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특급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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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특급시(開城特級市)는 한반도 중부에 있는 도시이다. 현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속한 도시이다. 개성은 고려의 옛 수도로서 500여 년간 번영한 고도(古都)이다. 개성은 송도(松都), 송악(松岳), 개경(開京), 송경(松京)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본래 경기도에 속했었으나, 북조선 치하에서 1951년에 개성지구(開城地區)로 바뀌었고, 개성직할시를 거쳐 2003년부터 황해북도에 속하게 되었다. 인근에 개성공업지구가 있다.
면적은 광복 당시 82㎢였으며, 인구는 2000년 현재 145,000명으로 추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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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지리
약 10Km 인근의 군사분계선을 경계로, 서쪽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 남쪽은 경기도 파주시에 접한다. 개성 시내에서 반경 8Km 에는 판문점 과 개성공단이, 반경 15Km 에는 파주시 문산읍이 가까이 위치해있다. 산으로는 북쪽에 제석산, 천마산, 두석산이, 중앙에 송악산이, 남쪽에 진봉산과 용수산이 있다. 대체로 여러 산들이 솟아 있으며, 아호비령산맥이 위치해 있다. 특히 시가지는 주위에 송악산, 자남산(子南山) 등 소나무가 많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이 도시를 송도(松都)라고 불리게 하였다.
하천으로는 임진강과 용수천, 예성강을 비롯한 크고 작은 하천들이 개성시를 지난다. 하천에는 평야가 펼쳐져 있다. 북조선에선 기후가 가장 온화한 지역이다. 시 면적의 55%를 삼림이 차지한다. 야생동식물도 서식하고 있다.
[편집] 역사
[편집] 삼국시대
백제시대에는 「동비홀(冬比忽)」이라고 불렸다. 신라시대인 757년(경덕왕 16년)에 지명을 「개성군(開城郡)」이라는 중국식으로 고쳤다.
[편집] 고려 500년의 도읍
이 지역은 바다로 많이 왕래한 호족의 본거지였고 왕씨 일가는 그 대표적인 존재였다. 궁예도 철원을 후고구려의 도읍으로 확정하기 전에는 한때 이곳을 임시 도읍으로 삼았다. 918년 왕건이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를 세워 본격적으로 고려의 도읍이 된 이후로는 개주(開州), 개경, 개성부 등으로 불렸다. 이후 조선 왕조가 들어서 한양으로 천도할 때까지 489년간 고려와 조선 두 왕조의 도읍이었다. 또한 개성은 인접한 항구 도시인 벽란도와 함께 국제 상업 도시로 발달했으며, 당시의 개성의 인구는 30만 가량으로 추산된다.
[편집] 조선시대
1392년 조선을 세우면서 당시 도읍은 개경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조선 태조는 개경에 있던 궁궐에서 살았다. 1394년 조선 태조는 한양으로 수도를 옮겼다. 1399년~1405년 사이의 잠깐을 제외하고는 개성은 정치적 중심으로서의 기능은 잃었지만, 조선왕조에서도 개성은 중요한 도시 가운데 하나였다. 1438년 개성에는 개성부(開城府)가 설치되어, 개성부 유수(留守)가 파견되었다. 그중에서 특히, 개성은 상업의 중심지로 이름을 떨쳤다.
[편집] 근·현대
- 1930년 송도면(松都面)이 개성부로 승격, 교외지역은 개풍군(開豊郡)으로 분리.
- 1949년 개성시 설치
- 한국전쟁 이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행정구역으로 편입
[편집] 산업
농업과 경공업을 주로 한다. 농업은 논농사 중심이다. 쌀외에도 옥수수·콩·수수·메밀도 생산된다. 축산업, 과수업, 양잠도 이루어진다. 개성특급시는 소규모의 메기농장과 개성시인삼농장, 그리고 개성시인삼가공공장이 있으며, 모직물과 편직물 각종 의류들을 생산하는 개성편집물공장과 개성수지공장이 있고, 개성일용품공장과 개성육류공장, 그리고 개성신발공장과 개성목재공장, 개성일용잡화공장 등이 있으며, 2006년에는 개성공업지구가 남북한의 긴밀한 협상으로 설립되어 대한민국의 일부 중소기업들이 이곳으로 진출하였고, 이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는 대부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민(주민)들이다.
