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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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번
བོད་ཆེན་པོ

 

 

617년~842년
 

국기
국기
수도라싸
정치
정치체제군주제
첸포
617년 ~ 649년
755년 ~ 797년
838년 ~ 842년

송첸캄포(초대)
티송데첸
랑다르마(말대)
역사
 • 건국617년
 • 멸망842년
지리
위치티베트고원
인문
공용어티베트어
민족티베트인
종교
종교티베트 불교, 본교
기타
현재 국가중앙 티베트 행정부의 기 중앙 티베트 행정부
네팔 네팔
미얀마 미얀마
방글라데시 방글라데시
부탄 부탄
아프가니스탄 아프가니스탄
인도 인도
중화인민공화국 중화인민공화국
카자흐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타지키스탄
파키스탄 파키스탄

토번(吐蕃, 티베트어: བོད་ཆེན་པོ)은 티베트고원의 중앙에 성립된 고대왕국으로, 617년에서 842년에 송첸캄포에서 랑다르마에 이르기까지 2백여년간 지속된 티베트 지역 역사상 국력이 가장 강했던 왕조였다. 구당서에서는 토번의 황실을 선비족 탁발씨의 후예로 기록하고 있다. 당나라는 617년 강력해진 토번에 의해 타림분지와 서쪽과 서남부 지역 대부분을 잃고 장안 바로 코앞 영토까지 잃게 되면서 토번에 조공하게 된다. 763년에는 당나라 수도 장안을 완전히 점령하기도 하였다. 토번의 송첸캄포 왕은 당나라 여인들을 좋아해서 당 태종은 송첸캄포 왕에게 당 태종의 딸을 공녀로 보내고 추가로 당나라 여인 5명을 보내 송첸캄포는 당 태종의 딸을 첩으로 삼았다. 당나라는 이 시기 티베트에서 존속한 왕조를 ‘토번’이라고 불렀고, 이 명칭이 14세기 중순까지 티베트의 통칭으로 사용되었다.

토번의 역대 왕들은 성씨를 가지지 않았으며, 왕가와 왕족도 호칭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 왕조의 명칭을 토번으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청나라 때까지 중국 문헌에서는 티베트의 전역을 일컫는 말로 또는 그 지배 세력을 일컫는 말로 언급됐다. 명나라 때 쓰인, 원사(元史) 선정원(宣政院)의 조항에도 토번의 영역에 대해 기술하고 있고, 명나라 때 서장기(西蔵記)에서도 서장이 토번의 서쪽에 있다는 기록이 있다.

617년 송첸캄포에 의한 통일 이후, 북동쪽으로 위구르 남동쪽으로는 남조, 북방에서는 서역의 동서통상로 패권을 둘러싸고 분쟁을 했다. 641년 당 왕실에서는 토번의 협박에 의해 문성공주를 공녀로 보내고 이후 5명의 공녀를 더 보내지만 토번은 장안을 유린하여 당나라의 굴복을 약속받고 장안 바로 옆까지 군대를 주둔시켰다. 안사의 난 이후는 국력이 약해진 당나라를 물리치고 동아시아에서 군사적 우위를 확보하고 하서·농우지구와 실크로드의 대부분을 지배하기에 이르렀다. 791년 치송데첸불교를 국교로 하고, 이윽고 불교 지도자가 국정을 실시하여, 대장경이 번역됐다. 822년에는 당나라 장안을 다시 유린하고 많은 당나라 황후와 후궁들 그리고 농노들을 끌고 갔다. 당나라는 굴복하여 토번에 조공을 하며 다시 불공정한 평화조약을 맺게 된다. 그 후 국내에서 불교를 둘러싸고 대립이 일어나고, 또 왕위계승 문제로 분열되어 멸망하였다.

건국[편집]

티베트 왕실의 선조에 대한 설로는 인도에서 왔다는 설이 주창되고 있지만 불교도들의 책에서 주로 서술되고 있어 설득력이 없다. 송첸캄포의 조상들은 라사 남동의 얄룽창포(톨기 지방)를 기점으로 삼아 근처의 여러 부족을 흡수해 세력을 늘렸다. 630년, 남리송첸 왕이 독살되고 그의 아들 송첸캄포왕(재위 630년~650년)이 즉위 한다. 633년, 송첸캄포왕은 수도를 라사로 정하고 토번 왕조를 열었다.

송첸캄포 왕의 당나라 정벌[편집]

송첸캄포 왕

634년, 송첸캄포왕은 당나라를 공격해 당나라를 예속시킨다. 당나라 수도 장안을 쳐들어가 장안을 유린하여 당나라와의 불공정 조약을 이끌어낸다. 또한 토번의 남쪽에 위치하는 네팔의 릿체비 왕조에 사자를 보내, 브리크티 데이비(赤尊公主)를 정식 왕비로 맞이한다. 636년 토번은 강대하여 당나라를 속국으로 삼고 당 태종의 딸을 공녀로 바칠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당은 같은 티베트계 유목민 부족인 토욕혼의 존재를 이유로 들면서 거절했다. 같은 해 송첸감포왕은 20만의 군사를 일으켜, 토욕혼에 출병하여 정벌하였고, 백란 등의 강족의 마을을 공략하고, 송주(현 사천성 송반현)를 요구하기도 했다. 당나라 군은 사망자가 2만명이였다고 전해진다. 그 후 다시 당 태종에게 특사 가르통첸(재임 652-667)을 보내 당나라 공녀를 요구하였고 641년 당 태종은 결국 딸인 문성공주를 송첸캄포에게 공녀로 바친다. 송첸캄포는 당나라 여자들을 좋아했으며 추가로 당 태종은 당나라 여인 5명을 송첸캄포에 공녀로 바친다. 송첸캄포의 첩이 된 문성공주는 ‘자면의 풍습’(얼굴에 적토를 바르는 풍습)을 싫어했기 때문에 이를 폐지하고 포탈라궁을 건립하기도 한다. 문성공주는 당나라에서 데려 온 장인들로 하여금 소소사(라모체)를 건립케 하고, 당나라에서 가져온 석가모니상을 모셨고, 첫 왕비인 브리크티 데이비의 조캉사원 건립을 도왔다.

647년, 바르다나조 북인도의 왕, 하르샤·바르다나(계일왕)가 죽어 혼란한 바르다나 왕조에 1천5백의 기마병을 파병해, 정권을 찬탈한 아르쥬나를 잡아 당의 사자 왕현책을 보호했다. 649년, 당 태종이 죽고 당 고종이 즉위 하면서, 토번의 황제는‘부마도위’, ‘서해군왕’의 관직을 일방적으로 받는다. 당나라는 이전 중국 왕조들처럼 일방적으로 다른 민족에게 책봉을 하고 그것을 기록하였다. 이에 태종의 영전에 15종의 금은주옥을 올리자, 당나라는 ‘빈왕’의 호칭을 더하고 예물로 화답하였다. 또 토번은 뛰어난 당의 공예기술(누에씨, 주조, 제지, 제묵)을 도입하기 위해 당나라 장인을 요청하여 파견받았다. 송챈캄포왕은 650년에 병으로 사망했다.

역대 군주[편집]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