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성소수자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대한민국의 성소수자들은 법적 한계와 차별을 마주하며 살아간다. 대한민국에서 동성애는 불법이 아니며 법령에 의해 개인의 성적지향으로 인정하고 있다.그러나 동성 연인과 그들이 이루는 가정은 법적인 인정과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헌법이나 형법에 동성애가 언급되어 있지는 않지만 국가인권위원회법과 《형의 집행 및 수용자 처우에 관한법률》 《군의 형의 집행 및 수용자 처우에 관한 법률》에는 성적 지향에 대한 차별하지 말 것을 명시하고 있다. 또 법무부 훈령 '인권수사준칙' 등에도 성적지향에 의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한편, 《군형법》 92조는 상호 동의하에 가진 '항문성교' 등의 모든 성관계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실제 적용시 이성간의 경우 '징계'로 끝나는데 비해 남성간의 경우 형사처벌을 하고 있어 형평성 논란이 제기되어 왔다.

대한민국에서는 성인에 한해 성전환 수술과 성별 정정 신청이 가능하다. 하리수는 한국 최초의 트랜스젠더 연예인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용어[편집]

한국에서 게이는 남성 동성애자, 레즈비언은 여성 동성애자를 일컫는다. ‘이반’이라는 명칭은 동성애자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긍정하기 위해 쓰인다. 이반에는 동성애자 외에 양성애자들도 포함되곤 한다. 이반들은 이성애자를 '일반'이라고 부른다.

역사[편집]

근대 이전의 한국 역사 속 동성애는 사건 위주의 기록이 대다수이다. 직접적인 언급 없이 우회·부정적으로 표현한 경우가 많아 해석에 많은 논란이 따른다. 고려, 조선조에는 동성애를 배우자와의 이혼 사유로 이용하는 경우가 흔했고, 이를 통해 당시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반감을 짐작할 수 있다.

신라 시대[편집]

이 여자로서 남자가 되었으므로 어렸을 때 항상 여자의 놀이를 하였다 하니, 우습도다!
 
안정복 , 동사강목 제 3권

삼국유사에는 신라의 제36대 국왕 혜공왕이 여자 모습을 하기를 좋아하고 '도사와 함께 희롱'하였다는 대목이 있다.[1] 이를 동성애로 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경덕왕이 원래 딸로 태어나야 했을 아이를 억지로 아들로 만든 것이 혜공왕이라는 앞 대목의 기록을 볼 때 트랜스젠더의 이성애로 해석할 수도 있다.

고려 시대[편집]

공민왕

고려 목종동성애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2]

노국대장공주가 난산으로 사망하고 신돈을 통한 개혁이 실패한 이후, 고려 공민왕은 향락에 집착하게 된다. 1372년 음력 10월 1일 특수기구 자제위를 설치[3]한 공민왕은, 그 동성애 상대자였다고 알려진 대언 김흥경을 자제위 총괄 직책에 임명한다.

자제위는 고위 관직자의 자제 중 미소년들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주로 왕의 좌우에서 시중을 드는 역할을 맡았고, 홍륜, 권진, 한안, 노선, 홍관 등이 왕의 총애를 받았다. 고려사는 자제위가 왕과 더불어 여러 음란행위들을 저질렀다고 기록한다. 이를테면, 왕의 지휘 아래 여러 후궁들을 간하고, 왕은 여자 분장을 하고 있다가 마음이 동하면 홍륜 등과 함께 육체적 관계를 맺는 등이다.

1374년 음력 9월, 공민왕은 만취 상태에서, 환관 최만생에게 익비 한씨가 홍륜과의 관계에서 잉태했다는 보고를 받는다. 왕은 이 사실을 아는 모든 사람들을 죽이겠다고 말하는데, 이에 두려움을 느낀 최만생은 자제위와 함께 모의하여 왕을 시해한다. 이튿날 시해 사실이 발각되었으며, 자제위와 최만생은 처형당한다.

