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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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선지(高仙芝)
 ? ~ 702년 756년 1월 24일
태어난 곳  ?
죽은 곳 장안
복무
주요 참전 탈라스 전투

고선지(高仙芝, ? 702년~756년 나이 55세)는 고구려 유민 출신 당나라 장군이다.

생애[편집]

아버지는 고구려 말기 무장이자 유민으로 당의 장수였던 고사계(高斯界)이다. 유민이 노예 신분을 탈출하는 유일한 방법은 장군이었다. 스무살에 고구려 유민 출신 721년 당나라 유격장수가 되어 토번국 (현 티베트) 세력을 격파하고, 당나라의 영역을 타클라마칸 사막 서쪽으로 넓혔다. 수차의 성공적인 서역원정 중, 파미르 고원을 넘은 사건이 유명하다. 이후 마지막 탈라스 전투(751년)에서 패했다.

1만명의 군사를 이끌고 파미르 고원을 넘어 서역을 정벌한 석국전쟁을 통해 여러제국의 조공을 받게 했다.

747년 안서도호부의 부도호가 되었고, 당시 토번(현 티벳)과 연결되어 있던 소발률을 격파하고 그 왕을 사로잡았다. 이 공로로 같은 해, 안서사진절도사(安西四鎭節度使)로 임명되었다. 749년에는 호탄 왕과 토번의 군대를 격파하고, 750년에는 파미르 고원을 넘어, 서쪽 투르키스탄타슈켄트에 이르고, 그 왕을 사로잡아 재산과 보물을 몰수하였다.

당시 발흥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슬람 압바스 왕조는 서쪽 투르키스탄에 진출해 있었는데, 여러 나라와 연합하여, 아부 무슬림 카라시니 총독이 이슬람군을 파견하여, 751년 탈라스 강가에서 고선지의 당군을 격파하였다.

당나라 군은 3만 중 2만의 군사적 손실을 입었지만, 그 공이 워낙 커 패전의 책임을 묻지는 않았다.

755년 안녹산이 낙양을 점령하고 난을 일으켜 진압 명령을 받았으나, 고선지 부하의 밀고 모함으로 안녹산의 서진을 저지하였다. 그러나 자신의 옛 부하였던 감군 변영성의 모함을 받고 결국 참수 당한다. (756년 1월 24일)

탈라스 전투에서 포로가 된 당의 제지기술자를 통해 서방에 제지기술이 전해진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후세에 들어 고선지의 사적은 오렐 스타인의 중앙아시아 답사로 발굴되고 재인식되었다.

그의 뛰어난 부하장수에는 봉상청,이사업이 있었고 봉상청은 안사의 난 때 죽었지만 이사업은 북정절도사로써 안사의 난 진압에 공을 세웠다.

사마르칸트의 고구려인 벽화[편집]

거의 연구가 없었던 고선지에 대한 연구가 최근에 들어서 이루어졌으며, 인하대 학술조사단이 고선지를 연구하다가, CIS 우즈베키스탄 공화국사마르칸트에서 발견된 벽화의 인물이 고구려 사신이라는 것을 2004년에 밝혀냈다.[1]

같이 보기[편집]

주석과 참고 자료[편집]

  1. "“아프라시압벽화 사신은 고구려인”", 《동아일보》, 2004년 6월 7일 작성. "인하대 학술조사단은 최근 고구려인인 당나라 장수 고선지(高仙芝·?∼755)의 발자취를 추적하기 위해 중앙아시아 현지를 탐사하는 과정에서 아프라시압 박물관 연구진의 도움으로 벽화 속의 사신이 고구려인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