개성인삼공장은 기업농장을 운영하고 있고, 개성인삼공장에서 생산되는 "개성인삼"은 가공 혹은 가공되지 않은 상태로 평양시로 운송되어진다.
자고로 개성인삼은 세계 여러나라 사람들이 동방의 명약이라고 알려져 있을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고, 19세기 미국에서 실험한 홍삼재배기술이 실패했을 만큼, 유능한 효과를 가지고 있었던 개성인삼은 약재관리소와 화장품공장에서도 비누나 건강 화장품, 피부노화방지에도 좋은 후과을 보이고 있으며, 화장품이나 악재에서도 유행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금융기관으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앙은행의 개성 사옥이 있다. 특히 인삼과 도자기는 해외로도 수출된다.
[편집] 관광
이 도시는 고려왕조 500년의 수도로서, 명승고적이 많다. 대표적인 역사적 유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사회문화시설로는 개성학생소년궁전과 개성체육청소년학교가 있으며, 상업시설은 개성백화점이 있다.
그중에서 개성민속여관이라는 숙박시설은 선죽동에 있는 건물이며, 조선시대 때 지어진 전통한옥들과 봉사기관들이 많이 밀집해 있다. 이곳은 마치 대한민국의 경기도 용인시와 경상북도 안동시의 한옥민속마을과 흡사한 형태이다. 개성민속여관은 1975년에 김일성 국가주석이 "우리의 문화와 풍습들을 잘 보존해야겠다." 고 하면서 여기를 "보전거리"라는 이름으로 바뀌였고, 여관들을 만들도록 하였다.
그래서 관광객 개성민속여관으로 가면 민족음식인 우메기(한과)와 인삼차, 송도보쌈김치(송도쌈김치)의 맛을 느낄 수 있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전통놀이를 즐길 수 있다. 이곳은 최근 대한민국의 관광객에도 개방되고 있으며, 수입이 많다.
관광시설으로는 자남산려관과 개성민속려관이 있다. 의료기관에는 개성시인민병원과 개성시종합진료소가 있으며,
[편집] 교육
- 종합대학
- 전문대학
- 개성공업대학
- 개성음악무용대학
- 중학교
- 송악중학교
[편집] 개성공업지구
- 이 부분의 본문은 개성공업지구입니다.
2000년 8월, 김정일 국방위원회 위원장과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의 합의에 의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측이 토지와 노동력을, 대한민국(현대) 측이 기술과 자본을 제공하고, 개성에 일대 공업단지를 만드는 것이 정해졌다. 2002년 11월에, 북한 측은 "개성공업지구법"을 제정. 2003년 6월, 약 330만㎡를 조성하는 제1기 공사가 기공되어 2006년 말에 완공되었다. 다만, 쌍방의 의견 대립등도 있어, 단순하게 순조롭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런데도 남북의 송전선이나 서울로부터의 광섬유가 연결되는 등의 큰 진전도 많다.
[편집] 교통
[편집] 행정 구역
개성특급시는 27동 2리로 이루어져 있다.
- 고려동
- 관훈동
- 남문동
- 남산일동
- 남산이동
- 남안동
- 내성동
- 덕암동
- 동현동
- 동흥동
- 용산동
- 용흥동
- 만월동
- 방직동
- 보선동
- 부산동
- 북안동
- 선죽동
- 성남동
- 송악동
- 승전동
- 역전동
- 운학일동
- 운학이동
- 은덕동
- 자남동
- 해운동
- 박연리
- 삼거리
[편집] 정보
- 방송국
[편집] 대한민국과 개성 특급시
현재 개성특급시는 대한민국(남한)으로부터 오는 관광을 중단한 상태이다.
- 대한민국(남한)에서는 개성특급시를 미수복 경기도의 개성시로 규정한다.
- 대한민국(남한)에서는 개성특급시를 자국 영토로 규정해 이북 5도에 대해 형식상의 지방자치단체장을 임명하고 있으며, 2008년 현재 개성시장은 김지수이다.
[편집] 주석
[편집]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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