조선 시대[편집]

순빈 봉씨조선 문종의 세자 시절 부인으로, 쫓겨난 휘빈 김씨의 뒤를 이어 1429년 음력 10월 15일 세자빈으로 책봉되었다. 하지만 다혈질적인 봉씨[4]는 문종과 사이가 멀어졌고, 이에 세종은 세자의 후궁으로 권씨(후일의 현덕왕후), 홍씨, 정씨를 봉하게 된다. 이중 권씨가 임신(경혜공주)하자, 위기감을 느낀 봉씨는 거짓으로 임신 소동을 일으키고, 외간 남자를 엿보며, 아침부터 술에 만취해 폭언을 하는 등 난행을 일삼게 된다. 하지만 이미 휘빈 김씨를 폐출한 경험이 있는 세종은 세자빈 문제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왕비 소헌왕후 심씨와 함께 타이르는 선에서 일을 마무리하게 된다. 하지만 세자빈의 동성애 행동은 계속되었고, 마침내는 빈궁의 궁녀인 소쌍과 동침하는 사태까지 벌어진다. 이 소문이 궁녀들 사이를 떠돌다가 세종에게까지 알려지고, 원래 궐내 시녀간의 동성애 사실을 알고 있었고 이를 곤장 70대로 엄히 다스리던 세종은 격분하여 1436년 음력 10월 26일 세자빈 봉씨를 폐서인하고 같은 해 음력 12월 28일에 유일하게 문종의 자식을 낳은 권씨를 의빈에 봉하니 이가 곧 현덕왕후가 된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편집]

1955년 8월 13일 서울적십자병원에서 남성으로 태어난 조기철에게 한국 최초의 성전환 수술이 이루어졌다. 같은해 9월 30일에는 서울 경전병원 산부인과에서 경기도 화성군 우정면 석천리 출신 백기화(白基花)가 성전환 수술을 받고 여성이 되었다.[5][6] 백기화는 내성기는 여성이었지만 남성호르몬이 과다 분비되어 남성의 외성기를 갖고 태어났지만 여성이라는 사실을 알고 수술을 받았다.

한국의 경우 80년대 외국의 에이즈 위기와 남성 동성애자의 원인설이 유입되면서 정체성으로 가시화되었다. 그 동안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의 이미지나 대중적 인식은 남성 동성애자로 대표되었다고 볼 수 있다. 남성동성애자의 경우 종로나 이태원 등의 지역에서 클럽이나 바를 중심으로 하위문화가 형성되어 있으며, 지역 경제에서는 무시하기 어려운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여성 동성애자의 경우 여성주의 운동, 담론과 관련을 맺으며 운동 사회에 활발히 주체화되고 있으나 사회적 영향력도 크지 않고 사회경제적 지위도 낮았다.

1993년 대한민국 최초의 동성애자 인권모임인 초동회가 결성되었으나, 1994년 초동회에서 남성 동성애자 인권단체인 친구사이와 여성 동성애자 인권단체인 끼리끼리로 분리되었다.[7] PC 통신 내 동성애자 모임들이 활성화되기 시작했으며, 1995년 친구사이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 각 대학을 중심으로 동성애자 모임들을 조직하기 시작하여 성소수자 인권운동 단체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90년대 후반에 들어서 여성 동성애자들이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커밍아웃을 하기 시작했다. 1997년 첫 서울퀴어영화제와 대규모 성소수자 집회가 열렸다. 현재의 동성애자인권연대의 전신인 대학동성애자인권연합이 결성되었다.[8]

배우 홍석천2000년에 공개적으로 커밍아웃하여 사회에 많은 논란을 일으키며 본격적으로 사회의 동성애자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였다. 같은 해 제 1회 퀴어문화축제가 대학로에서 개최되었다. 2001년 대한민국의 최초 성전환 연예인인 하리수가 데뷔하여 대한민국에서 성전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다. 대한민국 국회에서 성적 지향이란 단어가 최초로 포함된 국내법 국가인권위원회법이 제정되었다.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인터넷 공간에서 성소수자 사이트들을 검열하고 유해 사이트로 취급하던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 항의하는 표시로 동성애자 웹 커뮤니티인 엑스존이 자진 폐쇄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2004년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여, 청소년보호법 시행령에 동성애 차별 조항을 삭제하고 성소수자 사이트들에 대한 검열 등을 중단하였다. 민주노동당이 대한민국 정당 중 처음으로 성소수자위원회를 설치하였다.

