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특급시
좌표: 37°58′N 126°33′E / 37.967°N 126.55°E
| 개성특급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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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황 | |
| 면적 | 179.263km² |
| 총인구 | 308,440[1]명 (2008) |
| 동 | 27개 |
| 리 | 2개 |
개성특급시(開城特級市)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황해북도의 남부에 있는 도시이다. 예로부터 개성은 고려의 수도로서 500여 년간 번영한 고도(古都)이다. 개성은 송도(松都), 송악(松岳), 개경(開京), 송경(松京)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원래 북위 38도선 이남 지역이었기 때문에 대한민국이 경기도에 두어 통치하였다. 그러나 한국 전쟁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점령하게 되었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1951년에 개성지구(開城地區)로 행정구역을 변경하였다. 이후 개성직할시를 거쳐 2003년부터는 황해북도에 속하게 되었고, 개성공업지구가 있다. 인구는 2008년 현재 308,440명이다.
목차 |
지리 [편집]
1950년까지의 개성은 개풍군(開豊郡)에 둘러싸이고, 일부가 장단군(長湍郡)과 닿아 있었다. 1953년 휴전 협정 이래 개성 시가지의 약 10km 바깥에는 한반도의 군사 분계선이 지난다.
개성 시내에서 반경 8km 에는 판문점과 개성공단이, 반경 15km 에는 파주시 문산읍(汶山邑)이 가까이 위치해 있다.
개성은 아호비령산맥(阿虎飛嶺山脈)이 인근에 있어 주변에는 산들이 많이 있다. 산으로는 북쪽에 제석산(帝釋山), 천마산(天馬山), 두석산이, 중앙에 송악산(松岳山), 남쪽에 진봉산(進鳳山)과 용수산(龍岫山)이 있다. 특히 개성 시가지 주위에 있는 송악산, 자남산(子南山) 등에는 소나무가 많아, 개성을 송도(松都)라고 불리게 하였다.
하천으로는 원교(遠郊)에 임진강(臨津江)과 례성강(禮成江)이 흐른다. 북조선에서는 옹진군과 함께 기후가 가장 온화한 지역에 속한다. 시 면적의 55%는 삼림이 차지한다. 주목할 만한 동식물로는 북한의 천연기념물인 개성백송(開城白松)과 크낙새가 있다.
역사 [편집]
삼국시대 [편집]
백제시대에는 '동비홀(冬比忽)'이라고 불렸다. 신라시대인 757년(경덕왕 16년)에 지명을 '개성군(開城郡)'이라는 중국식으로 고쳤다.
고려의 도읍 [편집]
이 지역은 바다와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던 호족의 본거지였으며, 그 중 왕씨 일가는 그 대표적인 존재였다. 궁예(弓裔)도 철원(鐵原)을 후고구려의 도읍으로 확정하기 전에는 한때 이곳을 임시 도읍으로 삼았다. 918년 왕건(王建)이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를 세워 본격적으로 고려의 도읍이 된 이후로는 개주(開州), 개경, 개성부(開城府) 등으로 불렸다. 이후 조선 왕조가 들어서 1394년 한양으로 천도할 때까지 489년간 고려와 조선 두 왕조의 도읍이었다. 또한 개성은 인접한 항구 도시인 벽란도(碧蘭渡)와 함께 국제 상업 도시로 발달했으며, 당시의 개성의 인구는 30만 가량으로 추산된다.
조선 [편집]
1392년 조선 태조가 조선을 개국했을 때, 잠시 도읍은 개경을 그대로 유지하다가, 1394년에 한양으로 수도를 옮겼다. 도읍이 개경으로 다시 돌아온 1399년~1405년 사이를 제외하고는 개성은 정치적 중심으로서의 기능은 잃었다. 그러나 역시 조선왕조에서도 개성은 중요한 도시 가운데 하나였다. 1438년 개성에는 개성부(開城府)가 설치되어, 개성부 유수(留守)가 파견되었다. 또한 개성은 특히 상업의 중심지로 이름을 떨쳤다.
일제 강점기 [편집]
1914년 4월 1일에 개성군, 풍덕군을 통폐합하여 개성군을 설치하였다[2]. 1930년에 송도면(松都面)이 개성부로 승격하자, 교외지역은 개풍군(開豊郡)으로 분리되었다.
대한민국 [편집]
광복 후, 개성은 북위 38도선 바로 남쪽에 있기 때문에 미군정(美軍政) 지역이 되고, 1949년에 개성부는 개성시가 되어 대한민국의 최접적(最接敵) 도시가 되었다. 시가지의 북쪽 송악산 정상(488고지)은 북한, 그 남쪽의 475고지는 남한이어서, 1949년 5월 4일에 송악산 5·4 전투 가 일어나는 등 크고 작은 전투가 벌어졌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편집]
한국 전쟁 이후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편입되었으며, 1954년 황해북도 소속 도시가 되었다. 1955년 장풍군·판문군(板門郡)과 통합, 개성직할시로 명칭을 변경하였고, 2003년에는 황해북도로 편입되어, 개성특급시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아울러 판문군이 폐지되고, 개풍군과 장풍군(長豊郡)이 분리되어 나가 황해북도로 편입되었다. 또 개성특급시 일부와 구 판문군 일부를 합쳐, 개성공업지구를 신설하였다.
