강 계곡의 일부를 통합하여 왕국으로서 다스린 송첸캄포(松贊干布, 581 ~ 649년)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640년 당 태종의 조카인 문성공주(文成公主, 625~680)와 혼인하였다. 티베트의 군대는 663년 ~ 672년에는 동북방의 칭하이와 간쑤 지방의 토욕혼 왕국을 점령하였다. 670년 ~ 692년에는 당과 대비천 전투(669년)를 통해 타림 분지와 인접한 신장과 카슈가르시를 점령하고, 승풍령 전투(678년)에 승리해 지위를 확고히 하였으나 692년 중국 왕조 당나라의 장수 왕효걸이 이끄는 군대에 서역을 빼앗겼다. 당은 이 기세를 몰아 토번을 압박하고자 했으나 토번 최고의 명장으로 일컬어지는 가르친링(대비천, 승풍령 전투 승리시의 지휘관)에 의해 소라한산에서 패하고 돌아가게 되었다.
티베트인들은 아랍, 동부 투르크와 동맹을 맺었다. 747년에는 당나라의 장군인 고선지의 원정으로 중앙아시아에 대한 티베트의 영향력이 약해졌다. 750년까지 티베트인들은 중앙아시아에 대한 지배권을 거의 대부분 잃었다. 고선지는 751년 탈라스 강 전투에서 아바스 왕조와 칼룩스의 연합군에 패하였고, 중국의 영향력은 급속하게 줄어들고 티베트의 세력이 회복되었다. 티베트는 북부 인도의 상당 부분을 점령하였고, 763년 안사의 난 때에는 당나라가 토번에 매년 바치던 공납을 중단한 것을 빌미삼아 그 당시의 첸뽀 치쏭데쩬(赤松德贊)이 다짜뤼공(達札樂宮)을 동정원수로 임명해 20만 대군을 이끌고 당나라의 도읍인 장안을 잠시 장악하기도 하였다.[6][7][8]
821년 또는 822년에는 티베트와 중국은 평화협정을 맺었으며, 두 나라의 국경에 대한 설명과 함께 양국 언어로 기록된 이 조약은 라싸의 조캉사원 앞의 돌기둥에 새겨져 있다.[9] 티베트는 9세기 중엽에 이르기까지 중앙아시아에서 왕국을 유지했다. 이 시기의 티베트는 토번(吐蕃)이라 불렸고, 티베트 문자를 사용하였으며, 200년 간 9대의 왕이 다스렸다.
[편집] 몽골과 청나라 이후
이후 티베트는 13 ~ 14세기에는 원나라의 지배를 받기도 하였으며, 1750년에는 청나라 건륭제의 팽창 정책으로 보호령이 되었다.
1912년 청나라가 멸망한 후,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 정권은 완전한 독립을 모색하여, 1913년에 몽골과 상호승인조약을 체결하여, 두 나라가 협동하여 한인의 공화정권인 중화민국에 대항하기로 하였다. 몽골에는 러시아, 티베트에는 영국이 무기, 차관을 제공하는 등 외부의 지원이 있었으나, 영국과 러시아를 포함한 당시의 제국주의 열강 속에서 몽골과 티베트를 독립국으로서 인정하는 나라는 없었다. 티베트는, 신해혁명의 소식이 알려진 1913년, 라싸를 점거하였던 청나라 군대가 격렬한 시가전 끝에 물러났으나, 그 이후에도 중국국민당 등의 중화민국의 역대정권과 군사적인 긴장상태가 유지되었으며, 티베트 달라이 라마 정부의 실효적 지배영역내에서는 어떠한 중국의 기관도 설치가 승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1940년 달라이 라마 14세의 즉위식에 참석한 중국국민당의 사절단은 의식 후에도 귀국하지 않았고, 1948년에 강제로 퇴거되기까지 라싸에 계속 머물렀다. 제2차세계대전 중에는 연합군의 일원이 되었고, 영국령 인도로부터 이주해 온 영국군에 의해 갼세, 라싸와 카무 지방 각지에 통신기지가 건설되었다. 이 기지들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인민해방군이 티베트를 무력점거하기까지 영국군의 무선기사에 의해 운영되었다. 하지만 티베트의 오랜 정치, 종교 합일의 농노 제도하에 국민들이 점점 고통받으며 불만을 갖기 시작하였다.[출처 필요]
청나라의 멸망 이후, 중화민국의 역대정권은 독립국으로서 존재한 티베트를 중국의 일부라고 주장하였으나, 북경정권의 시대에는 군벌의 혼전, 남경국민정부 시대에는 대일전쟁으로 독립을 주장하는 티베트에 대하여 압력은 행사하였으나 본격적인 군사적 침략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1949년 중국공산당이 내전의 승리로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주의 국가인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우고, 티베트의 전 지역을 목표로 1950년 중국 인민해방군이 군사행동을 시작하여 티베트를 점령하였다. 1951년 이후, 거의 대부분의 지역이 중국에 의해서 점령, 통치되고 있으며 많은 티베트인들이 정치적인 이유 또는 탄압을 피해 인도로 망명했다. 중국공산당정부는 티베트 국민에 대한 잔인한 탄압과 학살로써 티베트를 억압지배하였고, 1960년대에는 중국 전역을 강타한 문화대혁명의 여파로 3,700개나 되던 사찰은 13개만 남고 모조리 파괴되었다.