2006년, 성전환자 성별변경 법제정을 위한 공동연대가 발족되었다. 여러 인권 단체들이 성전환자의 성별 변경을 위한 법을 입법하기 위해 많은 사회적 노력을 하였고, 결국 대법원은 성기 성형을 한 성전환자에 한해 성별정정을 허가하는 판결을 내렸다. 2007년 10월 법무부에서 성적지향을 비롯, 성별과 장애, 나이, 인종, 종교 등을 이유로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합리적인 이유 없는 차별을 금지하기 위한 차별금지법 입법이 예고하였으나, 보수주의 기독교 단체와 재계의 반발로 인하여 결국 무산되었다. 대한민국 제 18대 총선에서 최초로 공개적 커밍아웃한 레즈비언 정치인인 최현숙이 종로를 지역구로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성소수자 인권 단체들은 2008년에 성소수자인권단체연대체인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 행동을 결성하고 첫 LGBT 인권포럼을 개최하였다. 2009년에는 서울을 제외한 지역에선 대구가 최초로 퀴어문화축제를 열었다.

2010년대[편집]

2010년 대한민국의 지상파 방송사 SBS에서 황금시간대에 최초로 게이 커플이 등장하는 텔레비전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를 약 8개월간 방영하였다. 각 지역의 교육청들은 2011년 경기도를 시작으로 학생인권조례를 공포하기 시작하였다. 서울과 경기도 등 몇몇 지역의 학생인권조례에는 성적지향도 포함되는 등, 성소수자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도입되었다. 2012년 한 성소수자 인권 단체가 LGBT 운동을 위한 현수막을 게시하려고 하였으나 서울시 마포구가 불허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결국 국가인권위원회에 성소수자 단체가 진정을 내, 마포구에 성소수자 차별 정책을 시정하라는 권고를 이끌어냈다. 2013년이 되어 대법원은 2006년의 판결에서 더 나아가 성기 성형 없이도 성별을 정정해주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2013년 20대 초반 남성들의 동성애를 다룬 “친구사이?”라는 영화가 성인등급으로 분류된 사안과 관련해 동성애를 유해한 것으로 취급하여 그에 관한 정보의 생산과 유포를 규제하는 경우 성적 소수자인 동성애자들의 인격권·행복추구권에 속하는 성적 자기결정권 및 알 권리, 표현의 자유, 평등권 등 헌법상 기본권을 지나치게 제한할 우려가 있는 점 등을 종합하여, 이 사건 영화는 ‘청소년 관람불가’의 등급분류기준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하여 동성애 자체만으로 청소년에게 유해하다거나 문제가 있다고 볼수 없다고 판시한바 있다. [9]

단체[편집]

동성애에 대한 공동체도 커지고 있다. 2007년 5월 이명박 대통령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시절, "내가 개신교 장로이기 이전에, 인간은 남녀가 결합해서 서로 사는 것이 정상이다. 그래서 동성애는 반대입장"이라며 동성애 반대 발언을 했으며, 이에 대한 항의로서 한국의 대표적인 동성애자클럽인 친구사이는 사이버시위를 하기도 했다.[10]

한국의 동성애자들은 자신을 '이반'이라고 지칭한다. '일반'적인 사람들과 자신들이 다름을 나타내는 은어로 사용되다 최근 여러 곳에서 동성애들을 표현하는 언어로 확산되었다.[11] 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는 성소수자의 문화행사인 퀴어문화축제(Korea Queer Culture Festival)를 매년 개최한다.