산업 [편집]
경공업을 주로 하며, 인근 평야 지대에서는 농업, 특히 논농사가 이루어진다. 쌀 외에도 옥수수·콩·수수·메밀도 생산되며, 축산업, 과수업, 양잠도 이루어진다. 개성특급시는 소규모의 메기농장과 개성시인삼농장, 그리고 개성시인삼가공공장이 있으며, 모직물과 편직물 각종 의류들을 생산하는 개성편집물공장과 개성수지공장이 있고, 개성일용품공장과 개성육류공장, 그리고 개성신발공장과 개성목재공장, 개성일용잡화공장 등이 있다. 2006년에는 개성공업지구가 남북한 간의 협상으로 설립되어 대한민국의 일부 중소기업들이 이곳으로 진출하였고, 이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는 대부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 주민들이다.
개성인삼공장은 기업농장을 운영하고 있고, 개성인삼공장에서 생산되는 "개성인삼"은 가공 혹은 가공되지 않은 상태로 평양시로 운송된다. 인삼과 도자기는 해외로도 수출된다.
금융기관으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앙은행의 개성 지부가 있다.
관광명소 및 유적지 [편집]
개성은 고려왕조 500년의 수도로서, 명승고적이 많다. 시내의 대표적인 역사적 유적 및 명승지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교외(구 개풍군 지역)에도 왕건릉과 공민왕릉 같은 역사적 유적과 박연폭포(朴淵瀑布) 같은 명승지들이 많다.
기타 [편집]
개성민속여관은 선죽동에 있으며, 조선시대 때 지어진 많은 전통한옥들과 봉사기관들이 많이 밀집해 있다. 이것은 전쟁 전에는 개성 주민들의 주택이었던 것을 여관시설로 개조한 것이다. 1975년에 김일성이 "우리의 문화와 풍습들을 잘 보존해야겠다."는 지시를 내리자, 이 곳을 "보전거리"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여관으로 개조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관광객 개성민속여관으로 가면 민족음식인 우메기(한과)와 인삼차, 송도보쌈김치(송도쌈김치)의 맛을 느낄 수 있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전통놀이를 즐길 수 있다.[출처 필요] 기타 관광시설으로는 자남산려관과 개성민속려관이 있다. 개성의 주요 관광지는 한때 대한민국의 관광객에도 개방되기도 했으나, 2010년 현재 개성특급시는 대한민국(남한)으로부터 오는 관광을 중단한 상태이다.
사회문화시설 [편집]
사회문화시설로는 개성학생소년궁전과 개성체육청소년학교가 있으며, 상업시설은 개성백화점이 있다. 지역의 방송국으로는 대남(對南)용인 개성방송, 조선교육문화텔레비죤방송국이, 신문사로는 개성신문사가 있다.
의료기관에는 과거에 남성병원(南星病院)이 있었는데, 지금은 개성시인민병원과 개성시종합진료소가 있다.
교육 [편집]
1950년 당시의 중등 교육기관으로는 공립인 개성중학교(開城中學校), 개성고등여학교(開城高等女學校), 사립인 송도중학교(松都中學校), 정화여학교(貞和女學校), 호수돈여학교(好壽敦女學校)가 있었다. 전쟁 후, 사립 학교들은 남한지역으로 와서 다시 개교하였다. 한편, 초등 교육기관으로는 만월(滿月), 동현(銅峴), 선죽(善竹), 고려(高麗), 송도(松都), 중경(中京), 남산(南山), 덕암(德岩) 등의 국민학교가 있었다.
현재 개성의 대학으로는 고려성균관, 개성공업대학, 개성예술대학, 안영애대학, 개성체육대학, 송도대학 등이 있다.
개성공업지구 [편집]
2000년 8월, 김정일과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의 합의에 의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측이 토지와 노동력을, 대한민국(현대) 측이 기술과 자본을 제공하고, 개성(구 개풍군 봉동면) 일대에 공업단지를 만드는 것이 정해졌다. 2002년 11월에, 북한 측은 "개성공업지구법"을 제정. 2003년 6월, 약 330만㎡를 조성하는 제1기 공사가 기공되어 2006년 말에 완공되었다. 다만, 쌍방의 의견 대립등도 있어, 단순하게 순조롭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런데도 남북의 송전선이나 서울로부터의 광섬유가 연결되는 등의 큰 진전도 많다.
교통 [편집]
철도로는 평부선(경의선) 개성역이 있으며, 그 동쪽으로는 대한민국 경의선 도라산역과 연결되는 판문역, 손하역, 봉동역이 있다. 도로시설로는 평양개성고속도로 등이 있다.
행정구역 [편집]
개성특급시는 현재 27동 2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명칭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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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편집]
주석 [편집]
- ↑ 조선중앙통계국,2008년 인구 조사,2009년.
- ↑ 부령 제111호, 1913년 12월 29일 공포
참고 자료 [편집]
바깥 고리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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