이후 시짱자치구(서장자치구, 西藏自治區)가 설립되어 티베트인들에 대한 자치가 허용되었다. 티베트의 중국 귀속 이후로 망명을 떠난 티베트 인들의 일부는 동화정책에 따라 티베트로 돌아와서 살고 있다. 한인의 이민을 실시하여 한족의 인구 비율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10] 최근 중국 정부는 포탈라 궁을 보수하는 공사를 시행하였고, 2005년에는 티베트로 연결되는 철도가 완공되었다.
[편집] 2008년 티베트 반중국 시위
- 이 부분의 본문은 2008년 티베트 반중국 시위입니다.
2008년 3월 10일 1959년 티베트 독립운동 49주년을 기념하는 의미로 티베트 승려(수도승) 600여명의 중국 정부에 대한 항의 시위로 시작되어 2008년 3월 14일 티베트 독립운동 시위대가 중국 경찰과 충돌하면서 유혈사태로 번지게 되었고, 중국 정부의 무력진압으로 사태가 격화되었다.
[편집] 지리와 생태
| 이 부분은 부분 토막글입니다. 서로 지식을 모아 알차게 문서를 완성해 갑시다. |
세계에서 가장 높은 티베트 고원에 위치하고 있다. 네팔과의 국경에는 에베레스트 산이 있다. 수도(중심지)는 라싸(Lhasa, 拉薩)이다. 다른 지역으로부터 고립되었다는 특성 때문에 희귀한 동식물들이 많이 존재한다. 그러나 최근 한족의 유입에 따른 지역 경제의 성장으로 티베트 특유의 환경은 위협받고 있다. 티베트의 70%는 초원이어서 주요 산업으로는 농업이 차지하고 있다.
[편집] 기후
고산 기후의 특징을 띠고 있다.
[편집] 주민
대체로 티베트인이 거주하고 있으나, 동화정책으로 인하여 한족 인구가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편집] 종교
종교는 티베트인들에게 매우 중요하고 존중되는 문화의 한부분이다. 티베트의 주요 종교는 불교이며, 그리스도교 등의 다른 종교는 극소수로 존재한다.
[편집] 티베트 불교
불교는 인도로부터 전래되어 7세기에 국교의 자리로 차지하였다. 이 불교가 티베트의 특유의 문화인 티베트 불교로 발전한다. 티베트 불교는 바하라야나(Varjrayana)의 독특한 형식을 따른다. 티베트의 불교는 티베트에만 행하는 것이 아니라 몽골, 네팔, 부탄, 라다크, 등의 국가들에서도 행해진다. 티베트인들은 부처의 가르침에 아주 작은 의문조차 품지 않다고 하였다. 그러나 중국의 통치 이후 열렬한 종교 활동에 의문을 품은 중국 정부에 의해 불교는 정치화되었다.[11]
[편집] 언어
티베트인들이 쓰는 언어는 티베트 문자로 되어 있는 티베트어이다. 티베트 문자는 부탄의 공용어인 종카어에서도 사용된다. 티베트어는 티베트 고원과 부탄에서도 사용되고, 네팔의 일부와 인도 북부의 시킴 지역에서도 사용된다. 티베트어는 일반적으로 시노-티베트어족(Sino-Tibetan)의 티베트미얀마어군에 분류된다. 티베트말에는 다양한 방언이 있으며, 서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티베트와 다른 히말라야의 언어들은 종종 불분명하다. 티베트어의 다양한 방언을 고려하면, 티베트어족은 티베트 고원에 걸쳐 약 6백만 명이 사용하며, 약 15만 명의 망명자들이 사용하고 있다.
티베트 문자는 인도의 데바나가리 문자에 기원한다.[12]
[편집] 요리
- 이 부분의 본문은 티베트의 요리입니다.
티베트는 고산지대이기 때문에 식물이 별로 자라지 않아 주로 야크를 이용하는데, 특히 야크의 젖으로는 우유, 치즈 등을 만들 수 있다.
[편집] 관련 항목
[편집] 주석
- ↑ (영어)Inside Tibet, BBC NEWS.
- ↑ (영어)Science News Vol.160(pdf 파일)
- ↑ Van Driem, George 《Tibeto-Burman Phylogeny and Prehistory: Languages, Material Culture and Genes》
- ↑ Bellwood, Peter & Renfrew, Colin, 《Examining the farming/language dispersal hypothesis》, 2003년, 19장
- ↑ Beckwith, 《C. Uni. of Indiana Diss.》, 1977
- ↑ Beckwith, Christopher I. 《The Tibetan Empire in Central Asia》,1987, p.146) Princeton University Press. ISBN 0-691-02469-3.
- ↑ 《A Corpus of Early Tibetan Inscriptions》. H. E. Richardson. Royal Asiatic Society ,1985, pp. 1–25. ISBN 0-94759300/4.
- ↑ 《Tibetan Civilization》. R. A. Stein. 1962, 1972. Stanford University Press, p. 65. ISBN 0-8047-0806-1, ISBN 0-8047-0901-7 (pbk).
- ↑ 《A Corpus of Early Tibetan Inscriptions》. H. E. Richardson. Royal Asiatic Society ,1985, p. 106 ~ 143. ISBN 0-94759300/4.
- ↑ (영어)“Deemed a road to ruin, Tibetans say Beijing rail-way poses latest threat to minority culture”, 《Boston Globe》.
- ↑ Inside Tibet - Religion, BBC NEWS.
- ↑ Omniglot, "Tibetan alphabet, pronunciation and language"
[편집] 바깥 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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