성소수자 인권단체[편집]

최초의 대한민국 성소수자 인권단체는 1993년 게이, 레즈비언들이 함께 결성한 초동회이다. 초동회는 두 달 뒤 게이, 레즈비언들이 분리해 각각 친구사이와 끼리끼리로 이어졌다. 이 중 끼리끼리는 2005년 레즈비언 상담소로 전환되었다.

한편, 주요 대학들 내에서도 성소수자 인권운동에 대한 인식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가장 먼저 탄생한 대학 성소수자 모임은 1995년 결성된 연세대학교 컴투게더이다. 컴투게더를 시작으로 서울대학교 마음001, 고려대학교 사람과 사람 등이 만들어졌고 대학 내에도 성소수자가 있음을 알리기 시작하였다. 1997년 말에는 대학 성소수자 모임들이 모여 대학동성애자인권연합(대동연)을 출범시켰다. 이 단체가 98년 동성애자인권연대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2013년 현재 활동하고 있는 단체로는 동성애자인권연대, 레즈비언상담소,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등이 있다. 또한 성소수자 인권단체들의 연대체로 무지개행동이 있다. 서울대학교연세대학교, 고려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등 여러 대학을 비롯, '차별 없는 사회를 실현하는 대학생 네트워크 [결]'와 같은 대학생 성소수자 모임이 존재한다.

정당[편집]

동성애자들의 인권을 위해 2000년 민주노동당은 성소수자위원회를 설립했다. 민주노동당의 성소수자위원회는 2004년, 헌혈 전 실시하는 문진에서 에이즈 감염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동성과의 성 접촉 여부’를 묻는 것은 평등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해 동성애자의 인권을 위한 노력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12] 또한 민주노동당 여기동 성소수자위원장과 곽정숙 당선자, 이정희 당선자는 5월 17일 국제 동성애 혐오 반대의 날을 맞아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장에서 동성애 혐오에 반대하는 성명을 내놓았다.

민주노동당국민참여당등과 함께 통합진보당으로 합당되면서 통합진보당 성소수자위원회가 구성되었으나, 통합진보당 경선부정사태로 성소수자위원회의 당원 다수가 탈당하여 현재 '진보정의당 레인보우'라는 이름의 진보정의당 성소수자 당원 모임이 있다.

성소수자 인권 운동[편집]

군형법 성소수자 처벌 철폐 운동[편집]

대한민국 군형법 92조 5는 소도미법의 일종으로 계간(남성간의 항문성교)와 기타 추행을 처벌하여 남성 군인간의 성적 행위를 처벌하였다. 성소수자단체들은 성소수자 군인들의 권익을 침해한다며 폐지 운동을 벌였다. 2011년 12월 장병권 동성애자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성 소수자를 법으로 처벌하는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그는 “법에 의해 동성애자가 처벌받는 나라다. 국제사회와 심지어 국내 인권위에서도 동성애자처벌조항을 폐지하라고 권고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며 “동성애를 인정받지 못해 우리 국민이 외국에서 난민 지위를 얻었다는 사실을 이 나라는 창피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2013년 김광진의원은 이 조항을 폐지하는 법안을 발의하였으나 국회심의과정에서 92조의 5가 92조의 6으로 옮겨가면서 처벌 대상이 항문성교 및 기타 추행으로 변경되었다. 성소수자 인권단체들은 92조의 6이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폐지해야된다는 운동을 계속 벌이고 있다. 2013년 5월 민홍철 의원이 여성 군인간의 성적 행위를 처벌하고, 이성간의 항문성교는 처벌에서 제외하려 92조의 6을 개정하여 동성간의 성적 행위만 처벌하는 법을 발의하려고 시도하여 성소수자 인권 단체들은 이에 항의하는 운동을 벌였다. 2014년 3월 군형법 92조의 6을 삭제하는 법이 김광진의원을 대표발의자로 재발의 되었다.

차별금지 운동[편집]

학생인권조례를 통해 청소년 성소수자의 인권 보호 운동을 벌이고 있고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여 성적 지향성별 정체성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에이즈[편집]

대한민국 질병관리본부는 에이즈가 동성애자들만의 질병이 아님을 대중에 알리고 있다. 또한 동성애자에 대한 에이즈 예방 사업 본부를 별도로 두고 있으며, 콘돔을 무료로 배포하는 등의 사업을 벌인다.

동성 결혼[편집]

2013년 9월 7일, 김조광수가 청계천 광통교에서 공개 결혼식을 올렸다.

대한민국 정부는 동성 결혼이나 시민 결합 등 동성 커플의 그 어떤 법적 지위도 인정하고 있지 않다.

여론 조사[편집]

2013년 5월에 있던 Ipsos의 여론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26%가 동성 결혼 합법화에 찬성한다고 밝혔으며, 다른 31%는 시민 결합 등 결혼과는 다른 형태의 법적 지위를 인정해주는데 지지한다고 답했다.

2013년 Pew Research Center는 동성애에 대한 각국의 인식 조사를 실시했다. 질문은 "사회가 동성애를 받아들여야 합니까?"였다. 2007년에 비해서 2013년에 동성애 인식이 가장 크게 변화한 나라는 대한민국이었다. 2007년 18%에서 2013년에는 39%로 21%가 증가했다.[13]

국제 부분[편집]

2011년 6월 17일 대한민국은 유엔에서 열린 인권이사회에서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실태를 2011년 말까지 조사하고, 이 실태를 기반으로 2012년 3월경에 있을 정기 회기에 패널토론을 실시하는 결의안(17/19. 인권,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에 대해 대한민국은 찬성표를 던졌다.

한편,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2011년 12월 8일 뉴욕 유엔 본부에서 있었던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에 근거한 폭력과 차별 근절에 관한 패널토론에서 패널토론을 축하하며 보낸 메시지에서 "우리는 성소수자 차별에 맞서 부모로서, 가족구성원으로서, 교사로서, 이웃으로서, 커뮤니티 리더로서, 언론인으로서, 종교인으로서, 공무원으로서의 역할이 있고, 또 모든 국가는 성적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벌어지는 차별과 폭력으로 부터 모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반드시 취해야 합니다"라고 밝혔다.

동성애를 이유로 병역을 거부한 한국인이 2009년 캐나다로 망명, 정치적 난민 신청을 하였다. 얼마 뒤 이 한국인은 난민 지위를 인정받고, 캐나다에 체류하게 되었다.

관련 매체[편집]

영화[편집]

드라마[편집]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삼국사기·삼국유사》, 삼국유사 권 제2 <기이> 경덕왕·충담사·표훈대덕, 이병도 역, 누리미디어
  2. 토론이 있는 인터넷신문 - 데일리안
  3. 고려사》,<세가> 43권, 공민왕 21년(1372년) 음력 10월 1일자 기사. 寘子弟衛(자제위를 설치하다)라는 문구와 함께 자제위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고 있다.
  4.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75권, 세종 18년(1436년) 음력 11월 7일 1번째 기사. 세종이 신하들에게 세자빈 폐출의 이유를 설명하는 이 기사에는 책을 집어던지는 등의 봉씨의 과격한 행동이 묘사되어 있다.
  5. "男性의 受難時代? 또 한 名이 女子로 轉換", 경향신문 1955년 09월 02일자 3면, 사회면
  6. "壇上壇下", 동아일보 1955년 09월 03일자 1면, 정치면
  7. 초동회 (한국 동성애자 인권운동단체). 한국성적소수자 문화인권센터. 2013년 12월 3일에 확인.
  8. 동성애자인권연대 (한국 동성애자 단체). 한국성적소수자 문화인권센터. 2013년 12월 3일에 확인.
  9. 대법원 2013.11.14. 선고 2011두11266
  10. 이명박, 동성애 반대 발언 파문 관련기사
  11. 동성애자를 '이반'이라 부르는 의미에 관련된 동성애자 단체의 공동 성명서
  12. 민주노동당 성적소수자 위원회 관련기사
  13. (영어) The Global Divide on Homosexuality, Greater Acceptance in More Secular and Affluent Countries. Pew Research Center (2013년 6월 4일). 2013년 11월 19일에 확인.